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피의 복수 (2)
“시즈오카와 도쿄에 나타났던 거대 괴수와 정체불명의 적이 나타났다는 보고입니다!”
“뭐라?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천황의 신임을 받고 있는 내각관방장관 이토가 놀라 되묻자, 자위대를 지휘 감독하는 방위성대신 노리야마가 식은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노리야마 방위성대신이 이토 내각관방장관보다 아래 직책이 아니었지만, 천황의 신임 정도에 따라 서열은 정해진 것과 진배없었다.
“통신단 보고에 따르면 거대 괴수가 약 30여 마리나 된다 합니다. 더군다나 경항모급의 거대한 비행체가 상공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도쿄와 시즈오카 사이에는 유선 통신망이 마련되어 있어, 실시간으로 통신이 되고 있었다.
보고를 듣던 이토 관방장관은 작은 눈을 치켜떴다.
앞서 도쿄에 나타난 거대 괴수로 한 마리로 인해 그 난리를 겪었는데, 이번에는 그 수가 무려 30마리라고 했다.
“마, 막을 수는 있는 건가?”
“시즈오카의 모든 미사일을 퍼부어서라도 일체의 접근도 허용치 말라는 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총력을 다 하고 있을 것입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또 무슨 일인가!”
한 군인이 숨을 헐떡거리며, 이토 관방장관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 시즈오카의 부대가 괴멸 직전이라는 전갈입니다.”
“무, 무슨!”
시즈오카에서 거대 괴수와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은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토 관방장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즈오카에는 일본이 보유한 미사일 부대의 절반이 상주 중이었고, 대공 대지 공격과 방어에 있어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이 일순간에 무너진 것이었다.
“거대 괴수와 비행체의 포격에 치명타를 입은 상태에서 대공 방어능력이 무력화되었고, 이어 정체불명의 지상군이 침투해, 제1 공정단이 반격에 나섰으나 일순간에 괴멸되어 사실상 시즈오카의 부대는 전멸한 것과 다름없다고 합니다. 남은 군인들은 결사항전과 더불어 후일을 위해 지하시설은 폐쇄하겠다는 보고입니다!”
시즈오카에는 최정예라 할 수 있는 나라시노(北習志野) 제1 공정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여단 규모라 하나 일본 자위대에서 전투력 하나만큼은 최강이라 자부하는 부대였다.
다만, 그것이 일본에 국한된 좁은 식견일 뿐 대한민국의 해병대 1개 대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괴수와 사람들이 함께? 서, 설마! 제주도의 조센징들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대 괴수도 그렇지만 조센징들이 이렇게 발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제주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제아무리 신속한 대응을 한다 해도, 지금 상황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이른 시간이었다.
“아니다. 틀림없이 조센징들이다. 놈들이 아니라면 지금 상황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감히 우리 대일본 제국을 상대로 하등한 조센징들이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지, 지금 도쿄의 방위태세는 어떠한가?”
“제주 정벌에 중부방면대 서부방면대 전체가 빠져나가면서 현재 동북방면대와 육상총대 소속 병력들이 도쿄에 남아있습니다.”
“그걸로 놈들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일전에 천황폐하께서 허락하신 무기들의 배치는?”
“넵. 레이더의 성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사거리는 많이 짧아졌지만, 50km 안에 들어오는 놈들은 결코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천황의 지시로 도쿄의 전력 사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면서, 레일건의 전력화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일부는 제주로 출진한 함선에 설치되었지만, 대부분은 도쿄에 남겨져 있었다.
* * *
스컬 드래곤과 기동 요새의 파멸적인 공세에 지상의 일본군은 지리멸렬했다.
미사일 발사대와 대공미사일 발사 차량들은 고철이 된 지 오래였고, 잔존한 미사일들은 유폭을 일으키며 큰 폭발을 발했다.
따다다다당! 타타탕!
“저 쪽바리 새끼들이 끝까지!”
특수군이 지상에 내려온 직후였다.
어디에 숨어 있었음인지 아직 살아 있는 일본군들이 특수군을 향해 총탄을 갈겨 댔다.
티티팅팅!
신형 방탄복이 아니었다면, 육체 계열 이능력자가 아닌 이들은 상당히 위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파지지직!
마른하늘에 벼락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십여 명의 일본군을 통구이로 만드는 건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나가 말혔지, 이 모지리 새끼들아! 모조리 지져줄랑께 또 나와 보드라고!”
특수군 제2 중대 소속 알파팀의 이능력자가 발출한 전격에 직격된 일본군들은 즉사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일정거리 안에 있던 이들도 큰 피해를 입고, 근육이 경직되어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다.
현재 특수군은 모두 7개 중대, 중대별 5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개의 팀은 모두 9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총원은 330명으로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치, 칙쇼.”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일본군들이 경직에서 벗어나자, 총구를 들어 올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쾅!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모두 진입해서 빠르게 정리해!”
2중대장인 김경호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격하더니 적들이 쳐놓은 콘크리트 바리케이드를 주먹으로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뒤에 있던 살아남은 일본군들은 산산 조각난 콘크리트 파편에 사지가 관통되어 그대로 허물어졌다.
김경호는 이전 무등산 대피소에 있던 이능력자로 성현이 처음 조우한 형제 이능력자 중 형이었던 이였다.
“경호 형!”
“야 인마 지금 작전 중이잖아.”
“아-. 알았다고, 저기 땅굴이 있는데 2중대장이 좀 살펴 봐줘. 몸빵은 2중대장이 젤 좋잖아.”
“응? 땅굴이 있어?”
“이 새끼들 저기서 기어 나오던데.”
경호는 3중대장으로 있는 동생 기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았다. 저긴 내가 맡을게.”
“어. 조심해서 다녀와.”
“너도 몸조심해, 이것들 쥐새끼처럼 숨어서 총질하니까 반드시 육체계열 대원 선두에 꼭 세워둬. 방탄복만 너무 믿지 말고.”
“여기까지 와서 잔소리는. 알았어!”
경호는 기준과 이야기를 끝내고 빠르게 땅굴로 향했고, 기준은 직속 팀과 중대를 이끌고 수색에 박차를 가했다.
“대장님. 지상은 정리가 거의 끝났습니다만, 잔존 시설들과 저희가 모르는 곳에 숨은 이들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모조리 정리하고 갑시다. 이곳에 있는 모든 시설 또한 완벽하게 파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불씨가 큰 들불로 번지기도 하죠.”
두식과 임 중령은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길 생각이 없었다.
더군다나 지하 시설에 대해서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었고, 차후에 어떻게 이용될지 알 수 없었다.
일견 잔혹한 처사라 비난할지 모르겠으나 제주가 생화학무기에 공격당한 이상 자비를 베풀 여지가 이들에게는 없었다.
-단결! 수색 종료했습니다. 붕괴된 통로로 인해 추가 수색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지하로 이어진 땅굴은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침입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모든 통로를 폐쇄해 스스로를 가두는 형국에 이르러 있었다.
“나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무덤으로 만들어 주면 된다. 복귀해라.”
두식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상에 정박 중인 기동 요새로 모든 특수군 부대가 철수를 시작했다.
철수가 완료되자 기동 요새는 상공으로 고도를 높였고, 주포의 최대 사거리까지 올라갔다.
“선장. 주포 충전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10분이면 완료됩니다. 그때까지는 무장 사용 및 이동은 불가능합니다.
기동 요새의 주포는 대량의 에너지를 축적해 발사할 수 있었고,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광대한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었다.
두식은 아직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지만, 최동원과 조만호를 통해 어느 정도의 위력인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주포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선장, 즉시 발사해.”
-알겠습니다.
기동 요새 전면 하부에 길이 25미터 직경이 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주포가 45도 각도 아래 지상으로 정렬했다.
푸콰콰!
거대한 빛의 기둥이 주포에서 발출되어 그대로 지상에 강림했다.
꽈과과광!
초고열을 동반한 강력한 광선 줄기는 크게 확장을 거듭해 지상에 도달하는 순간, 그 지름이 무려 50미터에 달했고, 거대한 폭발을 발했다.
지상의 땅이 녹아내리고, 고열의 열 폭풍이 폭발의 중심에서 퍼져 나갔다.
쿠쿠쿠쿵.
건물을 지탱하던 철근들이 모조리 녹아내렸고, 강력한 충격파에 무너져 내렸다.
단 한 번의 주포 공격으로 지름 600미터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파괴되었다.
“계속해서 충전해서 이곳을 완벽하게 지운다. 선장, 2차 3차 공격을 준비해라.”
지상에 풀 한 포기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두식의 마음은 완전무결을 원하고 있었다.
* * *
“차량들은 다른 데 가져다 두고 이걸로 주민들을 이동시켜!”
-알겠다. 주인.
성현은 스컬 드래곤이 가져다 놓은 차량들 대신 대형 컨테이너로 바꿔 주고 있었다.
차량의 파손도 파손이지만, 주민 수송에 있어 컨테이너가 보다 많은 이들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데는 이보다 좋은 수단이 없었다.
“사령관님! 제1, 제2 영지에 대한 주민 수송은 모두 완료했습니다. 다행히 높은 상공에서 미사일을 격추한 탓에 공기 중에 많이 희석되어 사상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천만다행이다. 나머지 지역은?”
“······안타깝게도 3, 4영지는 2대대에서 총력을 다 하고 있지만, 맹독성 신경가스로 인해 이미 상당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입니다.”
제주 남쪽 서귀포 인근에 있는 제3 영지와 제4 영지는 불행하게도 탄도 미사일이 지상에 떨어져 내려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지역이었다.
“······얼마나 되는지 파악은?”
“현재까지 약 1만 5천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사망한 이들은 대부분이 노약자로······.”
많아도 너무 많았다.
더군다나 아직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너무도 많이 희생되었다.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를 비롯해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피를 토하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
성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폭발 직전이었다.
이번 공격은 김도훈의 세뇌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이는 분명 일본이 사전에 만들어두고 쓸 계획까지 있기에 만들어둔 무기였다.
“동원아. 다녀와야겠다.”
“······형님.”
성현은 입술만 달싹이며 말했다.
주체키 힘든 분노로 인해 성현은 도저히 이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최동원은 성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제 몫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다. 이곳을 부탁하마.”
성현은 신형이 그 자리에서 하늘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제주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음속을 돌파하지 못했던 비행 능력은 어느새 초음속을 넘어 극초음속의 영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저건!”
해상으로 나와 바다를 가로지르던 성현의 눈에 거대한 동체의 항모와 수십 척의 군선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군선을 호위하듯 떠 있는 헬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죽을 자리를 알아서 오는구나, 모조리 찢어 발겨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