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비통의 제주 (1)
“김도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도훈요? 제주를 이리 만든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은 놈을 말하는 거라면…….”
특수군 대원 한 명이 이지애와 면담 중이었다.
김도훈의 이름 석 자가 나오자 육두문자를 입에 담으며 험한 말들을 토해냈다.
“기억조작이나 별다른 심리적 불안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분도 괜찮아요.”
“지애 씨, 고생했어요.”
일본 원정에 나섰던 특수군은 제주에 복귀 후, 별도의 명령에 있기까지 대기하라는 지시에 따라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지애가 특수군 전 대원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했고, 모두가 이상이 없음을 확인해 주었다.
“아니에요. 그것보다 다시 일본으로 떠나시는 건가요?”
이지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두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장은 아닙니다. 제주 구호에 특수군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아-. 네. 바쁘신데 어서 일 보세요.”
“그리고 저…. 지애 씨, 무사하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두식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진정 어린 말에 지애는 두 뺨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저두요…….”
다른 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이지애는 두식의 순수하면서도 맑은 심성에 반해있었다.
이 둘은 서로의 무사함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 * *
김도훈을 사로잡은 성현은 울화가 치밀다 못해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제주의 수만은 이들이 비참하게 죽어갔다.
그것도 단 한 명의 삐뚤어진 복수심에서 비롯된 참담한 결과였다.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놈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제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애원하고 있었다.
“네놈을 그때 바로 죽이지 않은 게 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어쩌면 자신의 안일한 선택이 지금의 사태를 키웠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 번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자, 다시 시작하자.”
성현이 이를 갈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당장에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을 애써 눌러 참는 것도 큰 곤욕이었다.
“어떻게 살아났다고?”
하나 다행이라면 이전에 없던 비이상적인 회복능력을 김도훈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강도를 더해가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김도훈의 육체는 이를 버텨내 주고 있었다.
찢어지면 아물고 부러져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붙어 버렸다. 김도훈의 회복 능력은 지금껏 봐온 어떤 육체계 이능력자보다 우월했다.
“그 음양사라는 놈들은 어디 있나?”
김도훈은 모진 고문에 정신이 점차 피폐해져 갔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성현의 물음에 사실 그대로 답해주고 있었다.
자신이 어떻게 부활했고, 부활은 누가 어떻게 했음인지 모두 알려주었던 것이다.
“히익. 도쿄 남서쪽에 있는 신사에 있지. 헤헤.”
만신창이가 된 몸이 서서히 회복되자 김도훈은 침을 질질 흘리며 성현의 말에 대답했다.
고위 음양사들은 이미 성현의 손에 죽고, 남은 이들은 수련이 모자란 이들이었지만, 아직 남은 음양사들이 존재했다.
김도훈은 그들이 있는 곳을 말했다.
“크악!”
성현은 김도훈의 머리카락을 질끈 꼬아 잡고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빠른 속도에 버티지 못한 머리카락이 끊어지더니 끝끝내 피부까지 벗겨졌다. 성현은 떨어지는 놈의 한쪽 다리를 다시 붙잡고 계속해서 날아갔다.
타타탕!
도쿄 남서쪽 사가미하라시 외곽에 위치한 한 신사에 총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신사에 초입에서부터 시작된 총성은 석등이 늘어서 있는 단아한 길을 따라 어느덧 배전(拜殿)이 있는 중앙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신이 기괴하게 뒤틀린 김도훈의 다리를 부여잡은 성현이 다른 손에 총을 잡고 신사를 헤집고 다녔다.
“니들 천황 여기 있으니 다들 튀어나와.”
성현은 두 개의 행랑채가 붙어있는 본전(本殿) 앞 너른 공터에서 소리쳤다.
“천, 천황폐하!”
한 명의 음양사가 땅에 질질 끌려오는 김도훈의 복색을 확인하고 크게 소리쳤다.
헤지고 남은 옷가지가 얼마 없었지만, 틀림없는 천황의 옷차림이었다.
“코노야로!”
가장 먼저 김도훈을 발견한 음양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사방에서 수십 명의 음양사들이 뛰쳐나와 허공으로 부적들을 띄우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타타타탕!
한 명에 한 발이면 족했다.
달려들던 이와 음양사들이 주술을 완성하기 전에 한순간에 십여 명이 절명(絕命)하고 말았다.
정확히 미간에 명중한 탄환은 음양사들의 머리통을 수박 터트리듯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날려버렸다.
성현은 탄창이 남은 총알이 없자 새로운 총을 창고에서 꺼내어 손에 쥐고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어느덧 총성이 가시고 사위가 적막에 휩싸이자 성현은 김도훈을 내려다봤다.
“이곳 말고는 더 없나?”
“헤헤, 응.”
김도훈은 초점 없는 눈으로 성현을 멍하니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악! 헤헤. 하늘을 난다.”
성현은 김도훈의 한쪽 다리를 부서질 듯 잡고 다시금 상공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상당한 높이에 이르자 창고에 있던 재래식 폭탄을 꺼내 지상으로 투하했다.
꽈과과광!
하나의 폭탄이면 족할 테지만 성현은 신사에 무려 5발의 폭탄을 투하하고 인근을 초토화 시켜 버렸다.
강맹한 불꽃과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고, 신사를 기준으로 사방 700m가 폭발 반경 안에 들어왔다.
상공에서 묵묵히 이를 지켜보던 성현은 방향을 잡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성현은 대마도 동남쪽 면적이 133제곱킬로미터의 이키섬에 도착해있었다.
제주도 면적의 10분의 1이 안 되는 작은 섬이지만, 김도훈의 무덤으로는 차고 넘치는 곳이었다.
“정말 미친 거냐?”
성현은 김도훈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더는 고문도 놈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헤에-.”
고통을 느끼기는 하지만, 정신 줄을 놓아 버린 놈에게 분풀이는 될지언정 시간 낭비였다.
“정말 지옥이 있거들랑 그곳에서 계속해서 고통을 이어가길 바란다. 여기서 끝내자.”
스거걱!
“끄아악!”
성현은 김도훈의 양팔과 다리를 잘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통에 찬 놈의 눈과 시선을 맞추고, 목을 잘라 그 질긴 목숨 줄을 끊어 놓았다.
한참을 김도훈의 시신을 지켜보던 성현이 입을 열었다.
“영지 선포!”
영지 선포와 동시에 이키섬 전역이 성현의 영지로 귀속되었다. 그리고 성벽을 중첩해 만들고 그 위에 수성 병기들을 빼곡히 세워두었다.
“만약 다시 여기서 부활한 데도 살아나갈 수는 없을 거다.”
영지의 수성 병기들은 영지민이 아닌 침입자에게 공격을 가하게 될 테고, 만일 김도훈이 여기서 다시 부활한다 해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대비해 두었다.
“너희들은 이곳을 지켜라. 그리고 작은 변화라도 있으면 그 즉시 보고해.”
-알겠다. 주인.
성현은 여기에 더해 스컬 드래곤 10마리를 이곳에 배치했다. 수성 병기들로도 모자라 성현은 스컬 드래곤들을 활용해 경보 체계를 만들어 뒀다.
스컬 드래곤들을 매혹 같은 이능력에 당한다 해도 시간을 끌 수 있고, 성현이 이곳에 올 시간을 벌어주면 그걸로 족했다.
* * *
제주도가 통곡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와 친인을 잃고 비통함에 사무친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제발!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어허헝! 내일이 생일이라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생일선물로 줄 장난감을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제, 제발 흑흑흑.”
한 아이의 주검 앞에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아이의 머리를 쓸어 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유치원에 갓 들어갔을 법한 아이는 앙증맞은 손을 어미의 손과 맞잡고 놓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이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미안해요……. 엉엉엉.”
해미가 그런 여인과 함께 눈물짓고 있었다.
죽은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만은 엄마의 손과 맞잡고 있어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지만, 아이는 숨은 끊어진 지 상당 시간이 지났는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해미라 한들 죽은 이를 살릴 재주는 없었다.
“해미야-.”
“오, 오빠, 엉엉엉!”
성현이 대성통곡하고 있는 해미를 불렀다.
해미는 성현을 보고 달려와 안기어 어깨를 들썩이며 더욱 크게 흐느껴 울었다.
성현은 가만히 해미의 등을 토닥였다.
“단결!”
최동원과 친구인 정한 두식이 침통한 얼굴로 다가왔다.
“사령관님. 해미는 제가 함께 있을게요.”
때마침 다가온 이지애와 아이렌이 할 일이 많은 성현을 위해 말했다.
성현은 해미와 마주 보고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었다.
“다녀오마.”
그리고 이지애에게 해미를 맡기고 돌아섰다.
성현은 병원에 마련된 임시본부에 들어가 상황 파악과 더불어 피해 상황을 보고 받았다.
“현재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6만 5천여 명입니다. 추가 수색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제주에는 12만 5천여 가구가 있었고, 총인구는 60만이 넘는 실정이었다.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주민들의 생사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고, 아직 수색은 계속되고 있었다.
성현은 최동원의 보고에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아직 사망자는 더 나올 예정이었다.
“의료진을 비롯해 해미 씨와 6명의 치료 능력이 있는 이능력자들이 최선을 다해주어 그나마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성현은 묵묵히 보고를 듣고 있었다.
참담한 심정이 들어 입을 쉬이 열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잠시 최동원의 보고를 받은 성현은 질끈 감은 눈을 다시 떴다.
“모두 빠르게 대처해 주어 고맙다. 우선 주민 수색에 전력을 다하도록 하고, 이후의 일은 그때 논의하도록 하자.”
“네, 사령관님.”
제주의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받은 성현은 당장 다른 일을 논의할 여유가 없었다.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주민들이 남아있었고, 이들을 구조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저……. 혹시 김도훈은?”
모두가 묻고 싶은 부분이기도 했다.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고, 원한이 사무치다 못해 이성을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김도훈은 죽었다. 혹시나 다시 살아날지도 몰라 대마도 아래에 있는 이키섬을 놈의 무덤으로 만들어 두었다. 그곳을 영지화해서 놈이 다시 살아 난데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두었으니, 더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살아난다면 끊임없이 찢어 죽여주면 그만이다.”
* * *
제주에 생화학탄이 투하되고 하루가 지나, 전체 주민에 대한 수색이 거의 마무리 되고 있었다.
모두가 전심전력을 다 한 결과였다.
성현은 해미와 함께 제주 전역을 다니며 정화를 했고, 초인적인 감각으로 살아있는 주민들을 수색하고 다녔다.
수색이 잠정적으로 끝나는 시점에 이르러 제주 전역의 정화도 완료되어 주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오전 수색 종료와 더불어, 성현은 합동분향소에 분향을 하고 나서고 있었다.
집계된 사망자는 72,338명에 이르렀고, 그중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이 무려 3만 명에 이르고 있었다.
“보내 주십시오!”
전일부터 잠 한숨 자지 못한 군위원회의 간부들이 몰려와 성현의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