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지진과 기후변화 (2)
지구상에 발생하는 재해 중 최강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지진의 충격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블록버스트 영화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지각 변동은 한동안 성현의 말문을 막고 있었다.
“인도가 불의 고리와 같은 조산대에 속해있나?”
성현은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한 환태평양 조산대 일명 ‘불의 고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는 성현의 착각이었다. 환태평양 조산대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약 4만km 길이의 조산대로 인도는 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조산대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서쪽의 일본, 대만 동남아, 북으로는 러시아 캄차카와 미국의 알래스카 동쪽의 미주대륙 서부와 남미 해안 등 태평양 연안 지역을 아우르는 조산대였다.
“설치한 시설은 모두 파괴되었나 보네.”
지진이 멈추고 난 지상은 이전 지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뀌어 있었다.
성현이 자원 채취를 위해 만든 채광시설은 온데 간데 보이지 않았고, 그 위치마저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으레 일어나는 지진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규모나 강도가 너무 강력했다.
성현은 불안한 마음에 계속해서 제주에 있는 사룡과 심상으로 대화를 하고, 인도에서 일어난 일들도 알려주어 최동원으로 하여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도록 당부했다.
“휴우-. 힘들 수도 있겠는데.”
성현은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자신이 인도에 온 이유를 상기했다.
그리고 엉망이 된 지상으로 내려가 채광 장소를 살피고, 재설치를 해야 할지를 고심했다.
여진이 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 시설이 온전할지는 성현도 미지수였다.
“다른 지역을 찾아야 하나?”
인도의 사정이 여의치 않자 성현은 차선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인도에 발생한 지진이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인도를 좀 더 살펴볼 생각에 상공으로 날아올라 서쪽 방향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분명 앞서도 지진이 있었다는 건데······.”
마하라슈트라의 주도인 뭄바이에 도착한 성현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가 완전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시일이 상당히 지났는지 부서진 잔해 사이에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있었고, 그 흔한 야생동물도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쪽과 달리 서쪽으로 올수록 좀비와 구울들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 있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저, 저건!”
뭄바이는 아라비아해와 인접한 해안 도시였다.
그런 도시의 한쪽을 살피던 성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다시금 지도를 보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원래의 지형이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없어. 사라졌다.”
뭄바이의 태반이 침강되어 사라져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해안선은 지도에 표기된 해안선보다 최소 20km 이상은 달라져 있었다.
지면이 잘려지듯 새로운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었고, 지금도 간헐적으로 거대한 지반이 해안으로 떨어져 내리며, 붕괴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거 심각한 거 같은데.”
인도 전역에 발생한 재해는 결코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인도는 역삼각형 모양의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었고, 성현이 지나온 동서의 길이가 대략 1천5백km가 넘었다.
지질학을 모르는 성현이지만, 6천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한반도라 한들 결코 안심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느껴졌다.
“자원 수급도 문제지만, 이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긴급 귀환으로 제주로 복귀한 성현은 도착 즉시 연구소를 찾아가 정우현 박사를 만나 자신이 겪은 상황을 알리고, 이것이 정상적인 것인지 부터 확인했다.
“정말이십니까! 인도는 비교적 지진 피해가 없는 국가인데, 어떻게?”
“해안가 도시의 태반이 붕괴되어 사라져 있었습니다. 땅이 뒤틀리고 수백 미터 깊이의 계곡이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큰 산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게 이건 영화에서나 보는 그런 수준이었습니다.”
“······만일 리히터 규모 9를 넘는 강진이 발생했다면, 자칫 제주에도 그 여파가 미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내륙이 아닌 제주는 해일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저보다 전문가가 있으니 그에게 자문을 구해보도록 하시죠.”
성현은 정우현 박사와 함께 그 전문가라는 사람을 찾아 한 연구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한 연구실에는 정우현 박사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년의 연구원이 한 명 있었다.
“지각은 여러 개의 판으로 쪼개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각 하부에 있는 맨틀은 순환을 거듭하는데, 이 때문에 지진이나 화산분출과 같은 자연현상이 만들어지게 되죠.”
A4 용지에 간단한 그림과 함께 한 연구원이 성현과 정우현 박사에게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조산대에도 지금 말씀하신 지역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인접한 알프스 히말라야 조산대는 후기 고생대와 신생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매우 안정화 되어 있는 곳이라 말씀하신 것처럼의 초대형 지진이 발생할 조건이 되지 못합니다.”
“그럼 제가 직접보고 경험한 지진은 도대체 뭡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주에 해일 피해는 없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인도 중부가 진앙지라면 벵골만을 거쳐 미얀마 등이 해일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게 됩니다. 이번 지진으로부터 제주는 안전합니다.”
제주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말에 다소 안심하게 되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지진은 여전히 불안감 남겨두고 있었다.
“혹시 제주나 한반도의 지진은 예측이 가능합니까?
“여러 가지 전조현상을 토대로 예측은 가능하긴 합니다.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융기 현상과 암석의 전기전도율의 변화, 지하수의 방사성동위원소양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또 지구 내부를 이동하는 지진파 중 P파와 S파의 속도를 변화를 토대로······.”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지금 가능한지 여부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성현은 노년의 연구원의 알아듣기 힘든 전문용어보다 단답형의 대답을 원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지원만 있다면 수일 안에 말씀하신 예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필요하신 지원은 모두 해드릴 테니 즉시 시작해주세요.”
* * *
성현은 지질학 연구실에서 나온 직후 급히 중국으로 향했다.
인도에서 광물채취가 힘들어지자 차선책으로 중국과 몽골 지역에 있는 광물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인도는 여러 광물들을 동시에 구할 수 있는 지역이 많았지만 중국과 몽골은 그렇지 못했고, 보다 많은 품을 팔아야만 원하는 자원들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성현은 오전 내내 밀린 업무를 끝내고, 외나로도로 향했다.
정오에 있는 위성 발사를 직접 참관하기 위해 나로 우주센터를 찾았다.
발사 시간이 임박해 오면서 우주센터 내부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발사 카운트다운 준비!”
“점화 카운트다운 5, 4, 3, 2, 1.”
위성을 실은 로켓에 점화가 되면서 발사대를 뿌연 연기와 함께 주황빛의 불꽃이 폭발적으로 튀어나왔다.
75톤(t)의 추력을 발산하는 엔진 4개를 단 로켓은 발사와 동시에 순식간에 상공으로 솟구치며 멀어져 갔다.
“동압 최대, 메인 엔진 이상무! 유도시스템 가동!”
우주센터에 로켓의 상태와 내부 기기들의 이상 유무를 체크하는 이들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성공입니까?”
성현은 로켓이 안정적인 발사가 되었음을 확인하고, 곁에 있는 정우현 박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우현 박사는 성현의 말에 싱긋이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입니다. 사령관님. 먼저 1단계 2단계 로켓을 사용해 200km 상공의 주차궤도에 올라야 합니다. 그리고 3단계 로켓으로 가속해 천이궤도에 진입한 연후에 원지점 엔진을 사용해 표류궤도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성의 태양 전지판이 전개가 이상 없이 완료되면, 위성의 자체 추진 시스템으로 운용궤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간다면 모두 완료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성공을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말씀이군요.”
정우현 박사의 상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성현에 귀에는 그저 어려운 일들이 많이 남았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아직 난관이 많이 남았습니다. 인간은 달에 한번 가기 위해 에펠탑 높이의 코드를 손으로 썼던 적도 있었죠. 지금은 과거에 비해 쉽다고는 하나, 아직도 5번 중 1번은 실패를 하고 있습니다.”
성현과 정우현 박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1단계 추진 로켓이 분리되었고, 2단계 추진 로켓으로 가속이 한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2단계 로켓까지 완전히 분리가 되고, 3단계 로켓으로 가속해 마침내 원지점에 도착해 태양전지판을 전개해 위성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성공입니다!”
우주센터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성현은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박수를 치고 기뻐했다.
그리고 내일 있을 2차 위성 발사도 성공을 기원하며, 우주센터를 나섰다.
* * *
미 중부 캔사스.
캔사스의 주도 토피카에서 남서쪽으로 150km 지점에 있는 엘도라도 주립공원.
수만 개가 넘는 간이 천막이 엘도라도 주립공원 너른 평야 지대에 펼쳐져 있었다.
미 전역에서 이동되어 오는 이들은 이곳 임시 수용 시설로 집결하고 있었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몹시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유니온에서 신도시로 이주를 결정해 강제이주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대형 버스와 트럭들이 끊임없이 이곳 엘도라도로 향하고 있었다.
“집결된 인원은?”
“현재까지 84만 명, 주군께서 계획하신 100만 명은 명일 오전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중부의 대의원 산토스가 굵은 시가에 입에 물자 곁에 있든 보좌관으로 보이는 이가 불을 붙이며 답했다.
“이곳에 정이 들것 같단 말이지. 아쉬워.”
뿌연 담배 연기를 흡입한 산토스가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하며, 시가를 음미했다.
“동부의 데니얼님께서 방금 엘도라도에 도착했다는 전문입니다.”
이때 산토스의 사색을 방해하는 보고가 있었다.
“지금 출발할 테니 준비해. 데니얼이 지루함을 못 견뎌 사고 치면 수습이 힘들어.”
“알겠습니다.”
서부의 안토니오는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올 것이고, 성격이 급한 데니얼이 가장 먼저 엘도라도에 도착해 있었다.
다혈질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데니얼을 감당할 이가 엘도라도에는 없었다.
산토스는 텍사스의 휴스턴에서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캔사스 맥코넬 에어 포스 베이스로 향했다.
* * *
엘도라도에 도착한 데니얼은 무료한 시간을 그냥 보내고 있지 않았다.
과거 엘도라도의 군청으로 쓰였던 곳을 자신의 임시 숙소로 정하고, 이곳에서 자신의 취미를 즐기고 있었다.
“퉷! 제길 처녀가 아니었다니, 맛만 버렸군.”
손에는 피칠갑을 하고, 바닥에 널브러진 젊은 여인의 시신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먹다 남은 심장을 버리며, 새로운 사냥감을 데려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이 기다리던 사냥감이 아닌 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데니얼···. 저열하기 그지없는 식탐은 여전하군.”
“흥! 또 잔소리인가? 내가 저열하면 네놈은 비열하겠지. 크하하하.”
“수확에 사용할 제물에 손을 대는 것은 여기까지다. 서부의 안토니오도 그냥 묵과하지는 않을 텐데.”
“재수 없는 놈들과 함께 유희를 하는 것도 짜증 나는데, 잔소리 그만해라.”
서로 힘을 합치고는 있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은 서로 필요로 해서 뭉쳐있을 뿐, 동료라 할 만한 처지는 되지 못했다.
마계에서 치열한 공방을 서로 주고받은 적도 있었고, 실질적으로 직접 맞붙어 피를 본 적도 있는 사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