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보이지 않는 위험 (1)
사실상 2차 일본 원정이 실패로 끝나고, 원정군이 복귀한 지 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오전 일찍 한라산 인근에 조성된 충혼묘지에서는 영결식이 한참이었다.
수십만에 이르는 인파들이 모인 가운데 단상에는 성현이 올라 있었고, 제주 참사 희생자들과 일본 원정에 참여해 희생된 대원들의 합동 영결식이 엄숙한 가운데 거행되고 있었다.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피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 아직 앳된 눈망울로 순수함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소중한 생명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지니고 있던 꿈과 희망을 잊지 않겠습니다. 모두 그곳에서 평안에 드시길······.”
추도사는 낭독하는 성현은 비통한 마음 감추지 못했다. 추도사는 망인들을 그리며 애통해하는 말들로 넘쳐났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주민들은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퍼퍼펑!
도합 21발의 조포(弔砲)가 터져 나오고 헌화와 분향의 순서로 영결식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유족들의 오열은 끊이지 않았고, 끝내 실신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성현은 영결식을 모두 마치고, 가는 빗방울이 얼굴을 적시자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픔을 가슴에 묻고 떠나보내는 이들의 슬픔을 하늘도 아는지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 * *
영결식을 마치고, 성현의 집무실로 최동원을 비롯해 대대장들과 특수군 대장 두식이 함께 찾아왔다.
성현의 보좌관이자 친구인 정한이 이를 알려왔고, 이들을 안으로 들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령관님. 생각은 좀 해보셨습니까?”
성현은 최동원의 물음에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고, 잠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해야겠지.”
“그럼 당장 출동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성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만호가 나서며,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달려갈 기세로 말했다.
“이번엔 내가 반드시 할 일이 있어 동행할 생각이다. 출정 시기는 이틀 후다. 그리고 일본에 영지를 세울 생각이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봤다.
성현이 함께한다면 더없이 든든하기는 하지만, 일본에 영지를 세워 무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 근데 일본에 영지를 세워 어쩌실 생각이신지?”
성현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모두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10여 개의 영지를 합쳐 영지화해 도쿄를 비롯한 인근 전체를 성현의 영역으로 삼고자 함을 밝혔다.
“영지는 곧 전투력의 증가라 보면 된다.”
이는 영지화해서 아군 능력 강화를 선행할 생각이었다.
[ 권 위 ]
-권위가 높을수록 영지선포에 대한 시간이 줄어듭니다.( 12시간 → 즉시)
-권위가 높을수록 영토에 대한 지배권이 강화됩니다.(영토 내 아군의 능력 933%강화)
-권위가 높을수록 보다 많고, 넓은 영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466.5㎢, 1억4111만 평)
거의 일천에 다다른 권위 스텟으로 능력의 확장이 몇 배로 강화되어있었다.
이로 인한 영지에서 영지민이 가지는 특전은 무궁무진했다.
무려 9배가 넘는 능력이 강화되는 바였다.
육체능력은 물론 면역력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이번 제주 참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제주에 떨어진 생화학탄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성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사린가스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보툴리눔이 검출된 것이었다.
사실 보툴리눔은 보톡스(주름치료제)에 첨가되는 물질로, 보톡스 1리터(L)에 보툴리눔은 5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이 첨가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보툴리눔은 1g만으로도 1백만 명을 사망시킬 수 있는 최악의 생화학 무기인바, 성현의 놀라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노출 즉시 인체의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수십 초 내에 사망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독소였다.
하지만, 제주의 주민들은 보툴리눔에 노출되고도 즉사하지 않았고, 상당 시간 버텨냈다.
만약 영지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제주 참사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장담컨대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을 터였다.
“그렇군요. 안 그래도 영지를 벗어나면 잠시지만 무력감이 드는 게 그 때문이었군요.”
조만호가 혼잣말을 했다.
이는 모두가 체감하고 있었지만, 아주 순간적으로 나타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다니.”
최동원은 자신도 알고는 있지만, 아직 권위 스텟이 50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어, 이를 미미하다 생각해 놓치고 있었다.
“이틀 후 출정이다. 일본 원정에 참여했던 부대들은 모두 준비 끝내고 있어라.”
* * *
영결식이 거행되고 이틀이 지나고 있었다.
제주 전역을 오염시키던 생화학 무기들의 잔재는 해미의 도움으로 모두 제거되어 있었고, 주민들의 일상으로의 복귀도 하나둘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끔찍했던 참사의 충격은 가시지 않았고,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힘들어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자자, 모두 여기 원 보이시죠.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제주 제1 영지 종합병원을 찾은 이들은 진료를 받기도 전에 안내하는 이를 따라 한곳으로 이동되어 왔다.
이들은 모두가 제주 참사를 겪으면서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이었다.
불안증상, 공황발작등 드물게는 환청과 같은 지각이상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리스토어!”
해미의 영창과 함께 환한 빛무리가 주민들이 자리한 곳을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공황 증상과 더불어 답답함을 호소하던 사람, 불안에 연신 주위를 살피던 이들, 자신의 손끝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잔뜩 굳어있던 이들의 표정이 한순간에 활짝 펴졌다.
상쾌하다 못해 심신이 맑아지는 기분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자, 다음 분들 모셔오세요.”
“저, 환자가 더는 없습니다만······.”
해미는 오전 일찍 이지애를 잠시 만나러 와서 병원이 마비될 정도의 환자들을 보고 직접 나선 참이었다.
삼일 전, 2차 전직 레벨에 올라 신규스킬을 얻었던바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상태이상과 정신공격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신규스킬인 ‘리스토어’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시키고 있었다.
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로 과거 김도훈의 매혹에 현혹된 일부 주민들의 세뇌조차도 모두 원상으로 돌려놔 버렸다.
이지애는 김도훈의 도주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 성현의 부탁으로 전체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현혹되었다고 판단되는 이들을 모두 찾아 인명부를 작성해 두었고, 이번 해미의 진화한 능력으로 이들도 모두 치유할 수 있었다.
“이러다 난 직업을 잃을지도 모르겠는걸.”
이지애는 말은 걱정하는 투로 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환히 웃고 있었다.
“헤헤. 언니 지금은 긴급 상황이잖아요.”
“괜한 소리 해본 거야. 고마워. 어! 저기 사령관님 오신다.”
성현은 해미가 병원에서 스킬능력을 십분 활용해 주민들을 치료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오빠, 오셨어요.”
“어. 그래 고생이 많구나.”
“사령관님 안녕하세요.”
“네. 지애 씨 고생이 많습니다. 아직 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많은가요?”
“아니에요. 마침 이번을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은 끝났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애 씨, 해미는 아무래도 이틀 정도는 자리를 비워야 할 듯합니다. 괜찮겠습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이미 중증인 분들은 치료가 모두 되셨고, 아직 병원을 찾지 않으신 분들은 경미한 정도라 생각됩니다.”
“네. 그렇습니다. 별문제가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군요.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줄리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돌보고 있을게요. 바쁘신 거 같은데 길게 여쭙지는 않을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해미도 잘 다녀오고.”
성현이 굳이 행선지를 말하지 않아도 이미 이지애는 알고 있었다.
이지애는 무사히 다녀오라는 말로 성현과 해미를 배웅했다.
“제주는 별문제 없겠죠?”
“긴급귀환도 있으니, 문제가 있어도 바로 오면 된다. 그리고 저 정도면 괜찮지 않겠니?”
성현이 하늘을 바라보자 해미도 따라 바라봤다.
까마득한 하늘 위에 1천 마리에 가까운 스컬 드래곤들이 제주 인근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 * *
미국 동부.
“무선통신의 제한이 약해지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 그리된 것인지 정확히 정의 내리기는 힘듭니다만, 확실한 건 대기 중 전자기파를 상쇄시키던 요인이 점차적으로 감소 중에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군. 그럼 정확한 시기는?”
“채 50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알겠다. 그때를 같이해서 준비한 위성도 쏘아 올리도록 해.”
“넵. 알겠습니다. 의원님!”
플로리다 동쪽 케이프 커내버럴 메리트섬.
케네디 우주 센터의 7개의 발사시설 중 하나에 발사체가 직각으로 세워져 발사가 임박하고 있었다.
“발사 카운트다운 준비!”
-여기는 토스 원, 카운트다운 준비 완료.
“내부 유도 시스템의 통제를 따르도록.”
-알겠다. 카운트다운 시작! 10, 9, 8, 7, 6.
카운트 다운이 계속되면서 미션 컨트롤 센터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점화 시킨즈 시작 5, 4, 3, 2, 1.
푸콰콰콰!
강력한 추진력을 발산하는 우주선이 서서히 발사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모든 엔진 이상무.
우주비행사가 발사 직후 기기의 이상유무를 실시간으로 알려왔다.
-동압 최대, 내부 유도시스템 이상 무.
“토스 원 1단계 추진로켓 분리준비.”
-추진로켓 분리완료!
연료를 소진한 1단계 로켓이 기체에서 분리되어 무게가 줄어들자 2단계 추진 로켓이 점화되어 순식간에 대기권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유도비행 준비 중.
“상부 메인엔진 가동중단, 2단계 분리준비”
-분리완료!
짝짝짝!
컨트롤 센터의 모두가 일어나 박수를 치며, 성공적인 발사에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토스 원 우주센터에서 전한다. 유도시스템은 여기까지다.”
-알겠다.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면 한잔 사도록.
토스원이라 이름 붙여진 우주선은 선체에 탑재된 5개의 인공위성을 궤도에 위치시키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트 원 궤도진입 완료. 다음 위성 투입까지 287분 59초.”
지상과 3만 6천 킬로미터 상공의 정지궤도에 다다른 우주선은 하나의 위성을 올려두고 다음 위성을 위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 * *
선두에 성현의 기동 요새를 따라 3대의 기동 요새가 일본의 도쿄 상공에 다다라 있었다.
100여 마리가 넘는 스컬 드래곤들이 이를 호위 중이었다.
성현은 기동 요새에서 지상을 살피며 대략적인 지역을 가늠했다.
그리고.
“영지 선포!”
도쿄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요코하마시 북으로는 고가시 동쪽의 나리타 서쪽은 카나가와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영지로 삼았다.
도합 10개의 영지 선포가 있었고, 제주 전체 면적의 2배가 넘는 땅이 성현의 영지가 되었다.
“전 대원 작전을 시작한다.”
성현의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기동 요새들이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고, 스컬 드래곤들이 이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