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과거에서 돌아온 악연 (2)
일본 열도는 4개의 큰 섬인 훗카이도, 혼슈, 큐슈, 시코쿠로 나눠진다.
그중 혼슈(本州)는 주도로써 일본 영토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수도인 도쿄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혼슈는 거대한 해일과 같은 좀비들의 대이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내가 알아듣도록 천천히 말을 해.”
김도훈, 그가 일본에 생존해 있었다.
제주에서 목숨을 건 탈주를 감행한 그가 현재는 일본 도쿄의 황거(皇居), 즉 천황의 기거하던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조부가 일본인이었고 어머니에게서 일본어를 배웠지만,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았던 탓에 현지인과의 능숙한 소통은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했다.
“하이! 니가타에서 대규모 식귀(食鬼)들이 후쿠시마를 지나 도쿄로 남하 중이라고 합니다.”
“식귀가 아니라 좀비라고 몇 번이나 말해!”
“하, 하이! 좀비 무리가 도쿄로 남하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구울들이 잘 해주고 있구나. 그건 그렇고 한국어는 아직 이냐?”
“죄송하모니다!”
“합니다라고 이 쓸모없는 늙은 놈아.”
“하이! 함니다!”
강력한 매혹에 걸려 김도훈의 하수인이 된 일본의 노리 내각관방장관(内閣官房長官)은 틈나는 대로 한국어를 배우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한국어를 마스터하기에 칠십을 넘은 노구(老軀)의 그로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머지않았다.”
김도훈은 왼손에 남은 세 개뿐인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이를 부서지게 갈아댔다.
원래 양손 다 성현에 의해 세 개의 손가락만 남았었지만, 일본의 치료 술사에게 치료를 받고 오른손은 새로운 손가락이 재생되어 있었다.
다만, 자신을 이리 만든 장본인에 대한 복수를 염원하며 절대 잊지 않겠다는 각오로써, 왼손만은 그대로 남겨뒀고, 이를 독심(毒心)을 키우는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앞서 제주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그가 하루 반나절 만에 당도한 곳은 거문도였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겨우 도착한 곳엔 좀비들로 가득했다.
이쯤 되면 체념할 법했지만, 생에 대한 끈질긴 집념이 김도훈을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좀비들에게 매혹을 걸기 시작했고, 그 효과가 인간 이상임을 알게 된 것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다 좀비들이 인격을 상실했으나, 세뇌를 통한 학습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게 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간단한 명령어를 주입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잠시 거문도에서 숨을 돌리던 김도훈은 자신을 찾는 것으로 짐작되는 헬기들이 나타나자 급히 몸을 숨겼다.
헬기들이 물러간 야밤에 김도훈은 아무래도 이대로 육지로 향했다간 다시 성현의 손에 붙잡힐 것만 같았다.
“신의 한 수였어.”
그가 택한 것은 일본행이었다.
상당한 일본어 회화능력과 일본인의 피가 섞여 있는 그에게 한국이나 일본은 조금의 불편은 있을지언정 큰 차이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김도훈은 목조선 중에서 그나마 조금 큰 배 한 척을 수배했다.
그리고 수십의 좀비들을 노꾼으로 삼아, 자신이 먹을 식량 일부를 실고 무작정 동쪽으로 향했다.
그래서 당도한 곳이 대마도(對馬島)였다.
이후 대마도에서 다시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 후쿠오카에 당도한 김도훈은 좀비들을 매혹하며, 일부 생존자들까지 찾게 되었다.
차츰 세력을 넓히던 중 후쿠오카 남단에 위치한 대규모 피난 섹터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에 일본의 생존자인 척 무리들과 함께 숨어들다.
제주에 있을 때보다 능력이 가일층 진보한 김도훈은 순식간에 피난 섹터를 장악하고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번에 전부 몰아오면, 혼슈는 일통한 거나 다름없다. 이제 곧 나만의 왕국이 건설된다.”
이미 혼슈 지역 대부분을 장악한 김도훈은 이번 니가타에서 시작된 좀비 대군을 자신의 아래에 두게 되면 야마가타, 미야기, 이와테, 아키타 현만 남겨두고 있었다.
혼슈를 제외한 남쪽의 규슈와 시코쿠, 그리고 북쪽의 훗카이도는 본토와 이어지는 육로가 모두 막혀 있던 탓에 당장에 차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렵다기보다 자신이 직접 해상을 통해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고, 당장에 급할 것은 없었다.
본토 장악과 함께 복수를 위한 발판 마련이 최우선이었다.
“천황 폐화, 이만 물러나 있겠습니다.”
“어. 그래 가봐. 좀비들 도쿄 인근까지 오면 알려주고.”
“예! 폐하!”
극초신성 사태 당시 피신한 천황이 살아있음을 알게 된 김도훈은 그를 이용해 강제로 황위를 양위토록 종용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진짜 천황에 올라 있었다.
현대의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로 외교 관계에 있어 국가원수의 지위에 있다지만, 형식적인 직위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라는 일본의 격언이 있었다.
이는 천황의 절대권을 의미했다.
일본 황실의 계보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존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의미인 만세일계(萬世一系)로써, 일본 제국 시대 때 세계만방이 모두 천황의 지배하에 있다는 뜻과 같았다.
“이 얼마나 멋진가! 크하하하.”
한참을 웃어젖히던 김도훈은 곁에서 시중들고 있던 여인을 희롱하며 술잔을 들었다.
“폐하, 이토 방위성대신이 알현코자 들었사옵니다.”
“쳇! 이제 슬슬 분위기 좀 내나 했더니. 들어오라 그래.”
김도훈은 시중을 들고 있던 20대 여인의 더듬던 손을 떼어내며 입맛을 다셨다.
“천황!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이토 방위성대신이 김도훈 앞에 오체투지하며 자세를 낮췄다.
“일어나, 무슨 볼일이냐.”
“예, 폐하. 요코하마 항만에 정박 중이던 항모의 수리가 끝났다는 전언입니다. 이로써 하나의 호위대군이 완비되었사옵니다. 어찌하올지요?”
일본은 극초신성 사태 이전 8.8 함대라 불리는 구축함 8척과 대잠헬기 8대로 구성된 4개의 호위대군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이즈모급 호위함(만재배수량 2만7천톤) 경항모 2척과 휴우가급(만재배수량 1만9천톤) 2척이 있었다.
이밖에 5개의 지방대가 더 있었고, 이 지방대는 각 호위대군에서 퇴역한 구형 함정들로 이루어진 최후의 보루라고 보면 되었다.
그렇다 해도 지방함대라고 무시하면 안 될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용 가능한 함재기는 모두 얼마나 되나?”
“폐하, 함재기로 가용 가능한 전투기는 JF-35 42대와 공격 헬기는 도합 71대가 대기 중이옵니다. 이 중 28대 정도가 항모에 탑재가 가능하옵니다.”
“지금 즉시 출동해 제주도 공격을 시작해라.”
“······저,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적의 전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해상 전력만으로 징치하기는 무리가 아닐는지요.”
“······그, 그런가?”
김도훈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은 전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분명했다.
“폐하의 명이라면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것이나, 혹여 패한다면 폐하의 치세에 누가 되지 않을까 저의 되옵니다. 먼저 적의 면면을 살펴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 그래! 경의 뜻대로 하라! 단, 시간을 많이 줄 수는 없음이다. 서둘러라!”
“신! 이토 폐하의 명을 받잡겠습니다.”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이토 관방대신의 목소리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쓰읍. 쉬운 게 없어 쉬운 게.”
성현에게 복수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김도훈은 군 전력을 극대화하라는 명령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군에 대해 잘 모르지만, 항공모함 한 척이 얼마나 큰 전력인지는 알고 있었고, 가장 먼저 운행이 불가능한 항공모함을 수리하라는 명이었다.
하지만, 군을 관장하는 이토 대신의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혹시나 이번 전쟁에서 지던가 해서 제주도의 반격이 있으면, 그 또한 큰일이나 다름없었다.
“네놈하고 네놈이 아끼는 모든 걸 쓸어주마.”
비릿한 웃음을 지은 김도훈은 다시금 시종을 드는 여인을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이전에 하던 짓을 계속했다.
* * *
“뭐야? 귀가 왜 이리 가려워.”
“네? 귀지 있으세요? 제가 파드려요?”
“아냐, 샤워하면 항상 청소하는데 귀지가 있을 턱은··· 크흠, 있을 수도 있겠다.”
해미가 귀이개를 가져와서는 자신의 다리를 툭툭 두드리며, 누워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성현은 아니라고 말하려다 그만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낮추고 어느새 해미의 다리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정말 깨끗하네요. 저 줄리도 자주 해주는데 오빠는 할 게 없어요.”
“아냐. 잘 찾아봐 정말 귀가 가려웠다니까.”
성현은 편한 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에 눈을 감고 말했다.
그때 때마침 관사 거실에 설치된 직통 벨이 울렸다.
“이것들이······.”
어째 누군가 지켜보며 자신을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왜, 무슨 일이야!”
성현은 직통으로 온 통신인지라 안 받을 수도 없었다. 해미의 무릎베개에서 몸을 일으킨 성현은 짜증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단결! 본부 통신실 대위 이한결!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말해봐.”
-18시 38분경 제4 영지, 외곽 표선 해수욕장 인근에서 소속 불명의 소형 어선 한 척이 침몰했습니다. 성벽 방어 병기가 영지민이 아닌 이들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되며, 배도 함께 파괴되어 침몰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상!
성현은 급히 시간을 확인했다.
사건 발생 3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즉시 치료 능력자 1명 대동하고, 아니다. 내가 직접 가보마. 수색대원들만 빨리 보내.”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성현은 이미 무전을 끝내고,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들어 알고 있는 해미를 돌아봤다.
“가보자.”
“네~ 오빠.”
이미 몇 번 해미를 안은 상태로 비행을 했던 일이 있었다.
해미는 익숙하게 성현의 목에 팔을 둘렀고, 성현은 해미를 가뿐하게 안아 들었다.
거실 베란다를 통해 나온 성현의 등 뒤로 백색의 불꽃이 튀어나와 날개 형상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소리 없이 떠오르던 해미를 안은 성현의 신형이 무전에서 알려온 해안가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배가 침몰했다는 해안 인근에 도착한 성현은 멈추지 않고 바다를 향해 계속해서 날아갔다.
해상에 드문드문 부서진 배의 흔적이 떠다니는 곳에 가서 멈춘 성현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부아아앙.
별도의 해안경비대는 없었지만, 3대대 소속 경비대도 출동해 인근을 수색 중에 있었다.
“아무래도 산 사람은 없는 거 같네.”
해안 전체를 성벽으로 둘러놓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탑 같은 형식으로 성벽을 올려 둔 상태였다.
그 위에 ‘마법 벼락 탑’을 설치해 혹시 모를 침입을 막고자 한 성현이었다.
“민간인들이겠지······.”
성현은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세상에 이런 자동 방어 시스템을 포기하기도 난감했다.
이미 수차례 미처 발견치 못했던 좀비들을 처리해 주기도 했고, 구울과 같은 대량 살상력을 갖춘 것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낮지만,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