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일본 정벌(2)
“단결! 사령관님.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우선 자리에 앉아 이야기합시다.”
성현은 양자산 병탄 당시 솔선해서 투항을 이끌어준 임수동 원사를 불러들였다.
“신병 교육대 일은 좀 할 만합니까?”
“네, 사령관님. 곧 있으면 5대대 창설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임수동 원사는 극초신성 사태 이전 해병대 교관으로 신병 교육과 특수전 훈련을 담당했었다.
그의 이력에 걸 맞는 자리를 성현이 제안했고, 신병 교육대장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곧 일본으로 특수군이 투입됩니다. 그래서 말인데···. 특수군 참모로 이번 작전에 함께 해줬으면 합니다.”
“넵! 사령관님. 군은 상명하복이 있을 뿐입니다.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만족할만한 결과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성현은 임수동 중령의 말에 흡족한 얼굴을 했다.
“최종명령권자는 특수군 대장인 천두식 대령이겠지만, 아직 일선 지휘관으로서는 역량이 다소 미진합니다. 임 중령께서 상급자는 아니지만, 잘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넵! 사령관님.”
이후 성현은 임수동 원사에게 일본 원정에 앞서 기본적인 방침을 알려주고, 그에 대한 세세한 작전은 모두 일임했다.
성현은 자신이 나선다면 일본원정이 더욱 쉬워지고, 빠른 시간에 완료될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까지 자신이 중심이 되어 모든 일을 도맡아 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당장 한반도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울산 석유화학단지와 나로 우주 센터를 활성화하는 일이었고, 그리고 아이같이 매일같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는 누구를 구하러 가야 했다.
-주인. 언제까지 나를 내버려 둘 건가. 이곳은 나의 무덤인가? 주인······.
틈만 나면 성현을 찾는 사룡을 북한산 대피소 안에서 꺼내 줘야만 했다.
* * *
여수 영지에서 남서쪽 40㎞ 지점에 있는 외나로도(外羅老島).
바다에서 보면 바람에 날리는 비단 형상과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섬이었다.
이곳에 세계 13번째 우주기지인 나로 우주센터가 있었다.
“지상의 발사장과 발사대는 재공사가 필요 없을 만큼 멀쩡합니다. 다만 세부 시설들은 수리와 재설치가 불가피할 듯합니다.”
발사대는 초속 60m의 강풍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던 탓에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하나 크게 손볼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극초신성의 여파로 지하 50미터 아래에 있지 않은 모든 전자기기들은 모두 먹통이 되어있었고, 건물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고쳐 써야만 했다.
“이번에도 만만찮게 많이 들겠습니다.”
내구도 회복 스크롤은 게이머로 각성한 이후 줄곧 소비되어 왔고, 처음 성현과 해미가 가진 1만 장이 넘던 스크롤은 현재 5천 장 남짓 남은 게 다였다.
“우선 최우선으로 수리해야 할 시설들부터 정해 주시면 그곳부터 고쳐 드리도록 하죠.”
성현은 과학기술부 장관인 정우현 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만능의 내구도 회복 스크롤이지만, 한 장으로 모든 시설을 수리할 수는 없었다.
단일 물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한해서는 상관이 없지만, 무수히 많은 장치들로 연결된 시설물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어떤 매커니즘에 의해 수리 영역이 결정되어 졌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30여 명의 연구원과 50여 명의 기술진이 현황 파악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현은 정우현 박사와 함께 이들을 따르며 나로 우주센터 곳곳을 살폈다.
“저것이 바로 KSLV-Ⅲ입니다. 국내 독자 기술로 만들어진 한국형 발사체입니다.”
총길이 35m, 총중량 155t, 지름이 3.1m에 달하는 발사체였다.
2018년 KSLV-II의 발사 실패 이후 1조 4천억 원을 들여 완성했지만, 극초신성의 사태로 말미암아 발사되지 못해 미완으로 남겨져 있었다.
성현은 창고에서 꺼낸 내구도 회복 스크롤로 발사체의 표면을 문질렀다. 순간 짧지만 강렬한 빛이 발사체 전체에서 발했고, 완전히 수리되었음을 알려줬다.
장장 5시간에 걸친 나로 우주센터 수리가 비로써 끝이 났다.
“언제쯤 위성을 띄울 수 있겠습니까?”
“우선 전파 간섭의 영향이 완전히 없어질 걸로 생각되는 20일은 더 지나야 합니다. 또 빠르게 준비한다 해도 최적의 기상상황에서 발사할 예정입니다. 저희에게는 두 번의 기회뿐입니다. 모두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발사 시기와 관련해서는 따로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발사체를 만드는 건 현재 불가능에 가까웠고, 만들어진 발사체를 잃고 나면 언제 다시 위성을 띄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남은 2기의 KSLV-Ⅲ를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이에 관해서 전권을 드릴 테니 완벽하다 생각되는 시점에 알려주세요.”
* * *
오전 일찍 일본 원정에 관한 회의와 정오가 넘게까지 나로 우주센터 복구를 다녀온 성현은 제주에 도착해 기동 요새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픈 손가락 같은 사룡을 찾아가고 있었다.
-정말 주인이 오는 것인가? 나를 구해 주러 오는 게 맞는가?
자칭 선지자라는 북한산에 남은 이능력자들이 터널 확장공사를 하고 있다지만, 수년이 걸리는 대공사였다.
대규모 설비를 투입한다면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고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고작 10여 미터를 확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래 가고 있다.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 걸려 기다려봐.’
성현은 아직 출정을 하지 않은 특수군 소속 이능력자 2명과 특수군에 배속되지 않은 내정위원회 소속 이능력자 5명을 데리고 기동요새를 타고 북상 중이었다.
“자식이 짠하게······.”
성현은 사룡이 심상으로 전해주는 말이 어쩐지 너무 애달프게 들려왔다.
방법이 없어 지금까지 방치했지만, 우연찮게 이능력자 중 이색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를 활용해 사룡을 지하에서 해방시킬 방법을 찾았다.
어쩌면 생성한 150개에 달하는 스컬 드래곤 중 하나일 뿐이지만, 다른 스컬 드래곤들과는 달리 애잔한 녀석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덧 기동요새는 북한산 상공에 도착했고, 터널 입구 부근에 착륙했다.
“모두 장비 착용해.”
미리 준비된 산소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하도록 성현이 지시했다.
“직경은 최소 15미터를 기준으로 잡고 시작해.”
“넵! 사령관님.”
성현과 함께 도착한 7명의 이능력자들이 모든 장비를 착용하고, 터널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입구 부근은 넓어 추가 확장이 필요 없었지만, 진입로에 들어서고 50여 미터 부근부터는 터널의 높이와 폭이 좁아졌다.
구구구궁.
한 명의 이능력자가 전방을 향해 손을 뻗자 터널을 유지하고 있던 콘크리트들이 모래알갱이 같은 형태로 분해되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콘크리트가 분해되어 뼈대로 삼은 철근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고, 그 또한 빠르게 분해되고 있었다.
휘우우웅-.
그다음 대기 중이던 두 명의 이능력자가 강풍을 생성해 분해되어 떨어지는 잔해들을 터널 밖까지 이동시키고 있었다.
“다음!”
미리 정해둔 능력발현이 순서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확장된 터널이 붕괴되지 않도록 중력계열 이능력자와 물질 강화가 가능한 이능력자가 능력을 발현해 확장된 터널에 견고함을 더했다.
분해, 이동, 강화의 순서로 터널 확장공사는 이루어졌다.
“좀 더 속도를 낼 수 있나?”
“할 수는 있지만, 그리되면 장시간 작업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성현은 분당 5미터 정도를 확장하는 공사가 더디게 느껴져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지금이 최선임을 알려줬다.
“그럼 난 먼저 내려가 있을 테니 고생 좀 하도록 해.”
“넵. 사령관님.”
성현은 이능력자들 보다 앞서 지하로 향했다.
그리고 만난 사룡은 성현을 보자 거대한 동체를 뒤뚱거리며 성현을 향해 뛰어왔다.
-주인!
가까이 다가온 사룡이 성현에게 머리를 숙이고 애완동물이 애교를 떨 듯 마구 비벼대고 있었다.
“뭐, 뭐야.”
다른 스컬 드래곤들에게서는 겪어 본 적 없는 행동에 성현은 살짝 놀랬다.
-난 주인이 반드시 올 줄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반가움을 이리 표현한다고 들었다.
지하에 하릴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사룡은 인간들과의 대화를 통해 감정 표현의 방법을 배운 듯했다.
“헌데 사람들은 다들 어디 갔어?”
성현은 이곳 대피소의 이능력자들이 보이지 않자 의아해 물었다.
-주인이 오늘 걸 알고 다들 더 깊이 내려가 있겠다고 했다.
“왜?”
-인간 중 하나가 물었다. 이제 자신들은 쓸모가 없는 거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모두 지하로 내려갔다.
“쓸모가 없어지긴 했지만, 너무 앞서갔네.”
이곳의 이능력자들이 더는 필요 없어진 게 맞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구태여 그들을 죽일 생각은 성현은 없었다.
“그냥 이곳에 살겠다면 그냥 두고 가는 수밖에.”
이미 북한산 이주민들을 토대로 이들에 대한 죄상을 모두 밝혀진 상태였다.
선지자 그룹의 회장이라는 놈과 몇몇만 제외하면 정말 큰 죄를 지은 이는 없었다.
어찌 보면 다른 대피소에 있던 정말 나쁜 놈들에 비하면 이들의 죄질은 작다 할 수 있었다.
사룡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 어느덧 시간은 흘러 성현이 데려온 굴착 전문 이능력자들이 대공동으로 거의 진입하고 있었다.
-드디어!
“사룡아 날개 접고 고개 숙여봐 충분할 거다.”
스컬 드래곤의 전장은 46미터에 달했고, 날개를 모두 펼치면 4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동체였지만, 실질적인 체고는 15미터에 불과했다.
확장된 터널은 날개를 접고 움츠린 상태라면 어렵지 않게 드나들 만했다.
“자자 얼마 안 남았다.”
-오오! 저것이 햇살인가?
터널 입구에 다다라 환한 빛이 만연한 바깥세상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룡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늦은 거 같지만 지상에 나온 걸 축하한다.”
잔뜩 움츠린 상태로 터널을 빠져나온 사룡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드넓은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크롸롸롸!
‘어라-. 인마 어디까지 가!’
솟아오름과 동시에 빠르게 날아가던 사룡이 성현의 시야에서도 벗어날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여, 여긴 어딘가? 주인, 주인 어디에 있나?
성현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꼭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 모습이었고, 반응이었다.
* * *
두두둑, 푸확!
붉은 반죽과 같은 거대한 세포 덩어리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살아 숨 쉬듯 크게 맥동하던 것이 일순간 멈추었고, 표면이 크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폐, 폐하!”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의 손이 불쑥 튀어 나왔다.
음양술사의 비술로 다시 살아난 김도훈이었다.
고대(古代) 구단을 봉인한 조각상과 순결한 처녀의 피, 동정의 남자 2명의 살아있는 심장을 재물로 기사회생의 술이 이루어졌다.
“천황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크크크, 크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