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낚시 (2)
“역시 별일은 없군.”
아리스는 영지민 신청 창을 수락하고, 연신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감히 내게 이런 치욕을 주다니······.”
마계의 최정점에 있는 군주 중 하나인 아리스는 지금 상황이 더없이 짜증스러웠다.
눈빛만 스쳐도 상위 마족조차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고개를 조아렸다.
수백만의 마족을 휘하에 둔 자신이 한낮 인간이 만든 이능이 두려워 긴장했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을 되찾아 본신의 힘을 일부라도 가져오는 날 이 땅엔 공포와 절망의 시간이 도래하리라. 클클클.”
아리스는 수만 년에 걸친 생을 돌아보며 이번 유희도 그 결과는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과거 다른 세계에 현신해 수십만의 대군을 거느린 이름 모를 용사나, 인간이 아닌 이종족들의 연합이 뭉쳐 자신에게 대항했지만 언제나 승리는 아리스의 것이었다.
그때였다.
“이건······!”
[영주민 신청이 ‘거부’ 되었습니다. 10초 후 영지 밖으로 퇴거 됩니다.]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난 문구에 아리스는 놀라 소리쳤다.
[10, 9, 8, ······]
“아, 안 돼!”
* * *
-주인 삼삼룡이다. 한 인간이 나타났다.
‘잡아! 놓칠 것 같으면 반드시 죽여!’
성현은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미니맵을 오픈하고, 삼삼룡의 위치를 확인했다.
쾅!
성현은 성벽을 거칠게 박차고 삼삼룡이 있는 위치로 가공할 속도로 쏘아지듯 날아갔다.
전력을 기울여 뛴 발걸음은 한 번에 수백 미터를 나아갔고, 순식간에 수 킬로미터를 뻗어 나가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놈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잡을 수 있다.
‘놓칠 것 같으면 그냥 공격해.’
-알겠다. 주인.
성현은 자신이 있던 곳과는 반대편인 탓에 조금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지만, 가공할 속력으로 10여 킬로미터를 2분 만에 주파해 시속 300㎞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성현의 시야에 작은 점처럼 보이던 삼삼룡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고, 이내 지척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제 보인다! 근데 넌 왜 가만히 있어?’
-주, 주인 갑자기 움직일 수가 없다.
삼삼룡의 당황한 말이 심상을 통해 전해졌다.
마계 대공이라는 아리스가 무슨 수작을 썼음을 성현은 짐작했다.
‘놈은?’
성현은 고작 수백 미터 거리밖에 남지 않았는데 혹시 놈을 놓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주인. 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날 억제하면서 놈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중이다.
‘오케이 그거면 된다.’
놈이 어떤 능력을 발현해 삼삼룡을 붙잡아 두고 있지만, 그 덕분에 놈도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한 대 맞자!”
상공의 스컬 드래곤을 향해 두 손을 뻗고 있는 한 중년인이 성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개활지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놈은 성현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퍼걱!
바람을 찢어발기며 달려가던 성현의 주먹이 놈의 왼쪽 어깨를 강타했다.
뼈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중년인의 모습을 한 아리스가 수십 미터를 날아가 땅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쳐졌다.
가히 수백 킬로로 달리던 덤프트럭에 치이는 충격일 것이었다.
“끄아아악!”
“속이 뻥 뚫리는구나, 역시 낚시한 보람이 있어.”
쓰러져 버둥대는 아리스를 발치에 둔 성현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이걸 버틴다고?”
주먹을 쓰면서도 혹시 죽지나 않을지 걱정되어 어깨 하나 정도는 완전히 날릴 심상으로 놈을 쳤다. 근데 어깨뼈가 부서질지언정 외관은 멀쩡해 상당히 놀란 성현이었다.
자신의 주먹이 대구경 총탄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을 터였다.
“네가 마계 군준가 하는 그 아리스 맞지?”
“······크윽.”
“이거 말이 안 통하나? 삼삼룡 통역 좀······.”
“너, 너는 선진홍을 찾아오던 자이군. 나, 나와 거래를 하자.”
성현이 삼삼룡을 통해 말을 전달하려던 차에 아리스가 능숙한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아리스는 이미 성현의 존재를 이전에 확인한 바 있었다.
패밀리어를 통해 강력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있음을 자신의 계약자이던 선진홍에게 알려주기도 했었다.
‘차원을 넘을 정도로 대단한 놈이라는데. 말쯤이야.’
성현은 차원을 넘어 지구에까지 온 마계의 군주라는 자가, 이런 능력은 가지고 있다는 게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영 맹탕은 아니다?”
“조잡한 인간의 말쯤이야 어려울 것 없다.”
“헐. 씨바! 그새 회복까지?”
고통에 겨워하던 아리스가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키며 왼쪽 어깨를 가볍게 돌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성현도 좀 놀랐다.
그냥 일반적인 총탄은 아니지만, 고작 몇 방에 ‘뻥’하며 터져버리던 것과는 달리 너무 상반된 모습이었다.
“인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와 계약을 하면 너는 인간들의 신이 될 수도 있다. 어떤가?”
아리스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성현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능력을 줄 수 있는데?”
성현은 놈의 비정상적인 회복력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스컬 드래곤을 제압할 정도의 상당한 능력이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강하게 압박하면, 놈이 다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설령 죽인다 해도 엉뚱한 곳에서 놈이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만큼, 조금 어울려 주며 정보를 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와 거래할 생각이 든 건가? 인간. 지금도 강한 듯하지만, 나와 계약을 한다면 전지전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어때, 구미가 당기나?”
“당기기는 한데… 난 지금도 강해 나보다 강한 인간이 있기나 할까?”
“강하기만 하고 수명이 제한이 있는 인간보다 불사의 육체를 가진 인간이 된다면 어떤가?”
아리스는 성현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기회라 여겼다.
그래서 달콤한 말로 언제나와 같이 인간들을 현혹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이 새끼도 내 정신에 무슨 장난질을 치나 보네.’
성현은 계속해서 뜨는 알림창을 보면서도 태연하게 답하고 있었다.
물론 넘어가는 척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오. 불사신이 된다고?”
“크하하. 물론이다 나와 계약해서 제물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그 무엇도 가능하다.”
“헌데 넌 왜 지금 이 꼴이 된 거지? 모두 뻥 아냐?”
“무, 무슨! 본신의 힘을 빌리던 중에는 차원 간섭의 영향으로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게도 그때 공격을 받아 지금 이리 한미한 신세가 되었지만, 난 절대 이런 대접을 받을 존재가 아니다!”
사뭇 위엄 넘치는 아리스의 말에 코웃음을 치는 성현이지만, 맞장구치는 걸로 흥을 돋웠다.
“아아-. 안타깝기도 하네. 근데 계약은 차차 하면 안 될까? 지금 당장은 좀 곤란해서 말이지. 다 믿을 수도 없기도 하고······.”
“그, 그건! 내가 말한 모두가 진실이다. 그리고 방금 공격으로 겨우 모은 파편을 일부 사용해서 힘이 많이 소진되었다. 나와 함께 내 남은 파편들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이대로 내가 소멸하면 넌 두 번 다시 지금과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거다.”
현혹되는 듯싶던 성현이 의구심을 나타내자, 다급한 듯 장황한 말을 내뱉는 아리스였다.
“인간. 나를 도와서 신이 될 기회를 잡아라.”
“시간이 없어? 왜?”
“이미 이전 계약자가 죽은 상태에서 매개가 없다면 내 존재는 현상계에서 배척당한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정말? 시간만 지나도 없어진다고?”
“그렇다. 거기다 힘들게 모은 파편도 거의 소진되었고, 힘도 약해진 상태라 그 시간은 더 빨라진 상태다.”
“이런! 그러면 안 되지. 근데 그 파편들을 모두 못 찾으면 그 인간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럴 리가? 내 모든 파편들은 나와 가늘지만 연결되어있어 못 찾을 수 없다.”
“그래도 못 찾는다면?”
“그, 그럴 리가 없다! 만일 회수가 안 되는 파편들은 자연히 소멸하게 되겠지만, 네가 날 돕는다면 그전에 모두 찾을 수 있다.”
“모두 사실이야?”
“그렇다! 내가 한낱 인간에게 거짓말을 할 것 같은가?”
“오케이 여기까지.”
아리스의 말을 모두 들은 성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결심이 선건가?”
아리스는 성현의 웃음 짓는 얼굴이 계약을 하겠다는 것으로 오해했다.
“응. 잘 들었어. 지금 널 여기서 없애도 무리가 없다는 걸 잘 확인했거든.”
“······.”
부아앙! 퍼억!
“크헉! 어어억!”
성현의 주먹이 아리스의 명치에 작렬했다.
타격과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는 아리스를 쫓아 크게 발돋움한 성현은 놈의 등짝에 강력한 내려치기를 선사했다.
쾅!
주먹에서 나오는 타격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굉음이 터져 나왔고, 솟구치던 아리스의 신형이 맹렬한 기세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꽈광!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떨어져 내린 아리스의 신형은 개활지의 무른 땅 깊숙이 파고들어 형체를 찾기 힘든 수준이었다.
“좀 시시한데······. 응?”
아리스가 파묻혀 있던 땅속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니 지상에 이전에 보았던 검은 바탕에 빨간 동공과 노란 테두리를 가진 눈깔이 만들어졌다.
-감히! 이 찢어 죽일 인간 놈이!
육성이 아닌 아리스의 말이 성현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쇠를 긁어내는 듯 거북하기 그지없는 음성이었다.
파지지직!
검은 실타래를 사방으로 뻗는가 싶더니 수십 개의 검은 번개가 되어 성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푸촤촤촹!
하늘을 나는 능력은 없던 터라 성현은 공중에서 그대로 아리스의 공격에 노출되고 말았다.
성현을 가격한 검은 번개들이 그대로 성현의 몸을 옭아매며 끊임없이 요동쳤다.
지상에 내려선 성현은 라이트 아머를 갉아대는 검은 번개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라이트 아머의 내구가 순식간에 떨어져 내리며 주황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 쌍놈의 새끼. 스크롤을 또 쓰게 만드네.”
파카캉!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검은 번개를 산산조각으로 끊어낸 성현은 섬뜩한 형체의 눈깔 형상을 하고 있는 아리스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어, 어떻게 한낮 인간이 권능의 사슬을!
남은 파편 중 분신을 유지하는 최소한만 남긴 최후의 일격이었다.
위력이 약하다고 하지만 권능이라 말할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건만, 성현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사실 성현의 라이트 아머의 내구도가 소실됨은 물론 HP수치도 10% 가까이 증발한 공격에 성현도 섬뜩한 상태였다.
‘스킬!’
한 방에 모든 것을 담아낼 작정으로 액티브 스킬모두를 활성화했다.
후아앙! 퍼펑!
공기를 가르는 성현의 주먹이 음속을 돌파해 소닉붐 현상을 만들어내며 굉음을 냈다.
강력한 일권이 아리스의 정중앙 빨간 동공에 작렬했다.
쾅!
-끄어어! 네게 저주를··· 다른 군주들이 네놈을 주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