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역사가 말해준다 (1)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요?”
“허허, 그러십니까? 아마도 별들의 전쟁이라는 게임 때문일 겁니다. 해보지 않으셨어도 다양한 매체와 광고를 통해 게임 캐릭터가 이러한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셔서 그런 걸 겁니다.”
“아-. 맞습니다. 그거였군요.”
성현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다소 묵직한 총을 가볍게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기존 설계도에서 배터리 온오프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비전투 시에는 최대한 배터리를 아낄 수 있게요. 그리고 여기 보이는 이 버튼으로 단발, 또는 연사모드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성현이 총기를 이리저리 살펴보자 정우현 박사의 설명이 뒤를 따랐다.
“이 스코프는 좀 특이한데요.”
성현은 스코프 상단에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기기를 보며 정우현 박사에게 물었다.
“네. 이미 오픈된 설계도가 있어 적용해 봤습니다. 적중률을 높이기 위한 자동 계측 시스템이 내장된 스코프입니다. 내장된 리눅스 컴퓨터를 이용해 바람의 컨디션이나 레인지(비거리), 각도 등을 자동으로 계산해 알려줍니다. 그저 표적을 겨냥하고 쏘면 누구든 백발백중의 스나이퍼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스코프 기술이 아직 저희에게는 생소한 부분이라 사거리는 1.5km에 불과합니다.”
“1.5km라고요? 박사님, 이건 불과하다는 말이 붙으면 안 됩니다. 1.5km나 된다고 말씀하셔야죠!”
정우현 박사는 미군에서 개발한 ‘One Shot XG’프로그램을 응용한 스코프를 만들어냈고, 현존하는 그 어떤 저격총도 감히 견주지 못할 성능임에도 그저 이것밖에 못 해 미안하다 말했다.
놀란 성현은 정박사의 말을 정정해 주며, 대단한 일임을 상기시켰다.
“하하, 그렇습니까? 레일건의 사거리를 보면 아주 짧은 거리인 터라.”
성현은 총기와 탄창 그리고 예비 배터리를 창고에 수납하고 더없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날.
오전 일찍 해미와 함께 일본에 도착한 성현은 최동원과 각 부대장들을 만나 전일 있었던 일본군 수뇌부를 처리한 일을 알렸다.
최고 수뇌부들의 부재로 인한 혼란이 예상되고 있는 만큼 집단적인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속전속결로 작전을 이행한다.”
지휘체계가 무너져 조직적인 저항이 없는 이때 좀 더 과감하고 빠르게 움직일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전일 일본에 설치한 영지를 모두 취소하고 새로운 영지를 선포해 영지민 신청 시간을 리셋시켰다.
새로운 영지를 구축하면서 일본인 스스로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했다.
[‘천황폐하 시해를 모의한 이토 총리를 비롯한 반역자들은 모두 처단이 되었다. 모든 신민들은 밖으로 나와 천황폐하를 영접하라.’ 영지의 영지민 신청을 하시겠습니까?(수락,거부)]
성현이 일본에 설치한 영지에 속한 모든 이들의 눈앞에 새로이 떠오른 문구였다.
이후 스컬 드래곤들의 대대적인 선전과 투입된 부대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탓에 성현과 해미는 연신 상공을 날아다니며 바삐 움직였다.
* * *
도쿄의 외곽을 거쳐 어느새 이번 작전에 최종 종착지인 신주쿠에 이르러 있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저항은 있었지만, 모두 돌발적인 상황에 발생한 총격일 뿐, 집단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천황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신민들은 도청광장으로 모두 집결하라.
주요 상업과 행정의 중심지로 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신주쿠.
이곳 도쿄도 청사에 성현이 도착해 있었다.
도쿄도청 도민광장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해미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오는 즉시 스킬을 연발했다.
그리고 성현은.
“사령관님 데려왔습니다.”
도청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5층으로 2명의 일본인들이 안내되어 들어왔다.
성현은 이들을 유심히 살피며, 손에 들린 신상명세서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키꼬 씨.”
“네? 넵.”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30대의 여성이 더듬더듬 대답을 했다.
자신이 왜 이곳에 불려왔는지,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해 불안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사태 이전 도쿄대 역사학자로 계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조선인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를 심도 깊게 연구 하셨는데 그이유가 뭡니까?”
아키꼬는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유창한 일본말을 하는 한국인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아키꼬는 눈앞의 있는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자신을 데려온 이나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키는 이들이 모두 한국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말들이 한국어임을 익히 잘 알고 있었고, 이들이 입은 군복에 이름표에도 한글임을 확인한 상태였다.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많은 것을 함축한 말이지만, 성현은 신념으로 똘똘 뭉친 아키꼬의 눈을 보고 그녀가 한 말이 진실임을 알았다.
“가시밭길을 선택했군요.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성현은 일본에 이런 사람도 있다는데 조금은 안도했다.
과거의 치부를 들추는 것을 절대 금기로 삼고 있던 당시 일본 정부의 행태로 미루어 보아 아키꼬는 상당한 압박에 시달렸을 터였다.
“마사토 씨 아니, 신창일 씨 맞습니까?”
성현은 아키꼬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녀와 함께 온 노년의 신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 맞습니다.”
“언젠가 신문 사설에서 보고 꼭 한번은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요.”
성현은 오래전 신문 사설에 실린 일본의 ‘매국의원’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한 일본 참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종군위안부 문제를 거론해, 현 일본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 아. 네.”
“제 인사가 늦었습니다. 박성현이라고 합니다.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 * *
성현은 대리인으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간접 지배를 하길 원했다.
전 일본 참의원 마사토, 일본 교수 아키꼬. 한국에 호의적이면서 바른 신념을 가진 이 두 명을 전면에 내세워 향후 일본에 대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일본을 속국으로 두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동족끼리 싸우는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하고 억제력을 가지길 원합니다.”
이미 마사토와 아키꼬는 제주에 행한 일본의 공격으로 수만 명이 희생되었고, 그리고 그 공격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참혹한 생화학 공격임을 전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키꼬는 감히 고개를 들어 성현을 마주 보는 게 부끄럽고, 같은 일본인으로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마사토 역시나 일본의 정치에 발을 담근 이로써 그 같은 일이 같은 위정자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결코 일본에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당장 필요한 식량 원조를 약속함은 물론, 일본이 자급자족이 될 때까지 공급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언젠가 반드시 갚아야 하겠지만, 여건이 될 때 갚을 수 있도록 해드리죠.”
성현은 남아도는 식량을 무상으로 일본에 주어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에게 빚을 지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저, 정말이십니까?”
마사토는 만약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보복을 가한다 해도 이를 만류할 자신이 없었다.
헌데, 보복은커녕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 원조와 더불어 차후 기근이 발생할 것을 염려해주고 있었다.
“믿으셔도 됩니다.”
“저, 박상. 아니, 사령관님께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제가 답해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아키꼬는 참고 있던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까지 저희를 배려해 주시는 건지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성현은 질문한 아키꼬을 바라보며, 별스럽지 않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키꼬 씨. 역사를 배우는 가장 큰 이유가 뭐죠?”
“······많은 이유가 있지만,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우리는 역사로 보여주려 합니다.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는 다르다는 걸 보여 줄 겁니다. 언젠가는 일본도 알게 되길 그걸 원하는 겁니다.”
* * *
해미가 늦은 시간까지 일본인들에 대한 김도훈의 세뇌를 지우는 일을 계속했고, 어느덧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잔존한 일본군은 대부분이 무장해제 되었고, 거부를 표명한 소수의 군인들은 강력한 무력을 앞세운 스컬 드래곤과 원정군에 의해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다.
거기다 마사토와 아키꼬가 성현이 제시한 방법을 수용할 뜻을 밝히면서 일본에 대한 일이 원만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마사토가 일본의 외무와 내정을 총괄하는 신임 총리가 되었고, 아키꼬는 교육과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내무대신이 되어 혼란한 일본을 수습하기 위해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희 부대가 남도록 하겠습니다.”
부대장들끼리 상의해서 조만호의 부대가 아직 어수선한 일본에 남아 있기로 했다.
아직 극소수의 무장 군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이를 완전히 소탕하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으로 판단했다.
더군다나 일본의 남아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대량 살상무기들을 확보하는 일도 게을리할 수는 없었다.
“알겠다. 그럼 교대할 병력이 파견될 때까지 잠시 부탁하마. 다른 부대는 제주 복귀를 서둘러라.”
성현은 조만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른 부대장들에게는 제주 복귀를 명령했다.
이로써 장시간 이어온 일본 원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오빠, 이제 정말 다 끝난 거예요?”
“그렇다고 봐야겠지. 후속 조치들이 따르겠지만, 그건 지금의 원정과는 다른 별개의 일로 봐야겠지. 우리도 돌아가자. 줄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다.”
성현은 볼을 부풀리고 뿔이 나 있을 줄리가 떠올랐다.
해가 지고 한참이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마무리하다 보니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 * *
성현이 제주에 복귀한 다음 날.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일본 원정이 완료되었음을 밝혔다.
제주 참사를 일으킨 주범들은 모두 현장에서 사살되었고, 이를 묵인한 공범들과 위정자들은 현지에서 구속해 이후 죗값에 걸 맞는 형을 집행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은 실시간으로 주민들에게 알려줬고, 제주 참사의 유가족들은 일부나마 한을 덜어낼 수 있었다.
“사령관님. 일본에 대한 지원을 우리가 굳이 해야 하는 겁니까?”
기획재정부 장관인 김충렬의 발언에 자리한 대부분의 인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가 불편한 심정을 표했다.
“일본을 용서하고 싶지 않은 건 본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저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리라 봅니까? 우리가 저들과 똑같이 해서는 당장의 원한은 풀리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는 힘듭니다.”
좌중을 돌아보며 성현이 나지막한 말로 자신도 일본을 용서해서 그러한 것이 아님을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인정을 베풀고 저들을 구휼해 줄 겁니다. 그리고 지켜볼 겁니다. 장구한 역사가 지나면, 지금의 역사는 우리 자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저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남겨줄 겁니다.”
성현의 말에 모두 말문을 닫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는 하지만 가슴은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하지만, 성현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모두가 모르지 않았고, 더는 일본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