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28화 (128/176)

# 128

일본 정벌 (1)

쉬이이익.

길이가 4미터는 됨직한 큰 뱀 한 마리가 연신 혀를 날름거리며,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서둘러라!”

한 명의 중년인과 젊은 남자 둘, 그리고 다섯 명의 무녀들이 뱀을 따라 도쿄 인근 신주쿠를 지나 이나기현에 이르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의 음양사(陰陽師)들로 헤이안시대( 794년~1185년) 최고의 음양사였던 세이메이의 전인들이었다.

“찾았다!”

똬리를 틀며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뱀의 모습을 확인한 음양두(음양사수장) 료시케가 소리쳤다.

료시케의 말에 젊은 음양사 둘은 등에 짊어진 작은 단상과 기괴하게 생긴 조각상을 서둘러 내려놓았다.

조각상은 높이는 50㎝ 남짓한 크기로 그 형상이 일본의 설화에 나오는 구단과 같았다.

소의 몸통에 사람의 얼굴을 한 뿔 달린 요괴였다.

예로부터 흉사(凶事)의 징조로 예언을 하는 요괴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구단을 산 채로 삶아 먹으면 불로불사(不老不死) 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어서······.”

조각상을 중심으로 다섯 방위를 점한 무녀들이,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자신들의 손목을 그어 피를 땅에 뿌려댔다.

“옴 아모가 바이로 차나 마니 파드마 즈바라······.”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어떤 주문을 외우는 그 모양새가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피들이 기화되어 핏빛 운무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이제 너희들 차례다!”

“천황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푸우욱!

결연한 표정의 두 젊은 사내가 날카롭게 벼려진 단도로 자신의 가슴을 스스로 갈라냈다.

더없이 고통스러워야 할 상황이었지만, 미리 복용한 약의 약효 때문인지 육신의 고통은 크게 느끼지는 못했다.

우두둑. 두둑!

갈라진 가슴에 깊게 손을 집어넣어 이들이 꺼낸 것은 크게 맥동하며, 꿈틀대는 심장이었다.

두 사내가 꺼낸 심장을 료시케가 받아들자 이내 숨을 거뒀음인지 젊은 사내들이 쓰러졌다.

료시케는 조심스레 받아든 핏물 가득한 심장을 구단의 조각상으로 들고 갔다.

핏물 가득한 심장을 조각상 입가에 가져다 대자 두 눈이 번쩍하며 치켜뜨는 구단의 조각상이었다.

우걱우걱.

얼굴의 절반만 한 큰 아가리를 벌리고 게걸스럽게 심장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두 개의 심장을 모두 먹어치운 구단의 조각상이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차츰 괴성이 잦아드나 싶더니 조각상의 전신에서 기포가 돋아나 처음의 형상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거대한 세포와 같은 형태로 변하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되었다! 어서 천황 폐하를 모셔라!”

* * *

성현은 김도훈을 처리하고 혼슈에 남은 좀비들의 집결지인 니가타를 거쳐 이바라키, 도야마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이시카와에 도착해있었다.

꽈과과광!

광활한 지역에 떨어져 내리는 폭탄 비에 지상은 그야말로 천번지복(天翻地覆)을 겪고 있었다.

한 발의 폭탄이 반경 300여 미터 이상을 초토화 시키는 무지막지한 폭발을 발하며, 폭발 반경 안에 있는 좀비들을 일순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폭탄이 투하되기 시작한지 약 2분여가 지나자, 성현의 융단 폭격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강력한 폭발의 화마가 강림한 지상은 건물의 형태를 유지한 것들이 없었고, 그 잔해들조차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레벨 업! 보너스 스텟 12을 획득 하였습니다.]

“아-. 조금 모자라네.”

성현의 레벨은 59에 올라 스텟 초기화가 가능한 2차 전직 레벨인 60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애들도 수고하고 있으니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면 가능할 거 같긴 하네.”

중국과 한반도 이남에서 좀비를 사냥 중인 스컬 드래곤들로 인해 실시간으로 경험치는 올라가고 있었고, 이르면 하루 안에 레벨 업을 할 것으로 짐작했다.

[박성현]

레 벨 : 59   (EXP 77.35%)

직 업 : 무기 전문가 [1차 전직]

계 급 : 공작

근력  12 (+10,+193) → 215 ▲

민첩   9 (+10,+193) → 212 ▲

내성   9 (+10,+193) → 212 ▲

마력   5 (+10,+193) → 208 ▲

체력  14 (+10,+193) → 217 ▲

권위 228 (+10,+193) → 431 ▲

보너스 스텟 : 0

레벨업 까지 약 23%, 대략 370만 마리에 해당하는 좀비들을 더 잡으면 이차 전직과 함께 많은 것을 얻게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일본은 어떻게 한다?”

김도훈을 처리하고 위험인자를 원천 제거했다지만, 이대로 두기에는 찝찝한 구석이 많았다.

“이 문제는 돌아가 의논을 좀 해봐야겠다.”

일본을 병탄하는 것이야 큰 어려움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관리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중국에 1개의 대대를 상주시키고 있었고, 일선 공무원도 추가로 300명을 투입해둔 상태였다.

이것도 언어 문제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많다는 보고가 수시로 올라오는 실정이다 보니,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중국어 회화가 가능한 이들을 통역으로 차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중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일본까지 생각한다면 성현의 영지 전반에 걸쳐 문제가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 * *

하룻밤을 꼬박 일본에서 보낸 성현이 제주에 복귀한 것은 동틀 녘이 다된 시간이었다.

관사로 돌아가지 않은 성현이 발걸음 한 곳은 아직도 이주 주민들로 북적이는 공항 청사였다.

“자식들 고생했다.”

거의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전국에 산재한 대피소 전부를 병탄한 최동원과 조만호가 제주에 복귀했다.

“단결! 1대대 총원 1120명 전원 사상자 없이 무사 복귀 했습니다.”

“단결! 2대대 총원 1200명 단 한 명도 열외 없이 복귀 완료했습니다.”

성현은 말없이 둘의 등을 두드리며 노고를 치하했다. 장황한 말보다 작은 행동 하나가 성현의 진심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당장 한 며칠 쉬도록 해주고 싶지만, 그러기가 좀 힘들게 됐다.”

“사령관님. 아직 쌩쌩합니다. 7주야는 잠도 자지 않고 적은 물로 연명해야 했던 테베 작전에 비하면 거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최동원과 조만호는 조금 피로하긴 했지만, 자신들이 쉬게 되면 밑에 부하들이 갈려 나갈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특별히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최동원은 성현이 일본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그쪽에 어떤 일이 생겼지 않나 하고 짐작했다.

“우선 자리를 좀 옮기자.”

성현은 이들을 데리고 영지 중앙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 * *

군위원회 간부회의가 소집되어 모두가 성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성현은 일본에서의 일들을 간략히 알려주며, 김도훈이 그곳에서 천황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정말 능력 하나는 대단한 놈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일국의 왕이 되다니··· 사령관님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정말 그자가 세계를 지배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혹시 놈을 아직 살려두신 건······?”

최동원과 조만호는 사람을 손쉽게 세뇌하는 김도훈의 능력이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는 그 어떤 이능력자 보다 더욱 위험함을 잘 알고 있었다.

소리 없이 다가와 한순간에 절대적인 충성심을 심어 놓는다면, 누군들 피해갈 재간이 없을 터였다.

“더 이상 놈에 대해 걱정은 할 필요는 없다. 혹시 몰라 가루조차 남겨놓지 않았거든.”

최동원과 조만호는 살려두어서는 너무도 부담스러운 김도훈의 능력이 걱정스러웠지만, 성현의 단호한 말에 이내 안심했다.

“어찌 되었든 일본은 그냥 두기에는 좀 꺼림칙해, 그런데 직접적으로 우리가 관리하는 건 단기적으로는 사람이 부족하고, 장기적으로 봐서도 크게 득이 될 게 없다고 본다. 너희 생각은 어떠냐?”

일본을 이대로 둬서 어떤 형태로 돌변할지 미지수였다.

김도훈이 없어 직접적인 명령권자가 없다지만, 이미 제주에 대한 반감을 표시한 적이 있던 터라 맹목적인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몰랐다.

“생각 같아서는 깡그리 밀어버리고, 열도 따위야 침몰시켰으면 합니다. 이미 두 번 핵 맞아 본 놈들한테 뜨거운 맛 좀 보여 주시죠.”

일본에 대한 남다른 적개심을 가진 조만호였다.

그의 증조부와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시절 모진 고문에 비명에 가신 것을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들어왔던지라, 일본이라는 말만 나와도 분개하고 있었다.

“조 대령의 말에도 수긍이 갑니다만, 그리했다가는 밤잠 못 이룰 것 같습니다.”

“쪽바리 놈들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하면 놈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어? 대다수가 민간인들일 텐데, 더군다나 어린애들이 무슨 죄야!”

최동원이 조만호가 그답지 않은 말을 입에 담자 조금 다그치듯 이야기했다.

“차라리 일본인 조력자를 찾아 그를 내세워 관리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일본인 조력자라······.”

최동원은 직접 통치보다 간접적으로 내정에 간섭할 정도면 족하지 않냐는 생각에서 낸 의견이었다.

“저희가 직접 관리할 인력이 부족하다면, 대리 통치도 한 방법이지 않겠습니까? 현지에서 그 조력자를 견제할 저희 쪽 인사를 두고 큰 틀에서 저희의 뜻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나쁘지 않은데.”

성현은 최동원의 말이 현재의 상황과 타협한 가장 적절한 방법임을 느꼈다.

“어찌 되었든 일본을 먼저 병탄하는 수순을 거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를 보내주십시오.”

성현이 최동원의 말에 긍정을 표함과 동시에 조만호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말했다.

“넌 안 돼. 가도 내가 가는 게 맞다.”

“야! 내가 간다니까!”

“너 보냈다가는 무슨 일이 날 줄 알고.”

“내가 그 정도로 공사구분을 못하는 줄 알아.”

다른 지휘관들도 모두 자리한 회의 석상이었다.

둘은 어느새 회의 중임도 잊고,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둘 다 그만해!”

성현이 짐짓 화난 음색으로 말하자 둘은 그제야 지나쳤음을 깨달았다.

사이가 너무 소원해도 협업이 힘들겠지만, 또 너무 가까워도 문제였다.

“둘 다 안 보낼 거니까. 그리 알아. 너희 둘은 한반도 좀비 소탕에 전념하고 있어. 일본에는 특수군만 투입하도록 한다. 두식아.”

“예! 사령관님.”

별도의 기동요새로 복귀한 두식도 늦게나마 군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너도 이번에 고생이 많았는데 바로 좀 가줘야겠다. 할 수 있겠지?”

“사령관님 제가 아직 지휘관으로 경력도 일천하고 아직 큰 작전을 단독으로 하기에는······.”

두식이 조금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사실 두식은 해병대 병장 만기 전역을 했을 뿐, 이렇다 할 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이 없었다.

성현이 특수군 대장직을 맡겼을 당시에는 자신감에 차올라 있었지만, 막상 현장 지휘를 해본바 스스로의 모자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도 아직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 해봐. 이번 작전에는 널 보좌할 사람도 있으니 모자란 부분은 그가 메워 줄 거다. 넌 부대의 단합에 최대한 신경 쓰고, 돌발변수가 없도록 내부 단속에 철저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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