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58화 (158/176)

# 158

빛의 전사 (1)

미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유니온 2군사령부(서부군 총사령부).

“직경 6피트 내외 미확인 물체, 초고속 이동 확인! 영상 전환 20초 전!”

인공위성 토스 원의 소형화된 광자 레이더에 상식을 초월하는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되고 있었다.

일본 상공에서 최초 포착된 물체는 3분여 만에 454km 거리를 비행해 북태평양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는 초당 2,500m를 단축하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충성!”

“저건가?”

최고 레벨의 감시대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되었다는 보고에 벤자민 중장은 한달음에 중앙작전 지휘소를 찾았다.

“넵. 중장님.”

“영상판독은 아직 인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금 판독 중입니다.”

벤자민 중장은 중앙 작전 통제실의 멀티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무려 마하 8을 넘어 9에 육박하는 속도로 비행중인 물체였다. 그것도 인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알파, 알팝니다!”

인공위성에 장치된 고해상도 카메라가 어렵사리 물체의 영상을 확보하자 영상 판독병이 이를 토대로 교차 검증 프로그램을 돌렸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자 크게 소리쳤다.

“확실한가?”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85% 이상의 일치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이미 전멸하고 없지만 원정을 떠난 함대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던 지휘본부였다. 알파에 대한 자료는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였다.

“놈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알파로 추정되는 목표물의 출발 위치와 이동루트를 직선으로 따라가 최종 목적지를 특정해 냈다.

그곳은.

“35,22,19N, 120,51,31W 캘리포니아 모로베이주립공원입니다. 오차 범위 500m 내외, 현재 속도라면 43분이면 도착하게 됩니다.”

벤자민 중장은 지도를 펼쳐 판독병이 말한 위치를 살폈다.

“그곳을 목적지로 할 이유가 있나?”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던 벤자민 중장은 지도에서 눈을 때지 않고 중얼거렸다.

알파로 보이는 추정체가 향하는 곳은 캘리포니아의 한적한 시골 해안가였다.

“아무래도 놈은 정확한 목표를 두고 오고 있는 건 아니다. 그 목적이 문제겠지.”

만약 내륙에 목표가 있다는 가정을 하고 살펴봤지만 특별한 장소나 위치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알파가 관광 삼아 미국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이상 이대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주고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와는 적이다. 전군에 코드 1을 발동! 안토니오 대의원님께 즉시 보고하도록 해.”

* * *

안토니오는 자신의 기반이 되는 서부에서 날아든 소식에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파의 이동 소식이 최종 안토니오에게 보고되기까지 6분 정도밖에 지나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의 신속한 보고체계는 칭찬해 줄만 하지만, 보고된 내용이 가히 좋지만은 않았다.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이라는 건가? 단독으로 오고 있다니 즉흥적인 면이 있는 인간이었나.”

수확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안토니오를 비롯한 산토스, 데니얼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보다 이동속도 하나만큼은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군.”

산토스는 안토니오에게 보고된 자료를 들여다보고 상상을 초월하는 비행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흥! 그깟 인간 하나 처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꼴이라니. 크하하하.”

데니얼을 평소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의 안토니오를 마음껏 비웃어 주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생각했는지 잠시도 쉬지 않고 속을 긁어 댔다.

“데니얼. 알파를 한낱 인간으로 치부하기에는 놈의 능력이 작지 않다. 어쩌면 우리 분신의 능력을 넘어서 있을 수도 있다.”

“그래 본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나약하고 채 100년을 살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지. 그런 인간 하나를 두고 군주라는 녀석들이 겁에 질려 있는 건가. 크하하하.”

산토스는 데니얼이 알파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이 못내 걸려 경각심을 심어주려 했지만, 도리어 겁쟁이 취급을 당하고 말았다.

“30분이라.”

안토니오는 시계를 보고 알파가 자신의 영역인 서부에 도착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산토스. 수확 시간을 앞당겨도 되겠나?”

“문제 될 건 없다.”

“데니얼 너는?”

“난 언제나 환영이다. 더욱이 이번 수확을 마치면 재미난 구경도 할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크크큭.”

데니얼의 눈은 재미있어 죽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안토니오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음에 이가 갈려 왔다.

“수확을 시작한다.”

심기가 불편한 안토니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확의 시작을 알렸다.

* * *

“스티브. 이동루트 모두 숙지했어?”

“물론입니다! 주 경계를 지나 1차 합류 지점인 오클라호마에서 40번 국도를 타고 뉴멕시코를 경유해 아리조나에서 다시 17번 국도를 타고 피닉스시까지 가면 됩니다.”

한마디로 미국 중부에서 서부로 이어지는 노선이라 볼 수 있었다.

“플랜B는?”

“1차 합류지점에도 못가 문제가 생기면 412고속도로로 빠져, 털사에서 다시 64번 고속도로로 갈아타. 저희 조에 속한 수송 차량들은 브로큰애로시 남쪽에 자리 잡기로 약속되어 있습니다.”

수송부대 최선두에서 길을 여는 차량의 운전병 스티브 병장은 찾아온 주임 상사 빌에게 작전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살아서 보자.”

빌 상사는 스티브 병장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다른 차량으로 향했다.

그런 상사의 뒤를 바라보며 스티브 병장이 크게 소리쳤다.

“상사님! 저 안 죽습니다. 저 꼭 따님 소개받을 거라고요!”

빌 상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중간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며 멀어져 갔다.

“1,281대의 차량들입니다. 이 차량들이 이 장소를 벗어나는 것만 최소 30분, 길면 1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철수 시점에 맞춰 작전을 시작한다지만 안심할 수 없습니다. 놈들이 눈치채는 순간 비상이 걸리고 전투가 발생할 겁니다.”

사실 미 전역을 장악한 유니온에 저항 한다는 자체가 말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만을 넘어 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버려두고 갈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콜트.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나만 믿어.”

페일이 흩어져 있던 100명에 이르는 초능력자들을 모두 모아 이곳에 함께 하고 있었다.

“현 시간 20시 47분. 작전 시작까지 13분. 5, 4, 3, 2, 1 지금!”

띠릭. 틱.

이번 작전에 핵심이 되는 이들이 동시에 시간을 맞추고 단 1초의 차이도 없이 동일한 시간을 공유했다.

“무전 주파수 225, 3분 간격으로 채널 변경 잊으면 안 됩니다. 모두 지정된 위치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작전 입안과 계획은 거의 콜트 중령의 손을 거쳐 완성됐고, 모두가 그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페일이나 그의 동료들이 강력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의 능력에 맞는 조를 구성하고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까지 모두 완료한 콜트 중령은 몇 시간 만에 몇 년은 늙어 버린 듯했다.

“제시카 양은?”

“잠시 기다리면 나올 거야. 지금 그녀는 구원을 청하고 있어.”

“네? 누구에게 구원을 청한다는 말씀입니까? 또 다른 조력자가 있습니까?”

콜트 중령은 완성된 계획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도 모자랄 판에 새로운 이들이 나타나 돌발적인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나도 잘 몰라 빛의 전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만 들었어. 그녀의 말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어. 제시카를 믿어.”

콜트가 보기에는 페일의 믿음은 어쩌면 맹목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페일이 지난 일들을 열거하면서부터 콜트도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모든 게 사실이라는 가정이 있어야 하지만 페일이 자신을 속이 까닭이 없었다.

제시카 그녀는 유니온에서 주민 이주를 시작하기 전에 이를 알고 준비를 해왔다고 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준비한 이들을 데리고 자신을 찾아왔다.

이 또한 모두 예견된 일이라고 하니 콜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근데······.”

“응? 뭔데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 봐.”

“우리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지는 말해 주지 않던가요?”

“듣기는 했는데 그게 나도 좀 아리송해서.”

“그래요? 뭐라고 하던가요. 어떻게 된답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페일의 말을 듣던 콜트는 점점 눈을 크게 치켜떴다. 너무도 황당한 말을 들어서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서, 설마 아니겠죠?”

“에이 제시카 양이 한 말인데, 그리되겠지.”

너무도 덤덤히 말하는 페일을 바라본 콜트는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자신에게 한 말이 스스로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다 잘 될 거야. 아-. 마침 제시카양이 나오네. 가자고.”

페일이 콜트 중령의 등을 팡팡 치며 앞서 걸어갔다.

콜트는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신비한 소녀 제시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늘을 한번 올려다봤다.

“정말일까? 그래 어쩌면······.”

의미심장한 표정을 한 콜트는 성큼성큼 제시카에게 다가갔다.

* * *

“육지다!”

성현의 눈에 드디어 망망대해를 벗어나 섬이 아닌 진짜 육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가 어디쯤이지?”

성현은 급격히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더니 해안과 육지의 경계에서 멈춰 섰다.

“캘리포니아 어디쯤은 맞는데. 뭐가 이리 넓어.”

캘리포니아 주의 남북의 길이가 1천km나 되고 있어 정확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확인이 어려웠다.

“일단 시내로 한번 가보자.”

성현은 정확한 지명을 확인하기 위해 해안과 가까운 시가지로 향했다.

그때,

-드디어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컬 드래곤이 전달하는 심상 대화와 비슷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 퍼졌다.

맑고 깨끗하면서도 절실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난데없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누구냐? 이거 당해보면 기분 좋은 일은 아니거든. 쓰잘 데기 없는 인사나 할 거면 그냥 꺼지는 게 좋을 거다.’

목소리가 좋다뿐이지 절대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강제로 당하고 있는 기분마저 드는 일이었다. 다만, 정신 공격이나 자신에게 나쁜 의도를 가지진 않은 듯 보여 차마 욕은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빛의 전사시여. 기분 나쁘셨다면 뵙고 죄를 청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구해 주십시오. 수십만을 넘는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하-아. 뭐? 빛의 전사? 이건 또 뭔데.’

성현은 가는 곳마다 왜 이리 일들이 꼬여 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간절한 목소리에 자초지종을 들어보지 않을 방법도 없어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다.

‘짧고 쉽게 팩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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