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26화 (126/176)

# 126

과거에서 돌아온 악연 (4)

“폐, 폐하!”

“커허험, 왜 이리 호들갑이냐!”

한참 농익은 여체를 탐하던 김도훈은 짜증이 치솟았다.

“나, 나고야에 사달이 났습니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이냐!”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김도훈은 이토 관방장관의 말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좀비들이 김도훈에게 종속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인과 좀비들이 한곳에 모두 수용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더군다나 김도훈조차 아직은 꺼림칙한 탓도 있어 도쿄에 둘 수는 없었다.

모두 6곳으로 나누어 좀비들과 구울들을 모아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고야였다.

나머지 5곳은 이시카와, 시즈오카, 이바라키, 도야마 그리고 최근 복속한 니가타였다.

“좀비군이 괴멸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좀비들을 누가…….”

“약 1시간 전에 대규모 폭격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대형에 속하는 전략 폭격기 수십 대 이상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대한 폭발은 수십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에나산의 대 좀비 감시 초소에서도 생생히 목격되었고, 정찰결과 폭발의 범위와 파괴적인 현장을 토대로 B-52와 같은 대형 폭격기들이 동원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다만, 비행 물체들은 일체 관측된 바 없어 모두가 추정한 사실들일 뿐이었다.

“어, 어느 나라에서! 혹시 한국인가?”

김도훈은 지은 죄가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국 그것도 제주였다.

거리상으로도 합리적인 추측이라 할 만했다.

“그, 그건 아닐 겁니다. 그 정도의 폭격기를 가진 곳이라고는 중국이나 러시아 미국 정도입니다. 한국은 전폭기라면 몰라도 그만한 폭격기가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 시점에서 이 정도의 폭격을 감행할 기체들이 남아있다는 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한국은 F-35 48대, F-15K 60대, KF-16 170대 등 도합 700여 대 정도의 전폭기들이 있지만, 극초신성 사태 이후 그 군사력을 모두 유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극초신성 사태를 한국보다 수개월 앞서 인지한 일본조차도 군 전력의 20%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 못한바, 한국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 여기 도쿄도 위험하지 않느냐?”

김도훈은 덜컥 겁이 났다.

나고야가 그리된 마당에 도쿄라고 안전하다 장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육체는 한없이 약하디약한 일반인과 진배없었고, 스치는 풀잎에도 살이 베일 수 있었다.

“지금 전군에 비상을 하달하고, 황거를 기준으로 대공 방어망을 철저하게 구축해 두었습니다. 거기에 JF-35까지 출격했으니 안심하셔도 되옵니다.”

“안심? 안심 같은 소리하고 있네. 지금 당장 지하 방공호로 갈 테니 준비해. 그리고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가 갑자기 저런 공습을 할 이유가 있나?”

“……그렇지는 않지만, 실행 가능한 국가는 그 정도라 유추하고 있습니다.”

“그놈의 추측! 확실한 대답을 하란 말이다.”

김도훈은 소리를 지르며, 급히 나설 채비를 했다.

황거 지하에 마련된 방공호로 향할 생각이었다.

꽈광!

침소를 나서던 찰나에 들려온 폭발음이 있었다.

공기의 울림으로 미루어 보아 그다지 멀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왜애애애앵!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폐하! 속히 피신해야 합니다. 도쿄 상공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어서 따르소서.”

황거 근위대장인 시마츠 대좌였다.

“이, 이건 또 무슨! 어, 얼마나 높이 있느냐?”

김도훈은 호위하겠다며 이끄는 시마츠 대좌의 팔을 당기며 물었다.

“폐하 무슨 말씀이온지?”

“그 괴수가 얼마나 높이 떠 있느냐는 말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족히 1㎞는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긴박한 와중에도 김도훈은 어쩌면 그 괴수조차도 자신의 능력에 매혹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재 크게 확장된 김도훈의 능력은 주변 200m 안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다중 세뇌가 가능했다.

하지만, 괴수는 높아도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뭐해! 어서 서둘러라.”

김도훈은 의관도 제대로 정비치 못하고, 근위대장과 이토 관방장관을 앞세워 급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크윽. 주인. 인간들의 공격이 날 아프게 한다.

‘흐음. 확대해서 전투를 벌이지는 말고, 일단 거길 빠져나와.’

스컬 드래곤의 보고는 열도 전역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성현은 대규모 좀비 무리를 나고야에서 처리하고, 일본에 이와 같은 장소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해, 스컬 드래곤 일부를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예정에 없던 추가 소환으로 스컬 드래곤들의 숫자가 150여 기로 크게 증가해 한반도 이남 지역부터 시작된 좀비 소탕은 전국으로 확대 중에 있었다.

그중 경상도 지역에 있던 20마리가 일본 열도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북쪽 훗카이도로 보낸 스컬 드래곤들은 좀비들이 기존과 다름없이 사방에 널려 있음을 알려왔고, 처음 성현이 들렸던 규슈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짐작대로 혼슈 지역만이 좀비와 구울들이 집단행동을 하고 있는 특이점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뜻밖의 저항에 부딪힌 스컬 드래곤의 보고가 있었고, 성현은 우선 전투를 회피하도록 지시했다.

“마음 같아서야 없어도 그만인 나라지만, 이유도 없이 사람들을 해치는 건 피해야 해.”

스컬 드래곤을 먼저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공격할 명분이 될 수는 없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무시무시한 형상의 스컬 드래곤을 선제공격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로 볼 수 있었다.

중국과 달리 핵을 사용해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역시나 일본에도 군 세력이 남아 있네. 저들이 제주에 정찰을 보낸 이들일 수도 있겠어. 그리고 좀비와 구울들의 이해할 수 없는 집단행동도 저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일본에 온 목적은 제주에 정찰을 보낸 이들에 대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였고, 그 가능성이 있는 세력을 찾았다.

그리고 좀비와 구울의 이상행동에 대한 문제도 어쩌면 풀고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차차. 애들 치료는 좀 해줘야지.”

미니맵 상에 두 마리의 스컬 드래곤의 체력이 절반 가까이 꺾인 것을 확인한 성현은 급히 골드를 들여 수리를 해주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같은 탄두 중량이 75㎏에 이르는 미사일에 1% 정도의 체력이 깎이는 스컬 드래곤임을 감안하면, 요격 미사일에 최소 50여 발은 맞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주인, 고맙다.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내가 곧 갈 테니 잘 빠져나와. 잠시 후에 보자.’

-알겠다. 주인.

심상 대화를 마친 성현은 공격당한 스컬 드래곤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이 거리에 북동 방향의 대도시라면 도쿄일 가능성이 높아.”

성현이 현재 있는 곳은, 나고야 동남쪽 130㎞에 위치한 시즈오카였다.

중소도시인 이곳에서 또 한 번 대규모 좀비 무리를 발견해 이를 처리하던 중, 스컬 드래곤이 공격받고 있다는 보고를 해왔던 것이다.

시즈오카의 해안 인근은 성현의 폭격으로 초토화되어 있었고, 운석 충돌이라도 있었던 양 거대한 크기의 크레이터 수십 개가 생성되어 있었다.

“이곳도 마무리되었으니 슬슬 가보자. 그나저나 이런 곳 서너 군데만 더 있으면 2차 전직 레벨에 오르겠는데.”

캐릭터 창을 열어 가파르게 오르는 레벨을 확인한 성현은 2차 전직 레벨이 머지않았음에 얼떨떨했다.

[박성현]

레 벨 : 55   (EXP 81.44%)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공작

근력  12 (+10,+193) → 215 ▲

민첩   9 (+10,+193) → 212 ▲

내성   9 (+10,+193) → 212 ▲

마력   5 (+10,+193) → 208 ▲

체력  14 (+10,+193) → 217 ▲

권위 180 (+10,+193) → 383 ▲

보너스 스텟 : 0

48레벨까지는 보너스 스텟을 2개를 받았지만, 이후부터 12개의 보너스 스텟이 올라 권위는 383, 거의 400에 육박해 있었다.

“이미 4천만 정도는 잡은 거 같은데, 가능할까?”

일본 전체의 인구가 1억 3천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절대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혼슈 지역에 대부분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1억을 넘었다.

좀비들이 모두 모여 있다는 가정하에 2차 전직 레벨까지 남은 6천만도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 * *

일본 혼슈 중앙부 해발 3,776미터의 후지산을 지나 가나가와 현 상공에 들어서고 있었다.

“전기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 곳곳에 전기가 들어와 밝게 빛을 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둡다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지상에서 활동 중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외곽 감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저런다는 건 좀비나 구울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건데.”

방비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원래부터 자위대에 대한 평가가 바닥을 치는 군대다 보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경계가 엉망이었다.

“안심해도 된다는 거겠지.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했는지 반드시 확인해 봐야겠다.”

이들에게 좀비와 구울을 통제하는 방법이 있다면, 거래를 하든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배워가야 했다.

성현은 지상으로 빠르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 * *

“가쓰오, 그 괴수가 어찌 되었다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무전만 들어보면 공격을 받고 추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도망친 게 아니겠습니까?”

도쿄와 인접한 카나가와 현의 한 빌딩 옥상에 마련된 경비 초소, 두 명의 군인들이 대화가 한참이었다.

한 명은 삼등육위(소위)의 계급장을 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이등육조(하사)였다.

“헙! 뒤 뒤에…….”

퍽! 털썩!

이등육조의 뒤에서 거뭇한 형체가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를 제압하고, 검지를 세우고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했다.

삼등육위는 일시지간에 나타나 부하를 제압한 이의 압도적인 위엄에 짓눌려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죽지 않았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잘해 준다면 해치지 않는다. 괜한 객기로 명을 재촉하지는 마라.”

성현은 기절한 이등육조를 바닥에 내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삼등육위는 감히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정신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안으로 갈무리한 기세가 극히 일부만 밖으로 표출되어 나왔지만,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그것조차도 버거운 노릇이었다.

“너희들이 좀비와 구울들을 조종해 한곳으로 모은 게 맞나?”

삼등육위는 또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시종일관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한 거냐?”

“그, 그건 처, 천황 폐하께서…….”

“천황? 일왕을 말하는 것이냐?”

“가, 감히 천황폐하를 일왕으로 폄하하다니!”

삼등육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지더니 고개를 번쩍하고 치켜들었다.

하지만.

“흐이익.”

성현은 기세를 조금 더 강하게 풀어내는 것으로 삼등육위의 반항심을 잠재웠다.

“좋아. 그 천황이 그리했다고? 그자는 지금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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