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60화 (160/176)

# 160

빛의 전사(3)

페일은 제시카가 입이 달토록 말하던 유니온의 실체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앞서 20명의 친위대는 인간들로 구성된 하위조직이라면, 지금 눈앞의 늑대인간들은 유니온의 실질적인 전투부대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놈들은 인간들이 아니다. 모두 손에 사정을 두지 마라!”

놀라는 것도 잠시, 페일은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그리고 점멸하듯 그 자리에서 사라져 늑대인간들의 후방에서 나타났다.

단거리 순간이동 능력과 강력한 육체계열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페일은 드물게 나타나는 듀얼 능력자였다.

순간이동은 100m 내외의 공간에서 대략 5분 간격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육체능력은 1톤 가까운 무게를 양손으로 거뜬히 들 정도로 엄청났다.

쾅! 우지근!

바람을 가르며 페일의 손에 들린 500파운드(226㎏)짜리 거대한 해머가 늑대인간의 어깨에 떨어져 내렸다.

사실 머리를 날려버릴 생각이었지만, 민첩한 반응을 보인 늑대인간이 이를 피하면서 어깨를 타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고, 어깨의 살이 짓이겨지면서 피와 살점이 흩뿌려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부에 있던 뼈가 조각나면서 기이한 방향으로 살을 뚫고 삐져나오기까지 했다.

깨갱! 퍼거걱!

복날에 타작당하는 개소리를 내지르는 늑대인간을 향해 페일은 다시 한 번 해머를 강하게 휘둘렀다.

이미 전투불능에 이른 늑대인간의 머리가 폭죽 터지듯 터지면서 비산했다.

크르르릉.

동족이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죽임을 당하자 늑대인간들은 페일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인간들이 페일의 주변을 돌며 서서히 포위하는 형태로 다가오고 있었다.

느긋하게 눈을 들어 이를 둘러보는 페일의 모습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그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잘됐네. 이건 꼭 해보고 싶었거든. 우와와와!”

페일이 한쪽 다리를 축으로 해서 남은 다리로 강하게 지면을 차며 팽이 돌 듯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회전력에 흙먼지들이 빨려 들어와 페일을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생성되고 있었다.

“간다!”

마치 토네이도가 지상에 강림한 것 같은 강력한 소용돌이가 용틀임하며, 늑대인간들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콰쾅! 쾅!

회전력이 가미된 거대한 해머에 늑대인간들이 사정없이 갈려 나가며 형상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주변 상황을 놓치지 않고 체크하면서 페일은 전황을 살폈다. 다들 쉽지 않은 상대를 대상으로 잘 해주고 있었다.

다만, 이놈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놈에게는 7명이 덤벼들고 있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비켜!”

크게 고함을 내지른 페일이 원심력을 이용해 휘두르던 해머를 공중으로 향하게 해서 그대로 몸을 날렸다.

후우우웅!

해머와 함께 허공으로 치솟은 페일은 늑대인간 대장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쾅!

늑대인간이 양팔을 교차해 페일의 해머를 가까스로 막아냈다. 그리고 타격과 동시에 고막을 뒤흔드는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상당한 피해가 있었는지 늑대인간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면서 낮게 으르렁 거렸다.

페일은 히쭉하고 웃었다.

다른 늑대인간에 비해 강하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할 만하다 싶은 느낌이 물씬 밀려왔다.

“조져!”

페일은 일순간 호승심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한가하게 대련하듯 1:1을 고집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

페일이 해머를 크게 뒤로 젖히면서 도약하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초능자 중 전격공격이 가능한 이가 늑대인간을 향해 번개다발을 날렸다.

순간 늑대인간은 감전에 의해 근육이 수축되었고, 찰나의 시간 경직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늑대인간은 두 눈을 뜬 채 페일의 해머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봐야만 했다.

*     *     *

성현은 핵폭발의 강맹한 후폭풍에 휩싸여 상공 30㎞가 넘는 위치까지 날아갔지만, 이내 ‘찬란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중심을 잡아내고 있었다.

지표면이나 지하에서 폭발하는 핵의 위력도 무시무시하지만, 공중 폭발하는 핵폭탄은 상상을 초월했다.

3개의 핵미사일이 상공 5㎞부근에서 동시 폭발한 위력은 지름 100㎞에 가까운 지상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거대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버섯구름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로 나갈 기세로 치솟고 있었다.

“수소폭탄?”

성현은 최소 메가톤급 이상의 핵폭발로 추정했다. 즉, 수소폭탄이란 말과 진배없었다.

이론상 수소폭탄은 방사능 오염이 없지만, 현재까지 삼중수소의 핵융합에 필요한 초고온의 플라즈마 기술이 완전하지 못해 아직은 미완의 기술로 남아있었다.

“시간이 있다면 정 박사님이라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미 플라즈마 처리기술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시킨 전례가 있는 정우현 박사라면, 미완의 핵융합 기술도 완성해 오염 없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니었다.

“그보다 오염지역은 수배는 더 넓어질 텐데.”

이후 미국의 중서부 지역은 방사능 피폭에 의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대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어차피…….”

성현은 광활한 지역에 방사능 피폭이 염려되었지만, 그런 생각이 모두 부질없는 것들임을 상기했다.

오염이 되었다한들 신경 쓸 일이 있을까 싶었다. 지구의 시간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다만, 성현은 이 같은 사실을 스스로가 입 밖으로 말하는 것조차 대단히 꺼림칙한 탓에 굳이 이를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런, 너무 지체 했다. 서두르자.”

성현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벗어나, 핵폭발의 여파로 생성된 직경이 20㎞에 이르는 도넛 형상의 구름 띠를 넘어 비행속도를 높였다.

잠시 후, 직사각형 형태의 콜로라도 주 경계를 넘어 드디어 캔자스에 도착한 성현은 가급적 저공비행으로 일일이 이정표 등을 확인하며 목적지로 향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성현은 소도시 킹맨을 지나고 있었다.

엘도라도 주립공원까지는 대략 120㎞. 1분 안쪽으로 도착 가능한 거리였다.

그때.

“이건 또 무슨!”

휘황찬란한 달빛이 어느 순간 차츰 빛이 퇴색되더니 핏빛으로 온 세상을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성현은 비행 속도를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달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기괴한 현상이 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대기권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나타난 붉은 양탄자와 같은 핏빛의 운무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비균질권(대기의 조성비가 일정하지 않은 구간)이라 할 수 있는 고도 100㎞ 이상에서는 구름이 존재할 수 없었기에, 아주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벌써?”

어렴풋이 이와 유사한 형태의 일을 목도한 기억이 떠올랐다.

대학살의 징조였다.

*     *     *

데니얼은 곧 있을 수확에 앞서 본신에서 가져올 권능과 힘의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심 중이었다.

수 만년 이상을 마계의 군주로 군림해오면서 때론 만들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다른 존재들로부터 강탈한 권능의 수만 백여 개에 달했다.

그 중에는 전투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고, 아주 극소수의 권능만이 비전투계열의 권능들이었다.

“내가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데니얼은 자신의 사색을 방해한 권속을 보며 작게 꾸짖었다.

“주군, 죄송합니다. 긴급한 보고라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해.”

데니얼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권속에게 보고를 허락했다.

“동부 제4 수송단의 주민들을 인솔키 위해 파견된 병사들이 모두 연락두절 상태입니다.”

“종자들 몇이 없어진 것 가지고 호들갑이었나?”

유니온에 속한 종자 즉, 인간들이 사라지는 일은 수시로 일어났다.

유니온에 대항하는 이들에 의해 살해되거나, 그도 아니면 아주 미약한 마기에 노출되었지만 정신이 붕괴되어 자살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그것이 아니라 추가로 보낸 카밀의 직속 수하들까지 행방이 불분명해진 상태입니다.”

“라이칸 카밀의 직속?”

“그렇습니다, 주군.”

카밀은 데니얼의 손발이 되었던, 마계에서 소환된 권속들 셋 중 하나였다.

지금 눈앞에서 비서의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페그마, 그리고 호전적인 전투종족인 라이칸의 수장 카밀, 마지막으로 대전사 겔락.

이 셋은 데니얼이 상당히 큰 힘을 소진하면서도 필요에 의해 마계에서 불러들인 수하들이었다.

“그럼 4수송단을 찾아가서 직접 알아보면 되지 않느냐?”

“저 그게… 수송부대를 뒤쫓아 갔지만, 철수 루트를 따르지 않고 독자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4수송단이 데려온 2만 8천 명의 인간들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감히······! 수확물도 함께? 감시하라고 보낸 놈들은 도대체 무얼 한 것이냐!”

데니얼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투기로 인해 공기마저 쩌렁하게 울리고 있었다.

“당장 추적해서 모두 잡아들여라. 수확물은 제전이 시작되기 전에 찾아와야 한다. 두 녀석에게 내 체면이 깎이는 일이 없어야 돼!”

“주군, 현재 카밀이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저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냐?”

“그것보다 수확시간이 임박해서······.”

“시간이 벌써? 큰일이군.”

시간을 확인한 데니얼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원래 예정된 시간은 자정이었지만, 안토니오의 사정으로 2시간 30분이 앞당겨진 9시 30분에 시행될 예정이었다.

“곤란한데.”

백만에서 2만이 조금 넘는 숫자가 모자란들 어찌 보면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에서 돌발 변수가 발생한 것은 물론이고 수확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을 두고, 틀림없이 다른 군주들의 비웃음을 받을 터였다.

“어쩔 수 없지. 난 수확에 참여하러 갈 테니 사라진 놈들은 모조리 고통스럽게 죽여라.”

약속된 시간까지 제때에 수확물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생각한 데니얼은 이후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두 군주가 힐난할 것이 자명했기에, 자신에게 굴욕을 감내하게 만든 것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넵, 주군!”

데니얼은 페그마가 떠나자 자신도 수확을 위해 만들어진 높이 15미터의 제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수백 대가 넘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중 가장 후미의 지휘차량에는 다수의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곧 위치토가 가까워진다. 도심에 혹시 모를 유니온의 직속부대가 있을지 모르니 전원 야시경 착용과 함께 라이트를 끄도록 한다. 이상!”

-넵, 중령님!

-알겠습니다, 충성!

100대 단위로 차량들을 한 팀으로 구성해 각 팀별 1호 차량이 모두를 이끌고 있었다. 콜트 중령은 각 팀의 팀장들에게 무전을 보내고 옆을 돌아봤다.

제시카가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안 돼!”

콜트 중령이 고개를 돌리려는 차에 제시카가 갑자기 찢어질 듯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왜?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무시무시한 자가 오고 있어요. 더 빨리 도망가야해요.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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