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08화 (108/176)

# 108

악귀소굴(3)

-놈이 오고 있다.

“버, 벌써?”

선진홍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리스가 놈을 지체시키겠다는 이야기에 보조를 맞추어 당장 동원 가능한 전력을 모두 투입시켜 함께 보조를 맞추도록 했다.

하지만 모두가 무용할 따름이었다.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급히 부관을 부른 선진홍은 호수에 진입시킨 사람들의 숫자를 재확인했다.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

“……아직 계획했던 숫자를 다 모으지 못했다.”

오리스가 평소답지 않은 여유를 잃은 말에 선진홍도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조급해 졌다.

지금 호수에 모인 이들의 숫자는 35만 정도, 오리스가 요구한 60만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 수확하지 않으면, 네게 작은 기회조차 있지 않을 거다.

오리스의 말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걸로 가능한 거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래도 절반이라면 해볼 만하다. 서둘러라!

* * *

성현은 포격 범위를 벗어나 둥관의 경계를 넘어 광저우에 접어들 때였다.

“저 빛은?”

고층 빌딩에서 바라본 북녘 하늘은 요사스런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언뜻 황혼의 노을로 볼 수도 있었지만, 전해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꺼림칙한 느낌에 성현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콰쾅!

잠시 멈춰선 그때, 다수의 공격 헬기들이 성현을 포착하고 미사일 공격을 해왔다.

성현이 서 있던 옥상의 바닥이 터져나가며 건물이 통째로 무너질 듯 흔들거렸다.

“귀찮게 시리.”

라이트 아머의 내구도가 다함으로 인해 외부로 발산되는 주황빛이 성현의 위치를 쉽게 노출 시키고 있었다.

누적되는 피해는 HP의 회복 속도를 넘어선 상태였고, 현재도 80%대에 머무르고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은 남 말이 아니었다. 바늘로도 코끼리를 죽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벗고 다닐 수는 없잖아.”

여벌의 옷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이트 아머를 수리할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전투 중 또다시 내구도가 떨어질게 뻔한 상황에서 아까운 내구도 회복 스크롤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가기는 글렸네.”

철컥!

성현은 크게 쓰임이 없었던 제식명 M82A3 SASR(특수임무 저격소총)을 꺼내 어깨에 견착했다.

대물 저격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렛이었다.

쾅!

장전과 조준, 그리고 격발까지 그야말로 일순간에 모두 이루어졌다.

쾅! 쾅! 쾅!

그리고 재 격발.

도합 4발의 탄환이 2㎞ 거리의 공격 헬기를 노리고 발사되었다.

바렛의 유효사거리는 1.8㎞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현에게 적용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12.7mm철갑탄이 음속의 8배에 달하는 2,553 m/s 속도로 날아갔다.

쩌적! 쾅!

공격 헬기의 방탄 케노피를 종잇장처럼 손쉽게 관통한 탄환은 그 힘을 잃지 않고 주조종사와 무기통제사를 넘어 기체 자체를 일직선으로 관통해 버렸다.

조종사를 잃은 공격 헬기의 기수가 크게 꺾이며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성현은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해발 300백여 미터에 불과한 야산을 지나치자 번화한 시가지가 펼쳐졌다.

그리고.

“제대로 찾아오긴 왔다는 거겠지.”

상당히 견고하게 지어진 방어 진지가 성현의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성현에겐 무의미했다. 성현은 가벼운 도움닫기로 12m 높이의 장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방어라인을 손쉽게 돌파했다.

투타타타. 타타탕. 탕

간혹 공격이 없지는 않았으나, 성현이 지나간 길을 쫓아 애꿎은 바닥을 긁어 댈 뿐이었다.

성현은 잔상이 남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며 소소한 전투는 피했다.

광저우 바이윈 국제공항을 지날 때쯤 다시금 지상군과 전차부대가 성현의 발길을 멈춰 세웠지만, 잠시일 뿐이었다.

“시간 끌기 같단 말이지.”

저들의 의도대로 끌려가 줄 생각이 없었다.

성현은 앞을 가로막는 전차 부대를 일일이 상대하기보다 종심을 돌파해 유유히 빠져나갔다.

* * *

선진홍은 자신의 손목을 긋고 호수에 팔을 담갔다.

붉고 진한 피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급격히 가속해 순식간에 호수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호수에 들어간 이들이 놀라 발버둥 쳤지만, 끈적끈적한 아교처럼 변한 호수는 결코 이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낙인의 샘을 완성했다.”

-크크큭, 수확을 시작하겠다.

칠흑의 불꽃 형상에 외눈을 가진 아리스가 서서히 떠오르더니, 상공 수백 미터까지 올라서야 멈추어 섰다.

그리고 인간의 성대로는 표현하지 못할 괴랄한 음색으로 주문을 읊어댔다.

“끄아아악!”

“그, 그마-안!”

“살려줘!”

호수에 갇힌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핏빛의 연기가 피워 올랐다. 모두가 극심한 고통에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피부가 쪼그라들고 눈은 급격히 생기를 잃어갔다.

앙상하던 몸은 더욱 말라갔고, 살아있는 미라나 다름없이 변해갔다.

사람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핏빛 연기가 안개처럼 호수를 완전히 가릴 정도가 되자 차츰 사람들의 비명은 잦아들었다.

안개는 금방이라도 피를 뚝뚝 흘릴 만큼 진득함을 머금고 있었다.

-오라!

후우웅!

호수가 크게 진동하며, 요동쳤다.

그리고 호수를 가득 채우고 있던, 핏빛의 안개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농밀한 생명력이라니…, 크하하하. 수가 조금 모자라 아쉽기는 하지만, 본신의 힘을 빌리기에는 충분하다.

아리스가 받아들인 것은 인간의 순수한 생명력이었다.

차원의 저편에 있는 본신의 능력을 일부 차용하기 위해서는 잠시 무방비에 가까운 상태가 되겠지만, 문제 될 게 없었다.

그야말로 찰나의 가까운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 * *

광저우 국제공항을 빠져나온 성현의 발길은 거침이 없었다.

목표한 곳까지는 뻥 뚫리다시피 한 너른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고, 간간히 있는 것은 작은 마을들뿐이었다.

더 이상 방해꾼은 없었다.

“저게 뭐야?”

시선을 멀리 두고 달려가던 성현은 괴이한 붉은 기운이 넘실대던 상공의 변화를 감지했다.

붉은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며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거대한 태풍을 축소해 놓은 듯한 형태의 소용돌이 중심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뭔 눈깔사탕도 아니고.”

성현은 수 킬로나 떨어져 있지만,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상한 물체를 정확히 분별해 냈다.

검은 바탕의 노란 테두리를 가진 빨간색의 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눈깔사탕이라 말은 했지만, 어찌 보면 양궁의 과녁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출 수 있겠지??”

철컥!

창고에서 꺼낸 바렛을 조준하며, 풍향을 살폈다.

거리는 대략 8㎞.

[특수]무기 기술자

-공격력, 속도, 범위, 명중 50% 증가 (적용 시간 10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일반]강타

-공격력 30% 증가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이연격

-유효한 공격 성공 시 동일한 추가타 적용 (재사용 대기시간 3분)

[일반]용맹정진

-공격력, 방어력 각 30% 증가 (적용 시간 3분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사용 가능한 모든 액티브 스킬을 활성화해, 명중률을 높이고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쾅, 쾅, 쾅!

장전과 조준, 격발 3박자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속사가 이루어졌다.

탄환은 그야말로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격발 후 약 3초가 흐르자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던 무언가가 팍하며 터져버렸다.

“에이, 별거 아니네.”

성현은 괜한 불길한 느낌에 시험 삼아 쏴본 것뿐이었는데 결과가 너무 허무했다.

그 허무함이 결코 성현 혼자만이 겪는 일은 아님을 이때는 몰랐다.

그리고

[레벨 업! 보너스 스텟 2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2을 획득하였습니다.]

.

.

.

시야 가득 레벨업을 알리는 텍스트창이 나타났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다.

“……어! 이거 경험치가 왜 이래? 도대체 얼마나 오른 거야? 헉! 무슨 골드가!”

[박성현]

레 벨 : 42   (EXP 00.38%)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후작

근력 12 (+10,+93) → 115 ▲

민첩  9 (+10,+93) → 112 ▲

내성  9 (+10,+93) → 112 ▲

마력  5 (+10,+93) → 108 ▲

체력 14 (+10,+93) → 117 ▲

권위 66 (+10,+93) → 169 ▲

보너스 스텟 : 16

새로이 생성한 스컬 드래곤 3마리의 사냥에 힘입어 34에 오른 레벨이 단번에 8레벨이 올라버렸다.

[1,557,942,051골드 21실버]

더군다나 골드는 거의 십오억이 증가되어 있었다. 무슨 로또라도 당첨되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심정이 들었다.

“나 방금 뭘 잡은 거야?”

성현은 메시지창과 방금까지도 붉게 물들어 있던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며 얼떨떨해했다.

“이거 진짜 대박인데.”

방금과 같은 경험치만 얻을 수 있다면, 2차 전직 레벨도 순식간에 도달할 터였다.

“혹시 저기 가면 저런 게 널려있는 거 아냐?”

성현은 흥분과 기대를 품고, 다시금 발길을 재촉했다.

잠시 후.

기괴한 현상을 보이던 하늘아래 다다른 성현은 눈앞의 참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이게 다 뭐야?

눈으로 보고 있지만 현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주변은 그야말로 시산혈해의 현장이었다.

수만에 이르는 이들이 총살당한 채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시신에서는 지금도 피가 마르지 않은 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수십만을 될법한 인골들이 메마른 호수 안에 그야말로 빈자리 하나 없이 들어차 있었다.

어린아이로 보이는 채 1m도 되지 못하는 유골의 옆에는 어른으로 보이는 유골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희 새끼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한 거냐고!”

* * *

아리스가 인간의 생명력을 탐하고 본신의 강대한 힘을 얻기 직전이었다.

그 힘의 일부는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헌데, 갑작스럽게 상공에 떠 있던 아리스가 영문을 알 수 없는 폭발을 발하며 사라졌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선진홍의 대처는 눈부시게 빨랐다.

“모두 사살해!”

지켜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뒤늦게 도착한 민간인들이 메말라 버린 호수 한편에 5만이 넘게 있었다.

이들 모두가 겁에 질려 있었다.

호수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생생하게 지켜봤다.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차피 데려갈 생각은 없었고, 자신의 행방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모두를 죽일 생각이었다.

5만의 민간인을 학살하는데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신속하게 이동한다. 움직여!”

선진홍은 모든 걸 버리고 친위대만 대동해 서쪽으로 도주를 결심했다.

아리스가 정말로 사라진 것인지 일시적으로 안 나타나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은 너무도 멍청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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