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악귀 소굴 (2)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 북쪽 12㎞ 지점.
상공에서 바라보면 ‘H’ 형태의 대저택과 부속 건물들이 자리한 이곳은 현재 남부전구 총사령관 선진홍의 개인 사택으로 쓰이고 있었다.
극초신성 사태 발발 후 선진홍은 군대를 이끌고 지상의 좀비들과 격전을 벌인 끝에 광저우의 일부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신 휘하의 피난 섹터와 부대들을 규합해 현재는 광저우 북부에 거대한 요새를 구축하고 상당히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점만 본다면 그는 대단히 유능한 군인으로 볼 수 있지만, 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민간인의 희생을 토대로 이루어진 일로써 그의 잔악함은 인세(人世)에 본 적 없는 극악무도(極惡無道)한 것이었다.
“위험하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너와 계약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 않았나? 더군다나 이곳에는 30만이 넘는 내 부하들이 지키고 있다. 아무리 강한 초인이라 해도 피륙으로 만들어진 몸뚱이가 폭탄 세례에 버틸 리 없잖아!”
선진홍은 전면에는 살아있는 듯 일렁이는 검은 불꽃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었다.
-모자라. 지금 네 녀석의 힘으로는 절대 놈을 상대할 수 없다. 놈이 부리는 소환수조차 상대할 수 없어. 그리고 그깟 훅하고 불면 사라질 30만의 인간들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 거 같나. 크크큭.
검은 불꽃 중앙에 균열이 가더니 ‘쩌억’하며 벌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거대한 눈동자가 나타났다.
누런 바탕이 붉다 못해 시뻘건 외눈동자는 마주하는 이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이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우리 인간은 약할지 몰라도 사용하는 무기는 절대 약하지 않아. 너도 봤잖아. 그래도 안 된다고?”
-크헤헤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
-나도 네 녀석이 죽으면 상당히 곤란해. 너와 계약이 종료되면 이 세계와의 연결도 끊어질 것 같단 말이지.
“내, 내가 죽다니! 미, 믿을 수 없다!”
-믿고 안 믿고는 네 녀석 자유지만, 이대로 있다면 넌 틀림없이 놈의 손에 죽고 말 거다. 놈의 목표는 바로 너다.
선진홍은 극초신성 사태가 발발하고 나서 귓가를 속삭이는 달콤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시일이 지날수록 그 말들은 선명해졌고, 어느덧 대화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그런 녀석이 밝힌 이름은 ‘오리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본신(本身)을 둔 드높은 격(格)을 가진 존재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오리스가 처음 부탁한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부탁들을 들어줄수록 선린홍의 육체는 젊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선 60대의 나이에 30대에 버금가는 신체를 가지게 되었다.
거기다 기이한 힘들을 얻기까지 했다.
그리고 녀석이 한 말이 결정적이었다.
-널 이 세상의 신으로 만들어 주마.
그날로 선진홍은 오리스와 계약하고, 신세계에 눈을 떴다.
인간의 피는 꿀과 같았고, 살은 천상의 달콤함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민간인들을 처참하게 살육해 그 영혼을 오리스에게 제물로 바치고 남은 육신은 선진홍의 식사꺼리가 되었다.
그리고 계약으로 얻게 된 능력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권속으로 만들어 절대적인 충성을 받고 있었다.
-두렵나?
오리스의 말에 선린홍은 등줄기에서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단 한 번도 오리스의 말은 빗나간 적이 없었고,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다만, 많은 제물이 필요할 뿐이지. 지금 네 녀석 부하들을 제외한 인간들 중 절반이 필요하다. 낙인을 찍고 제물을 바쳐라! 그리한다면 네 녀석에게 충분한 힘을 주마.
“그, 그런…….”
이곳 광저우에는 군인들을 제외한 민간인들이 약 120만에 이르고 있었다. 오리스가 요구한 것은 무려 60만의 생목숨이었다.
-서둘러야 할 거다. 내가 방해하고 있지만, 그리 긴 시간을 붙잡아 둘 수는 없다.
* * *
“날씨가 왜 이래?”
화창하던 날씨가 난데없이 흐려지더니 굵은 빗방울과 함께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내려쳤다.
일상적인 기후 변화로 보기에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번쩍! 꽈과광!
-크윽! 주인. 괜찮겠나?
‘상관없어. 벼락 몇 방 마, 맞아 본들 끄떡없다. 그보다 너는?’
오룡의 전신에 벼락 줄기가 연신 내리꽂히면서, 성현이 말하는 와중에도 입 안 가득 스파크가 튈 지경이었다.
-잠깐은 모르지만, 이대로는 힘들다.
‘일단 고도를 낮춰.’
성현은 일상생활에서 느껴지는 정전기 정도의 느낌이지만, 자신보다 오룡이 문제였다.
스컬 드래곤도 무적은 아니었고, 본신의 내구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
“이건 또 뭐야?”
[헬 벳]
[헬 벳]
[헬 벳]
오룡이 고도를 낮추며 지상에 다다랄 때쯤이었다. 상공을 가득 메우고 나타난 새떼가 성현과 오룡을 반겼다.
아니, 새라고 보기에는 그 형상이 너무 괴이했다.
부리대신 주둥아리가 붙어있었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괴생물체였다.
어찌 보면 박쥐와 비슷하기도 했지만, 절대 박쥐라 할 수 없었다.
박쥐는 날개가 둘이지만, 이놈들은 날개가 4개나 되었다.
더군다나 성현이 특성을 부여한 사람들을 제외한 좀비와 구울 이후로 처음으로 표식을 가진 것들이 나타난 거다.
레벨이 없다뿐이지 똑같은 표식들이었다.
푸화화!
오룡의 입에서 전방을 향해 굵직한 광선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 크기가 작고 숫자도 많은 탓에 효과적인 공격이 되지 못했다.
“이거 상황이 너무 인위적인데.”
너무도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화창한 날씨가 갑작스레 변한 것도 그랬고, 살아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괴생물들이 공격을 해왔다.
누가 봐도 성현을 노린 공격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성현은 자신의 창고를 열고 경기관총과 드럼탄창을 결합하며 소리쳤다.
따다다다다당!
성현의 스킬로 보정 받은 공격력과 공격속도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전후사방을 향해 난사하는 총탄에 괴생물들은 풍선 터지듯 폭발하며 흩어지고 있었다.
뻐버벙!
관통된 탄환이 그 힘을 잃지 않고 뻗어 나가 일직 선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뚫어 버렸다.
성현은 탄창을 순식간에 갈아 넣고 멈추지 않고 놈들을 사냥했다.
“역시 이것들도 경험치하고 골드를 주네. 근데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앞으로 이와 비슷한 괴생명체들이 더 나타나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바였다.
타탓!
어느새 지상까지 내려선 오룡의 경추에서 성현은 뛰어내렸다.
그리고 아직 수백을 넘게 남은 괴물들이 덤벼드는 터라 공격에 박차를 가할 때였다.
쉬이이익, 꽈과광! 콰콰쾅!
성현과 오룡이 내려선 지상에 불벼락이 내려앉았다.
수십 발의 곡사포 공격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떨어져 내린 것이다.
엄폐할 곳도 없는 그야말로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그대로 노출되었다.
“어이가 없네.”
지상의 땅거죽이 포격의 의해 뒤집히고, 주변이 삽시간에 초토화되는 와중에 성현이 한 말이었다.
어찌 보면 완벽하게 당했다.
성현이 아니고서는 그 누구라도 이런 식의 공격에서 살아나갈 수 없었을 터였다.
쿠쿵! 쾅! 꽈광!
107mm 다연장로켓까지 동원된 포격은 쉴 틈이 없었다. 63식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다연장포는 이제는 퇴물이 된 구형이지만, 광역 제압에 이보다 효과적인 공격 무기도 없었다.
사람 하나 잡자고 융단폭격을 해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은 현대전에서 있을 수 없었지만, 지금 이곳에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재현되고 있었다.
‘오룡이. 넌 돌아가서 좀비들 사냥이나 해! 지금부터 혼자 움직인다.’
-아, 알겠다. 주인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달라.
성현은 오룡의 체력을 골드를 사용해 회복시키고 떠나보냈다.
‘근데 이렇게까지 극렬하게 나를 막는 이유가 뭐야? 내가 누군지 알고?’
성현의 얼굴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다.
‘이런 젠장, 방어구 내구도 다 떨어졌잖아! 스크롤도 얼마 안 남았는데.’
사실 현재 성현의 육체 내구력이 갑옷의 내구성을 넘어선 상태라 라이트 아머의 방어력에 기댈 필요는 없었다.
다만, 다른 일상적인 옷들보다 착용감이 좋다는 점과 때가 묻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인해 지금도 애용하고 있었다.
‘다 끝나고 수리하자.’
성현이 입은 라이트 아머가 붉은빛을 띠며 내구도가 제로에 임박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쾅!
성현의 신형이 붉은 잔상을 남기며, 가공할 속도로 포격 범위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 * *
선진홍의 사택 바로 옆에는 인공호수가 있었다.
인공호수는 가장 깊은 곳이 1m 남짓 정도로 깊이가 얕았지만, 그 넓이는 축구장 5개는 들어갈 정도로 상당히 크게 조성되어 있었다.
“빨리빨리 안 들어가!”
“아악!”
수천이 넘는 군인들이 사람들을 호수 안으로 계속해서 밀어 넣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미적거리는 사람들에게는 발길질과 개머리판이 날아들었다.
이때 한 중년인이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아이를 발로 찬 군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이내 다수의 군인들이 달려와 중년인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있는 군대인가! 인민의…….”
중년의 남성이 개머리판을 맞고, 이마가 크게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항의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타앙!
근처에 있던 군 간부로 보이는 이가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들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저 불평 좀 했기로 서니 민간인을 쏴 죽이는 건 아무리 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모두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빨리 들어가!”
중년인의 죽음으로 인해 혼란이 가중되었지만, 주민들의 이동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모두가 다음은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을지 겁에 질려 호수 안으로 몸을 던지다 시피 했다.
“충성!”
선진홍이 일선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작전실에 나타났다.
“그래. 진행 정도는?”
“현재 약 12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광저우 북부에 일반 주민들은 모두 5개의 구역에 나누어 생활하고 있었다.
모두 목숨을 겨우 부지할 정도의 음식을 받아 연명하고 있었고, 극심한 영양부족이 시달려야 했다.
거기다 낮에는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일을 해야 했고, 밤에는 광기에 젖은 군인들의 노리개가 되던지 그도 아니면 잡혀가 돌아오지 못하는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서둘러. 시간이 없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쳐 넣으란 말이야!”
“넵! 알겠습니다. 충성!”
선진홍의 말에 야전 지휘관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작전실을 나와 모두 자신의 부대로 떠났다.
“포격 소리가 들리던데, 시작된 건가?”
“넵. 각하. 지시하신 위치에 나타난 괴물과 인간은 형체조차 온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절대 방심하면 안 돼. 장벽 경계병 더 늘리고, 이 주변도 철통같이 방비하도록 해!”
만약 오리스의 말처럼 그 정도로 강한 자라면 포격에 살았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도 최소한 더디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