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42화 (142/176)

# 142

보이지 않는 위험 (2)

이토 관방장관은 천황인 김도훈의 부재로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정적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새로운 내각을 자신의 심복들로 구성했고, 이들의 추대를 받아 총리에 올라섰다.

이를 자축하는 오찬이 한참이었다.

“각하! 놈들이 재침공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날이 지려면 한참인 정오인 시각이었다. 오찬을 빙자한 술판이 벌어지는 장내가 일순 얼어붙었다.

이제 총리가 된 이토는 자신의 예상보다 빠른 시기임에 놀라 잠시 말을 잊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거라 여겼건만, 가츠미! 놈들의 전력은?”

“각하. 이전보다 공중전함은 한 대가 더 늘어 모두 4대에 이르고, 거대 괴수 또한 총 100여 마리가 넘습니다.”

“준비는 모두 되었겠지?”

“네. 각하. 폭탄 조끼 천 개와 폭탄 인형 오백 개를 지급 한 상태입니다.”

“알겠다. 천황폐하의 복수를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기회가 왔음이겠지.”

이토를 비롯한 장내에 있는 위정자 그 누구도 국민들을 사지로, 그것도 자살폭탄 테러라는 극악한 상황으로 내몰고도 일말의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군은 지금 저들과 맞붙어서는 안 된다. 전력을 유지하고 모두 철저하게 숨겨 놓도록 해.”

“네. 각하. 이미 일선 부대들은 민가와 시가지 건물에 분산해 대기 중입니다. 저희도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이동해야 합니다.”

가츠미 공안위원장이 안내를 자처하며, 이토 총리와 장내의 이들이 이동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두둥!

“이,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거대한 울림이 귀가 아닌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창에 모두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천황폐하의 근위군이다. 역적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거리로 나오라. 천황폐하는 살아계신다. 모두 나와 천황폐하를 영접하라’ 영지의 영지민 신청을 하시겠습니까?(수락, 거부)]

성현은 장황한 말로 영지의 이름을 대신했다.

천황의 이름을 빌려 영지를 선포했고, 천황이 내리는 명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반드시 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효과는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새로이 내각의 구성원이 된 문부과학대신이 이토 총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멍청한! 만약 천황폐하께서 정말 살아계신다면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리가 있겠나! 이는 모두 조센징들의 간교한 술책에 불과하다.”

“하, 하지만, 우리가 천황폐하의 시신을 확인한 것도 아니고, 혹시라도…….”

김도훈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도주하려다 격추된 사실을 아는 이들은 이곳에서도 이토 총리와 가츠미 공안위원장이 유일했다.

천황이 혼자 살겠다고 타국으로 가려 한 것을 차마 밝히지 못해 그저 적의 공격에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산화 했다고 알렸을 뿐이었다.

“어쩌면 정말 천황폐하께서 살아 계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수군대는 내각인사들을 보고 이토와 가츠미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조차도 반신반의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혼란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한 인사들 같으니 내가 직접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나! 만일 천황폐께서 살아계신다면 저 하등한 조센징들을 근위병으로 내세울 턱이 있겠는가? 내 목을 걸고 말하지만, 천황폐하께서는 조센징들의 손에 비통하게 돌아가셨다. 이런 같잖은 수작에 더는 시간을 허비해선 안 돼!”

성현의 영지선포로 인해 일본의 수뇌부에도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이토의 적절한 대처로 이내 수그러들었다.

“가츠미, 자네는 여기보다 군을 단속해 줘야겠어.”

“네. 각하. 알겠습니다.”

가츠미는 직속 부하들에게 이토 총리와 내각인사들을 안내하도록 하고, 자신은 군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지휘부로 달려갔다.

하지만 정작 성현의 공세를 막아줄 일반 민중들은 천황의 죽음을 믿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이번 영지 선포로 인해 실낱같은 희망을 품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천황의 근위병들에게 위해를 가하게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 *

-주인이 천황폐하인가?

‘자식이 꼬치꼬치 따지기는, 그냥 내가 일러주는 대로만 말하고 다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성현의 일본 출정에 함께한 사룡의 물음이었다. 대부분의 스컬 드래곤들은 먼저 질문하고 의문을 표하는 일이 없었지만, 초창기 생성한 일룡부터 시작해 구룡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조금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그중 사룡은 특출하기까지 했고.

-알겠다. 주인. 인간들에게 주인을 영접하라가 아니라 천황폐하를 영접하라고 일러두겠다.

‘그래 좀 서두르자. 할 일이 많아.’

스컬 드래곤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인 ‘주인이 오고 있다.’ 와 ‘주인을 영접하라.’를 조금 바꿔서 심상으로 인간들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심상으로 대화가 가능한 거리가 대략 500m 안쪽인바 성현이 영지로 설정한 전역에 이를 알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 대원 출진 준비한다. 절대 선제공격을 하지 말고,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을 최대한 한곳으로 밀집시켜 두도록 해라. 그리고 명심해. 좋던 싫던 지금 너희는 천황의 근위군이다. 알겠나!”

-넵! 사령관님!

-씁쓸하지만, 알겠습니다!

성현은 주요 지휘관들에게 다시 한 번 무전으로 당부의 말을 했다.

그리고 해미를 돌아봤다.

“아참 해미야. 스킬 ‘리스토어’ 최대로 사용하면 스킬 반경이나 딜레이는 얼마나 된다고 했지?”

“병원에서 확인해봤는데 거의 반경은 30미터 정도였고, 딜레이는 5분이 조금 넘어가요.”

“흐음. 최대치로 사용한다면 수천 명은 거뜬하다는 거네. 한 시간이면 10번 이상은 가능하다는 거고. 그것도 우리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가정이 붙긴 하지만, 괜찮네. 우린 잠시 기다렸다가 지상의 상황에 맞춰 이동하도록 하자.”

“네. 오빠~.”

* * *

도쿄 남서쪽 가와사키시.

성현의 지시를 받은 스컬 드래곤들이 저공 비행을 하며, 지상에 심상으로 무작위로 말을 전하고 있었다.

-천황폐하께서 곧 오신다. 모두 나와 영접하라. 폐하의 근위병들에게 무례를 범하지 말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스컬 드래곤이었다.

간혹 소총탄이 날아왔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감히 천황폐하의 수호룡인 나를 공격한 것이냐!

매섭게 일갈해서 이들을 물리칠 뿐 공격하지는 않았다.

“스즈끼. 그러고 보면 이상하지 않나? 천황폐하께서 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제대로 된 이야길 들은 게 없어. 그저 돌아가셨고, 그게 조센징들의 짓임을 정부에서 밝힌 게 전부야.”

“사실일까? 천황폐하가 살아 계시고, 저 무시무시한 괴수들이 수호룡이라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불충이다.”

계절에 맞지 않은 때 아닌 두터운 외투를 입은 두 젊은 사내 둘이 심각한 어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자원해 군에서 지급한 TNT 5kg이 들어간 폭탄조끼를 입고, 천황의 복수에 동참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데없이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창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의구심이 싹텄다.

“확인해 봐야 돼. 이 한목숨 천황폐하를 위해 바치는 거야 두렵지 않지만, 폐하께 불의한 짓은 할 수는 없다.”

“맞아! 아니라면 그때 가서 이 스위치를 누르면 된다.”

결심이 선 두 사내는 조심스레 건물을 나와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복색이 비슷한 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천황폐하. 22근위대에서 전갈이다. 약 2천 명의 인간을 모았다고 한다.

‘어감이 좋지는 않지만, 됐고. 지금 간다고 전해.’

기분 좋은 호칭이 아니었지만, 혹여나 스컬 드래곤들에게 혼선이 일까 싶어. 성현을 천황폐하라 부르는 것을 묵인해 줬다.

“해미야.”

“네~.”

성현이 해미를 부르자 한달음에 달려온 해미가 넙쭉 안겨들었다.

“해, 해미야 목, 목 좀.”

굳이 이렇게 까지 밀착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해미는 성현의 목을 꼭 안고 한 치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 있었다.

“어머? 불편하세요.”

“아니 불편하지는 않은데. 그게···. 좀.”

“아-. 저 무섭단 말이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떨어질 것만 같아요.”

“휴우-. 알겠다.”

아닌 걸 알지만, 솔직한 말로 성현 입장에서는 나쁠 건 또 없기도 했다.

성현은 미내맵을 열고, 22근위대라 지칭된 부대원들과 함께 있는 스컬 드래곤의 위치를 찾았다.

순식간에 상공으로 날아오른 성현은 방향을 잡고 가공할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제법 되지만, 극초음속에 가까운 비행을 할 수 있는 성현에게 지척이나 매한가지였다.

“리스토어!”

해미가 스킬을 영창하자 지상에 환한 빛무리가 환상처럼 나타나 사람들을 감쌌다.

성현은 또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모인 곳을 찾아와 해미의 스킬로 저들의 정신을 치유했다.

그리고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그리고 모두 경악했다.

이들 중 폭탄조끼를 입고 있던 이들은 덜덜 떨며 폭탄조끼를 벗어 내렸고, 이를 성현의 부대원들이 도와 폭탄을 해체시켰다.

“서둘러 외곽으로 이동시키도록 해.”

-알겠다. 천황폐하.

성현은 부대원들이 일본인들이 입고 있던 폭탄 조끼를 조심스레 해체를 마치자 스컬 드래곤에게 명령해 이곳에 모인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도록 조치를 취했다.

“해미야, 바로 이동하자.”

“오빠. 근데, 일본인들은 얼마나 있는 거예요? 이미 수십만 명은 넘은 거 같은데.”

해미와 성현은 40번이 넘는 비행이동을 하면서 대략 70만 명이 넘는 이들을 치유해 낼 수 있었다.

어떤 곳에는 너무 많은 이들로 인해, 스킬 재사용 시간을 기다렸다, 한 번 더 사용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대략 300에서 400만은 될 걸로 생각해. 아마도 오늘 안에 모두 하기는 힘들 거라 본다.”

“와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 많네요. 어? 근데 그러다 영지민 신청 시간이 지나면 오빠가 수락하지 않은 사람이나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 전부 영지 밖으로 추방되는 거 아니에요?”

“걱정 마. 신청마감 시간이 끝날 때쯤 영지를 취소할 생각이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 다시 영지를 만들면 돼.”

“아-하.”

* * *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인간이라 보기는 힘든 능력이겠지.

서부의 안토니오가 중부에 있는 산토스가 보내온 위성 정보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 거기서도 잘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섬.

그곳 상공에 무려 1천에 가까운 거대한 무언가가 상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실상 동아시아는 물론 지구 전체로 봐도 최강세력이라 할 만해, 우리가 없었다면 말이지.”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재밌어지겠군. 우선 위성의 관할권을 우리 쪽에 넘겨주면, 내가 알아서 하지.”

-안토니오. 너의 능력은 알지만, 이번 3차 수확 전에는 될 수 있으면 접촉을 삼갔으면 한다.

산토스는 기우라 생각하지만, 안토니오의 반응에 위험을 감지했다.

일정 수준의 힘을 회복하기 전에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건드리는 것을 우려한 거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후후. 걱정 마. 닷새 앞으로 다가온 수확엔 차질 없을 거다.”

-안토니오······.

더는 말을 한다 해도 불붙기 시작한 안토니오의 호기심을 막을 방법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산토스는 말을 아꼈다.

“수확 날 보도록 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