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37화 (137/176)

# 137

비통의 제주 (2)

제 1영지 종합병원에 마련된 임시본부의 회의장에 군위원회 소속 지휘관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곧 일본 원정군이 꾸려진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모두가 같이 갈 수는 없다. 특수군과 1개 대대 규모로 부대를 편성하도록 해.”

성현의 말에 잠시 서로의 눈치만 보다, 이내 소란해졌다.

모두의 심정을 모르지는 않지만, 대규모로 군을 움직일 상황은 되지 못했다.

“아아. 그만! 복수도 좋지만, 당장 제주에도 할 일이 태산이다. 뭐 하는 짓들이야!”

모두 복수에 눈이 멀어 양보하려는 이들이 없었다. 의견 합일이 쉬이 되지 않자 성현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대대별 1개 중대씩 차출하는 걸로 하고, 대대장 중 2명이 지휘하도록 해, 공평하게 제비뽑기해서 결정하는 걸로 하고 번복은 없다.”

아직 제주가 안정되지 않았지만, 일본을 마냥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일본군에 대한 완전한 해체도 서둘러야 하지만, 폭격을 주도한 놈들에 대한 응징은 반드시 따라야 했다.

“1대대 3중대, 2대대 1중대, 3대대 4중대, 4대대 1중대입니다. 4개 중대를 지휘할 지휘관은 1대대장과 2대대장입니다.”

제비뽑기로 일본 원정군에 뽑힌 이들이었다.

최동원과 조만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뜨거운 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오십쇼!”

“직접 가지 못해 안타깝지만, 잘해 줄 거라 믿습니다.”

원정군에 합류하지 못한 군 지휘관들은 자신의 손으로 하지는 못하지만, 최동원과 조만호에게 그 몫을 넘기며 당부의 말을 한마디씩 했다.

“모두 피로하고 지쳐있겠지만, 시간을 늦출 일은 아니다. 2시간 뒤 출정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해.”

* * *

일본에 대한 원정이 시작된다는 소문을 돌자 수만에 이르는 인파가 공항으로 밀려들었다.

일전에 처음 일본 원정을 갈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었다.

“나도 데려가 주시오! 내가 이래 봬도 해병대 230기로 월남에도 다녀왔소! 제발 데려가 주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오래된 군복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내 손주 녀석이 그 어린 녀석이······.”

“어르신, 저희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열 배. 아니, 백 배로 갚아 주고 오겠습니다.”

일본 원정에 뽑힌 대위계급을 단 군인이 노인의 손을 잡고 다짐하듯 말했다.

이때 성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었다.

이번 원정에 대한 대원들의 사기는 드높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이미 골수까지 사무친 원한으로 인해 자칫 민간인에 대한 학살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참여한다면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실시간으로 가능하고, 대원들의 통제 또한 어렵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제주를 벗어나는 건 피해야 해.”

만일 미사일 공격 당시 제주에 성현이 없었다면, 그 피해를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나가있는 시간 동안 불안에 떨 수는 없었다.

제주에서 떠나는 건 가급적 피하고 싶은 성현이었다.

“동원이는 모르겠지만, 만호는 좀 불안한데.”

조만호 2대대장은 가족사에서 알 수 있듯 독립 후손답게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형편이었고,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더욱 심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원정군을 뽑을 당시 그런 생각까지 미처 하지 못했던 성현은 번복은 없다고 한 자신의 말을 다시 되돌리는 것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 * *

이토 관방장관은 천황이 탄 수송기가 이륙 직후 격추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다행히 공중 폭발 없이 도쿄만에 추락하자 다급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추락지점에 도착해 보니 기체가 산산조각 났고, 잔해조차 쉬이 찾을 수 없었다.

살아있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 이토는 눈물을 머금고 시신이라도 수습하려 부랴부랴 수색에 나섰지만, 천황의 시신은 찾을 길이 없었다.

“조센징!”

격추된 원인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제주와 연관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이에 이토관방장관은 도쿄 전역에 이 같은 사실을 알리고, 천황의 복수를 천명했다.

“시즈오카의 미사일 부대가 괴멸되어 즉각적인 보복 수단은 현재는 없습니다. 그보다 우리 함대가 천황폐하의 복수를 해줄 것입니다.”

일본군 통합막료장(참모총장)인 고노다로가 즉시 보복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제주로 출진한 함대를 언급하며 그들이 대신해 보복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멍청한! 아직 보고조차 받지 못했다는 말인가? 정찰 편대의 보고에 따르면 고토 북쪽 해상에 대규모 선단이 폭침한 흔적이 있다고 한다.”

“서, 설마 그것이 우리 함대라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히노마루의 해신들은 수장되었다.”

일본국기인 히노마루를 빗대어 해상자위대의 군함들이 모두 격침되었음을 이토가 밝히자 장내의 모두가 얼굴을 굳혔다.

“각하. 이대로라면 조센징들에게 보복은커녕 공세를 방어할 방법도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서둘러 대책을 세우심이······.”

“대책? 미사일도 통하지 않는 하늘을 나는 커다란 괴수들을 어떤 대책으로 막는다는 말이냐! 무엇으로 막는다는 말인가?”

하나마나 한 말을 하는 통합막료장의 말에 이토가 크게 다그쳤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지만 ‘쓸모없는 놈’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를 힐책했다.

“그자를 불러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공안위원장인 가츠미가 불쑥 던진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장내에 자리한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몰라 의아해했지만, 이토 관방장관은 공안위원장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대번에 눈치챘다.

“가능하겠나? 그자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네.”

“이미 천황폐하께 신복한 이상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자도 폐하의 소식을 듣는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번 일은 자네에게 맡길 테니 속히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로 하지. 천황폐하를 시해한 놈들에게 우리 대일본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음을 알려주게.”

* * *

제주에서 출진한 3개의 기동 요새와 10마리가 조를 이룬 30개의 스컬 드래곤 편대가 해협을 건너 열도 상공을 나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나아가는 스컬 드래곤의 비행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부대는 이세하라시에서 북동진해 도쿄에 입성할 예정이다.”

조만호가 이끄는 부대는 도쿄에서 50km 떨어진 이세하라시에 상륙해 도쿄로 진군할 계획에 있었다.

그리고 최동원의 부대는 도쿄 북동쪽 쓰쿠바시에서부터 남서진해 도쿄에 입성하기로 했고, 특수군은 도쿄 북서쪽 가와고에시에서 도쿄로 진입 루트를 잡고 있었다.

“지상군 투입에 앞서 스컬 편대가 일본군에 대한 무차별 공습을 실시한다. 이로 인해 적의 세력은 크게 꺾이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적은 분명 우리보다 약하다. 그렇다 한들 우리는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스컬 드래곤들을 활용해 일본군들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지상군으로 하여금 섬멸 작전을 시행할 예정이었다.

전력상 절대적인 우세에 있어도 작은 방심도 금물이었다.

“적에게 자비심을 가지지 마라! 우리가 당한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부대원들도 이를 갈고 있던 차였다.

평소 친형 같은 대대장이 극에 다다른 적개심을 뿜어냈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모두가 살기를 뿜어내며 전의를 불태웠다.

“명심해라 포로나 투항병은 없다. 적에게는 죽음뿐이다.”

* * *

도쿄 북서쪽 쓰쿠바시에서는 최동원이 이끄는 부대와 일본군 간에 전투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현대전의 치열해야 할 전투는 일방적일 정도로 한 집단이 밀리고 있을 뿐이었다.

푸화확! 꽈과광!

열 마리의 스컬 드래곤이 동시에 광선을 뿜어냈다.

지상에 있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가 직격되면서 유폭이 일어나 근처에 있던 일본군들이 그대로 폭사했다.

민간인들은 어디로 소개가 되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산발적인 군의 저항이 있다싶으면 강력한 화력을 집중해 순식간에 괴멸시켜버렸다.

도쿄를 향해 3로로 진군중인 제주의 병력은 그야말로 지역을 초토화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전 부대 하선 준비!”

최동원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 중이던 부대원들이 신속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대원들이 기동 요새에 실려 있는 기갑차량에 탑승하자 차량들이 엔진에 시동을 걸며 출발 준비를 했다.

쿠쿵.

지상에 기동 요새가 완전히 착륙하자 50여 대에 이르는 장갑차와 전차들이 기동 요새의 측면에 열린 통로를 통해 지상 진출을 시작했다.

-전방 330 일본군 출현! 백기를 들고 있습니다.

“뭘 미적거리고 있어 발포해! 보이는 족족 모두 쓸어버려!”

선두의 전차에서 적을 발견했다는 통신과 동시에 지휘 차량에서는 발포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도 투항할 뜻이 있는 이들이었지만, 여지없었다.

“잘 들어. 지금 이 시간 이후부터 선 처리 후 보고한다. 아니 보고도 필요 없다! 보고할 시간에 한발이라도 더 쏴! 알겠나!”

-넵! 알겠습니다.

지휘 차량에 각 전차장들의 기합이 들어간 무전을 울려 퍼졌다.

성현은 최동원은 좀 더 이성적으로 전투에 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전투에 임하는 최동원의 자세는 단순하다 못해 과격 그 자체였다.

제주 폭격 이전이라면 저항 불능의 빠진 적에게 연민을 느꼈을 최동원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는다.”

수만 명에 이르는 주검을 직접 목도하고 피워보지도 못한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했다.

용서하래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최동원의 부대가 도심을 가로질러 대로를 타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도쿄와 쓰쿠바시 중간에 있는 가시와시에 이르러 상당히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콰쾅! 쾅!

왕복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건물에서 90mm 무반동총과 지원화기로 맹공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선발대가 극심한 피해를 입은 건 순식간이었다.

-크윽! 11호차 대파, 부, 부상자 발생!

-7호차 캐터필러 파손! 이동 불가합니다.

지휘 차량으로 무전이 빗발치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정말! 스컬 편대! 건물째로 모조리 날려버려!”

최동원의 지원 요청이 있은 직후, 한 건물에 십여 발이 넘는 광선 줄기들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후화확! 콰콰쾅!

강철조차 녹이는 초고열의 광선은 그 물리력도 적지 않아 한순간에 4층짜리 건물을 파괴해 버렸고, 그 순간에도 수많은 광선들이 지상의 건물을 강타했다.

길이 200여 미터에 이르는 도로변 건물들이 무너지고 전소되는 건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의무대는 신속히 부상병들을 기동 요새로 이송하도록 하고, 나머지 부대는 계속해서 전진한다!”

일본군의 기습으로 20여 명의 부상병이 발생했고, 1대의 전차와 3대의 장갑차가 이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최동원은 부상병들을 후방으로 돌리는 한편 다른 방향에서 진격 중인 부대와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부대 이동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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