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56화 (156/176)

# 156

미국으로 (2)

“다행히 안 늦었네.”

성현은 미니맵상에 아키꼬의 위치를 확인한 뒤 도쿄 도청에 도착했다. 마사토 총리는 잃었지만, 살릴 수 있는 이는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눈 뜨고는 보기 힘든 참혹한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고, 예상치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다.

순식간에 창을 부수고 돌입한 성현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아키꼬의 지척으로 이동했다.

의식은 없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알겠다. 주인.

성현은 눈앞의 뱀파이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직접 붙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성현에게는 모두 잡몹 수준에 불과했다.

“모두 멈춰!”

친위대가 움직이려는 찰나 도노반이 이를 막았다.

힘의 격차조차 느끼지 못하는 중하급의 뱀파이어들로서는 결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괜한 화만 돋울 뿐이었다.

전투적이고 투지가 넘치던 도노반도 막상 알파를 대면하고 나니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감에 대적할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꼬리를 만 개와 같은 심정이었다.

-주인, 도착했다.

어느새 도쿄 도청 상공에 도착한 사룡이 심상으로 전해왔다. 성현은 창 쪽으로 아끼꼬를 안고 이동했다.

‘발 내밀어봐 그거 말고 앞발.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놔, 그리고 인근에 사람들이 있다면 모두 대피시켜라.’

-알겠다. 주인!

성현은 사룡의 거대한 발에 아키꼬를 건네주고 뒤를 돌아봤다.

“오래 기다렸지.”

묘한 대치 상황이 끝났음을 알리는 말이었다.

성현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린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은 전혀 그렇지 못한 기괴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도노반은 눈앞의 알파라는 존재가 어제의 그가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제의 알파도 강했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알파에게서 압도적인 투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주군이자 모든 뱀파이어들의 왕인 안토니오를 연상케 했다.

“혹시 니들도 마계라는 곳에서 왔나?”

성현이 앞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말했다. 그러자 도노반을 비롯한 뱀파이어들도 흠칫하며, 동시에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것들이 지들 구역에서 놀지, 여기 뭐 먹을 게 있다고 다들 기어 나오는 건데.”

뱀파이어들에게서 끈적끈적할 정도의 음산한 기운이 실체화될 정도로 뿜어지고 있었다.

성현은 놈들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이전 중국에서 처리한 아리스와 동류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마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아리스님을 만났다는 말이겠군.”

“어디 만났기만 했겠어?”

도노반은 성현이 마계를 언급하는 시점에 확신이 섰다.

지구에 소환된 마계의 군주 중 하나인 아리스가 이미 역 소환되었음을 자신의 주인을 통해 전해 들었고, 이를 행한 이가 곧 눈앞에 있는 알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하늘을 나는 눈깔은 고향 갔는데 알고 있지? 근데 너희들도 곧 놈을 따라갈 거 같은 상황인데. 가면 안부나 전해라.”

“운 좋게 온전치 못한 군주를 이겼다 해서 우리도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서 멈춘다면, 우리도 조용히 물러나도록 하겠다. 어떤가?”

사실상 도노반은 이미 목적의 반 이상을 달성했다.

동아시아에 있는 국가에 수확 거점을 만드는 건 알파로 인해 불가능해졌지만, 중국에 있던 군주 아리스를 해친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과 정체를 파악하는 일은 완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처리하는 게 좋겠지, 만약 불가능하다 생각되면 일을 더 키울 필요는 없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안토니오의 지시는 아리스를 해치운 자의 역량을 살피는 것으로 족하다는 지시를 했다.

제거가 여의치 않으면, 그냥 둬도 된다는 의미였다.

도노반은 대적 불가라 판단한 이상 계획 수정은 불가피했다. 시간을 버는 게 이쪽에 유리했다.

어찌 되었든 군주들의 수확이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본신의 힘을 충분히 끌어와 제대로 된 권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 때에 이르면 알파를 죽이는 일쯤이야 전혀 어려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당장 알파가 미국으로 건너가 훼방 놓기 시작한다면 어떠한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최악의 경우 수확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동아시아를 담당한 도노반 자신이 지게 될 수도 있었다.

무한한 생명을 약속받았지만, 일을 그르친 자신을 다른 군주들이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을 터였다.

일이 그 지경에 이른다면 자신의 주군도 결코 묵과하지 않을게 불 보듯 뻔했다.

최대한 놈을 이곳에 발을 묶어 놓는 편이 좋았다.

“인간도 아닌 것들이 어디서 협잡질을 하고 지랄이야! 니들 목적을 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나?”

놈들의 태도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쉽게 덤벼들지도 않고, 탐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상당히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가 되었든 부딪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성현은 놈들이 인간에게 해만 되지 결코 이로운 존재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중국에서 맞닥뜨린 아리스라는 마계의 군주도 수만 명의 사람들을 제물로 받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보이는 족족 씨를 말려야 하는 해충에 불과했다.

“······우리와 싸울 생각인가?”

“싸우기는 개뿔, 니들 족치고 나면 미국으로 가볼 생각이야.”

성현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미국에 직접 건너가 상황을 한번 보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을 했다.

“네놈의 강함은 인정하지만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기서 멈춰라. 그게 네가 속한 그 제주라는 곳에도 좋을 것이다.”

“제주를 알고 있다라···. 근데 난 니들이 겁이 안 나는데, 두고 보자는 것들 치고 진짜 무서운 것들은 없거든.”

성현의 비아냥에 도노반이 창백한 얼굴을 더욱 굳히고 바라봤다.

“네놈과 가까운 이들이 산채로 씹어 먹히고, 뜯겨 나가는 걸 보고서 피눈물을 흘린다 해도 돌이킬 수 없다. 깊이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크크큭, 와-! 이 잡몹들이 협박도 참 저열하게 하네.”

성현은 더는 이런 인간도 아닌 것들과 말을 섞는 게 짜증이 났다. 아니 화가 났다.

미국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어 볼까 하는 생각에 대꾸도 해주고 그랬는데, 몹시도 기분이 나빠졌다.

이왕지사 이리된 마당에 미국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모조리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협박은 먼저 행동하고 보여줘야 두려운 법이야 이 마계 잡몹들아. 이렇게.”

푸슈슈슈슝!

성현은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찰나의 순간 창고에서 레일건을 꺼내어 대장으로 보이는 35레벨의 뱀파이어를 중심으로 모든 뱀파이어들을 향해 레일건을 발사했다.

콰콰콰쾅! 퍼퍼펑!

초속 3,400m/s에 이르는 레일건의 탄환이 총구 벗어나며 굉음을 만들어냈다. 강력한 소닉붐이 터져 나오며 공기가 일순간 터져나갔다.

소리보다 십여 배나 빠른 속도로 날아간 탄환들이 뱀파이어들에게 직격했고, 놈들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핏빛 안개로 화했다.

그리고 뱀파이어들을 관통한 탄환들이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건물 외벽을 부수고 끝을 모르고 뻗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라?”

스화화확!

강력한 레일건의 공격에 전신이 폭발해 한 줌 피안개로 화했나 싶은 생각이 든 것도 잠시, 놈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금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성현은 모두 피 떡이 되리라 의심치 않았건만, 놈들은 기이한 방법으로 공격을 모두 회피해버렸다.

“후훗!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를 어쩌지는 못한다. 이것으로 협상 결렬이군.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머잖아 네놈 앞에서 친인들을 모조리 찢어 죽여 줄 테니. 크하하하.”

도노반은 감히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알파의 공격은 오직 물리력에 집중되어 있었고, 절대 자신과 친위대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알파와 달리 다른 인간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의 치욕은 다른 인간들에게 풀면 그만이었다.

“물리력이 정말 안 통해? 이것도?”

성현이 깔끔하게 처리하고 말려던 생각이 수포로 돌아가자,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도노반을 노려봤다.

그리고 창고에서 한 자루의 검을 꺼내 잡고 부지불식간에 휘둘렀다.

스각! 스가각!

눈앞에 있는 말 많은 대장 뱀파이어의 목과 사지를 수십 등분하는 것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앞서와 마찬가지로 놈은 핏빛 운무로 화해 공격을 무위로 돌렸고, 순식간에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뭐야, 진짜? 안 죽어?”

“우리 어둠의 일족은 불사의 존재다. 크하하하.”

“니들 빛 싫어하지?”

문뜩 든 생각이었다.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짙은 로브를 모든 뱀파이어가 입고 있다는 것이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역질 나는 빛을 황홀한 어둠의 신성함에 비할쏘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에게 귀의해라 너 또한 불로불사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성현은 놈이 뭐라고 떠들던 가만히 생각하더니 스킬창을 열었다.

푸슝!

그리고 레일건을 들어 한 뱀파이어의 다리에 시험하듯 아무렇지 않게 한 발 쏴봤다.

“끄아아악!”

레일건의 탄환이 뱀파이어의 다리를 관통하고 지나가자 앞전과는 달리 뱀파이어의 다리가 허연 재가 되어 흩날렸다.

뱀파이어는 극심한 고통으로 말미암아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오-. 된다. 돼.”

“어, 어떻게!”

성현과 달리 도노반의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물리적 피해에 면역인 자신과 친위대가 어째서 방금 공격에 다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와-!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 속성 변환 】

-물리 공격력을 3대 속성 중 하나로 변환

-사용가능 속성 빛(光), 뇌(雷), 암(暗)

-격투계열, 육체 및 모든 무기 적용가능(활성/ 비활성)

성현은 크게 쓸데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 계륵 같던 ‘속성 변환’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니들이 한 짓을 보면 마계까지 따라가 조지고 싶지만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고, 좀 많이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성현이 총구를 들어 올리며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는 성현이 몰라 그런 생각을 한 것일 뿐 이 자리에 있는 뱀파이어 중 단 하나도 마계로 갈 일은 없었다.

모두 지구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로 스스로가 원해 안토니오의 권속이 되어 뱀파이어가 된 자들이었다.

이들에게 마계로 역 소환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자, 잠깐!”

도노반은 다급히 소리쳤다.

차후 군주가 모든 인간 수확을 마치고, 지구에서 얻은 힘을 본신이 있는 마계로 전이시킬 때 함께 돌아가야만 마계 구경이라도 할 수 있었다.

만약 뱀파이어로 이대로 생을 마치게 되면 그야말로 무로 돌아가게 되어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더는 뱀파이어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줄 용의가 전혀 없었다.

“입 다물고 그냥 좀 꺼져라!”

푸슈슈슈슝!

상황을 눈치채고 어떻게든 이탈해보려는 뱀파이어들이었지만, 성현의 레일건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광속성으로 변환된 레일건의 공격이 장내를 온통 환하게 밝힘과 동시에, 사방에 회색 재들이 온통 나부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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