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일상 속으로 (2)
성현과 해미는 여느 때와 달랐다.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유달리 어색한 둘이었다.
“오, 오빠 이것 좀 드셔보세요.”
“으, 응? 그, 그래.”
해미가 큼지막한 구운 새우의 껍질을 벗겨내고, 성현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성현은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주는 족족 넙죽넙죽 받아먹기 바빴다.
“……제가 오빠라 부르는 게 듣기 싫으세요?”
해미 딴에는 큰 용기를 내어 호칭을 바꿔 봤지만, 성현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풀이 죽은 얼굴로 해미가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아냐. 그런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뿐이야.”
아저씨는 처음부터 성현이 원해서 듣고 있는 호칭이 아니었다.
해미와 나이 차를 생각해보면 그리 틀린 것도 아닌 터라 그냥 두었을 따름이었다.
하루아침에 바뀐 호칭에 어색했을 뿐, 기분 나쁘거나 거북하지는 않았다.
“그럼 계속 오빠라고 불러도 되요?”
“그, 그래.”
성현이 해미에게 대답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정한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 모양은 ‘도둑놈’이라고,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내가 뭘?’
성현은 속에서 살짝 욱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냥 삭혔다.
정한이 주변에 최동원이나 조만호를 보면서도 같은 입 모양을 하는 게 자신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한이 아니더라도 지금 성현의 머리는 복잡했다. 해미가 자신을 어찌 생각하는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은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우유부단했다.
세상이 변했대도 잔존한 현대인의 윤리의식이 지금 성현에게 제약 아닌 제약을 두고 있었다.
내적 갈등이 시일이 지날수록 옅어지기는커녕 심해졌음이다.
해미의 마음을 받아주기엔 자신은 이미 결혼을 한번 했던, 시쳇말로 돌싱임이 분명했고 더군다나 해미랑 나이 차를 생각하면 언감생심(焉敢生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어… 아무것도 아냐.”
성현의 구태의연한 형식에 얽매인 모습과 달리 해미는 규범이나 형식에 크게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진솔했다.
진솔한 만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런 해미를 보고 성현도 이내 상념을 털어내고 싱긋이 웃었다.
‘그래 그냥······.’
배고플 때 밥 먹고, 목마를 때 물 마시는 것처럼.
깊이 생각해서 답을 찾기보다.
인생의 생로병사가 순서 있게 진행되듯 순응하며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자 했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순리에 따르자.’
* * *
9월 2째주 월요일.
성현이 중국에서 복귀한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전 일찍 성현은 최동원에게 약속했던 스컬 드래곤 30기를 인도했다.
이후 군위원회는 인도된 스컬 드래곤들을 3개 대대에 분배한 뒤 당일로 전력화를 이에 맞춰 군 개편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충성! 2대대 전원 승선 완료!”
조만호 대령의 직속 대대인 2대대가 성현이 넘겨준 2개의 이동요새 중 하나에 모두 승선을 완료하자, 전속 부관이 갑판에 사열 중인 대대 병력을 뒤로하고 보고했다.
조만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우측에 부유 중인 크리스털을 바라봤다.
“선장. 제2 기동요새 출진!”
부유 요새는 군에서 ‘기동요새’로 개칭해 사용 중이었다.
1개의 부유 요새와 10기의 스컬 드래곤을 묶어 각 대대별로 부대를 편성하고, 이를 지휘하는 지휘관을 성현은 제독에 임명했다.
제1 제독에는 최동원 준장을, 제2 제독에는 조만호 대령을 임명해, 각자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권을 주었다.
-네. 제독님. 출진합니다.
기동요새의 선장이라 명명된 크리스털이 조만호 대령의 명령을 복창하며 기동을 시작했다.
구우우우웅.
제주항 인근에 정박 중이던 제2 기동요새가 중력을 거스르며 서서히 떠오르더니, 500m 상공까지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거대한 동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에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북동 방향으로 전속 전진!”
군위원회에서 거듭된 회의를 거쳐 1대대인 최동원 준장과 특수군은 전라도, 충청도, 서울 경기지역에 남은 대피소 5개소를 맡기로 했고.
지금 이륙한 제2 기동 요새는 조만호 대령의 지휘를 받아 경상도와 강원도 전체에 산재한 대피소 4개소에 대한 작전에 돌입했다.
남은 3대대와 신규 편성된 4대대는 제주 방어에 주력하기로 하고, 여수와 광양 영지에 각 1개 중대 병력을 순차 파견해 방비토록 했다.
“만호도 알아서 잘하겠지.”
성현은 조만호 대령이 탄 제2 기동요새가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중얼댔다.
이미 두 시간 전 떠난 최동원은 이미 내장산 대피소 인근에 도착해 곧 작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있었다.
“내정위원회 전체 회의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지금 가시면 됩니다.”
정한은 사석이 아닌 터라 성현을 깍듯이 상관으로서 예우해 말했다.
“벌써 시간이…. 바쁜 사람들 기다리게 하면 안 되지. 가자.”
* * *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 국립공원.
쿠콰콰쾅!
창공에서 내리꽂히는 거대한 빛줄기가 내장산 초입의 등산로에 직격했다.
귀청을 찢어발기는 폭발음과 함께 먼지구름이 순식간에 상공 100여 미터 상공으로 치솟으며 후폭풍이 수백 미터 주변을 휩쓸었다.
“이, 이거 거의 소형 핵폭탄급 아닙니까?”
두식이 기동요새 전면의 함교에서 지상의 상황을 살피다 기함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모아브급은 될 거 같다.”
최동원이 언급한 모아브(GBU-43)는 미군이 개발한 슈퍼폭탄으로 핵무기에 버금가는 살상능력을 가진 폭탄이다.
지상 50m에서 1단계 폭발한 뒤 가스를 반경 300m~500m 지역에 확산시킨 다음 폭발하는 특징을 가졌고, 500m 내 지역을 단번에 무산소 상태로 만들어 모든 생물체를 살상하는 그야말로 폭탄의 어머니였다.
“아무래도 이건 함부로 쓰기도 어렵겠다.”
기동요새의 주포의 화력이 그만큼 대단했다.
산불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직격된 지표면은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고, 비교 대상을 찾는다면 모아브 정도일 것이라 최동원은 추측했다.
실전 테스트를 겸해 지상의 좀비 무리를 향해 주포를 발사한 직후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제독님. 내장산 대피소 입구 가시거리에 들어왔습니다. 방향 W공하나 하나, 거리 삼천!
함교 바깥 양쪽 옆 견시대(위브릿지)에 있는 견시대원의 보고였다.
“알겠다.”
“이제 저희 애들 출동시킬까요?”
최동원이 무전에 답하는 사이 두식이 다가와 말했다.
“혹시 모르니 스컬 드래곤 두 기를 호위로 붙여줄 테니 같이 보내도록 해.”
“넵. 알겠습니다.”
잠시 후.
기동요새 갑판에 대기 중이던 블랙호크 3대가 동시에 이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기동요새의 주변을 호위 중이던 스컬 드래곤 두 마리가 헬기의 양옆에서 함께 비행하며 이들을 따랐다.
* * *
성현이 참석한 내정위원회의 주차 회의가 한참이었다.
기존 영지 주민들의 복지를 비롯한 주요 안건들을 처리하고, 신규 주민 수용 준비를 성현이 알뜰히 살피고 있었다.
“현재 제주 영지가 수용 가능한 이주민은 최대 6만2천3백 가구입니다.”
“흐음, 이거 예상보다 적군요.”
제주의 영지 면적은 총 5개 영지 754㎞²로 제주 전체 면적의 41%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성현이 만든 영지 세 곳과 동원이 만든 두 곳을 모두 합쳐 그 정도였다.
“제주에 영지를 추가로 더 늘릴 계획이 있으십니까?”
“당장은 없습니다. 때가 되면 기존 영지의 규모를 더 크게 키울 수는 있겠지만, 제주에 영지를 추가할 여력은 지금 없군요.”
현재 성현의 영지는 모두 여덟 곳으로 제주에 세 곳을 비롯해 나주, 여수, 광양, 진해 네 곳과 중국 신장위구르 석유 영지까지 해서 여덟 곳에 이르고 있었다.
후작이 되어 열 개의 영지를 소유할 수 있었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최소 두개 이상의 여유 영지는 늘 비워두고 있어야 했다.
언제 영지 선포가 필요한 일이 발생할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마냥 영지수를 최대치까지 늘릴 수는 없었다.
“못해도 최소 15만 가구 이상은 확보해야 할 텐데…….”
한반도에 남은 대피소가 모두 무사하다는 가정이 필요하지만, 최대 55만을 수용할 준비가 필요했다.
기존 주민들의 거주 형태를 기준으로 6만 가구 정도라면 20만에서 25만 정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광양과 여수 영지에 포함된 일반 주택들도 조사해서 빠른 시간 안에 보고하도록 하세요. 제주가 포화 상태라면 인구를 분산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여수와 광양에도 이미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상태였고 안전이 보장된 장소였다.
굳이 제주에 국한된 이주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모두 바쁘실 텐데 다른 보고 사항은 없으면 이만······.”
“사령관님. 한 가지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과학기술부 장관인 정우현 박사가 추가 보고가 있음을 알렸다.
“아-. 말씀하십시오.”
성현이 반색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또 어떤 반가운 소식을 전해 줄지 작은 기대마저 들게 했다.
“이온층의 단파 반사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무선통신의 제한이 약해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 그리된 것인지 정확히 정의 내리기는 힘듭니다만, 확실한 건 대기 중 전자기파를 상쇄시키던 요인이 점차적으로 감소 중에 있습니다.”
정우현 박사는 짐작하는 바는 있지만, 말을 아꼈다. 과학도로서 명확하지 않은 근거를 토대로 발설하는 자체를 꺼린 탓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현재는 이전과 달리 외부 작전을 나간다 해도 스컬 드래곤을 통해 정보의 상호전달이 가능했다.
하지만 모든 소식이 성현 본인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이는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적으로 통신병과를 24시간대기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 속도라면 원상을 회복하는 데 6개월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3개월 정도면 초단파 우주통신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된다면 위성 사용도 가능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문제는 그 인공위성이 있느냐 하는 건데······.”
“위성에 무슨 문제라도···. 아! 지상의 전자기기도 먹통이 된 마당에 대기권 밖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겠군요.”
“그것도 그렇지만 저희 연구소 산하 천체관측담당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단 하나의 위성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위성이 모두 없어지기라도 했다는 말이십니까?”
“네. 지금까지 관측된 위성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날씨만 맑다면 일반인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저궤도 위성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쏘아 올린 정지궤도 복합위성인 ‘천리안 2A호’와 ‘천리안 3B호’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반도가 있는 동경 128.2도, 적도 상공 3만6000㎞에 위치한 이 위성들은 각 2018년 12월과 2020년 11월 발사되었다.
‘천리안 2A호’의 핵심 임무는 기상관측 위성으로 태풍, 폭설, 집중 호우, 해빙, 미세먼지, 화산재, 중국발 황사를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는 복합위성이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 정확도를 크게 높이는데 기여한 위성이기도 했다.
또 ‘천리안 3B호’는 군사용 위성으로 국내 유일의 군사위성이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그 실용성에 고개를 내저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사실상 8,900억짜리 통신위성이라 보는 시각이 강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나로 우주센터에 독자 기술로 개발이 완료된 발사체와 위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차제에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염두에 두시고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여유가 되는대로 영지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