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31화 (131/176)

# 131

피의 복수 (1)

제주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영지 곳곳에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주민들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의 비명들로 가득했다.

수포가 올라와 극심한 가려움증에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긁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호흡 장애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중 노약자들은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신세인지라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엄청난 인명이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는 없는 상태였다.

“해미야. 그쪽은 어때?”

성현은 가장 가까운 1대대 주둔지 들러 상황파악을 서둘렀다.

다행이 군은 화생방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은 탓에, 비상이 울리는 즉시 방호복을 착용해 그나마 피해가 경미했다.

-방금 병원에 도착해 의료진과 환자들을 치료했고 인근을 모두 정화했어요.

“잘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주민 구조가 시작될 테니 해미 넌 병원에서 최대한 치료를 맡아줘.”

-네. 오빠 걱정 마세요.

성현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해미가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어 고마웠다.

“동원이 너는 부대를 소대 단위로 나눠서 증상이 심한 주민들부터 신속히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해.”

“사령관님. 당장 수송에 필요한 차량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필요한 차량들은 어떻게 해서든 추가 징발해, 그것도 안 되면 업어서라도 가야 한다. 서두르자!”

“넵. 사령관님.”

당장 부대에 가용 가능한 차량들은 대부분이 기갑차량들뿐이었고, 수송에 필요한 차량은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발로 뛰고 두 팔로 안고서라도 사람들을 살려야 했다.

“잠깐만! 그렇게 하면 되겠다.”

“네?”

성현은 문뜩 떠오른 생각을 최동원에게 이야기했다.

“병원으로 보낼 주민들을 가까운 차량에 태워, 그럼 그 차량을 스컬 드래곤이 옮기게 하면 된다.”

“좋은 생각입니다. 일천이 넘는 스컬 드래곤들이 함께 움직인다면 빠른 시간에 수송이 가능할 겁니다.”

성현은 그 즉시 스컬 드래곤들에게 심상으로 뜻을 전달했고, 100여 마리를 제외한 전부를 지상의 주민 수송에 투입했다.

남겨진 100여 마리의 스컬 드래곤들은 상공 수십 킬로미터 높이에서, 제주 전체를 아우르는 대공망을 구축해 방어에 전념케 했다.

이미 두 차례에 걸친 미사일 공격을 받은 지금, 추가 공격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에 이를 대비했다.

* * *

제주 절반 이상의 지역이 생화학 무기에 오염되어 인명 피해는 4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질식 작용제(Chohing Agent)의 옥수수 냄새가 가득한 거리는 호흡기 손상으로 인한 기침을 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거기다 지속성 가스의 한 종류인 수포작용제(Blister Agent)가 살포된 지역은 강한 마늘 냄새로 진동했다.

가스에 노출된 피부나 안구는 서서히 붉은 반점이 나타나 수포를 발생시켜 종국에는 조직을 파괴하는 치명적인 작용을 했다.

-단결! 탐라 아파트 수색이 모두 끝났습니다.

“수고했다. 6소대 너희는 계속해서 건너 전원주택단지를 수색해서 주민들을 구조해.”

-넵! 중대장님, 알겠습니다.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작은 불만조차 내색치 않고 있었다.

자신들의 땀 한 방울이 주민 한 명의 생명을 건진다는 각오로 모두가 임하고 있었다.

“8소대 9소대는 현 위치 수색이 끝나는 즉시 도로 건너 한라 맨션으로 신속히 이동, 수색을 계속한다. 서둘러라!”

1대대 3중대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해당 소대에 전달되었다.

중대장은 무전을 마치고 자신도 소매를 걷어붙여 대원들을 돕기 시작했다.

와장창.

잠긴 차량의 창을 부수고, 문을 열었다.

제주에 보급된 차량들은 도합 3천여 대로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 대형 버스나 승합차가 많아 다수의 주민들을 이송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 차량에 의식을 잃은 주민을 싣고 안전벨트까지 모두 채운 군인 하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이 차량을 이송해 주십시오!”

-알겠다.

상공에 대기 중이던 한 마리의 스컬 드래곤이 급강하했다.

콰콱! 우두둑!

지상에 내려온 스컬 드래곤은 거대한 뒷발로 차량의 하체를 받치고, 날카로운 앞발로 차량의 상부를 꿰뚫었다.

그리고 6, 7톤은 되는 20인승 버스를 움켜쥐고 가볍게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중대장님!”

“뭔가?”

“긴급환잡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부대원의 가슴에는 갓 돌이 지났을 법한 아기가 안겨있었다.

중대장은 급히 아기의 호흡을 체크 했다.

“······이미 늦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분명 숨을 쉬고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부대원이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 던지고, 아이의 입가에 볼을 붙였다.

하지만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새끼야 얼른 마스크 안 써!”

“크흐흑. 제가, 제가 조금만 빨리 발견했어도······.”

현재 있는 장소는 아직 정화가 되지 못한 지역인 터라 방독면을 벗게 되면 부대원들 또한 위험하긴 매한가지였다.

“이 녀석도 다음 이송 차량에 함께 보내! 넌 상황이 해제되면 영창 행인 줄 알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부대원이 벌써 기침을 하고 있었다.

중대장은 부대원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시에 준하는 상태였다.

감정에 휩쓸려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한 명의 부대원이 수십 명의 주민들을 더 구할 수 있음이었다.

“모두 잘 들어라. 우리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단 한 명의 주민들을 더 구하고 이런 짓을 한 놈들에게 백배 천배로 되갚아 줘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다, 한 명이라도 많은 주민들을 구하는 일이다. 이를 절대 잊지 마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무전을 마친 중대장이었다.

주변에는 아직 이송되지 못한 주민들이 신음 중이었고, 곳곳에서 이미 사망한 주민들을 발견했다는 무전이 빗발쳤다.

하늘을 올려다본 중대장은 빌고 또 빌었다.

“다 필요 없고! 제발! 지금 이 순간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십시오.”

신실한 크리스천인 중대장의 간절함이 깃든 기도였다.

* * *

제주에서 이륙한 특수군의 기동 요새와 스컬 드래곤 3개 편대는 대한해협을 넘어 열도 상공을 순항 중이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풍속 또한 나쁘지 않았다.

시속 400km의 속도로 나아간 기동 요새는 2시간 30여 분이 지나자 나고야를 지나 도쿄에서 200km 남짓 떨어진 시즈오카 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현이 전해준 일본의 정보를 토대로 그 중심이 되는 도쿄를 최우선 장악하기 위한 루트였다.

“보고 드립니다. 전방에서 수십 기의 미사일들이 발사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두식은 기동 요새 선내에서 최종 작전회의 도중 관측병의 긴급한 보고를 듣고, 서둘러 갑판으로 나왔다.

그리고 관측병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멀리 두었다.

“서, 설마 아니겠지?”

“아닐 겁니다. 절대 아니어야 합니다.”

두식의 옆에는 임수동 중령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결같은 바람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미사일들은 발사 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지, 연소 흔적. 즉, 미사일들이 지나간 궤적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두식과 임 중령의 심장이 점차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생각이 제발 기우이길 빌었다.

그때.

-주인에게서 온 급한 소식이 있다. 제주가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생화학탄을 장착한 미사일들이 제주 전역에 떨어져 내렸다.

“!!!”

순간 두식은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전신이 경직되다 못해,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두식은 곁에 있던 임 중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임 중령이 갑작스러운 두식 행동에 놀라 물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스컬 드래곤은 심상을 통해 계속해서 제주 소식을 전해왔다.

-피해를 추측하는 것도 현재로써는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만약 일본에서 한 짓이라면, 처절한 응징을 가하라는 명령이다.

두식은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임 중령의 옷깃이 찢어질 것처럼 움켜쥔 두식이 이를 뿌득 하고 갈았다.

“천 대령님!”

“제주가! 제주가 공격받았다고 합니다. 그것도 생화학탄이랍니다!”

“그, 그런!”

두식의 눈에 핏발이 섰다.

임 중령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입을 한껏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찢어 죽일 새끼들이! 그 미사일의 근원지를 이미 찾았다고 전해라!”

두식은 당장 이지애의 생사를 시작해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제주의 경황이 여의치 않음을 생각해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위급한 지경이라 생각했다.

-피의 복수에 만전을 기하라는 마지막 전갈이다. 그리고 이지애는 무사하다고 한다.

성현이 피의 복수를 천명했다.

그리고 두식이 심란해할 것을 염려해, 이지애의 무사함을 덧붙여 알려줬다.

“제1, 제2 편대는 공격태세로 전환! 목표는 지상의 군부대다. 단 한 놈도 놓치지 마!”

두식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동 요새를 호위하던 30마리의 스컬 드래곤 중 20마리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선장, 화력지원을 부탁한다.”

-제독님.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 가능합니다.

기동 요새의 크리스털은 성현이 지명한 제2 명령권자를 제독으로 지칭했다.

“놈들은 이미 선을 넘었다. 사용 가능한 모든 무기를 동원해 응징한다.”

-알겠습니다.

두식의 명령과 동시에 기동 요새의 하부와 측면에 장착된 포대가 지상을 목표로 정렬하기 시작했다.

“적들이 대공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목표는 저희들입니다.”

기동 요새와 스컬 드래곤들이 공격태세를 갖추고 빠르게 나아갈 때였다.

지상의 일본군이 먼저 선제공격을 시작했음을 알려왔다.

수십 기의 미사일들이 스컬 드래곤과 기동 요새를 타깃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직 인가?”

-공격 사거리에 있지 않습니다.

지상의 일본군과의 거리는 10km 남짓 되는 거리에 있었고, 기동 요새의 공격 사거리인 2.5km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모조리 요격하고 속도를 더욱 높이도록 한다!”

꽈과광!

스컬 드래곤의 광선공격에 초음속으로 날아오는 미사일들을 요격되기 시작했다.

빛 속성의 광선공격은 단 하나의 미사일도 놓치지 않았고, 현대의 어떤 방어체계보다 견고했다.

“특수군 전 대원은 지상 포격이 완료되면 강하를 시작한다. 포로는 필요 없다!”

어느새 특수군 전 대원들이 갑판에 올라와 있었고, 날아오는 미사일이 격추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개쌍 놈의 쪽바리 새끼들 모조리 회를 쳐주마!”

“내가 확 다 구워 버릴 랑께 기다리더라고!”

자신들의 손으로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