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피의 복수 (5)
김도훈은 성현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일본에 다시 올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다.
다만, 미사일 공격에 아수라장이 되었을 제주를 두고 이리 빠른 시간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기다 곧 있으면 두 개의 군항에서 출진한 군함들이 제주도 공격을 시작하는 만큼,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게 생각대로 순조로이 진행되지 못했고,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음영대 1조는 천황폐하를 모셔라! 2조는 죽음으로써 저자를 막아라!”
““천황폐하 만세!””
언어 소통에 제약이 없는 성현은 저들의 말을 듣고, 김도훈이 빠져나가려 함을 알았다.
저들의 괴이한 술수는 성현조차도 짧은 시간이나마 행동에 제약이 생겼고, 작은 틈이라도 만들어낼 능력이 있었다.
놈들이 이상한 술수를 쓰기 전에 성현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놓칠 것 같아!”
성현은 어느새 장검 한 자루를 꺼내어 들고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짓쳐 들어갔다.
그리고 가로막은 닌자들에게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손을 썼다.
스거걱!
가장 앞서 있던 닌자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리고, 일직 선상에 있는 자들의 사지를 인지 영역을 넘어서는 가공할 속도로 베어냈다.
성현이 지나고 난 뒤 목이 떨어지고 사지가 분리된 이들의 몸통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잡았다!”
일직 선상에 막아서는 이들이 쓰러지자 김도훈과 성현 사이에는 더 이상 막아서는 이들이 없었다.
김도훈을 지척에 두고 있었다.
성현이 손을 뻗어 김도훈의 옷깃을 잡기 직전이었다.
그때.
푸화확!
머리 없는 시신과 사지가 떨어져 나간 닌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피들이 땅을 따라 쭉 하고 이어지더니 삽시간에 성현을 덮쳤다.
“이건 또 뭐야!”
아교처럼 진득한 피가 지상에 목 받듯 성현을 옭아매고 있었다.
초인적인 육체의 힘으로도 간신히 한발 때어 놓는 게 전부였다.
더군다나.
“천황 폐하 만세!”
퍼펑! 펑!
육탄 돌격해 오는 닌자들이 성현에게 달라붙어, 육신을 폭발시키며 자욱한 피 안개를 만들어냈다.
이미 피칠갑을 한 성현의 전신은 진득한 피에 피가 더해져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여태껏 겪어본 적 없는 기묘한 술수에 성현은 크게 당황했다.
“이때다. 서둘러 벗어난다!”
성현의 예상과 달리 놈들은 추가적인 공세를 펼 생각이 없었다.
이들은 천황인 김도훈을 호위해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는데 전력을 기울일 뿐이었다.
‘이런 개 같은.’
생명을 도외시한 자폭 공격은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대적 불가능한 대상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데는 그 효과가 탁월했다.
이는 순간적인 힘으로 부숴버릴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고무의 수천 배 이상의 탄성과 상상을 초월하는 접착력은 성현의 몸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찌이이익!
힘겹게 팔을 굽힌 성현은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피라고 하기에 그 성질이 다른 질긴 무엇인가를 잡아 뜯기 시작했다.
우선은 시야 확보가 먼저였다.
‘제길, 시간이 제법 걸린다.’
조금씩 뜯기고는 있지만, 단시간에 벗어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시야를 확보하고, 양팔을 자유로이 만드는데 무려 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촤아악!
끝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뜯어낸 성현은 그 즉시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아직 거추장스러운 잔여물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지만, 다행히 움직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성현은 김도훈이 도주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푸콰쾅!
성현의 등 뒤에서 십 수개의 빛줄기가 날아와 강타했다.
300여 미터 상공에서 지상을 향해 그야말로 곤두박질친 성현은 지면과 충돌 직전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아, 니들은 또 왜!”
김도훈의 매혹에 걸린 스컬 드래곤들이 성현을 공격해 왔다.
아군이었을 때는 더없이 든든하지만, 적일 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어쩔 수 없나?”
성현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권속일 때는 스컬 드래곤들의 공격이 아무런 데미지를 주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당한 체력이 소모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당장 김도훈을 쫓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방해를 받았다가는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었다.
“미안하다.”
자신의 손으로 스컬 드래곤들 처치해야 한다는 게 너무도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슈아앙! 콰쾅!
창공을 가로지른 성현은 최선두에 있는 스컬 드래곤을 향해 대형 폭탄을 던져냈다.
기존 폭탄 수십 배의 위력을 가진 폭발력에 스컬 드래곤의 두개골도 이를 버텨 내지는 못했다.
성현은 이를 악물었다.
머리를 잃고 추락하는 스컬 드래곤을 보며, 다시 한 번 김도훈에 대한 살심이 크게 솟구쳤다.
* * *
“이대로는 언젠가는 잡힌다.”
김도훈은 도주하면서도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좁은 열도에서 숨어 있다가는 그 끝은 정해져 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공항으로 간다! 이토에게 태평양을 건널 준비를 하라 일러라!”
김도훈은 고심 끝에 일본을 떠날 결심을 세웠다.
힘들게 기반을 닦아 놓았지만, 어찌 보면 버려도 하등 아쉬울 것이 없었다.
“내가 살아야지 이 까짓것쯤은······.”
죽지만 않는다면 시간이 걸릴 뿐이지 이보다 더 큰 세력을 일구는 것은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처음부터 그리하지 않은 것은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다른 나라는 말도 설어 거부감이 있었다.
지금은 이것저것 재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지라 당장은 최대한 멀리 도망갈 생각뿐이었다.
“더 빠르게 갈수는 없느냐!”
김도훈은 음양사들의 주술로 만들어진 목마(木馬)를 타고 있었다.
살아있는 듯 내달리는 목마는 지형에 구애를 받지 않았고 달리는 차와 비슷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다만, 쫓기는 김도훈에게는 이도 느리게만 느껴졌다.
한층 속도를 올린 이들은 어느덧 도쿄 국제공항 인근에 당도하고 있었다.
* * *
도쿄 국제공항은 가와사키시 오타구 동쪽, 도쿄 만과 맞닿은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다.
“폐하! 이쪽이옵니다.”
이토 관방장관이 김도훈 보다 앞서 공항에 도착해 천황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쳐 놓고 있었다.
“준비는 모두 되었느냐!”
“예! 폐하 일전에 지시하신 대로 언제든 출발 가능하게 해두고 있었사옵니다. 이쪽입니다.”
공항 바로 옆 해안 경비초소에서 천황을 영접한 이토는 함께 온 음양사들과 그 무리들을 미리 준비된 항공기로 안내했다.
“이토, 뒤를 부탁한다!”
김도훈은 자신이 탈 비행기에 이르자, 함께 탑승하려는 이토를 돌아보며 말했다.
남으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진배없었지만, 김도훈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에게 충성을 받칠 이들은 널리고 널렸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만들 수 있음이었다.
“······폐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어서 이륙시켜라!”
김도훈은 이토의 절절한 충정에서 우러러 나오는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음양사와 음영대만을 데리고 C-17 군 수송기에 올라탔다.
그런 김도훈의 매몰찬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토는 천황의 무사안일만을 빌었다.
“폐하, 목적지는 어디로 하시겠사옵니까?”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가능하겠나?”
“미 서부까지는 중간 급유 없이도 충분하옵니다.”
C-17 수송기는 단거리 이착륙이 가능함은 물론 편도로 8,700km에 이르는 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기종이었다.
도쿄에서 미 본토까지는 약 8,000km 남짓한 떨어져 있었다. C-17 수송기의 최대항속 거리에 비추어 보아 중간급유나 경유지 없이도 충분히 비행 가능한 거리였다.
“좋다! 어서 출발해라!”
C-17 수송기가 계류장을 빠져나와 활주로에 들어서자 이미 대기하고 있던 다른 수송기들이 먼저 이륙하기 시작했다.
천황의 전용기에 대한 행방을 숨기기 위한 비행기들이 순차적으로 이륙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5대의 비행기들이 이륙하고 나서 드디어 김도훈이 탄 수송기가 이륙을 시작했다.
김도훈은 언제 성현이 뒤를 쫓아올지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내부에 마련된 안락한 좌석에 앉아 이륙을 기다리다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 상공으로 올라가자, 그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쫓아오지 못하겠지?”
개조된 C-17 수송기의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김도훈은 해상으로 나와 육지와 점차 멀어지고 있음을 다시금 재확인했다.
“폐하, 이제 안심하셔도 될 듯합니다.”
음양사의 수장인 료시케가 김도훈에게 다가와 말했다.
쿠쿵!
상당히 멀리서 들리는 폭음에 김도훈은 흠칫했다.
“무, 무슨 일이냐?”
“폐, 폐하!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기만 작전을 시행 중인 5대의 비행기 중 한 대가 격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4번의 폭발음에 김도훈이 탄 수송기보다 일찍 이륙한 모든 비행기들이 격추되었음을 짐작케 했다.
콰쾅!
강한 충격에 기체가 크게 흔들리며 김도훈과 함께 수송기에 올라탄 모든 이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후방 해치가 크게 찢겨 나가고 한 명의 인형이 기내에 들어섰다.
“하-! 놓치는 줄 알았네.”
성현은 스컬 드래곤들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처리하고, 살피던 중 멀리 이륙하는 비행기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 즉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비행기에 그대로 충돌해 들어가 김도훈이 있는지 확인했다.
놈을 찾지 못한 비행기는 그대로 공중 폭발시키면서 혹시 숨어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지워냈다.
이후 4번째 비행기까지 김도훈이 없자 혹시 놓치는 건 아닐지 내심 크게 불안한 상태였다.
“······어, 어떻게!”
김도훈은 성현이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제주에서는 헬기를 타고 다녔고, 앞서 마주칠 당시에는 갑작스럽게 나타나 설마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일단 정리 좀 하자.”
순간 성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폐, 폐하를······.”
음양사의 수장인 료시케가 채 말을 잊기도 전에 잔상처럼 앞에 나타난 성현이 그의 목을 종이 자르듯 잘라버렸다.
또다시 놈들의 기묘한 술수에 걸려들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성현은 최대의 속도로 이들을 처치했다.
순식간에 기내에 있던 20여 명의 음양사와 닌자들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게 성현의 검날에 한 줌 고혼이 되고 말았다.
“이 찢어 죽일 새끼, 드디어 잡았네. 너랑은 좀 할 일이 많다.”
김도훈을 죽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놈이 또다시 부활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철저하게 일을 마무리할 작정인 성현이었다.
만약 놈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이 단 1이라도 보인다면,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우선 놈이 어떻게 살아났는지부터 알아내야 한다.’
성현은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뜬 김도훈에게 다가갔다.
“사, 살려만 주신다면······.”
삶에 집착이 터무니없이 강한 김도훈은 자신이 행한 일들은 까맣게 잊은 채 성현에게 자비를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