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38화 (138/176)

# 138

비통의 제주 (3)

가츠미 공안위원장은 이토 관방장관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길로 도쿄에서 300km 떨어진 도호쿠 지방의 센다이시로 향했다.

“······천, 천황 폐하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휴우-. 그것도 시신조차 수습치 못한 비통한 죽음이었습니다.”

“귀국의 군은 도대체 무얼 하였기에 일이 지경에 이른 겁니까!”

울분에 찬 금발의 외국인이 고성을 지르며, 일본군의 무능함을 질책했다.

열흘 전 지금 가츠미 공안위원장의 앞에 있는 금발의 외국인이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찾아왔다.

그는 일본의 최우방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온 특사였다.

미국은 전 지구적인 통신 마비 사태로 말미암아 지역을 나누어 타국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한 팀을 꾸렸다.

그중 마크 테일러는 동아시아 즉 러시아,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을 포함한 한반도를 담당하는 자였다.

미국은 극초신성 사태를 가장 먼저 예견한 국가답게 많은 준비를 할 수 있었고, 3억 5천에 달하는 전체 인구 중 3천만에 이르는 국민들을 피난시켜 이 중 절반 이상을 사태 이후에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군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바, 사태 이후 좀비와 구울에 대항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천황폐하께서 돌아가시다니······.”

그리고 주목할 점은 마크 테일러는 일본에 도착한 직후 김도훈을 접견한 적이 있었고, 이때 이미 김도훈의 매혹에 걸려 복종을 맹세한 바 있다는 사실이었다.

“테일러 상. 놈들은 우리 일본을 병탄할 야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괴수들을 앞세워 공격을 해왔고, 우리군은 사실상 저들에게 대항할 힘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가츠미 공안위원장은 일본이 제주에 행한 생화학공격이나 함대를 파견했던 사실은 감추고 말했다.

이는 마크 테일러가 천황에게 복종을 맹세했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닌 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것은 아닌지 몰랐고,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었다.

모두 김도훈이 뿌린 씨앗들이지만, 서로가 같은 종자임을 몰라 일어난 일이었다.

“세상에! 전 세계가 이리된 지금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 일본은 오래전 한국에 과오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과거의 피해자를 찾고 그 후손들에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많은 보상과 용서를 구해왔습니다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지금을 기회로 오래된 묵은 원한을 씻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절대 묵과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감히 천황폐하를 시해한 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일본을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일본의 힘으로 안 된다면 본국에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런 나라는 지금 세상에 더는 설 자리가 없을 겁니다. 시간이 없으니 지금 바로 본국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일본 원정군을 배웅한 성현은 내정위원회 긴급회의에 참석해 제주 안정화에 주력할 것을 지시하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스컬 드래곤만으로 도발을 억제하고, 철저히 고립시켰어야 했나?”

성현은 일본 원정을 재개할 시점을 가늠하면서 처음 한 생각이 군을 배제한 스컬 드래곤만으로 이루어진 원정을 구상했었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스컬 드래곤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 내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단순화된 명령을 이행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일본에 남은 생화학탄과 같은 대량 살상무기를 모두 처리하고, 군을 해체함은 물론 제주 공격을 주도한 지휘부를 모두 일소하기 위해서는 같은 사람이 나서는 도리밖에 없었다.

‘사망한 병사는 없고?’

-주인. 다친 인간은 있지만, 죽은 인간은 아직 없다.

원정군 병력이 기습공격으로 일부 피해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그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모두가 국방과학연구소의 정우현 박사와 그 이하 연구원들이 만들어준 신형 전투복 덕분이었다.

풀 페이스 헬멧에 통기성이 우수한 일체형 내의, 거기다 상하의를 비롯해 군화는 방탄 성능이 기존의 방탄복보다 수배는 우수해 생존 능력을 극대화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적들의 공격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각 부대장들에게 시가전에 대비해 최대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전진하고, 적의 기습에 만전을 기하라고 전해.’

-알겠다. 주인.

서둘다 보면 빈틈이 생기고, 피해갈 수도 있는 돌부리도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똑똑!

성현이 심상으로 일본 원정군에 포함된 스컬 드래곤들과 대화를 나눌 때,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결! 과학기술부 장관께서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들어오시라고 전해.”

과학기술부는 군사위원회 아래에 있어 앞서 있었던 내정위원회 긴급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전날 대참사 이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성현이 먼저 정우현 박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시 지하 연구실에 있던 탓에 고난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제주의 주민들이 많이 희생되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침중한 음색으로 정우현 박사가 제주가 당면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잠시 성현과 정우현 박사 간에 침묵이 흘렀다.

둘 모두 이번 참사로 말미암아 삶을 마친 이들이 부디 안식을 찾길 빌었다.

“사령관님. 시기가 좋지 못하지만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네. 편하게 말씀하세요.”

“플라즈마를 이용한 이온엔진을 완성해서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원래는 플라즈마 엔진을 개발하려 했지만, 당장 실용 가능한 이온엔진을 먼저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온엔진은 플라즈마를 이온화해서 전기적 특성을 발생시켜 자기력을 얻는 기관이라 볼 수 있었다.

“저 박사님 제가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아-. 이런. 사령관님 죄송합니다. 우선 설명 드리자면 이온엔진은 반영구 기관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할 듯합니다.”

“아-. 네.”

성현은 반색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기존에 개발된 이온엔진은 사실 대기권에서 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이유는 추력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우주선을 가속하거나 감속하는 역할로 한정적으로 용도로 사용이 가능했었습니다.”

반영구기관이라는 점에서 이온엔진은 화학 엔진에 비해 초장시간 엔진을 무리 없이 켜둘 수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이온엔진은 그 추진력이 수백 밀리뉴턴(mn)에 불과했고, 사람의 입김보다 조금 강한 정도에 불과했다.

중력보다 약한 이온엔진은 대기권에서 사용은 불가능했지만, 우주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초기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한계 없이 가속을 계속하다 보면 종국에는 화학 로켓보다 수백 배는 빠른 속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질량이 있는 물체인 만큼 빛의 속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우주에서만큼은 화학 엔진보다 월등한 성능을 발휘했다.

“저희가 완성한 엔진은 대기권 안에서도 사용 가능한 추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확한 개념은 이해하지 못한 성현이지만 그저 반영구 기관이라는 점에서 또 한 번 연구소에서 큰일을 해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성능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희가 만든 이온엔진은 최대치로 가동한다 해도 무려 20년 이상 사용 가능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엔진 하나로 120톤의 물체를 음속의 5배는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온엔진을 만드는데 힘들지는 않습니까?”

성현의 물음에 정우현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미소로 답했다.

“예전이라면 모르지만, 마정석 덕분에 현재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보다 또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혹시 레일건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성현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일본의 군함에서 발사한 레일건을 직접 몸으로 맞아보기까지 한 성현이었다. 이온엔진은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아 잘 모르지만 레일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정우현 박사가 레일건을 언급했다는 것은 개발이 임박했던지 그도 아니면 이미 개발이 끝났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했다.

“무, 물론입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군 무기에는 해박하지 않겠습니까. 박사님, 설마!”

“네. 프론트 타입 3정을 지금 완성해서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성현은 지금의 군 전력도 만족할 만한 전력이라 생각하지만,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은 없었다.

“제가 알기로는 최소 20메가와트는 되는 소형발전소와 대용량 콘덴서가 필요한 걸로 아는데 그게 개인 화기에 적용이 되는 겁니까?”

“대체로 잘 알고 계시는군요. 모두 사령관님이 주신 마정석을 통해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메커니즘을 설명 드리자면······.”

성현은 정우현 박사가 과학 기술과 관련된 어떤 설명을 하려하자 난색을 표했다.

“아-. 아닙니다. 박사님. 그보다 성능하고 안정성은 어떻습니까?”

“당장은 단발, 연사 두 가지 타입으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초당 20발, 연속발사 300발까지 아무런 무리가 없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물론 폭발 같은 불완전성을 가진 물건은 절대 아닙니다. 저희가 테스트하는 것은 총기의 내구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위함일 뿐입니다.”

정우현 박사의 설명은 그냥 실전 배치를 해도 무리가 없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장탄 수가 300발이나 됩니까?”

“네. 사령관님 여기에 추가로 최대 1천 발까지 장탄할 수 있는 탄창을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탄환의 크기가 기존 5.56미리 탄환의 절반도 안 되는 굵기이고,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 탓에 보다 많은 탄환을 장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헌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약 1만 발 가량을 사용하고 나면 총기의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데 이게 소모성 배터리입니다. 마정석이 하나가 소모된다고 보시면 되는데 사령관님의 생각에 과연 이 총을 실전 배치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우현 박사는 지구상에 없었던 귀한 마정석이 개인화기에 그것도 소모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앞서 연구소에 수십만 개의 마정석을 공급하고 이후에 추가로 마정석을 준 적이 없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정우현 박사는 공급이 지속되지 못한다고 단정 짓고 있을 수도 있었다.

“박사님 한 일억 개면 충분하실까요?”

“네. 일억 개······, 네? 일, 일억 개라는 말씀이십니까!”

정우현 박사는 성현이 수십만 개의 마정석을 줬을 때만 해도 이를 활용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연구와 실험이 계속되면서 줄어드는 마정석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아직 마정석을 토대로 연구할 과제가 산더미 같았지만, 남은 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는 구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아껴서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자, 매일 마정석 수량을 체크하는 건 어느덧 일상이 되어 있었고, 연구원들이 마정석을 함부로 사용할 때마다 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네, 그리고 최소한 10억 개 까지는 추가로 공급해 주겠다는 약속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거 만들고 싶은 게 있다면 모두 하시면 됩니다.”

일본에서 잡은 좀비들로 인해 마정석은 창고에 1억 개가 넘는 양이 쌓여 있었고, 앞으로 전 지구적인 좀비사냥을 시작하게 되면 어찌 보면 10억 개도 적다 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

정우현 박사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난 듯 한 눈빛을 보냈다.

그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하하. 이거 참. 그리고 레일건은 최소 1만 정은 필요합니다. 배터리의 경우에 예비로 10배는 더 있어야 할 듯한데, 가능하겠습니까?”

“이르다 뿐입니까.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하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전 세계를 뒤져서라도 모두 가져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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