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종횡무진 (2)
쿠쿠쿠쿵!
거대한 동체의 스컬 드래곤이 추락해 수백 미터를 미끄러지며 지상을 할퀴고 지나갔다.
-주인. 이런 짓까지 정녕 해야 하는 것인가?
‘응, 미안.’
-……주인은 냉혹하군.
스컬 드래곤은 성현이 내린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미사일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혼신을 다한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통스런 괴성을 지르기도 했고, 지상에 추락 후 잘게 몸을 떨기도 했다.
너무 버텨도 지레 겁먹고 도주할 우려가 있고, 반대로 쉽게 제압당해도 안 되었다.
공격이 먹힌다고 저들이 믿게끔 하는 게 중요했다.
-주인. 귀찮은 놈들이 물러가고 있다.
젠-31 3대가 스컬 드래곤이 추락한 지점을 수차례 선회하더니, 남서 방향으로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적이 완전히 침묵했다는 편대장의 콜사인에 따라 복귀를 시작한 것이었다.
거기다 전투기들은 가진 미사일 모두를 소진한 상태에서 전투 지속 능력이 없기도 했다.
‘수고했다. 이제 나한테 맡겨.’
-알겠다. 주인.
성현이 탄 전투기가 상공 29㎞ 지점에 도착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F-35의 실용상승 한도 15㎞를 초과한, 거의 두 배 가까운 높이에서 비행 중이었다.
“더 높이는 힘들겠지?”
성현은 콕핏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푸르른 창천이 보이는 게 아니라 검고 어두운 하늘이 펼쳐 져있었다.
대기권의 높이는 약 1,000㎞ 정도였지만, 전체 공기의 99%는 중력 작용에 의해 지상 약 32㎞에 대부분이 존재하고 있었다.
성현의 전투기는 오존층의 거의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되었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해.”
성현의 전투기는 저공비행으로 복귀중인 젠-31 편대와 20㎞이상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전자기파를 상쇄시키던 원인 모를 상태가 점차 해소되는 와중이었고, 혹여나 근접했다가 저들의 레이더망에 걸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젠-31의 레이더 성능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탓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자, 어디로 안내할 거냐?”
계속해서 북서진 중인 젠-31 전투기들을 따르던 성현은 진로 방향 전체를 시야에 두고 지상을 살피고 있었다.
“활주로? 이런 곳에 군 시설을 만들어 뒀네.”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던 젠-31 편대가 순차적으로 활주로에 안착하더니, 산맥 사이에 뚫린 거대한 굴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착륙 시에만 들어오는 주황빛과 붉은빛의 유도등이 일제히 켜졌고, 전투기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거기다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의 대규모 군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케이, 확인!”
성현도 더는 접근하지 않고, 25㎞ 지점에서 기체를 착륙시키기 위해 빠르게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 * *
북경에서 정서 방향으로 90㎞ 지점.
허난성 타이항산맥 숭산(嵩山)에 성현이 찾던 정식명칭 ‘장성(長成) 공정’ 즉, 지하 만리장성의 또 다른 출입구가 존재했다.
지하 만리장성은 수도 인근을 둘러싼 타이항산맥을 기준으로 건설되어있었고, 전쟁 상황을 가정해 선제 핵공격을 받을 경우에 대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보복 핵 공격을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곳은 어느덧 상주 인원 15만 명, 최대 600만 명을 수용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고, 지하에서 자급자족하며 최대 20년은 버틸 만큼 엄청난 물자를 보관하고 있었다.
숭산은 중국의 오악(五岳) 중 하나로 빼어난 경치와 그 이름도 유명한 선종의 발생지이기도한 소림사가 있는 곳이다.
태초의 수림이 아름다운 이곳에 미사일 사일로를 개조한 활주로가 존재했고, 계곡 사이 호리병 모양으로 들어간 지역에 대규모 군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천혜의 지형을 토대로 건설되는 요새는 지금도 공사가 한창 이었다.
“방금 복귀한 정찰팀의 보고입니다. 거대 괴수가 출현해 장착 중이던 미사일 전량을 소비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처리는 완료했습니다.”
“뭐라, 거대괴수? 일전에 나타났던 사족 보행하던 그것과 같은 종류인가?”
“주석 각하. 아닙니다. 이걸 좀 보십시오.”
천둥광 참모장이 탕우청 주석에게 정찰팀 촬영 영상이 담긴 디스플레이를 재생시키며 넘겨주었다.
“……이제 하다 하다 이런 것까지. 설마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주석이 부릅뜬 눈을 들어 참모장을 바라봤다.
“아직 추가로 발견된 것은 없지만, 걱정하실 정도는 아닐 듯합니다. 공대공 미사일 몇 기로 처리되었다면, 일정 수준의 화력만 투사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래 보이는군. 3차례 직격된 후에는 비행능력도 상실했으니, 땅에 떨어지기만 하면 지상군만으로 충분히 상대가 가능하겠어.”
흉측한 뼈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수는 무시무시한 외형에 비해 빈약한 방어 능력을 가진 듯했다.
이에 안도하는 탕우청 주석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 정찰 편대를 확장 운영하도록 하고 정찰 지역도 확대하도록 해.”
“넵, 주석 각하! 저, 그리고 하나 더 보고드릴 사항이…….”
참모장이 주석의 명령에 대답하고, 더 보고할 것이 남았는지 말을 길게 늘였다.
“청더시에 있던 제7 출입로가 위기대응 최종단계에 돌입해 자체 폐쇄되었습니다.”
사실 지하 만리장성은 수백 개에 달하는 위장 출입구와 실재하는 11개의 출입구가 있었다.
그중 제7 출입로는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지하 만리장성과 연결된, 실존하는 통로였다.
“자폭했다고? 어떤 놈들이 침입하려 했다는 말인가!”
이성이 없는 괴물들이 침입을 시도했다는 건 있을 수 없고, 그리고 어지간한 물리적 공격으로는 최종단계에 돌입해 자폭으로 이어지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 상황파악을 위한 정찰팀을 파견했습니다. 파악 되는 대로 즉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 *
성현은 기체를 착륙시키고 길이 없는 곳을 이용해 요새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의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또 출격인가?”
지상의 살피던 성현의 눈에 스컬 드래곤을 공격했던 전투기 편대가 들어간 곳에서 한 대의 전투기가 다시 이륙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눈을 돌려 건설이 완료된 건물 중 하나에 시선을 고정했다.
“저곳의 경계가 가장 엄중한데…….”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중앙의 한 건물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인질극까지 해야 하나?”
성현은 속전속결을 원했다.
잠입해서 어디 있는지 모를 핵무기를 탈취하고, 이들을 홀로 통제한다는 건 어불성설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휘부, 그중 최고 지휘관을 사로잡아 뜻을 이루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어! 저 사람은.”
7㎞ 이상 떨어진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성현의 눈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탕우청!”
중국 국가 주석인 탕우청이었다.
국가원수이며, 중국 공산당 서열 1위인 자였다.
극초신성 사태 이전에도 중국의 현행 헌법상 주석의 임기는 무제한이었던 탓에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중국을 통치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딱 걸렸어.”
성현은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대상을 선택했다.
이보다 좋은 인질은 없었다.
상징성과 탕우청의 위치로 미루어 보아 이곳의 최고 책임자는 틀림없이 저자였다.
파파파팟!
성현은 가공할 속도로 직각에 가까운 절벽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애애애애앵!
삽시간에 산을 내려온 성현이 경계 철망을 뛰어넘자 침입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무인 감시 장치의 센서에 걸려들었지만, 이를 제지할 병력들은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이렌이 울림과 거의 동시에 이미 성현은 3백 미터 이상을 벗어난 상태였고, 거침없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성현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응은 극히 미비할 따름이었다.
경계 사이렌이 울리고 불과 20여 초 만에 일어난 일들에 모두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타타타탕.
시속 400㎞에 육박하는 탄환들이 빗발쳤지만, 단 한발의 총알도 성현에게 미치는 것이 없었다.
“찾았다!”
수십 명의 경호대와 함께 있는 탕우청 주석이 성현과 불과 200미터 전방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막아!”
스파파팟!
탕우청 주석을 호위 중이던 자들은 이능력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성현을 발견하자마자 즉각적인 공격을 펼쳤다.
그중 육체계열 이능력자로 보이는 두 명이 장검을 빼어들고 성현을 향해 돌진해왔다.
예기가 선명한 검이 들이밀어 지는 상황에서도 성현은 긴장감이라고는 단 1도 없었다.
그저 가벼운 손짓으로 한 번이면 족했다.
파캉!
산산 조각난 검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도리어 성현을 공격하던 이능력자들의 전신을 파고들었다.
“크억!”
가벼운 한 수에 두 명의 이능력자들을 제압한 성현은 멈춤이 없었다.
콰콰쾅.
지면이 흔들리나 싶더니 싱크홀처럼 큰 공간이 함몰되어 성현의 발길을 잠시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 공간을 순식간에 메워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꽈광-! 후두두둑.
족히 수십 톤은 넘는 흙들이 큰 폭발음과 함께 분수마냥 하늘로 솟아 올라갔다.
그리고 지하에 파묻혀 있던 성현이 지상에 다시 올라서며, 라이트 아머에 뭍은 흙먼지를 툭툭하고 털어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만하지. 그러다 다친다.”
“……”
구구궁!
성현이 갈무리해 두었던 힘을 외부로 표출해 내기 시작했다.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간 파동은 물리적인 힘마저 내포하고 있었다.
주변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으며, 거대한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헙! 이. 인간이 아, 아닙니다.”
“어, 어찌!”
감히 범접하기 힘든 격이 다른 위엄이 성현의 전신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성현을 공격하던 이능력자들이 당황을 넘어 공포에 질려 했다.
사위를 압도하는 중압감에 이능력자들도 감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체 전의를 상실한 체 두려움에 몸을 떨어댔다.
뚜벅, 뚜벅.
성현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얼굴이 새하얗다 못해 창백해진 얼굴의 탕우청 주석은 털썩하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이능력자들도 모세의 기적같이 감히 대적치 못하고 비켜서고 있었다.
“중국 국가 주석 탕우청 맞나?”
“도, 도대체 누, 누구십니까?”
탕우청은 성현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해 겨우 말을 했다.
눈앞에 있는 이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이 있다면 이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한 탕우청이었다.
“니들이 핵미사일 날렸지?”
“……그 그건.”
“길게 말할 것 없고 한웨이거 알지? 그놈이 나한테 핵미사일 쏴서 내가 맞았거든.”
성현의 말을 들은 모두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눈을 크게 치켜떴다.
한웨이거를 모두가 알고 있지는 않지만, 핵을 맞았다고 한 말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어쩌면 눈앞에 있는 이는 그러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성현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고, 이런 이가 없는 사실을 지어서 말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 한웨이거라면……. 동부전구 사령원으로 있는 자입니다. 저, 저희와는…….”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탕우천 주석의 말은 공손하기 그지없었다.
“아-. 그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냐. 근데 니들도 핵을 마구 쏴대네. 니들도 그리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