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15화 (115/176)

# 115

낚시 (1)

“도대체 무슨 일로 이 야단이랍니까?”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만, 큰일이 일어날 거라고 하니 가야지. 위험한 곳에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전 군인들보다는 백배 천배는 좋은 사람들 아니겠나. 우리를 해칠 사람들은 아니니 따를 수밖에.”

부지런히 걷고 있는 장년인과 청년이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저 높은 성벽은 도대체 언제 만든 건지 모르겠구먼. 사나흘 전엔 없었는데…….”

장년인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지척에 있는 거대한 성벽을 올려다봤다.

높이가 20여 미터에 이르고, 성문 통로의 길이로 미루어 보아 두껍기도 여간 두꺼운 게 아니었다.

“거기 뒤에 사람들 기다리는 거 안 보입니까.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아, 예예. 지금 들어갑니다.”

우두커니 서서 성벽을 올려다보던 장년인이 한 군인의 지적에 급히 고개를 숙이고 걸음을 재촉해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광저우에 있는 모든 이들이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거대한 성벽 안으로 대이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은 가족 단위의 사람들과 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족히 수백 미터가 넘는 긴 행렬을 만들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대인의 말씀대로 주민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어찌하여 이런 지시를 내리시는지…….”

장진은 성현의 명에 따라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일을 시행했지만, 그 의도를 짐작치 못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음, 간단히 말해서 낚시한다 생각하면 될 겁니다. 일이 끝난 다음에 모두 알려드릴 테니 지금은 궁금해도 조금 참아 줬으면 합니다.”

성현은 대어(大漁)를 낚으려는 조사(釣絲)의 심정과 같았다.

그리고 장진이 자신을 따른다는 것을 알지만, 마계 군주라는 놈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없었다.

‘혹시라도 지애 씨 같은 능력이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장진이 발설하지 않더라도 계획이 유출될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만 했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나 있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불러 주십시오.”

장진이 깊이 포권하고 20여 미터의 성벽을 훌쩍 뛰어내렸다. 그 뛰어내리는 모양새가 소리 없이 은밀한 것이 한마디로 표홀(飆忽)했다.

성현도 못할 것은 없었지만, 저리 기척을 죽이면서 할 자신은 없었다.

“저 양반 극초신성 사태 이전부터 저랬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여하튼 난 양반이야.”

장진은 비인부전(非人不傳)의 고대 무예를 계승한 전인이었다.

극초신성 사태 이전에는 산중에 토굴을 파고 수련에 매진했었지만, 사태 이후 어떤 깨달음을 얻고 하산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장진의 육체 능력은 성현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연에서 기(氣)를 정련해 체내에 쌓은 내공(內功 )은 성현이라 해도 쉽게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저 사람 특성은 뭔지 궁금하긴 하네.”

개인마다 나타나는 특성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서브 특성은 그 사람의 정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성현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장진과 같이 더 높은 경지를 오르기 위해 매진하는 무인 같은 경우는 어떤 특성이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리되면 예비 영지 하나 없는데… 상황 봐서 진해 영지는 버림 패로 써야겠네.”

성현은 철광석 영지를 만들면서 하나 남은 영지를 지금 이곳에 만들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공작이 되는 승급 조건 중 영지 열 개는 모두 충족했음이다.

지금과 같이 언제 필요로 할지 모르는 영지는 최소 하나 정도는 여유를 둬야 했고, 이전 후작에 오를 당시 임시로 만들어둔 진해 영지는 언제든 포기하는 게 가능했다.

* * *

어느덧 시간이 지나 날은 저물어, 땅거미가 짙게 깔리고 있었다.

성현이 광저우에 도착한 지 두 시간여가 흐르자, 대어를 낚을 준비는 순탄하게 진행되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도착한 순서대로 내가 지시한 곳에서 대기해. 거기 일사룡 넌 남서 방향으로 조금 더 내려가, 이오룡 넌 너무 갔잖아······.’

미니맵을 확인하며 스컬 드래곤들의 위치를 조정해주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성현은 중국 현지에 있는 37마리의 스컬 드래곤중 산둥성(山東省) 지난에 있는 팔룡을 제외한 모두를 소집했다.

광저우에서 퍼져나간 스컬 드래곤 중엔 가장 멀리 있는 그룹이 저장성(浙江省) 상하이 바로 아래인 항저우시까지 진출해 있었다.

성현이 있는 광저우까지 두 시간이 조금 안 되는 거리 안에 모두 있다고 보면 되었다.

‘그냥 좀 더 만들 걸 그랬나?’

스컬 드래곤들의 자리 재배치를 마친 성현은 차라리 추가로 만드는 게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좀비도 자원과 같다. 골드는 이제부터 철저히 계획적으로 써야 돼.’

현재 20억 골드가 넘을 정도로 많은 골드가 쌓여있었지만, 성현은 공작을 넘어 국왕 승급 이후 1급 병기를 생각해서 최대한 지출을 피했다.

어느새 좀비는 생존을 위협하는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한정적인 자원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대인. 방금 철수가 완료된 외곽 경계 병력을 마지막으로 더는 안으로 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해가 지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되어 죄송합니다.”

70만에 가까운 이들이 네 개의 성문을 통해 모두 영지 안으로 진입해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상당히 빠른 조처라 할 만 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요. 고생했습니다.”

“별말씀을요. 대인께서 손수 도와주시고자 하시는데 이를 말씀이십니까.”

성현은 장진의 말에 싱긋이 웃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도와주기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위험 인자를 색출, 제거하는 게 목적이라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하겠군요.”

“예. 주민들에게는 저희와 적대적인 세력이 곧 침공할 수 있다고 둘러댄 탓에 모두 불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거기다 난데없이 나타난 요상한 영주민 신청 창에 또 한 번 놀란 상태입니다.”

“그도 그렇겠습니다.”

현재 주민들에게 알려진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적습이 있을 예정이라 보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모두가 빠르게 이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이능력자 가운데 적과 아군을 분별하게 만들 수 있는 이가 있어 그가 능력을 사용할 거란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일부 지역을 영지화해 영지민 신청을 하게 되면 혼전 중에도 같은 편을 확인하는 게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그럼 준비도 모두 끝났으니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지민 신청을 하지 않은 이들이 없는지 잘 살펴주셔야 합니다.”

“예, 대인!”

사전에 영지를 만들 때 주민들에게 공지해둔 덕분에 현재도 성현의 알림 창은 빠른 속도로 영지민 신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 * *

“이제 절반 정도인가?”

아리스는 이계의 본신에서 전이되는 힘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만큼은 방어 능력이 전무한 상태였다.

그 찰나의 시간에 설마 공격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인간이 한두 번 호흡하는 극히 짧은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이다.

다만, 때가 좋지 못했다.

마침 성현의 눈에 띄었고, 성현이 호기심에 당긴 방아쇠에 아리스의 분신은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아야만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아리스는 스스로 164개에 이르는 조각으로 나뉘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조각난 파편들은 인간 여자의 자궁과 생명력이 왕성한 어린아이들의 몸에 기생해 스며들었다.

이 또한 남은 대부분의 힘을 대가로 하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지만, 소멸만은 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조각은 이틀간 한 인간의 생명력을 모두 흡수하고 겨우 형상을 유지할 정도의 힘을 회복하게 되자, 조각난 파편을 모으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크윽. 역시 선진홍은 죽은 건가? 계약자 없이는······.”

현상계에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약자의 존재가 필수였다.

계약자 없이 진행되는 현신은 분신의 원천이 되는 힘을 지속적으로 소비시키고, 극심한 탈력감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소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계약을 위한 힘을 모으기 위해서도 조각난 파편이 더 필요하다.”

아리스의 발치에는 인간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거죽만 남은 미라화 된 시신이 한 구 있었다.

오늘만 3개의 파편을 추가로 모은 아리스는 아직도 배가 고픈지 입맛을 다셨다.

“모습을 또 바꾸어야겠군.”

인간은 과학이라는 기술을 토대로 눈이 없으되 볼 수 있고, 귀가 없지만 들을 수 있는 마법에 비견되는 문명을 이룩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힘을 회복하지 못한 아리스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갑작스레 외부에 적이 나타났다는 게 사실인가?”

조각난 파편을 찾아다니던 아리스는 주민들은 한곳으로 모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시기가 좋지 못했다.

“설마 미처 수습 못한 인간 몇의 시체 때문은 아니겠지.”

파편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초기에 몇 번 인간의 시체를 소각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아리스였다.

“고작 인간 몇이 죽었다고,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

설혹 시신이 발견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지는 않았을 걸로 생각한 아리스는 인간의 틈에 섞여 성현이 만든 성벽으로 향했다.

그때.

두둥!

[광저우 영지의 영지민 신청이 가능합니다. ( 락, 거부)]

“이게 인간들이 말한 그것인가? 마계의 문자를 구현해 내다니. 이 세계에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많아. 그래 본들 하찮은 능력일 뿐이지만······.”

처음 접하는 권능에 가까운 이능에 아리스는 자못 놀랐다. 한낱 인간이 마계의 문자를 구현해 냈다는 그 자체가 대단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마법 중에도 통역 마법이나 문자를 해독하는 마법은 있고, 고위 마법도 아님에 하고자 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마계에 있는 아리스의 본신 능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찮다 할 수 있었다.

“수락을 눌러야 하나?”

혼잣말을 하던 아리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길을 걷던 저마다의 사람들이 허공에 손짓하며 수군대고 있었다. 모두가 영지민 수락을 눌러대며 놀라워하는 모습이 한결같았다.

“별일은 없겠지. 수락한다.”

영지민 수락을 눌러야만 성벽 안으로 이동이 가능하다니, 인간들 틈에서 조각난 분신을 회수해야만 하는 아리스도 도리 없었다.

* * *

“걸렸다!”

성현은 빠르게 올라가는 영지민 신청 창을 집중해서 확인하던 중, 드디어 나타난 신청 창에 환호성을 질렀다.

초당 수십 수백에 가까운 신청 창이 올라가고 있지만, 초월적인 동체시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리스 벨라토 영지민 신청 (수락, 거부)]

성현도 몰랐던 아리스의 풀 네임이 영지민 수락창에 버젓이 나타난 것이었다.

“대인? 뭐가 걸렸다는 말씀이십니까?”

“사람들을 해쳤던 그놈을 찾았습니다. 이제 놈을 잡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대인.”

장진에게 간략히 이야기한 성현은 미니맵을 열고, 스컬 드래곤들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모두 정위치하고, 지상을 잘 살펴야 한다. 만약 놓치는 녀석이 나오면 가만 안 둘 테니 잘 지켜봐. 뭔가 나타나면 즉시 보고해. 사로잡는 게 어렵다면 죽여도 무방하다 절대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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