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18화 (118/176)

# 118

종횡무진 (1)

“저 밤사이 레벨이 2나 올랐어요. 잠 안 주무셨어요?”

“으응? 아. 밤새 일이 좀 바빠서.”

“그래도 잠은 제때 자고 하셔야죠.”

“그래 그럴게. 줄리야 이것도 먹어야지. 채소도 먹어야 튼튼해진다.”

“웅-. 파파 이거 맛 없쩌.”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함께하는 아침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이었지만, 이제 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미와 줄리는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현에게는 더없는 행복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이제 곧 2차 전직 레벨 되겠는데요.”

“응. 나도 3개월 정도는 예상했는데 의외로 변수가 좀 있었어. 빠르면 두 달이 안 걸릴 거 같다.”

“골드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전 있어도 쓸 곳이 없어요.”

“아-. 그러고 보니 지금 얼마나 모였어?”

성현은 최근 군위원회에 스컬 드래곤과 부유 요새를 추가로 생성해 주는 등 이곳저곳에 골드 소모가 많았지만, 해미는 쓰임이 없어 고스란히 모여 있을 터였다.

“지금 30억 골드가 조금 넘어요.”

“내가 쓰긴 많이 썼나 보다. 난 지금 12억 정도인데…….”

“지금 드려요?”

“아냐. 2차 전직을 하게 되면 그때 넘겨주는 걸로 하자.”

“네. 오빠. 근데 오늘도 중국 가시는 거예요?”

“아무래도 한동안 중국에 계속 가야 할 것 같아. 나중을 위해서도 확실하게 정리해둘 필요가 있거든. 불씨를 남겨두기보다 우리 관할 아래 두는 게 아무래도 좋을 거 같다. 혹시 아니 내가 역사책에 나오는 사람이 될지도…….”

성현이 무심코 툭 하고 던진 말임에도 해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이미 하신 일들만 봐도 후세에 길이 전해질걸요.”

해미가 수저를 들며 한 말을 곱씹어 본 성현은 다시 한 번 자신이 행한 일들이 결코 작은 일들이 아님을 상기했다.

인류가 거의 멸망 직전에 다다른 이때 만약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이가 없었다면, 예상컨대 최소한 한반도는 좀비와 구울에게 점령당했을 공산이 컸다.

이능력자들과 일부 군인들이 있어 어떻게든 생존할 가능성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한반도 전역을 수복하기 위해 움직일 여력은 없을 것이 자명했다.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이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도태되고 사라져갔을 것이다.

“잘 먹었다. 줄리는 오늘 내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가도록 할게. 오늘 저녁도 아마 같이 못할 것 같으니 늦어도 먼저 식사하고 있어.”

성현이 부른 배를 두둑이며 자리에 일어섰다.

“네. 오빠.”

해미의 오빠라는 호칭이 입에 착착 감기는 것이 이제 더는 어색함이 없었다.

* * *

성현은 집안일이 남은 해미를 대신해 줄리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다시금 중국으로 향했다.

“어느새 익숙해 진 건가?”

처음 전투기를 타고 황해를 건널 당시의 감회는 남달랐었다.

남의 나라, 타국의 영공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게 간혹 정복자라도 된 양 기분이 고양되기도 했었다.

“꼭 집 앞 편의점 들리듯 가는구나.”

이제는 수차례 다녀온 탓인지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무덤덤함 그 자체였다.

“몇 분이면 도착하겠네.”

제주에서 탕산시 북쪽 청더시 인근까지 거리상 1,100㎞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성현에게는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초월 스킬 중 하나인 ‘광속 돌파’ 로 인해 이동속도가 300% 증가했고, 거기에 더해 액티브 스킬 ‘무기 기술자’로 인해 150%가 추가되면서 마하 7.2의 속도로 순항 중이었다.

분당 146㎞로 날아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기체라면 내구성이 문제가 되어 비행이 불가능할 테지만, 이도 성현의 초월스킬 중 하나로 극복해 내고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 내성 1차 한계돌파 】

[신성한 방어]

- 내구성 300% 증가 (격투계열 육체적용 및 모든 무기 상시적용)

모든 스텟이 100을 넘어가면서 얻게 된 ‘초월 스킬’들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이제 1레벨만 올려서 공작에 이르면, 2차 한계 돌파 스킬도 나타나겠네.”

방금 전 두식의 특성 동기화가 완료되고, 성현은 이제 완전히 능력을 개화한 상태였다.

이제 레벨 1을 올리면 모두 12개의 보너스 생길 터였다.

“거기다 언어 문제도 해결되었지.”

*패시브*

[특수]무기 전문화

-모든 무기 사용 가능 및 공격력 50% 증가(활성화)

[일반]마력부여

-마력 1당 1%, 공격력 추가 상승 (108% 상승)

[일반]언어변환

-모든 언어를 변환해 자신의 주 언어로 해독 및 상대의 주 언어로 전달

패시브 스킬 최 하단에 신규 스킬이 하나가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

이제 어느 나라 그 누구를 만나도 말이 안 통해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다 왔네.”

어느새 황해를 건너 발해만에 인접하나 싶더니 청더시 남서쪽 호수가 성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호수 인근 논에 기체를 수직 착륙시킨 성현은 기체를 창고에 수납하고, 전날 확인해둔 지하 만리장성의 비밀 출입구로 이동을 시작했다.

가파른 산을 그대로 가로질러 한달음에 목적했던 곳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도착했다.

거리는 대략 400m 남짓, 출입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산의 중턱이었다.

“저 입구는 사용을 하지 않는 건가? 그도 아니면 비정기적으로 출입을 하고 있나?”

혹시나 해서 부근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표시를 해두고 지나는 이들이 있으면 훼손되게끔 해뒀었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성현의 눈에는 수 미터 거리에 있는 거처럼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전날과 다름없음을 확인한 성현은 그대로 지하 출입로가 있는 곳을 향해 산을 타고 내려갔다.

“무단출입 시 즉살?”

어제는 읽을 수 없었던 글귀가 성현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중국군 특유의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가 철조망 사이사이에 걸려 있었다.

공산체제하의 인명에 대한 존중은 찾을 길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문구였다.

잠시 멈춰서 있던 성현은 3미터에 이르는 철조망을 손쉽게 넘어 들어갔다.

“자연석이 아니네.”

겉으로 보면 거대한 바위는 자연석으로 보였지만, 손에 느껴지는 촉감은 거친 인조석임을 알게 했다.

툭툭.

손으로 몇 번 두드려보며 강도를 시험하던 성현이 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쾅! 후두두둑.

포탄에 직경당한 것처럼 인조 바위의 한쪽 귀퉁이 전체가 큰 폭발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직경이 수십 센티는 됨직한 거대한 바위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많이 두텁네.”

크게 부서졌지만 원체 문의 두께가 두꺼운 나머지 표면의 석재들만이 박살 나고 내측은 그나마 멀쩡했다.

그때였다.

꽈과과광!

성현이 서 있던 장소 전체가 거대한 폭발에 휩싸였다.

지면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폭발은 거대한 출입문으로 위장된 바위 또한 산산조각내며, 삽시간에 주변을 초토화했다.

폭발과 동시에 성현의 육체는 화산이 분출하듯 거센 물리적 충격을 받고 상공을 날고 있었다.

“……뭐야?”

성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해 놀라기는 했지만, HP 수치가 4% 가까이 빠진 거 외에는 별다른 외상을 입지 않았다.

높이 치솟던 육체는 정점을 찍고 자유낙하를 시작했고, 지상에 발을 디딘 성현은 주변을 돌아봤다.

상당히 강력한 폭발도 폭발이지만 인화성이 강한 물질들이 섞인 불길은 쉽사리 잡힐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백린탄의 일종인가?”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폭약과 함께 악명이 자자한 백린탄(白燐彈)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불길은 계속해서 번져 나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침입자를 고려해 인근 지역 전체를 소각하려는 의도로 짐작되었다.

구구구궁.

“……설마?”

지하 만리장성과 연결된 통로 전체가 붕괴되고 있는지, 지하 깊숙한 곳에서 연이어 발생한 진동이 지표면까지 전달되고 있었다.

외부 방어 체계가 정상적이지 못함을 가정한 자폭장치였다.

외부에서 막지 못한다면 침입 자체를 철저하게 차단한다는 것에서 착안한 인민군 식 초토화 전술 중 하나였다.

“이것들이 엿을 제대로 먹이네. 이런다고 내가 못 들어갈 것 같아?”

성현이 열이 뻗쳐 말은 내뱉었지만, 사실 당장은 막막했다.

이건 굴착기가 있어도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무너진 통로를 파내는 작업은 새로운 굴을 뚫는 것 보다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 * *

성현은 다 부서진 지하 만리장성의 출입구 앞에 쪼그려 앉아 돌 부스러기를 집었다 내렸다 하며, 어찌해야 하나 고심 중이었다.

지하 만리장성의 총 길이는 5,000㎞에 이를 정도로 길었지만, 의외로 출입로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더군다나 성현이 알고 있는 입구는 단둘 뿐이었다.

남은 하나는 지하 만리장성 건설 초기에 만들어진 출입구였다.

“근데 거긴 물속인데.”

십 년이 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엄청난 물자와 인력이 투입된 대역사(大役事)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입구가 노출되었다 생각한 중국이 봉쇄할 목적으로 그곳에 댐을 만들었고, 지금은 수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인. 삼오룡이다. 물어볼 말이 있다.

‘지금은 내가 생각이 좀 많다 급한 게 아니면 이따 이야기하자.’

-그, 그런가?

한참 생각에 골몰하던 성현의 심상을 통해 중국 내지에 흩어진 스컬 드래곤 중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다른 입구를 찾아봐야 하나?”

-주인…….

‘아-. 뭔데. 급한 거야?’

-아니 급하다기보다는…….

‘아 됐고, 말해봐 왜?’

-날파리 같은 놈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다.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귀찮게 한다.

‘뭐? 날파리?’

-쇠 덩어리 안에는 인간이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격하고 있다.

스컬 드래곤의 말은 전투기나 공격 헬기를 일컫는 듯했다.

그리고 성현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거 절대 공격하지 말고 위협만 해서 쫓아 보내. 내가 지금 그리로 갈 테니 절대 맞추면 안 된다.’

성현은 마음이 급했다.

행여나 전투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스컬 드래곤이 놓칠 수도 있었다.

급히 미니맵을 열고 삼오룡의 위치를 확인했다.

“가깝다!”

미니맵의 위치대로라면 남서쪽으로 북경을 지나 대략 200㎞~300㎞ 정도의 거리로 짐작되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어. 그리고…….’

성현은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곧장 활주로를 생성해 전투기를 타고 이륙을 시작했다.

* * *

구구구궁.

F-35와 외형이 거의 흡사한 전투기 3대가 편대비행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젠-31(FC-31) 스텔스 전투기였다.

F-35를 그대로 복제한 듯한 기체는 ‘컨트롤+씨, 컨트롤+브이’를 한 듯했다.

중국은 민간뿐만 아니라 관에서조차 기술 절취(竊取)가 만연했음을 알게 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만 했다.

과거 미국이 ‘중국은 기술 도둑질의 표본’이라고 격하게 날을 세운 게 결코 심한 처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후아아악!

3대의 젠-31 전투기 내부 무장창이 동시에 열리며 미사일 1기를 사출했다.

투하된 미사일의 추진 기관이 작동하면서 흰 궤적을 그리며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추진 화염의 양이 많아 전투기 본체에 무리를 줄 우려가 있어 모두가 투하 방식으로 점화되어 날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쾅! 꽈광!

5㎞ 이상 날아간 미사일들이 상공에 떠 있던 물체를 타격했다.

-목표 명중! 피해 유무 확인 불가!

-효과가 있다! 전 편대 화력을 모두 쏟아 붙는다.

스컬 드래곤은 미사일 공격을 받고 추락하는 중이었다.

회백색의 외관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머리를 아래로 두고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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