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악귀 소굴 (1)
성현이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한 지점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장비를 버리고 이미 옥상을 떠난 후였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은 휴대용 방공 체계인 QW-2(MANPADS)였다.
1대당 운용에 필요한 인원은 두 명으로 최소 네 명은 이 자리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건물 안인가?”
살며시 눈을 반개하고 좀비가 아닌 인간의 기척이 있나 살펴보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없었다.
후작에 오른 후 오감이 아닌 제삼의 감각이 눈을 뜨기 시작한 성현은 자신을 기준으로 사방 100m 이내는 느끼려고 하면, 작은 개미의 움직임까지 포착해 낼 수 있었다.
그 이상으로 멀어질수록 차츰 제 삼의 감각이 옅어졌다.
“벌써 벗어났을 리가 없는데. 흐음.”
대략 2분 정도의 시간 동안 40층이 넘는 주상복합아파트를 계단을 통해 내려가긴 힘들었을 터였다.
“으응?”
성현이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며, 살펴보던 와중에 투명한 색상의 얼룩무늬의 무동력 행글라이더를 타고 활강 중인 네 명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산을 관통하는 지하 터널 입구 부근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투명망토도 아니고, 이능력인가?”
저들은 성현조차도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정도로 흐릿하게 보였다.
“이거 사람 되게 궁금하게 만드네.”
어떤 이능이 작용해 저들을 숨겨주고 있음이었다.
생소한 이능력에 성현은 곧장 지상으로 뛰어내려 저들이 향하는 터널로 먼저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 * *
“샤오핑 조장!”
“조장 괜찮아?”
“아직은 견딜 만해요.”
샤오핑이 잠시 어지러움에 비틀대자 조원들이 그녀를 불렀다.
다중 능력자인 샤오핑은 정신을 혼란시키는 정신계 능력과 광역 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능력자였다.
장시간 능력 사용은 그녀의 정신 또한 피폐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어 조원들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정말 괜찮아요. 그보다 모두 좀 더 서둘러요.”
샤오핑이 네 명의 대원 모두와 눈을 맞추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동시에 좀 더 신속하게 움직일 것을 독려했다.
이들은 공격 헬기 두 대를 격추하고, 다시 자신들의 본거지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공격조를 이끄는 조장의 신분인 샤오핑이지만, 모두와 격의 없이 지내고 있었다.
“근데 홍콩 중심가 쪽은 도대체 무슨 일이야? 우리 일을 쉽게 만들어 주긴 했지만, 영문을 모르겠군.”
“혹 저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있는 건 아닐까요?”
“조장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지만, 난 아닐 걸로 봐. 우리를 제외한 남부전구는 선진룽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그자에 대한 밑에 놈들의 신임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야. 안에서 터진 일이 아닐 거라고 본다.”
“그런가요? 벌써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어서 출발해요.”
터널 인근의 수도원 한편에 착륙한 이들은 행글라이더를 분리해 은밀하게 숨기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산맥을 가로지르는 지하 터널을 이용해 건너편 해안가로 가야 했다.
해상에 대기하고 있는 이들과 접선하지 않으면 복귀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수도원을 벗어난 샤오핑과 조원들은 150m 떨어진 터널 입구로 향해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이 크게 소리 내며 나아갔다.
모두가 샤오핑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고, 거칠 것이 없었다.
“머, 멈춰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샤오핑이 모두를 멈춰 세웠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낯선 자와의 조우였다.
거기다 대면하자마자 심장을 조여 오는 거대한 존재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공포로 다가왔다.
“Do any of you know English? (여러분 중 누구라도 영어를 알고 있는 사람 있습니까?)
“어, 어떻게?”
샤오핑은 자신이 능력을 사용한 상태에서 여태껏 그 누구도 꿰뚫어 불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스스로 완벽하다 여기지만, 장시간 사용 시 극심한 두통 때문에 하루 작전을 나가고 나면 최소 일주일은 쉬어주어야 하는 약점이 있었다.
헌데, 지금 앞의 사내는 자신들을 알아보고 말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은 주변을 혼란케 하는 이능력도 펼치고 있는 상태였다.
일반인이라면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태산과도 같은 기도를 내뿜는 것이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저, 저 사람도 초인입니다!”
샤오핑의 말에 모두가 개인화기를 꺼내 조준을 했다. 권총이 대부분이지만, 돌격소총을 가진 이도 하나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헤이 진정해. 대화로 풀 수 있는데 매를 벌지는 말자고, 영어 할 수 있는 사람 없어?”
“……당신은 누군가요? 왜 우리를 막고 있는 거죠?”
“나이스!”
성현은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대화가 가능한 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차하면 스컬 드래곤을 만들까도 생각했는데 통역이 필요치 않았다.
“설명하자면 일단은 나쁜 사람은 아니고,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설마 영어는 방금 한 게 다인 건 아니겠지?”
성현은 상대가 대꾸가 없자 앞서 한 몇 마디가 아는 영어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영문과 대학원생이었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근데 당신도 초인인가요? 왜 영어로 대화를 하는 거죠? 중국인이 아닌 건가요?”
“이런, 질문은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건데 그쪽에서 하는군. 그다지 큰 비밀은 아니니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다. 우선 중국인은 아니고, 당신이 말하는 초인이 이능력을 말하는 거라면 뭐 비슷하긴 해. 이제 내가 물어볼 차례 같은데.”
성현의 대답을 들은 샤오핑은 얼굴을 굳혔다. 일단 중국인이 아니라는 데에서 살짝 놀랐지만, 자국의 생존자 중 외국인이 없으리란 법도 없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헌데 초인인지 묻는 자신의 질문에 이능력을 가졌다고 답한 것은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조, 조장 시간이 별로 없지 않아? 처리하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가만히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저 사람도 초인이에요. 그것도 능력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샤오핑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본부에 나름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대단한 다른 초인들도 많이 있지만, 당장 눈앞의 사람과는 비교하는 것도 우스울 지경이었다.
“당신들. 조금 전에 헬기를 공격하던데, 왜 같은 중국인들끼리 싸우는 거지?”
성현은 가장 큰 의문부터 해결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두어 걸음 앞으로 걸으며 이들에게 다가갔다.
“자, 잠시만요. 가, 가까이 오지 마시고 마, 말을…….”
샤오핑과 조원들이 모두 뒷걸음질 치다 두 명은 발이 꼬여 넘어지기까지 했다.
“아, 이거 참. 나도 이게 아직은 잘 조절이 안 되네. 있어 봐.”
성현은 잠시 눈을 내리감고, 내면을 관조했다. 외부로 발산하는 자신의 기세를 안으로 갈무리하기 위해 최대의 집중을 발했다.
“이제 됐지?”
성현이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한 직후 샤오핑과 일행들을 내리누르던 거대한 압박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 당신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
태산과 같은 압도적인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부드러움과 여유로움만이 남아있었다.
샤오핑은 어떤 종류의 초인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강할 거라는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눈앞에 있는 이는 그 정도가 아닌 항거 불가의 존재였다.
총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였고, 스스로 먼저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말과 같았다.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 몰살만이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대화할 자세가 된 거 같네.”
성현은 입꼬리를 살며시 들며, 말했다.
샤오핑의 눈을 보고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모든 걸 내려놓은 그런 눈빛이었다.
* * *
홍콩 외곽 얀티안은 남중국해로 통하는 대형 항만이 있는 곳이었다.
항만의 뒤쪽은 산지로 형성되어 있었고, 해안도로 하나를 제외하면, 외부로 통하는 길은 모두 터널을 통해야만 가능한 곳이었다.
만약 터널이 막히면 험한 산을 넘을 수밖에 없었고, 군사적인 측면에서 공격은 어렵지만 방어는 용이한 지형을 하고 있었다.
성현은 상공에서 샤오핑과 그들 일행이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주인. 저들을 계속 따라가면 되는 건가?
‘오룡아. 이제 저들도 본대와 가까워진 것 같으니 이제 알아서 가겠지. 우리도 할 일 하러 가자.’
성현은 미루었던 스컬 드래곤 생성을 샤오핑과 그의 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행했다.
일종의 무력시위와도 같았다.
만약 거짓말로 나를 희롱했다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말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고 흔들리게 된다.
백번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기보다, 잘 벼린 칼 한 자루를 말없이 들어 주는 게 더 두렵고 무섭기 마련이다.
‘차라리 이번엔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성현은 샤오핑과의 대화에서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남부전구에 한해서지만, 새로운 정보는 언제나 환영하는 바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주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지금도 여운이 남아 기분이 가히 좋지만은 않았다. 샤오핑이 현재 적대하는 세력은 예상대로 남부전구였다.
남부전구는 호남, 광동, 광서, 귀주, 운남, 해남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 군부로 현 사령관은 선진홍이란 자였다.
74, 75 집단군과 남해함대 그리고 4개의 육전(해병)여단을 휘하에 두고 있었고, 극초신성 사태발발 후 부대를 사병화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기다 선진홍은 상당히 강력한 이능력자였다.
선진홍의 이능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샤오핑도 모르지만, 성현이 듣기로는 일전 범섬에서 도주한 김도훈과 비슷한 계열로 보였다.
다만, 만나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는 없었다.
김도훈을 놓치고 한 가지 결심한 게 있다면, 그와 비슷한 이능력을 사용하는 자는 결코 살려둘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그 능력을 썼다는 건 이미 다른 이를 정신에 조작을 가했다는 것이고, 절대 그냥 둬선 안 되는 자였다.
“가보자 저들의 말처럼 정말 악귀들의 소굴인지.”
성현은 오룡의 경추에 앉아 나아갈 방향을 지시했다.
-주인 어딜 가는가?
상당이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 육룡이가 오룡을 발견하고 물어왔다.
‘인근 시가지에서 사냥하게 있어. 금방 갔다 올 거야.’
-알겠다. 주인.
‘칠룡이 너도 사냥 좀 하고 있어.’
-주인. 걱정 마라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겠다.
삼 형제를 한꺼번에 뽑아도 각각의 개성이 있는 듯했다.
매번 같은 개체가 생성되는 게 아니라. 개체별로 모두 고유의 개성이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