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빛의 전사 (2)
성현은 제시카의 말을 듣고 이전에 중국에서 만난 장진이 떠올랐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던 장진도 자신에게 천기(天機)를 운운하며,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라고 했었다.
공교롭게도 지금 제시카도 성현에게 말은 다르지만 같은 뜻을 전하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성현 스스로 대의는 없다고 생각하며 행동했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충분히 세상을 구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악인들을 징치하고,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을 구가할 수 있도록 했다.
가난과 기근은 나라에서도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성현은 자기 혼자서 수십 수백만에 이르는 이들을 구휼할 양식을 만들고 나눠줬다.
이런 사람을 두고 구원자, 더 나아가 현세의 신으로 추앙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전 보았습니다. 빛의 날개를 펼친 전사께서 저 간악한 존재들을 징치하시고,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모습을······.
‘휴우, 다 좋은데… 그 구원자니 빛의 전사라는 말은 좀 빼고 하지.’
성현은 제시카가 말끝마다 ‘구원자’, ‘빛의 전사’라 부르는 호칭에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그, 그럼 제가 호칭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령관정도로 부르는 게 좋겠다.’
익숙하면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건 그렇고 그 간악한 자들은 누구고, 도와달라는 말은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인데, 지금 있는 곳과 상황을 좀 설명해봐.’
-시간이 별로 없으니 상세한 설명은 만나 뵙고 할게요. 우선 저 간악한 존재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현재 미국 전역을 장악한 유니온의 대의원으로…….
성현은 제시카의 설명을 들으면서 상당히 긴급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백만 명의 사람들을 이주라는 명목 하에 한자리에 불러 모아 이들이 행할 일은 이전에 중국에서 마주한 마계의 군주, 아리스가 벌인 대학살을 떠올리게 했다.
제시카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일부나마 사람들을 구할 계획이라고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사지에 놓여있었다.
이를 알면서도 내버려둘 성현이 아니었다.
‘제시카, 20분 아니 15분이다. 괜찮겠나?’
마음이 정해지자 성현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제시카가 말한 장소를 급히 지도로 찾아 살폈다.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거리로 약 2,200㎞거리에 있는 캔자스.
지금 성현의 최대비행속도라면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네? 네! 그 동안은 저희가 어떻게든 버텨 볼게요.
‘어떻게든 살아. 살아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주마.’
제시카는 올해 17살에 불과했다. 일면식도 없는 소녀였지만, 제주에 있는 해미를 떠올리게 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한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런 소녀를 구하지 못한다면 성현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기다릴게요. 반드시 오실 거라 믿어요.
“그래, 금방 가마.”
뇌리에 전해지던 제시카의 음성이 잦아들더니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성현은 작게 읊조렸다.
그리고 작은 나침반을 들고, 방향을 잡았다.
“정동 방향. 최고속도로 간다.”
콰쾅!
공기를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성현의 신형이 상공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저건?”
순식간에 해안을 벗어나 육지에 들어선 성현의 눈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거리는 대략 30㎞이상. 1백기가 넘는 전투기들이 성현의 정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니들이랑 놀아줄 시간은 없다!”
성현은 1분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불필요한 전투는 벌이고 싶지 않았다.
전투기들이 미사일을 사출해 성현을 향해 발사했지만, 방향을 틀어 우회하지 않았다.
오직 정면만을 고수하며 가일층 속도를 높였다.
콰콰콰쾅!
정면에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무수히 많은 자탄들이 성현의 신형을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강력한 폭발력을 동반한 폭압이 전신에 몰아쳤다.
하지만, 강력한 내구력과 진화에 가까운 능력을 얻게 되면서 그 피해는 미미하다 못해 없다시피 했다.
어두운 밤하늘에 일직선으로 수놓인 불꽃의 향연은 끝날 줄 모른 채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더 빨라. 이대로 돌파한다!’
초음속을 넘어 극초음속에 다다르자 더는 미사일들이 성현을 타격할 수 없었다.
공대공 미사일들의 추격속도로는 성현의 이동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성현은 진행방향 전면에 배치된 소수의 전투기들을 관통하듯 육탄으로 뚫고 지나갔다.
‘니들은 돌아와서 손봐주마.’
* * *
“명중했습니다!”
“계속해서 퍼부어!”
유니온 2군 사령부 통합 작전지휘소.
알파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펌데일 공군기지에서 출진한 무인전투기 120기에서 각 기체에 장착된 미사일들을 알파를 향해 발사했다.
“헉! 알파가 건재합니다. 1차 방어라인 돌파! 마하 4, 마하 4.5, 계속해서 가속중입니다. 요격미사일로는 더는 피격할 수 없습니다.”
“이, 이건 듣던 것보다 더하지 않나?”
작전 참모의 설명이 있지 않아도, 벤자민 중장은 상황실의 멀티비전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작전 공역 영상이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고, 강력한 폭발의 화마를 뚫으며 속도를 줄이지 않는 알파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알파를 제거할 수 있다는 자신은 없었다. 다만, 최소한 시간을 지체시킬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한 벤자민 중장은 그에 상응하는 전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산정한 범위를 넘어서는 알파의 능력은 이 모두를 무시하고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2차, 3차 방어라인 구축은?”
“늦었습니다! 현재 알파의 비행속도 마하 7.3! 2차 3차 방어라인 구축이 끝나기 전에 지역을 이탈합니다.”
쾅!
“제기랄!”
벤자민 중장은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최종 3차 방어라인까지 빠르게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1차 방어라인이 속수무책으로 뚫려버려 시간이 없었다.
그로인해 2차, 3차 방어라인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큰일이군. 어쩔 수 없나…….”
벤자민 중장은 안토니오 대의원이 내린 지시를 떠올렸다.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놈을 막아야만 했다.
만약 이대로 알파를 놓아주게 된다면 이후 자리 보존은커녕 목숨도 위태로운 상태였다.
악다문 입술을 잘근 씹은 벤자민 중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유타에 지급으로 명령을 하달해. 지금 즉시 발사한다.”
“네. 네?”
“어서!”
“아, 알겠습니다.”
혹시나 하고 준비는 했지만, 절대 사용하고 싶지 않은 절대 병기였다.
* * *
성현이 유타와 콜로라도의 경계를 막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수백기가 넘는 지대공 미사일들이 성현을 향해 날아왔다. 헌데 그 미사일들은 직접 피격이 아닌 성현이 진행 중인 방향 인근 상공에서 폭발해 수 킬로미터 이상의 영역을 화마와 연기로 뒤덮었다.
“이건 또 무슨 짓이야.”
자신을 타격하지 않고 애꿎은 공간에서 폭발한 미사일들이었다.
“맞출 자신이 없으니 그런 건가?”
성현의 비행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예상 지점에서 폭발하도록 했을 수도 있었다.
시야를 가린 화마와 연기를 헤치고 나왔을 때였다.
“이 새끼들이 연막을 친 거였어!”
크고 육중해 보이는 미사일 3기가 바로 수백 미터 앞 상공에 도달해 있었다.
속도 또한 무시할 수준이 아닌, 마하 5를 넘는 극초음속의 최신예 미사일이었다.
이미 회피하기에는 늦었지만, 성현은 수직으로 고도를 높였다.
콰콰콰쾅!
급격히 방향을 선회해 이탈을 감행했지만, 공중 폭발한 핵폭발의 속도에는 이를 수 없었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성현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흡입력에 빨려 들어가 엄청난 충격파가 그를 강타했다.
‘크윽!’
더군다나 폭풍형태의 폭발이 끝이 아니었다. 순간 최고 수억 도에 달하는 열복사선이 성현의 전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절대 무적’ 발동, 30초간 무적상태입니다.]
[ HP 100% 회복 ]
HP 수치가 20% 미만에 이르자 ‘절대 무적’ 스킬이 자동으로 발동되었고, 하루 2번의 기사회생 기회가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후아-! 진짜 어디를 가도 그놈의 핵핵핵!”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성현은 핵이라면 치를 떨었다.
* * *
콜트 중령은 자신의 부대가 이끌고 온 주민들을 수송 차량에 태우고 몰래 빠져나갈 생각이었지만,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최소한 수송 차량들이 떠난 직후에나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저들은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혹 빠져 나간 자가 있나?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주민 인수인계를 위해 들어온 유니온 산하 친위대원 20여 명은 페일을 비롯한 초능력자들에 의해 처리된 상태였다.
주민이동을 아무리 비밀리에 하고는 있다지만 부대에 들어와 있는 친위대의 눈까지는 속일 수가 없었고, 부득이하게 먼저 손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만약 유니온에서 눈치를 챘다면, 지금쯤 대대적인 병력이 파견되었을 테지요. 현재 움직임으로는 그런 낌새는 없습니다. 모두 주민이동을 독려하러 온 것으로 보입니다.”
“콜트, 그럼 저 녀석들도 일단 처리하는 게 맞겠군.”
“작전시작시간까지는 3분도 남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약 50여 명에 이르는 친위대원들이 콜트 중령의 부대에 막 도착해 먼저 도착한 대원들을 찾고 있었다.
거기다 저들은 주민이동이 즉시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는 흘려들을 문제가 아니었다.
대형 막사 두 개를 내어준 콜트 중령은 먼저 도착한 친위대원들을 불러 주겠다며 잠시 그곳에 머물러 있도록 한 상태였다.
“테일러, 저 곳을 중심으로 능력을 써줘야겠다.”
“넵, 알겠습니다.”
페일의 지시에 테일러가 큰 두 개의 막사를 향해 양손을 뻗치자, 손에서 무형의 기운들이 발산되어 막사 인근에 투명한 막을 형성해 냈다.
“가자!”
페일이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따라 백여 명에 이르는 초능력자들이 달려 나갔다.
반투명한 막을 지나쳐 안으로 진입하자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친위대원들이 급히 막사를 박차고 밖으로 튀어 나왔다.
“웬 놈들이냐!”
친위대의 조장격인 거한의 사내가 달려오던 페일과 그 일행을 보고 소리쳤다.
양손에 파도가 넘실거리듯 전격을 두른 이도 있고, 불꽃을 전신에 드리운 자와 어른 머리통만한 해머를 들고 달려오는 이도 있었다.
“각성자들이다. 모두 변이한다.”
친위대 조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친위대원들의 혈관이 툭툭 불거지더니 상체와 하체가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소리가 친위대로부터 터져 나왔다.
“늑대인간이라고?”
페일은 뜻밖의 상황에 두 눈을 화등잔 만하게 치켜떴다.
대략 2미터에서 3미터의 체고에 수북한 털.
그리고 늑대를 연상케 하는 머리통은 소위 말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늑대인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