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43화 (143/176)

# 143

보이지 않는 위험 (3)

“각하, 속히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낮에 마신 술이 얼큰하게 올라와 잠시 휴식을 취하려던 이토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말에 눈을 번쩍하고 뜰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가? 천황폐하의 복수를 천명한 신민들이 놈들을 괴롭혀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철수할 수밖에 없을 텐데 왜 피한다는 말인가?”

이토 총리는 조센징들이 차마 민간인들을 선제공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에도 앞서와 같이 제풀에 지쳐 철군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려하던 문제가 생겼습니다. 소규모로 투항하는 이들이 있기 시작하더니, 현재는 가와사키시를 비롯한 도쿄 인근 시 대부분이 놈들에게 장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신민들 대부분은 투항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 그럴 리가 있나? 스스로 복수를 맹세한 자들이 어찌해서···. 설마!”

“맞습니다. 그 환상처럼 나타난 글귀에 현혹된 것 같습니다.”

이들은 성현이 영지를 선포하면서 나타난 메시지 창을 특수한 이능력자가 만든 속임수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리고 해미에 의해 김도훈의 세뇌가 사라지게 되면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빌미로 계획한 복수전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몇몇 곳에서는 폭탄이 터지기도 했지만, 놈들의 피해는 전무하다는 보고입니다. 이대로라면 도쿄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아직 후나바시 쪽으로는 놈들의 접근이 없으니 그곳을 통해 속히 빠져나가야 합니다.”

성현은 도쿄를 기준으로 세 방향에서 진군 중이었고, 동남 방향에 있는 치바현 후나바시는 군 병력이 아직 투입되지 못한 상태였다.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지상은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겠나?”

이토 총리는 이미 마음을 정했지만, 정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두렵기 그지없었다.

하늘에 떠다니는 괴수들이 언제 나타나 공격할지 알 수 없었다.

“곧 날이 저물 테니 군부대를 저희와 반대 방향으로 보내 적들과 대치하게 한다면, 그 소란을 틈타 좀 더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게 좋겠군. 헌데, 후나바시로 간다한들 거기에서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군을 동원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틈을 타서 도주하는 건 좋았지만, 후나바시에 도착해도 그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도쿄와 지척이고, 한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이 넘는 내각각료들을 모두 데리고 언제까지 숨어다니는 건 힘든 노릇이었다.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후나바시에 도착만 한다면 나리타공항까지 이어진 미개통 지하선로가 있습니다. 혹시 몰라 이틀 전 나리타공항에 항공 자위대 일부를 파견해 뒀습니다. 공항까지만 가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과연, 자네의 선견지명에 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

이토 총리와 내각각료들은 지하 방공호에서 나와 서둘러 이동을 시작했다.

* * *

-사령관님. 다수의 일본 군부대가 목격되고 있습니다. 전차를 포함한 기계화 부대입니다.

지금껏 잠잠하던 일본군의 등장이었다.

최동원의 부대와 1km 남짓 떨어진 위치에서 자리를 잡고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선제공격 받으면 아군이 상할 수도 있다. 스컬 드래곤으로 철저하게 괴멸시켜.”

부대원들이 영지 내에서 육체적인 능력이 몇 배나 올랐다고 하지만, 전차의 포탄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이왕 손을 쓸 수밖에 없다면, 독하게 마음먹고 아군의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했다.

쿠쿠쿠쿵.

상당히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폭발음이 성현이 있는 곳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직접 갈 필요는 없겠네.”

성현은 자신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투는 끝이 날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

-천황폐하의 말대로 소수의 인간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역시 그쪽으로 향했네. 사룡아 금방 갈 테니 계속 지켜봐. 그리고 넌 인마 내가 천황이라고 하지 말랬잖아. 너 때문에 애들 다 망치겠다.’

-이상하다. 인간들에게는 천황폐하가 온다고 알리라고 하지 않았나?

‘아 됐다. 됐고, 너 자꾸 그러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

성현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전 김도훈처럼 주요 지휘부들이 빠져나갈 생각을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도쿄 동남쪽 방향은 일부로 열어 두었던 것이다.

당황한 놈들이 흩어지거나 비밀 안가나 지하 깊숙이 숨어 버리면 찾는데 어려움이 생길 것을 감안해, 포위망을 느슨하게 하면서 저들이 스스로 나오길 바랐다.

-사령관님 적 부대 완전 침묵했습니다.

“알겠다. 그리고 금일 작전은 현 시간부로 종료한다. 각 부대는 기동 요새에 승선해 쉬도록 해.”

-넵, 사령관님.

-알겠습니다!

성현은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전 부대에 명령을 하달했다.

“해미야. 긴급귀환해서 먼저 제주에 복귀해 있어. 나도 늦지 않게 갈게.”

“왜요? 같이 가요.”

“그럴 일이 좀 있어서 그래. 나도 곧 따라가마.”

성현은 될 수 있으면 해미에게 험한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갈 곳에 있는 자들이 생각처럼 제주 참사를 획책한 놈들이라면, 결코 좋은 꼴을 볼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럼 일본에서 할 일은 끝난 거예요?”

“그건 아닌데. 너랑 나는 제주로 복귀해서 내일 아침 일찍 다시 건너오면 된다.”

부대원들은 기동 요새를 타고 이곳 상공에서 대기하기로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고, 성현은 제주로 복귀해서 작전 시작 전에 다시 건너올 작정이었다.

“네. 그럼 전 가서 줄리 밥 챙겨주고 있을게요.”

해미는 혼자 두고 온 줄리가 떠올라 서둘렀다

긴급 귀환으로 해미가 제주로 돌아가자 성현은 하늘을 가로질러 사룡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순식간에 음속을 돌파해 그 어떤 전투기보다 빠른 속도로 목적지로 향해 날아갔다.

* * *

성현은 도쿄 북쪽 사이타마 시에서 약 35km 떨어진 후나바시 상공에 도착해, 지상을 살폈다.

눈에 띄지 않으려 함인지 6대의 차량들이 라이트를 켜지도 않은 채 은밀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7대의 승용차와 6대의 승합차 들이 맹렬한 속도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룡아 제일 앞에 가는 차량에 한 방 먹여.’

성현은 지상으로 내려가면서 사룡에게 지시를 내렸다.

-알겠다. 천황······, 아니 주인!

사룡의 대답에 성현은 히쭉 웃었다.

장난으로 태어난 곳으로 돌려보낸다는 말을 했는데, 지하는 정말 싫은 것 같았다.

푸화화확! 콰쾅!

대지로 내리꽂히는 광선 줄기가 아스팔트를 달리던 자동차에 그대로 내려꽂혔다.

가장 선두에서 길을 열고 있는 승합차에 광선이 직격되는 순간 폭발했고,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사룡의 절제되지 못한 분풀이로 적당한 대상이었다.

끼이이익!

뒤따르던 차량들이 급정거했고, 황급히 핸들을 돌리며 연쇄 추돌을 피해냈다.

그리고 창을 열고 급히 손짓을 하는가 싶더니, 급히 후진하해서 방향을 틀어 다시 도주하려고 했다.

‘뒤쪽에도 한 방 날려.’

성현의 주문이 있자 사룡은 다시 도주하려는 후미의 차량을 광선으로 긁듯이 도로와 함께 긁어버렸다.

강렬한 열기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렸고, 피격된 차량은 폭발과 함께 큰 소리를 내며 지상에서 수 미터는 떠올라 도로에 떨어졌다.

성현은 지상에 1미터 남짓 떠올라 천천히 이들 차량으로 다가갔다.

“모두 나와. 차량 안에 타고 있다 재가 되고 싶지 않으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나둘 차량에서 내리면서 손을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도합 8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었다.

성현은 이들을 그저 무심하게 바라봤다.

“고, 공격하지 마시오! 난 일본의 총리입니다. 대화로 이야기합시다.”

이미 도망치기에는 틀렸다는 생각에 이토 총리는 투항해서 어떻게든 기회를 엿볼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목숨만 붙어있다면, 미국이 나서는 순간 반전의 기회는 있을 거라 여겼다.

“총리?”

“그렇소. 내가 바로 일본의 총리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내며 이토 총리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럼 그 뒤에 떨거지들은?”

성현은 고개를 까닥하며 뒤를 가리켰다.

“모, 모두 일본 내각의 고위 관료들입니다. 조센징 아니, 한국의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싶소. 우리를······.”

타앙!

이토 총리가 말을 하는 도중에 들린 총성에 모두가 자세를 낮췄다.

“허억!”

움츠린 이들이 고개를 들자 이토가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머리통만이 없어져 있었다.

“이 새끼 말 참 예쁘게 하네. 조센징이라니, 듣는 조센징 기분 나쁘게.”

어차피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성현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해줄 놈들은 아직 많고 많았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하고 입은 열지 마. 저놈처럼 먼저 가고 싶은 놈은 뭐 알아서 하면 되고.”

“칙쇼!!!”

타타타탕!

성현의 손에 들린 권총에서 일곱 번의 총성이 연거푸 터져 나왔다.

몇몇 경호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품에 손을 넣는 순간 이들의 운명은 결정되어졌다.

“또 나설 놈?”

마주한 모두가 성현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이미 도주로는 앞뒤로 막혀있었고, 상공에는 보기만 해도 전율이 이는 거대한 스컬 드래곤이 지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눈앞에 있는 성현에게서는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머리 없는 시신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자. 이제 이야기할 자세는 된 것 같다. 모두 일렬로 서라. 두 번 말 안 한다.”

주춤주춤 거리며 서 있던 이들이 마지막 성현의 경고에 모두 신속하게 움직여 성현과 2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일렬로 섰다.

처음 10여 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었지만, 제일 앞에 선자가 계속해서 뒤로 돌아가자 어느 순간 10미터는 더 거리가 벌어져 버렸다.

“이름, 직급.”

“가, 가츠미 요시히로, 공안위원장입니다.”

계속해서 앞사람이 뒤로 돌아가 어느새 자신이 가장 앞에 있게 된 가츠미는 차마 자신도 뒤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나마 자존심은 지킨 것이었다.

* * *

안토니오는 산토스 앞에서는 여유롭게 말했지만, 작은 반도의 상황은 이미 무시할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 나서기에는 수확을 앞둔 마당이라 자리를 비우기도 쉽지 않았다.

“도노반 준비는?”

짙은 검정색 후드를 쓰고 있는 젊은 남자가 안토니오 앞에 부복해 있었다.

“혈족 전부가 주군의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다. 너희는 샌디에고에서 다른 인간들과 합류하도록 해라. 목표는 태평양 건너 있는 반도의 작은 섬이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부복한 사내가 순간 소리도 없이 피안개로 화해 바람처럼 사라졌다.

“호오. 그사이 제대로 습득했군.”

안토니오는 진혈의 뱀파이어로 마계의 대공이자 한 지역을 다스리는 군주였다.

어느 날 차원 간 결계에 균열이 발생했고, 이를 기회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유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계약자를 찾던 도중 도노반이라는 피에 굶주린 연쇄 살인마 도노반을 발견하게 되었고, 영생을 빌미로 그와 주종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알맞은 인간을 잡아 오게 해서 지금의 안토니오라는 인간의 몸을 차지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