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03화 (103/176)

# 103

자원 부국 (1)

무더위가 한풀 꺾인다 싶더니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밤잠 설치게 만들던 열대야는 거짓말같이 사라졌고, 날씨는 상큼한 풀 향기처럼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절망의 여름을 지나 희망찬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아따 마! 오늘도 만선이여-.”

제주 연근해에서 유자망어선 한 척이 조업에 한창이었다.

수면에서 수직으로 펼쳐서 조류를 따라 흘려보낸 그물을 걷어 올리는 작업이 막 끝나가고 있었다.

조업에 나선 지 네 시간 남짓, 어창은 수십 종의 물고기들로 가득했다.

추자도와 마라도 인근 해역에 형성된 너른 어장은 그야말로 물고기들로 넘쳐났다.

주 어종은 조기, 삼치, 멸치, 꽁치, 명태였고, 황금빛 참조기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류는 극초신성의 영향을 받지 않은 탓인지 지극히 평범한 물고기들이었다.

이를 연구소에서도 원인을 밝혀내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해답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다 영주님 덕분 아입니까. 감사함을 모르면 사람이 아인기라.”

“그라제. 우리가 요로코롬 살 수 있는 것도 영주님 아님시롱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것어.”

네댓 명의 어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게 모두 성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대부분의 제주 주민들은 성현을 영주님이라 호칭하길 주저치 않았다.

“자-아. 돌아갑시다!”

어선은 만선을 알리는 오색의 깃발을 펄럭이며, 출항지인 제주항을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

* * *

북한산 대피소의 주민들은 수송 직전 군위원회 소속 가신들에 의해 영지민으로 거두어 졌고, 사전에 제주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수송 여객기의 기장은 미리 준비된 제주에 대한 소개가 담긴 녹음 파일을 기내의 승객인 주민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기대와 희망을 안고 도착한 제주는 그야말로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좀비가 없는 지상에서의 생활만으로도 이들은 행복에 겨워했다. 거기다 생활 환경이야 지하의 대피소와는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상쾌한 공기는 지하의 퀴퀴한 공기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따사로운 햇살은 피폐하고,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여주었다.

주민들의 수송은 밤을 새워 철야로 진행되어 그 이튿날인 오후 늦게야 모두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제 제주는 그 규모만 본다면 인구 20만에 이르러 중소도시 정도로 불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결정에 따른 이주인 탓에 신규 주민들에 대한 주거지 보급이 늦어지고 있었다.

내정위원회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절반 이상의 주민들이 공항청사와 인근에 임시숙소를 마련해 생활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성현은 제주에 새로운 영지를 두 곳을 추가해 제주의 전반적인 생활 공간을 더욱 확장했다.

최동원이 만든 제주 남쪽 영지와 가까운 곳에 추가로 제 2영지를, 그리고 애월항 인근에 제주 제3 영지를 만들었다.

영지와 영지 사이는 기존의 도로보다 넓고 튼튼한 도로를 만들어 연결했고, 영지 간 이동을 원활히 만들어 놓았다.

제주 전체가 활기에 넘쳐흘렀고, 모두가 바쁜 나날을 보내며, 어느덧 시간은 흘러 북한산 수송이 시작되고 3일이 지나고 있었다.

9월 둘째 주 수요일.

나주 영지를 만들고 그 첫 수확이 있는 날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요?”

제주항 제 9부두.

컨테이너 야적장과 화물 창고는 모두 비워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성현이 게이머의 능력으로 만든 초대형 창고 40개 동이 들어서 있었다.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신 나주평야의 천만 평은 마지기로 따지면 5만 마지기 정도 됩니다. 보통 1마지기에서 나오는 쌀의 양이 평균적으로 450㎏ 정도임을 감안하면, 최소 2만 톤 정도는 될 겁니다.”

식품관리부 장관이 답을 하며, 성현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사령관님이 만드신 대형 창고는 하나당 최대 8천 톤 정도의 곡물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2만 톤이라면 창고 세 개면 충분하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극초신성 사태 이전의 경우이고, 현재 모든 식물의 생장이 3배 이상 빨리진 상태라 정확한 예측은 사실상 하기가 힘들다고 보시는 게 맞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곧 확인해보면 될 일입니다. 어쨌든 불확실한 예측조차도 넘어설 정도의 창고가 있다는 게 중요하겠죠.”

“네. 그렇습니다.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64㎏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40개의 대형 창고가 가득 찼을 경우 최소 5백만 이상은 너끈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이 될 겁니다. 그만큼 대단한 양을 비축할 공간입니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잠시 후.

띠링!

[현재 설정하신 농작물 ‘벼농사’의 수확이 가능합니다. 수확 시 지정된 창고로 자동 저장됩니다. (수락, 거부)]

성현에게만 들리는 작은 알람과 함께 기다리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좋아! 수락.”

성현은 기다리던 메시지가 뜨자 곧바로 ‘수락’을 터치했다.

그 순간 제1 창고의 외벽과 천장이 옅은 빛에 휩싸였고, 차차 2창고, 3창고로 이동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40개의 창고 중 25번째 창고에 다다른 빛은 더 이상 번져 나가지 않고, 잠시 머물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졌다.

“이거 조금 많은 게 아니 것 같은데… 일단 확인해 보세요.”

“아, 알겠습니다.”

불확실한 추정치라 해도 어느 정도 선에서 추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측치를 한참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의미 있는 현상은 터무니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빛으로 휩싸인 창고는 틀림없이 나주 영지에서 거둬들인 쌀들이 저장되는 현상으로 보였다.

성현의 지시가 있자 대기하고 있던 공무원 수십 명이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워져 있던 창고에 다다른 이들이 창고의 문을 열고 그 안을 확인했다.

“이, 이게 모두 쌀이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영주님이 그렇다고 했으니 틀림없을 겁니다. 우선 확인해봅시다.”

한 창고에 두 명의 공무원들이 배정되어 각각의 창고를 확인 중이었다. 반신반의했던 이들과 설마 했던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에 쌀을 포장하는 포대와는 조금 틀리지만, 질기고 튼튼하게 포장까지 되어있었다.

천장 높이까지 쌓여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어서 확인부터 해보자고.”

“넵.”

그렇다고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긴 사다리를 이용해 가장 위쪽의 포대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푸욱!

쌀의 품질을 검사할 때 사용하는 색대가 포대 깊숙이 들어갔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부는 작은 기밀용기에 넣고 숫자를 기입했다. 그리고 나머지 쌀알을 가지고 육안으로 확인하고 몇 알은 입에 넣어 씹어보았다.

“이야, 이거 물성도 좋고 감칠맛이 그만입니다.”

원래라면 텍스쳐 분석기를 통해 경도, 탄성, 재현성을 분석해야 했지만,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도 대략적인 물성은 알 수 있었다.

거기다 감칠맛은 미네랄 함량이 높을수록 느껴지는 특성으로 비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을수록 높게 나타났다.

즉, 이 쌀은 칼륨 비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소리나 진배없었다.

“이거 선도도 아주 좋아. 시료는 자네가 가지고 있다 연구소에 맡기고, 우선 보고하러 가세.”

식품관리부 소속 공무원들이 즉석에서 확인한 쌀의 품질은 ‘특 A’등급이었다.

만약 더 높은 등급이 있었다면 상위 등급을 부여함에 주저함이 없었을 터였다.

* * *

나주 영지의 쌀을 수확하고, 성현을 비롯한 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 약 22만 톤에 달하는 쌀을 확보하게 되었다. 무려 330만 명이 1년은 충분히 먹고도 남는 양을 단 한 번의 추수로 걷어 들인 것이었다.

성현 혼자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한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식량인 쌀에 대한 걱정은 이제 더는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껏 묵은 쌀과 장기 보존식품으로 주식량을 대체했다면, 이제 햅쌀로 지은 밥이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다.

“3일 후에는 각종 채소와 과일들도 들어오게 됩니다. 주민들에게 당일부터 판매될 수 있도록 준비하세요.”

주민들에게 식재료를 무상으로 공급해도 하등 문제 될게 없었지만, 이는 내정위원회의 반대로 적당한 선에서 가격을 책정해 판매하기로 했다.

성현이 들어도 타당한 사유였고, 합리적인 이유였다.

현재 영지 전반에 걸친 산업화와 영지 직영 사업체들이 활발하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크게 증가했는데 그 쓰임이 없게 되면 부의 축적만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모자람이 없어 부자가 되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다.

그것이 마냥 좋다고 볼 수많은 없었다.

좁은 제주에서 그나마 먹을거리에도 돈이 쓰이지 않는다면, 쓸 곳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닌 말로 전무(全無)한 게 현재의 실정이었다.

‘쓰일 곳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맞다.’

있어도 크게 쓰일 곳이 없다면, 한정적인 역할밖에 못 하는 돈이라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나태해지고 땀 흘려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수 영지에 플라즈마 발전기가 3일 뒤 설치가 시작되면 일주일 안에 완성될 겁니다. 본격적으로 공단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모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오전에 과학기술부 장관인 정우현 박사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플라즈마 발전기 2기가 추가로 완성되었고, 시뮬레이션 테스트에서 프로토타입의 1호기보다 1.7배나 높은 효율을 보였다고 한다.

친환경, 무공해, 안전까지 3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신에너지 기술이 본격적인 상용화에 들어간 것과 같았다.

직경 4미터, 높이 2미터 정도의 플라즈마 발전기 1기의 발전 용량은 신형 원전 2기에 해당하는 3기가와트(GW)에 육박했다.

성현은 그 자리에서 정우현 박사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며, 여수 영지에 최대한 빠른 시간에 설치해 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가능한 시기를 물었다.

정우현 박사는 성현에게 3일 약속했다.

“그리고 이번 2차 주민 수송에 고생이 많았을 겁니다. 최선을 다한 여러분과 공무원 전체에 직책별로 특별 상여금을 지급할 생각입니다. 기획재정부에서는 빠른 시간 안에 지시한 상여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한반도에는 아직도 지하의 대피소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많습니다. 이후 3차 4차 계속해서 진행될 주민 수송에 대비해 내정위원회에서는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해주기 바랍니다. 계획이 세워지면 군위원회에서 통보를 하겠지만, 최대치를 상정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모두 수고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은 이번 북한산 2차 수송을 끝마치고, 자신이 없어도 대피소 공략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스컬 드래곤을 이용해 대피소 주변의 좀비와 구울들을 일소하고, 대피소 측과 대화 또는 적극적인 무력을 이용해 주민들을 구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는 가정을 해도 성현이 제주에 있다면, 한반도 어디라 해도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 해외라 해도 시간 단위로 지원이 지체될 일은 없었다.

기종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무려 마하 10이상으로 비행이 가능해진 지금은 거리의 제약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군위원회 자체적으로 다음 공략할 대피소를 정하게 했고, 우선 단독작전을 수행하도록 지시를 해두었다.

그리고 일룡이와 삼룡이 둘을 군위원회에서 작전에 투입할 수 있도록 빌려준 상태였다.

-주인. 왜 아직 아무런 대답이 없는가? 나는 언제쯤 데려갈 건가?

사룡이가 심상으로 말을 걸어왔다.

성현은 의식적으로 사룡과의 대화를 피하고 있었다.

-주인…….

사룡은 북한산 대피소 지하에 40여 명의 이능력자와 함께 남아 있었다. 물론 정한을 고문한 김태진은 고혼이 된 지 오래였다.

겁에 질린 놈이 성현이 그어 놓은 선을 넘어 도주를 감행하다 사룡의 광선포에 탄화되어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여러 증언들을 토대로 조사를 시작했고, 죄질이 악독한 이능력자들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해서 후한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나 남은 이들이 문제였다.

성현은 이들을 제주에 데려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북한산에 남기기로 했다.

죽일 정도의 죄를 지은 것도 아니지만, 데려가기는 찝찝한 구석들이 많았다.

그리고 대피소에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들에게 나름 벌이라고 할 수 있는 형벌로 남겨 놓고, 대피소 터널 확장 공사를 지시한 것이다.

그것으로 죗값을 치르게 했다.

이들은 영지민도 아닌 탓에 멀리 도주하려다가는 성벽의 수성 병기에 죽든 그 너머 좀비와 구울에 의해 살기는 힘들었다.

성현은 그 점을 그들에게 주지시키고, 공사가 완료되면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기로 했다.

물론 그것도 그때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성현은 공수표를 남발하며 이들에게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남겨두었다.

“미안…….”

사룡이를 생각하면 성현은 가슴이 미어졌다.

40여 명의 이능력자들이 공동에서 대피소 입구까지 1.6㎞의 터널을 사룡이의 덩치에 맞게 확장하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크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잘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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