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17화 (117/176)

# 117

넌 좋은 경험치였다 (1)

예고 없이 시작된 성현의 공격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고,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아리스는 분신이라고는 하나 마계의 군주라는 이름값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체 공기 중에 검은 아지랑이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악당을 상대로 긴 접전 끝에 필살기로 마무리하는 식의 전개는 현실에 있지 않았다.

[상태이상 정신 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아리스가 최후에 남긴 저주는 성현에게 무용할 따름이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2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2을 획득하였습니다.]

“대박! 이 레벨에서 2업을 한다고?”

[박성현]

레 벨 : 47   (EXP 64.31%)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후작

근력 12 (+10,+93) → 115 ▲

민첩  9 (+10,+93) → 112 ▲

내성  9 (+10,+93) → 112 ▲

마력  5 (+10,+93) → 108 ▲

체력 14 (+10,+93) → 117 ▲

권위 90 (+10,+93) → 193 ▲

보너스 스텟 : 4

급히 케릭터 창을 오픈한 성현은 레벨을 확인했다.

45레벨에서 47레벨에 오르기 위한 필요 경험치량은 1레벨에서 40레벨 오를 만큼 많은 경험치가 필요했다.

좀비로 환산하면 무려 320만 마리가 넘는 엄청난 경험치였다.

“조금 아쉽네. 동기화가 얼마 안 남았는데 좀 놔뒀다 잡을 걸 그랬나?”

두식에게 특성을 부여하고 시작된 동기화는 고작 12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스컬 드래곤들의 사냥 속도로 미루어보아 다음날 동기화가 끝나는 시점에 레벨업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다.

“그래도 나쁠 건 없지, 머지않았다.”

공작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고, 60레벨에 2차 전직을 해서 스텟 초기화를 하게 되면 국왕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었다.

‘너희들은 원래 있던 사냥터로 복귀해서 하던 일 계속해.’

-알겠다. 주인.

-주인.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다오.

.

.

30여 마리가 넘는 스컬 드래곤들이 성현의 지시에 따라 광저우를 떠나기 시작했다.

“근데 마지막 말이 좀 걸린다 말이지.”

아리스가 소멸하며 남긴 말이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찝찝한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지켜만 봐야 할 걸. 괜히 내 눈에 띄어봐야 네놈 꼴이 될 거다. 경험치 올려주러 오면 나야 좋고.”

자신감이 충만한 성현이었다.

지금도 강하지만 공작만 되어도 단숨에 ‘전 스텟이 +100’이라는 특전을 얻게 되어 있었다.

하물며, 스텟 초기화와 더불어 국왕에 오르면, 모든 스텟이 1천대를 넘어서게 되어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힘의 크기가 짐작되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 영지는 확장해서 그냥 두고 가는 게 좋겠다. 그리고 조금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광저우에 주민들의 일과를 지켜본 성현은 안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식은 부족해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은 유리걸식하는 이들과 다름이 없었고, 피골이 상접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실생활에 필요한 전기는 주요 시설들에만 적용되고 있었고, 일반 주민들은 해가지면 암흑에서 지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중국 대부분의 지역은 수질이 좋지 못한 탓에 물은 정수를 하지 않으면, 끓인대도 식용으로 적합하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배는 곯지 않게 허기는 면해야지.”

* * *

성현은 장진을 불러 식량을 나눠 줄 뜻이 있음을 전했다.

세상이 이리 변하고 식량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고 있는 장진은 선뜻 그 뜻을 짐작치 못했다.

그래서 장진은 거듭 물어왔고, 성현은 당장 주식이 되는 쌀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대, 대인! 정말이십니까?”

“쌀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공급해 줄 테니 주민들에게 모두 나눠 주도록 하세요. 넉넉잡아 두세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으니 그사이 쌀을 저장할 창고를 마련해 주세요.”

제주에 있는 저장창고에는 다 먹지도 못하는 22만 톤(T)에 이르는 쌀이 남아있었다.

1인당 1년 쌀 소비량이 한국이 60㎏ 정도임을 감안하면 중국도 이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다른 먹을거리가 없어 소비량이 좀 더 늘어 날 테지만, 그래 본들 이곳 광저우의 70만에 이르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1인당 100㎏을 1년 동안 먹는다는 과정을 해도 7만 톤이면 차고 넘쳤다.

“우선 광저우와 지난에 1달 치 식량으로 각 1만 톤 정도씩 공급해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인! 대인의 선의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하잘것없는 이 늙은 육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죽어도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아아. 이거 참, 그만 일어나세요.”

장진이 성현의 앞에 오체투지해서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성현은 그런 장진을 일으켜 세우며, 겸연쩍어했다.

“미처 살펴보지 못해 늦은 감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올 테니 준비를 부탁하겠습니다.”

“예-! 대인.”

“종석아. 그만 가자.”

성현은 떠나기 위해 종석이 불렀지만, 저만치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종석은 바로 오지 않았다.

얼굴에 가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저 여자는…….”

종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는 바로 성현에게도 안면이 있는 여인이었다.

“샤오핑?”

종석과 함께 있는 여인은 바로 홍콩에서 선진홍이 보낸 헬기 편대를 격추시킨 소규모 부대의 팀장이었던 여인이었다.

그녀 덕분에 선진홍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금의 광저우가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이였다.

“아,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성현이 다가오자 먼저 인사를 건네는 샤오핑이었다. 그녀의 인사에 가볍게 답한 성현은 종석을 돌아봤다.

“너 인마, 안 갈 거야?”

“저… 그게 저는 여기서 할 일이 없을까요?”

“뭐?”

“그게 그러니까. 여기도 사령관님의 영지인데 여기서도 제 한몫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성현은 종석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낯설고 물 설은 타국이라며,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는 언제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말을 바꾼 종석을 성현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전쟁 통에도 애는 낳고 사랑은 꽃핀다는 거지? 인마, 당장은 안 돼. 일단 가서 너 하던 일 인수인계는 하고, 정말 이곳에 네가 필요하다면 그때 보내주마.”

성현이 이 피 끓는 청춘의 연애사에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일의 선후는 돌아봐야 했다.

자신의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되었다.

직책도 작지 않은 차관급의 인사가 한순간의 변심으로 이리 행동하도록 그냥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내가 끌고 가리?”

성현이 짐짓 눈에 힘주어 말하자 그제야 종석도 더는 우격다짐으로 남을 수 없음을 알았는지 체념의 눈빛을 띄웠다.

“뭐야. 설마 둘이 벌써?”

사람 일은 모른다지만, 종석의 표정에서 어떤 기류를 읽었는지 샤오핑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한눈에 반한 이국의 청춘들이 서로를 애타게 바라봤다.

“하아-. 샤오핑 양이 간다면 받아 줄 수는 있다. 설득할 자신 있으면 데려가고 아니면 작별인사를 해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사령관님! 정말이시죠?”

“알아서 해라.”

성현은 뒤돌아 알아서 하라는 손짓을 하고 먼저 나섰다.

“간다고 해도 문제네.”

당장 이동수단으로 사용할 것은 복좌형인 2인승인 전투기였고, 항공기나 민간용 수송기는 무기가 아닌 탓에 성현이 몰고 갈 수도 없었다.

“사령관님-.”

“요즘 애들은 다 저러나?”

20대 초반의 남녀가 그것도 이국에서 처음 만나 몇 시간이 안 지난 손을 잡고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자국어가 아닌 영어로 서로 이야기하면서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휴우-. 간데?”

“넵! 제가 천국을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아 자식이 설레발은……. 근데 가는 건 가는 건데 당장 너랑 같이 타고 온 전투기는 2인승이라 타고 가기가…….”

“제가 안고 타겠습니다!”

종석이 성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연하게 대답했다.

“……에휴. 너 좋을 대로 해라.”

잠시 후 광저우 공항의 활주로에서 이륙한 F-15 전투기가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올랐다.

“야!”

“네. 넵?”

“너 네 지금 뭐하냐?”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성현은 비행이 시작되고, 예민한 귓가에 들리는 물고 빠는 소리에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은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생생했음이다.

그럼에도 종석은 시치미를 때며 성현의 말을 반박 중이었다.

“방금 쪽쪽 거렸잖아!”

“저, 저희 진짜 암것도 안 했어요. 오, 오햅니다. 사령관님!”

“한번만 더 그러면 비행기 뒤집는다.”

종석과 샤오핑 둘 모두 이능력자이긴 하지만 육체능력은 민간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탓에 전투기의 최대 속도로 비행을 하지 못해 안 그래도 장시간 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것들이 진짜!”

신경을 건드는 미묘한 소리는 성현을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었다.

* * *

제주에 도착한 성현은 종석과 샤오핑을 진절머리가 난다는 눈으로 일별하고, 둘을 돌려보냈다.

종석은 잊어버릴 새라 샤오핑의 손을 꼭 잡고 이끌었고, 샤오핑은 내심 부끄럽지만 싫지 않은지 그런 종석을 따라갔다.

“내가 두 번 다시 너희 둘을 태우면 사람이 아니다.”

성현은 둘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대고 있지만, 사실 좀 부럽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좋을 때긴 하다. 잘 살아라!”

종석이 가다 말고 손을 흔드는데 성현은 저도 모르게 피식하며 웃었다.

“해미하고 줄리는 자겠네. 나도 서두르면 아침은 같이 하겠다.”

반나절을 못 본 해미와 줄리가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성현이었다.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던 성현은 바쁘게 무전을 보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정위원회에 통보 후, 3개동의 쌀 저장 창고를 모두 털어 자신의 창고에 넣어 두고 빠르게 다시 중국으로 향했다.

광저우에 먼저 들린 성현은 장진이 마련해둔 저장시설에 120㎏ 짜리 1만 포대를 내려주고, 지난으로 향했다.

지난에는 사전에 스컬 드래곤을 통해 통보를 해둔 상태여서 성현이 도착하자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이 성현을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부족한 식량을 가지고 온 성현은 구세주나 다름없었고, 모두의 환대 속에 쌀을 전달해 주었다.

시간은 이미 동이 틀 시간이지만, 알차게 보낸 하루였음이 분명했다.

“유난히 아름다운 아침이다.”

황해를 건너는 성현의 눈에 수평선 넘어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담겼다.

검푸른 하늘은 점차 밝아지며, 어둠을 몰아내었고, 티끌조차 없는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오늘도 바쁘겠다.”

하루 이틀 잠을 자지 않는데도 피로하지 않은 성현은 날을 꼬박 새우고도 활력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오늘은 중국의 지하 만리장성에 들러 핵무기를 거침없이 쏴대는 놈들을 직접 대면하는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