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공작 날개를 달다 (1)
중화시에서 제주로 복귀한 성현은 핵무기 보관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숙고에 들어갔다.
자신의 캐릭터 창고에 모두 보관한다면 세상에 이보다 안전한 보관 장소는 없을 테지만, 수십 종, 천 개가 넘는 핵무기를 모두 보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멀리 두기도 그렇지만, 가까이 두고 있기도 꺼림칙하단 말이지.”
핵은 강력한 무기임이 틀림없지만,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에 천 개가 넘는 핵무기를 모두 모아 두기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핵무기가 그냥 폭발하지는 않을 테지만, 세상일이란 게 언제나 내 맘 같지만은 않았던 탓이다.
“중국에 남은 것들은 현지에서 해체하는 게 좋겠다.”
핵무기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었다.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과 핵융합을 이용한 수소폭탄, 이 두 가지였다.
이중 원자폭탄은 일정한 중량이 되기 전까지는 핵분열이 발생치 않았고, 일정 중량을 초과하게 되면 비로소 핵분열이 일어나는데, 이를 임계질량이라 일컬었다.
이론상 임계질량에 이르는 연결고리 중 어느 하나만 제거해도 핵분열이 불가능하고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비트랩(Booby trap)이 없는 이상 해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핵융합반응으로 만들어지는 수소폭탄은 자연 상태에서 핵융합이 일어나지 않아 수억 도의 열을 발생시켜줘야만 폭발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핵융합이 발생하는 원천인 임계온도에 도달하지 못하게 기폭약이나 신관을 제거하면 절대 폭발로 이어지지 못했다.
“혹시 모르니 해체한 우라늄만 챙겨 놓자.”
핵무기의 주원료인 우라늄 235는 자연에 존재하는 우라늄 중 유일한 핵분열 동위 원소를 가지고 있었다.
해체 후 우라늄 235만 챙겨 놓는다면, 핵무기 재생산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쓸 일이야 없겠지만, 가지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거겠지.”
현대에서 핵을 핵으로 막는다는 것은 공멸뿐이라 할 수 있었다.
보유만으로 적대국의 핵을 제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전쟁에서 무기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지 못했다.
이는 과거 냉전 시기부터 이어져 온 상호 확증파괴 논리에서 기인했다.
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정치나 실리적으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상식적인 문제였다.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선제 기습 핵 공격으로 다른 핵무기 보유 국가의 응전 능력을 완벽히 배제하지 못할 경우, 더 가혹한 보복 핵 공격을 받는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분쟁, 또는 갈등이 심화되어도 핵무기 사용을 자제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사실상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 이후 실전 사용은 전무했다.
“같이 죽자고 쏘는 놈이 없는 이상은······.”
핵은 상호 멸망으로 이끄는 최악의 선택이 분명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있기 마련이었고, 그런 미치광이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있어왔다.
그런 미치광이가 현시대에는 없길 바랄 뿐이었다.
* * *
‘잘 해체해서 포장해두라고 전해.’
-알겠다. 주인.
‘아-, 그리고 관리 감독 철저히 하라고 해. 하나라도 빼돌려지면 지금까지 한 일 자체가 의미가 없는 거다.’
-그리 전하겠다.
성현은 스컬 드래곤을 통해 정찬석 3대대장에게 현지에 남은 핵무기 해체를 최우선으로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원래 중화시에 당일로 다녀오려 했지만 현지에 가서 성현이 해야 할 일은 없다시피 했고, 시급한 일은 모두 처리했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일이 생기기도 했다.
[박성현]
레 벨 : 48 (EXP 2.66%)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후작
근력 12 (+10,+93) → 115 ▲
민첩 9 (+10,+93) → 112 ▲
내성 9 (+10,+93) → 112 ▲
마력 5 (+10,+93) → 108 ▲
체력 14 (+10,+93) → 117 ▲
권위 94 (+10,+93) → 197 ▲
보너스 스텟 : 12
고대하던 레벨업이 이루어졌지만, 성현을 또 다른 고민에 빠트리고 있었다.
“어쩐다, 지금 찍어?”
조금은 두렵기도 했다
이대로 보너스 스텟을 권위에 투자하게 되면 그 즉시 공작에 이를 수 있고, 공작 계급 달성 특전으로 ‘전 스텟+100’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엔 전 스텟이 200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앞서 후작에 이르러 전 스텟이 100을 돌파하면서 경험한 일들이 재현될 소지가 있었다.
당시에 성현이 얻은 것은 육체적인 힘과 게이머의 스킬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근원적인 부분을 엿볼 수 있었다.
전체의 극히 일부, 아니 티끌만 한 것이라 짐작하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자칫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잃지는 않을지 덥석 겁이 났었다.
우주와 하나 되는 것에 대한 희열은 그만큼 강렬했다.
고대하던 일이지만, 막상 때가 되니 망설여지고 있었다.
“참내… 쫄보가 다됐네.”
공작은 어쩌면 안중에도 없었다.
국왕을 염두에 두고 많은 생각을 해왔던 성현이었다. 어쩌면 황제도 가능하지 않을까 했는데 고작 공작에 오르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변하는 건 없다.”
상당 시간 망설임 끝에 내린 결정은 어쩌면 정해져 있었다.
“장소는 좀 옮기자.”
일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자신을 중심으로 사방 수백 미터가 엉망진창이 될 터였다.
성현은 영지에서 벗어나 동쪽 해안가로 향했다.
잠시 후, 제주 동쪽 해안 인근에 위치한 해발 150여 미터의 낮은 산 정상에 오른 성현은 캐릭터 창을 열고, 보너스 스텟을 모두 권위에 투자했다.
[권위 200달성 및 영지 10개 소유 승급 조건 충족]
[‘공작’으로 승급하였습니다]
[공작 계급 당성에 따른 ‘전 스텟 +100’의 특전을 획득하였습니다]
[영지 선포가 30개로 확장됩니다]
“으응? 끝이야?”
전신에서 뿜어지는 기세가 한층 거세졌음은 물론이고 주체하기 힘든 힘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은 깨달음이라 생각되는 초월적인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아, 어쩌면 그럴 수도······.”
성현의 육체와 정신은 후작에 오를 당시 수용 가능한 힘의 한계에 다다라, 한 번의 거대한 변화를 이미 겪어 그 그릇은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공작에 이르러 얻게 된 힘을 모두 받아들이고도 아직 그릇은 모두 채워지지 않아 이전과 같은 경험은 재현되지 않았던 것이다.
“괜히 긴장했나?”
각오라고 할 것까지는 없었지만, 내심 일말의 불안은 가지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도 영화나 소설처럼 혹시나 우화등선(羽化登仙) 같은 일이 일어나면 하면 어쩌나 했는데 기우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좀 더 편해진 거 같은데”
전체적으로 보다 선명해지고 명확해 졌다.
보다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지만, 자신의 기세를 갈무리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욱 쉬워졌다.
그리고 이것저것 시험해보던 성현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을 발견했다.
“이거 정말 좋은데.”
일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힘의 컨트롤에 신경 써야 했었는데 이제는 의지 여하에 따라 손쉽게 가능했던 것이다.
맨손으로 바위를 가루로 만드는 정도는 우스울 지경이었지만, 유리잔을 손에 드는 것은 반대로 많은 심력을 낭비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해미한테 혼날 일은 없겠네.”
후작이 되고 나서는 끼니때마다 혼나지 않은 일이 드물 정도였고, 지금까지 깨 먹고 부서트린 가재도구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고 보니 이거······.”
당장 육체의 변화에 정신이 팔려 잠시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이것 봐라. 선택지를 준다고?”
급히 스킬창을 띄우자 이전에 없던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초월 스킬 강화]
[신규 스킬 생성]
‘초월 스킬 강화’는 말 그대로 1차 한계돌파 스킬들을 강화 시킬 수 있었다.
기존에 공격력, 속도, 내구성, 회복력이 300% 증가되던 부분이 500%까지 오르고, 절대무적의 경우 10초였던 시간이 2배로 20초까지 늘일 수 있었다.
“어!”
‘신규 스킬 생성’을 살펴보던 성현의 눈에 이채가 서림과 동시에 가벼운 탄성이 터졌다.
“······이거 정말?”
어차피 초월 스킬 강화와 같은 기존 능력을 증가시켜주는 건 현재로써는 큰 의미가 없었다.
더군다나 초월스킬 강화는 단계적인 부분이 있어 다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리라는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이건 못 먹어도 고다.”
성현은 ‘신규 스킬 생성’ 창을 클릭해 이번 한계 돌파에 따른 특전을 받는 걸로 결정했다.
[신규 스킬 ‘찬란한 날개’를 습득하였습니다]
【 2차 한계돌파 특전 스킬 】
[찬란한 날개]
-스킬 적용 시 빛의 날개 생성 (활성화/ 비활성)
-전 스텟 총합에 비례해 비행시간 및 비행속도 증가
무려 온 오프 기능이 있는 액티브 계열의 스킬이었다.
다만, 명확하지 않은 비행시간과 비행속도는 직접 알아보는 수고를 해야 할 듯했다.
성현은 망설임 없이 ‘찬란한 날개’의 스킬을 활성화했다
스파팟!
스킬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성현의 등 뒤 견갑골(肩胛骨) 부근에서 빛이 불꽃처럼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날개의 형상으로 번져나간 빛은, 길이가 3.5m 정도로 날렵해 보이는 맹금류의 날개와 비슷해 보였다.
후웅-!
성현은 몸이 가벼워짐을 느끼는가 싶더니 발뒤꿈치가 들려 이내 전신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떠, 떴다! 어어어!”
어떻게 보면 처녀비행이라 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휘청이며 이십여 미터 상공으로 떠오르던 성현의 신형이 일순간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쾅!
서툰 비행으로 인해 머리부터 상체 대부분이 땅속에 처박혀 버렸다.
누가 봐도 꼴사나운 착지였다.
“꼴이 우습네. 그래도 대충 감은 왔다 이거야.”
상체를 땅에서 일으켜 세운 성현은 다시금 의지를 불태웠다.
* * *
9월의 낮은 짧아져 날이 이미 어둑해질 무렵이었다.
제주의 영지는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도로의 가로수 옆 전등들이 불을 밝히고, 저마다의 건물과 집들에 환한 불빛들로 어둠을 몰아냈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과 외출한 이들로 거리는 북적였고 아직 번화가라고 하기는 미흡하지만, 다수의 상가와 외식업들이 몰려있는 중심가에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몰려있었다.
“어머나!”
“왜요? 언니.”
최근 해미의 집 인근으로 이사 온 하나는 부쩍 해미와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오늘도 함께 저녁 장을 봐서 가던 차에 눈에 띈 물체에 화들짝 놀랐다.
“저기 하늘에 비, 빛나는 날개 달린··· 천사?”
“마미, 저기 예쁜 천사님이에요.”
하나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줄리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쳤다.
“헐-! 오빠?”
“응? 오빠라니 설마 사령관님?”
하나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해미의 눈에는 선명하리만치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틀림없는 성현이었다.
해미도 영문을 몰라 하나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거리고, 큰 두 눈을 깜빡거리며 신기해했다.
“오빠-!”
해미가 하늘로 팔을 흔들며, 크게 소리쳐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