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지진과 기후변화 (3)
“왔으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어떤가 안토니오.”
산토스는 데니얼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중에 창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가의 창은 반쯤 열려있었고,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안토니오가 있었다.
“이런. 난 자네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을 뿐이야. 오해하지 말라고.”
“흥! 언제나 이런 식이지. 은막의 군주가 아니라 네 녀석은 쥐새끼들의 군주가 어울려.”
데니얼이 콧방귀를 뀌며, 안토니오를 힐난했다.
자신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탓에 미쳐 안토니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상태였다. 거기다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는 반발심이 작용해 더욱 매섭게 쏘아붙였다.
“워워~. 데니얼. 흥분하지 말라고.”
안토니오는 데니얼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안토니오. 너답지 않게 이른 시간에 왔군.”
산토스는 매사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안토니오가 수확까지 하루가 더 남은 이때에 온 것에 의아해했다.
“흠, 급히 전해야 할 소식이 있어서 말이지.”
장난기 가득한 안토니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겠군.”
산토스는 어떤 소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안토니오의 정색한 표정에서 좋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데니얼은 급한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며 안토니오를 채근했다.
“우리가 예상한 시기보다 많이 앞당겨진 걸로 보인다.”
“······안토니오 정확한 정보인가?”
“이미 그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면 지구시간으로 반년. 그 이상은 버티기 힘들 거라 본다.”
“제길. 이번 유희는 제법 길게 가나 했더니.”
산토스는 수천 년 만에 찾아온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6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화가 나 소리쳤다.
“우리들의 힘을 합쳐도 막지 못하겠지?”
“데니얼. 별의 종막은 본신의 힘으로도 막기 어려운 일이다.”
안토니오는 데니얼의 말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꾸했다.
행성의 마지막을 이들은 ‘별의 종막’이라 지칭하고 있었다.
“최근 폭주하던 마나의 흐름이 동결되다시피 하더니 역시나 문제가 생겼군, 안토니오. 계획을 수정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데니얼은?”
안토니오는 산토스의 의견에 동조하며 데니얼을 바라봤다.
“방법이 없는데 어쩔 수 없지······. 동의한다.”
데니얼도 이들의 말에 조금의 이의도 있지 않았다.
“이번 수확과 동시에 4차 수확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동의한다면, 위치는 유럽으로 했으면 한다. 어떤가?”
유럽 쪽을 맡고 있는 산토스가 나서며 말했다.
“그곳에도 5천만 이상의 수확물이 있다고 했지? 그 정도면 나는 괜찮다고 본다.”
“시간이 없으니 모두 한 번에 해치우자.”
“이번만은 데니얼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가능하겠나 산토스?”
다른 때 같으면 데니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안토니오가 아니었지만, 이번만은 그의 말에 찬성하고 있었다.
안토니오와 데니얼이 동의하자 산토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알겠다.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지.”
산토스는 유럽 쪽에 특사단을 파견해 선을 대고 있었고, 자신의 심복들로 하여금 비밀리에 암약케 하고 있었다.
이미 프랑스, 영국, 독일에 심복들이 잠입해 지휘부 장악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헌데 안토니오. 동아시아 문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내일이면 알 수 있게 될 거다.”
“만만치 않은 세력이다. 우리의 일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아깝지만 동아시아는 포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산토스는 신중한 성격답게 불필요한 충돌은 원치 않았다.
“크큭. 산토스, 네놈은 너무 겁이 많아. 지난번 유희 때도 너무 시간을 끌다 인간들의 공세에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다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데니얼이 산토스에게 비아냥거리며 딴죽을 걸었다.
“난 그나마 수확한 힘을 본신으로 가져오기라도 했지, 데니얼 너는 지난 유희 때 처참하게 망가져서 역소환 되어 본신의 힘도 일부 잃었지 않았나?”
“그, 그땐! 잔존한 별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미처 손을 써보기도 전에 당했을 뿐이야!”
데니얼이 산토스의 말에 반박하려 애썼지만, 산토스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인간일 뿐이지만, 그 인간들의 가능성을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 놈들 중에 특출 난 놈들은 분명 있기 마련이다. 아리스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인간에게 당했음을 잊지 마라.”
데니얼이 이를 뿌드득 하며 갈았지만, 산토스의 말에 틀린 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이번 수확만 끝나면 제대로 된 권능을 발현하게 되지 않나? 산토스. 포기라는 말은 좀 이른 감이 있어. 그 말은 못들은 걸로 하지.”
안토니오의 말에 산토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뉘앙스를 취했다.
“동아시아 이야기는 그만하고, 차후 일정을 조율하도록 하지.”
이들의 대화는 밤이 깊어도 그칠 줄 몰랐고, 이후 4차 수확을 넘어 5차 그리고 최종 수확 시기를 결정하기 위해 상호 간에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 * *
성현이 지켜보는 가운데 2차 위성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위성이 정상적인 운영에 들어가면서 위성을 활용한 정보 수집과 함께 일본에 있는 부대와의 통신도 이제는 제약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성현이 크게 할 일은 없었지만, 잡다한 서류들에 결제를 하며 집무실에서 있을 때였다.
다급한 모습을 한 정우현 박사가 찾아왔다.
평소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가 두서없이 꺼낸 말은 성현에게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평년보다 기온이 약 4도 가까이 올랐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기온이 상승했는지 위성을 통해 추가 확인 중이지만,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동식물들의 멸종도 우려되는 실정입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까?”
“네. 이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위협적이다 못해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어쩌면 앞서 사령관님이 목격하신 지진과도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우현 박사는 성현이 인도에 다녀온 직후 알려온 지진이, 인류가 지진 규모를 수치화한 이후 가장 강력한 지진일 것으로 짐작했다.
그래서 다방면으로 조사를 하던 중 평균 기온이 크게 올랐음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서둘러 시뮬레이션까지 모두 마친 정우현 박사는 머지않은 시일 안에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재앙이 초래할 것을 알게 되었고, 급히 성현을 찾아왔다.
“도대체 기온이 오른 이유가 뭡니까?”
“일단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절대 아닙니다. 대기의 질은 이전보다 더욱 좋아졌고, 오존층은 건재합니다. 어쩌면······.”
심각한 표정의 정우현 박사는 말을 아끼고 있었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 추측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추측을 알리지 않아선 안 되었다.
“극초신성의 여파가 지구 내핵에 어떤 작용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지표 밑 온도 상승이 뚜렷합니다. 지하 150m에서 확인한 지표면 온도가 무려 3.8도나 올라 있었습니다. 매시간 체크 한 결과 시간당 0.00246도 정도가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달이면 1.77도가 오른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도 언제 가속화될지는 현재로써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그렇다는 건 온도의 상승이 한계가 없다는 겁니까?”
“한계는 있겠지만···, 결코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은 아닐 겁니다.”
정우현 박사의 말은 시간문제일 뿐, 끓는 물에 몸을 당구고 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성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
“박사님!”
“이대로 예상한 것과 같은 진행이 있게 된다면, 방법은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겁니다! 전 이미 인간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이건 성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전 지구적인 지구 행성 자체적인 문제인바 이를 해결하는 건 신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성을 지르던 성현은 이내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앉았고,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그러다 침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정우현 박사를 바라봤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성현이 물었다.
“만약 기온 변화만으로 본다면 외부 활동이 불가능한 시점은 7개월 후로 생각됩니다. 이것도 현재 상태가 유지된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 해서 만약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면 시기를 가늠하기 힘듭니다.”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와 4명의 연구진들이 이를 알고 있습니다.”
“모두 함구토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혼란만 초래할 뿐입니다.”
언제가 되었든 알려야 하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최대한 방법을 찾아본 연후에 일이었다.
두 손 놓고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습니다. 그러니 믿고 기다려 주세요.”
정우현 박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사령관님. 오늘 이 시간부터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최소한으로 하고, 연구진들이 모두 가족과 지내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갖도록 할 생각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모든 연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분명 이를 이상히 여기게 될 테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정보가 샐 수도 있었다.
최소한의 연구만 진행해서 모두에게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만들어 주는 게 최선이었다.
정우현 박사가 돌아가고 성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뜩.
“정한이!”
성현은 친구 정한을 소리쳐 불렀다.
집무실 밖에 대기하고 있던 정한이 성현의 부름에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너다. 네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정한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왜?’ 라는 입모양을 했다.
“너 내일 어디 가지 말고 집에 있어. 아침 7시 27분에 내가 갈 테니 절대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야! 나 내일 저기······.”
정한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 성현의 말이 빨랐다.
“이거 명령이다.”
“일요일인데······.”
“내일 각성 부여가 가능해 단 1분도 늦출 수 없어 바로 해줄 테니 기다려.”
“어? 벌써! 그거라면 나도 환영이지 알았다. 내일 집에 콕 박혀 있으마.”
성현이 각성부여를 해준다는 말에 정한은 입이 크게 벌어졌다.
자신도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여자 친구와 한 약속은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영지, 영지 수를 일단 맞추고, 국왕 타이틀도 만들어 놓자. 뭐든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야 해.”
성현은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국왕 계급에 오를 생각이었다.
이미 60렙에 스텟 초기화를 해서 국왕에 이르는 권위 스텟은 모두 확보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영지 수를 충족하는 일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