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마계 군주 (2)
성현은 이럴 때 이지애 씨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진홍의 전해 주는 말은 너무 터무니없기도 했지만, 모든 걸 본인이 아닌 제 3자의 탓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대량 살상을 자행한 것도 아리스라는 놈이라고 했고, 자신은 놈이 없어지면서 제정신이 돌아와 너무 무서워 도망쳤다고 했다.
“그 마계의 군주지 뭔지 하는 새끼 지금 어디 있는지 물어봐.”
-이미 들었다. 하늘 높이 떠오르더니 갑작스레 터져버렸다고 한다.
성현은 흠칫했다.
그리고 설마 하는 생각에 아리스의 생김새를 자세히 묻게 했다.
-크기는 1미터 정도라고 했고, 외눈을 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동공은 붉은 핏빛이고 바깥쪽은 노란빛을 띠고 있다고 한다.
“허, 그게 그거였다고?”
성현이 대물 저격총으로 쏘아 터트린 것이 바로 그놈이었다.
마계 군주쯤 되는 대단한 놈이라면, 그 정도 경험치와 골드를 주는 게 어쩌면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다만, 고작 대물 저격총에 죽을 정도로 약한 놈이 차원을 넘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의외였다.
또 하나 의아한 것은 어떻게 놈이 만든 것에는 ‘헬 벳’ 이라는 표식이 나타났는데 정작 마계 군주라는 놈에게는 표식이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주인. 아리스라는 마계의 군주는 이곳에 현신한 것이 본체가 아니라고 한다. 놈의 본체는 마계에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선진홍이 떠드는 말을 중계해주는 스컬 드래곤의 말을 듣고, 그제야 성현도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성현은 턱에 손을 가져다 대고 이제 어째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이미 없는 놈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고 있는 탓에 사실여부를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너희들 여기 도착했을 때 저놈이 군인들한테 공격을 지시했다고 했지?”
-그렇다. 놈은 부하들에게 우리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본인은 도주를 선택했다.
성현은 선진홍이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아리스가 없어지고 제정신이 들었다면,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진 자라면 사태 수습을 하던지 대적 불가의 적을 만났다면 철천지원수가 아닌 이상 투항하는 게 맞았다.
헌데 놈은 어떻게든 저만 살겠다고 부하들을 모두 죽음으로 내몰았다.
하나만 봐도 놈의 성정이 어떠한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때였다.
푸아악!
선진홍이 입을 크게 벌리고, 성현을 향해 피분수를 뿜어냈다.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참내 어이가 없네. 넌 곱게 죽긴 어차피 글렀다.”
불과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선진홍의 느닷없는 행동에 성현은 피하긴 했지만, 공기 중에 미세하게 뿜어진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일부 호흡을 통해 성현의 몸속으로 무언가 침투했던 것이다.
-주인? 저 인간이 이상하다. 당장 자신을 치료하러 가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보고 스스로 한쪽 팔을 잘라내라고 말했다.
선진홍의 얼굴은 득의만만했다.
성현은 보란 듯이 창고에서 장검 한 자루를 꺼내 들자 놈은 얼굴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이내 비릿하게 웃음을 지었다.
서걱, 서거걱!
빛살과 같은 속도로 검이 휘둘러지고, 무언가 베어지는 소리가 뒤늦게 들려왔다.
선진홍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 팔꿈치로 기어 다녀라.”
성현은 허벅지 위쪽 다리라고 여겨지는 부분을 깔끔하게 잘라냈고, 팔은 팔꿈치를 경계로 두 팔 역시 잘라버렸다.
“……끄어어억!”
선진홍은 감각이 없어진 팔다리와 치밀어 오르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이놈은 쉽게 죽을 놈은 아니다. 혹시 모르니 잘려진 팔다리 모두 태워버리고, 저놈 몸뚱이만 주워서 가자.”
워낙 기상천외한 이능력자가 많은 탓에 아메바처럼 그런 재생 능력을 이자가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이미 자체 치유능력이 상당함을 확인했고, 혹시 다른 능력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잘려진 팔다리조차 모두 태워버리게 했다. 항상 의심하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게 성현의 지론이었다.
* * *
“알아서 잘할 거라 믿습니다.”
“넵. 대인. 많은 이들을 구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걱정하시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사람들과 접촉할 때 샤오핑이란 여자와 먼저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 이룡이는 고생하기도 해서 데려가지만, 하나 더 보태 둘을 남겨둘 테니 하나는 지난시로 보내시면 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수호룡들을 잘 모시고 있겠습니다.”
“네? 잘 모시다니, 뭘 잘 모신다는 겁니까? 시킬 일 있으면 시키고, 부리라고 두고 가는 녀석들인데.”
성현은 광저우 공항 상공에 떠 있는 이룡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주, 주인.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것인가. 난 주인이 시킨 일을 제대로 했을 뿐이다. 오해한 건 저들일 뿐이다. 이룡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이 자식이 입만 살아서는.’
-…….
성현의 신색을 살피던 장진은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한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다.
“활용을 잘하세요. 활용을…. 여하튼 전이만 가볼 테니 다음에 봅시다.”
“넵. 대인. 헌데 그 큰 가방은 무엇인지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장진이 성현이 바닥에 끌고 있는 가방을 보며, 손을 내밀자 성현이 이를 제지했다.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는 물건입니다. 여기서 헤어집시다.”
성현은 발끝으로 가방을 툭툭 차며 말했다.
장진은 왠지 가방이 꿈틀댄다고 느꼈지만, 성현의 행사에 참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더는 묻지 않았다.
“대인. 살펴 가십시오. 다음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장진은 포권(包拳)을 하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오늘 하루가 지난하게도 길었던 성현은 장진의 배웅을 받으며, F-15 전투기에 올랐다.
가방을 뒤쪽 좌석에 던지듯 내려놓은 성현은 조종석에 탑승했다.
“많이 늦겠네.”
석유를 구하러 왔다가 부족한 골드를 채울 겸 사냥터로 정한 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중 압권은 마계의 군주라는 존재였다.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 다른 차원이 있다는 사실과 그런 존재가 지구에 강림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보이는 족족 없애 버리면 된다.”
인간을 제물로 사용하는 놈들과 대화는 무용할 따름이다.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제거해야 하는 해악일 뿐이었다.
“마무리 짓고 바로 가자.”
성현은 신장 위구르로 다시 향했다.
석유 채취시설을 만들면 복귀만이 남아있었다.
‘이룡이는 잘 가고 있냐?’
-그렇다 주인. 요새의 선장도 잘 따라 오고 있다.
‘너 위치 이탈하면 계속 이야기할 테니, 제주에서 보자.’
-알겠다. 주인 드디어 주인의 진정한 영지에 가게 되어 이룡은 너무 기쁘다.
성현은 석유 채취를 마무리 짓고 제주로 돌아갈 예정이어서 이룡을 먼저 출발시키고, 부유요새의 안내를 맡겼다.
이룡도 제주의 위치를 모르는 상태라 성현이 수시로 미니맵을 확인하고 심상을 통해 진행방향을 수정해 줘야 했다.
부유요새의 속도는 성현이 탑승하지 않은 상태에서 300㎞ 정도에 불과했고, 제주까지 6시간 정도 비행해야 하는 거리였다.
다음날 새벽 늦게는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 * *
중국에서 돌아온 성현은 밤이 늦은 탓에 아침을 기다려 동원과 두식을 만났다.
그들에게 ‘2급 부유 요새’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물론 부유 요새의 선장들에게 이들을 따르라는 지시는 잊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이 많이 줄어들겠다.”
두 대 모두 한반도에 남은 대피소 공략에 사용하도록 했다.
두 대면 최소 10만 명의 주민 정도는 숙식은 힘들어도 수송은 가능했다.
보다 쉽게 일을 하도록 성현이 준 선물이었다.
“우리 룡룡이들 덕분에 이제 골드는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됐네.”
중국에 남겨 두고 온 스컬 드래곤은 모두 37마리나 되었다.
3마리씩 11개 조 4마리를 하나의 조로 편성해 중국 각지로 뻗어 나가며 사냥하도록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거 거의 시간당 이천만 골드 정도 되네. 하루면 사억 팔천만 골드…. 휘유~ 골드 걱정 없으니 마음도 편안하네.”
하루 골드만 4억 8천만에 경험치는 좀비로 환산하면 일일 백만 마리 가까운 숫자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전날 마계 군주를 잡고 42에 올라있었고, 지금 이대로 더는 스컬 드래곤을 늘리지 않아도 100일이면 60렙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럼 올해 가기 전에 국왕이 되겠는데. 차라리 계속 스컬 드래곤 늘려서 빠르게 올라가는 게 좋을까? 흐음. 일단은 좀 참는 게 좋겠다.”
성현이 당장 레벨업을 생각한다면 스컬 드래곤을 무한히 늘려가는 게 맞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국왕이 되면 1급 병기들을 생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2급 병기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2급 병기가 국산 경차 수준이라면, 1급 병기는 수입 외제 명차에 비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골드도 많이 들어간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좀비들도 모두 제거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더는 골드의 수급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설령 마계 군주와 같은 비이상적인 존재들이 나타나 잡혀준다면 모르겠지만, 요행을 바래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서는 더더군다나 안 되는 일이었다.
* * *
“지애 씨. 제가 저 방 안에 들어가서 질문하면 지애 씨는 이곳에서 저자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생각도 좀 읽어 주세요.”
“네. 그럴게요.”
“이건 무전기입니다. 여기 버튼을 터치한 상태에서 제게 해주실 말을 하면 제가 들을 수 있습니다. 만약 문제가 있으시면 즉시 중단하시는 것 잊지 말구요.”
“네. 걱정 마세요.”
“해미야 혹시 모르니까. 옆에서 잘 좀 지켜봐 드려.”
“네. 아저씨. 저 근데 알아볼 사람은 어디 있나요?”
“아-. 그건……. 저기 안에 있는데. 크흠.”
차마 성형은 가방에 넣어놨다는 말은 못했다.
왠지 자신이 악당이 된 기분이 들었다.
성현은 모니터실에서 나와 옆방으로 갔다.
그리고 옆방의 여인들 모르게 가방을 열고 머리만 내놓게 한 채 커다란 천으로 목 주위를 둘렀다.
꼭 미용실 같은 곳에 가면 둘러주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차, 차라리 죽여라…. 다, 다시 가방에 넣을 생각이라면 제, 제발 죽여줘.”
“이 자식이 뭐라 떠드는 거야? 어디 보자 이럴 때 쓰는 말이…….”
성현은 중국어를 잘 아는 공무원 한 명에게 미리 녹음시킨 말들 중 지금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한 것을 틀어주었다.
-시끄러 계속 떠들면 죽는 수가 있다.
“그, 그래. 죽여줘 죽여! 다 내가 한 짓이야. 어서 죽여줘.”
“이 자식이 진짜 죽고 싶나. 왜 이래?”
성현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더욱 크게 떠들어대는 놈을 보고 의아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