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14화 (114/176)

# 114

살아있었다? (1)

“제길, 드디어 찾았다!”

성현은 약 1시간가량 헬기를 타고 지도에 표기된 지형을 찾아 산맥 곳곳을 뒤지고 다녔지만 허사였다.

다람쥐 쳇바퀴 맴돌 듯 같은 자리를 맴돌던 끝에 헬기를 착륙시켰고, 직접 도보로 이동해 끝내 원하던 출입구를 찾아냈다.

다행히 장진이 건네준 지도는 틀리지 않았다.

인근에 다후치 저수지라는 둘레가 10㎞에 이르는 호수라 봐도 무방한 곳이 있어 그곳을 기점으로 뒤진 끝에 발견했던 것이다.

“이 정도 위장이면 정찰 위성에 잡히지도 않겠다.”

거대한 바위로 보이는 것이 출입문이었고 포장도로는 주변과 자연스레 동화되는 인조 잔디와 풀로 덮어 상공에서 보았을 때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정교했다.

“일단 위치는 파악해 뒀으니 내일까지 기다려 보는 게 좋겠지?”

하루만 더 기다리면 두식과 같은 특성을 얻게 되고 언어 문제가 해결될 것이었다.

외국어라면 젬병이던 두식이 각성하고 패시브 스킬의 영향으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었다.

모두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최소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불어는 능통하다 못해 현지인과 다름없이 능숙하게 구사가 가능했다.

두식이 했던 게임의 스토리상 이종족과 수많은 인종들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탓에 게임의 튜토리얼 격인 레벨 5를 찍으면 보상으로 얻는 스킬이 바로 언어 각인이라는 스킬이었다.

“제주로 돌아가서 기다릴까…….”

긴급 귀환을 하면 그만이었다.

시간이 걸릴 일도 없었고, 다시 이곳을 찾아오는 것은 이젠 일도 아니었다.

“아니다. 먼저 장진에게 한번 다녀와야겠다.”

장진이 스컬 드래곤을 통해 가능하다면, 빠른 시간 안에 성현을 보고자 했다.

문제가 조금 생긴 것도 있었고, 장진이 한 이야기가 못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2,000㎞가 넘는 거리지만, 거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된 지금은 지척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이사룡. 지금 장진 옆에 있어?’

-주인. 지금은 인근을 순찰 중이다. 장진을 찾는 것인가?

‘지금 내가 그리 갈 테니 장진한테 가서 잠시 후에 도착하니까 보잔 다고 전해.’

-그렇군, 알겠다. 알려 놓도록 하겠다.

* * *

“대인을 뵙습니다.”

성현이 탄 기체가 광저우 바이윈 공항의 너른 활주로에 착륙하자, 기다리고 있던 장진이 한걸음에 달려와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문제가 생겼다 들었습니다만.”

성현은 겉치레라도 안부는 물어볼 만하건만,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했다.

“아-. 바쁘신 분을 모셔놓고 죄송합니다. 저희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아 이리 대인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기 쌍룡이가 있는데 그보다 강한 겁니까?”

성현은 문뜩 의아함이 들었다.

스컬 드래곤을 능가할만한 구울이 등장했다면 스컬 드래곤들이 먼저 심상을 통해 알려오던지 그도 아니라 전투에서 패배해 다쳤든, 소멸했다면 미니맵을 통해 즉각 알 수 있었다.

아무런 사전 조짐이 없는 상태다 보니 장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힘으로 해결 가능 했다면 저나 저와 함께하고 있는 호법들이 대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제법 한 수가 있어 어떻게든 해결을 지었을 겁니다. 거기다 대인의 수호이룡께서 계신 마당에 힘이 모자라 해결 못 할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헌데 이번 일은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뭇 장황한 말이나 성현은 장진의 말을 자르지 않고 계속 들어 주었다.

“밤만 되면 어린아이와 젊은 처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신의 피라는 피는 모두 빨려 나갔는지 미라나 진배없습니다. 사체만이 남겨진 유일한 단서입니다. 어찌나 교묘한지 저희들로서는 범인을 잡을 방도가 없습니다. 대인께서 부디 도움을 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성현은 미간을 잔뜩 모으고 얼굴 또한 굳어졌다.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범죄였다.

“만약 정말 남겨진 단서가 시신뿐이라면 저라고 달리 방법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다만.”

성현이라 해도 시체만 보고 범인을 특정해서 잡아낼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자를 알고 있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도움이 될 사람이 있겠군요. 잠시 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신종석, 문뜩 그가 떠올랐다.

범섬에 갇혀있다 도주한 김도훈의 이동 루트를 정확하게 알아낸 그의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능력이라면, 가능하리라 여겼다.

* * *

성현은 바로 긴급귀환을 하고 제주로 복귀했다.

제주에 복귀한 성현은 그 즉시 지휘통신실로 신종석을 수배했고, 그가 치안본부 부본부장의 직책에 있음을 확인했다.

차관급 고위직이었다.

“그래 기억나네. 그런 쪽으로 능력을 활용한다면 못 찾을 범인이 없긴 하겠지.”

성현이 직접 임명한 것은 아니지만, 의장이 보고한 신입 고위 공직자 인사명단에서 본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내정위원회 산하 각 부서의 장관급 이하의 인사문제는 모두 의장에게 일임한 상태였고, 전결 후 보고만 받고 있었다.

의장의 행사에 크게 불합리한 부분이 없어 차관 급이라 할 수 있는 각부서의 장관 바로 아래에 이르기까지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줬다.

어쩌면 성현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은 그가 한수 위라고 느껴질 정도의 적합한 조처였다.

성현이 신종석을 찾아 치안본부 앞에 도착했을 때 마침 무전을 받고 그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종석아 지금 좀 바쁘거든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네, 네?”

“설명은 가면서 하는 걸로. 아차차, 넌 그냥 타면 안 된다. 이거 입어라.”

성현이 꺼낸 것은 G슈트(내중력복)였다.

조종사가 고공비행을 하면서 중력(Gravity)이 가해지면 조종사의 복근과 대퇴근을 압박해 피가 하체로 쏠리는 것을 막아 주는 비행보조 장비였다.

“제가 왜 이걸?”

“전투기 타야 하거든.”

“저, 저는 고소공포증이!”

“자식이 엄살은. 너 절벽도 잘 타고 내려갔잖아.”

“그, 그건 사령관님이 강제로······.”

“말로 할 때 갈래? 아니면 내가 잠깐 기절시켜서 데려갈까?”

“하아-.”

신종석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땅이 꺼져라 한숨지었다. 이래나 저래나 가지 않을 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거 지금 너 아니면 해결 못 하는 일이라서 그래, 어린아이들하고 젊은 여자들이 매일 죽어나가고 있다. 그래도 안 갈래?”

성현은 너무 낙심한 신종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동기부여를 해줄 생각으로 말했다.

“네-? 어떤 미친 살인마 새끼가! 거기가 어딥니까!”

젊고 의협심 넘치게 당찬 신종석은 그렇게 성현과 F-15에 올라 중국으로 향했다.

성현은 이능력을 각성했다고는 하나 육체 계열이 아닌 신종석을 배려해 최대 속도로는 순항하지 못하고, 그 절반에 해당하는 마하 5 정도의 속도로 비행 중이었다.

이 상태로 급 기동만 하지 않는다면 4G 언저리의 중력만 느끼고 육체에 크게 무리가 가는 일은 없을 터였다.

약골만 아니라면.

“우웨웨웩.”

“너 나한테 튀면 죽는다!”

* * *

중국 광저우에 다시 도착한 성현은 연신 라이트 아머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있었고, 그 옆에는 보기에도 파리한 안색의 신종석이 서 있었다.

그리고 성현을 마중 나온 장진과 일전에 보았던 이능력자 중 두 명이 다가와 인사했다.

“대인, 이분이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그보다 우선 사체부터 좀 확인하도록 하죠.”

“사, 사체요?”

“뭘 그리 놀래? 넌 좀비나 죽은 사람 시체 본적 없어?”

“네.”

“뭐? 없어? 정말?”

“네.”

성현은 어이없다는 눈을 들어 신종석을 바라봤다.

헌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신종석이 정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너무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했던 거였다.

일반 주민 중에서는 대피소에 들고, 성현이 행한 이주 행렬에 끼어있었다면 좀비를 못 보는 게 어쩌면 당연할 터였다.

이능력자라 하나 사이코메들리와 같은 정신계 능력자인 신종석도 일반인의 범주에서 생각하는 게 맞았다.

“너 치안본부에서 범죄사건 다루면서도 시체 같은 거 못 봤어?”

“아이고. 사령관님 그런 소리 마십시오. 제주에 살인 사건이라니요. 간혹 쌍방 폭행으로 들어온 사람들 시시비비 가리는 일은 있어도 그런 사건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서 중범죄가 발생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성현과 신종석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장진의 안내로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에 도착했다.

“히끅!”

거의 뼈에 거죽만 붙어 있는 앙상한 모습의 시신이었다.

신종석이 놀라 딸꾹질을 하면서도 용케 이겨내며, 어린 여아의 시신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성현은 줄리의 또래로 보이는 여아의 시신을 보자 눈에 불똥이 튈 지경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허억! 대, 대인.”

장진이 성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이런…….”

성현은 부지불식간 갈무리했던 기세가 외부로 표출됨을 느끼고 급히 심신을 안정시켰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어떻게 알아낸 게 있어?”

신종석도 얼어붙은 듯 서서는 두 눈이 튀어나올 만치 치켜뜨고 바들바들 떨어대고 있었다.

“휴우-. 사, 사령관님 옆에 있다가는 제명에 못 죽을 것만 같네요. 우선 범인을 정확히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른 시신을 좀 더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너무 흐릿해요.”

“이 친구한테 다른 시신들도 좀 보여 줘야 할 듯합니다.”

* * *

시신 검안을 마치고 나선 성현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신종석이 말한 것은 인간이 아니었다.

“살아있었다?”

선진홍이 말했던 마계 군주라는 그 화살의 과녁과 비슷한 놈이 살아있었다.

그것도 평상시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가 인간을 해칠 때만 잠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인간과 구분이 안 됩니다. 매번 얼굴을 바꾸고 있어서 제가 읽어낸 기억의 얼굴들은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마계의 군주라는 놈이 용의주도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한 번 한 인간의 형상으로는 다시 변하지 못하는 것인지 매번 얼굴을 바꾸고 있었다.

“어떻게 놈을 찾아야 되나? 근데 놈을 죽일 수는 있는 거야?”

눈앞에 있기만 하다면 처리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정작 이미 한번 해치운 적도 있던 탓에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시간이 너무 걸린단 말이지.”

마계 군주를 찾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것과 그보다 조금 적게 걸리겠지만 그럼에도 제법 많이 걸리는 일들이었다.

“잠깐… 이거 될 거 같은데.”

궁리 끝에 시간도 줄이고, 빠르게 해결할 방책이 떠오른 성현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이 일을 잘 해결할 수 있는 ‘그’ 애들을 빨리 불러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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