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61화 (161/176)

# 161

대격돌 (1)

땅거미가 짙게 깔린 엘도라도 주립공원.

가장 외곽에 위치한 동부 소속 제4수송부대의 주둔지.

이곳 평야지대에 펼쳐진 임시천막들 사이로 야생동물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로드! 흔적을 찾았습니다.”

라이칸 일족의 수장인 카밀은 콜트 중령의 수송부대가 주둔 했던 지역을 살피고 있었다.

수확물을 점검하고 이동시켜야할 일족 중 일부가 소식이 두절되자 직접 찾아 나선 것이었다.

“이곳에서 당했군.”

흔적을 지우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듯 했지만, 공기 중에 떠도는 잔향만은 어쩌지 못했다.

일족 라이칸들의 피 냄새가 상당히 넓은 공간에 짙게 배어있었다.

“기습당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만, 일족 중 누구도 용맹의 함성을 듣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투가 있었음에도 누구하나 눈치 챈 이들이 없었다. 라이칸은 전투에 앞서 그 흉성을 이기지 못해 포효를 내지른다.

이를 라이칸들은 ‘용맹의 함성’이라 이름 붙이고 있었다.

일족들에게 최소 수십 킬로미터를 격하고 전달될 정도임을 감안하면 이는 말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함성을 지를 새도 없이 당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50에 이르는 라이칸들이 모두 중하급이긴 하지만 순식간에 전멸 시키는 것은 주군을 제외한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다. 주군의 능력에 필적하는 인간이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 돼······. 가만!”

카밀은 말을 하다 말고, 미간을 모으며 지그시 눈을 내리 감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미미하지만 마나의 유동이 정상적이지 않다. 공간 간섭? 그도 아니면 음파차단이 가능한 인간이 포함되었다고 봐야겠지. 멍청한 놈들, 고작 인간 따위에게······.”

카밀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수하들을 잃은 참담함보다 인간들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그를 분노케 했다.

“위성은 아직 이냐!”

“제어권 회복까지는 최소 1시간 이상 걸린다는 보고입니다.”

위성을 통해 제4수송대를 추적하려 했지만, 이 또한 용이치 못했다. 해킹으로 인해 위성의 통제권을 유니온은 상실한 상태였다.

복구를 서두르고 있다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인간들이 제법 많은 준비를 했다고 봐야겠지. 라펠! 추적에 능한 라이더들을 풀어라. 사냥을 시작한다!”

일족 중 가장 날래고 강한 이들을 모아 라이더를 구성하고 있었다.

카밀은 위성 복구보다 일족을 움직이는 게 더욱 빠르다 판단했다. 감히 자신에게 수치를 안겨준 인간들을 마냥 손 놓고 기다려줄 생각은 없었다.

*     *     *

투투투투! 투쾅!

경량전술차량(JLTV)의 상단 포탑에서 연신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12.7㎜의 중기관총과 함께 고속유탄발사기에서 발사된 탄환들이 후방을 향해 매서운 공격을 가했다.

“노, 놈들이 너무 빠릅니다. 유효타격을 줄 수가 없습니다.”

“계속 갈겨! 우리가 뚫리면 바로 수송대열로 직행이다. 막아!”

체고가 3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늑대 10여 마리가 콜트 중령의 수송대 후미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호위대가 사력을 다해 막고 있었지만, 시속 80㎞의 속도로 달리는 차량보다 빠른 속도의 움직임 가운데 놈들을 조준사격 한다는 건 베테랑인 사수라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간히 놈들을 맞추고는 있지만, 피해는 미미했다. 거리는 계속 좁혀져 이제는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아우우우!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내장을 진탕시키는 하울링으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크윽, 이, 이런 개 같은!”

“위, 위험합니다!”

콰지직! 쾅!

육중한 전술차량의 장갑이 거대한 늑대의 발톱에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이어 크게 도약한 놈은 가속함과 동시에 측면으로 돌아 거칠게 차량을 들이받았다.

거대 늑대의 육탄돌격에 차량은 일순간 허공으로 붕 뜨더니 굉음을 내며 거칠게 아스팔트를 긁어 댔고, 천장과 바닥이 뒤집어져 처참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놈들이 이렇게 대응할 줄은······.”

예상 밖으로 유니온의 대응이 너무도 신속했다.

거대 늑대를 활용한 이런 식의 추적은 상정범위에 있지 않았다.

위성추적은 불가능했고, 혹시 정찰기나 수색 헬기를 띄웠다면, 이미 그에 상응하는 준비를 마쳐 놓았었다.

이동 루트 곳곳에 무인 대공미사일을 배치해 대비했건만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콜트, 더 이상의 희생은 무의미해.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맡겠다.”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후미의 사태를 무전으로 들어 알고 있던 페일은 더 이상은 군의 피해를 강요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안 돼! 자네는 이 일을 마무리해야 돼. 제시카 양을 부탁하네.”

“페일 아저씨······.”

페일은 제시카를 바라보며 따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눈빛을 빛내며 콜트 중령에게 말했다.

“지금은 이 방법뿐이야. 그 ‘빛의 전사’라는 이에게 제시카 양를 데려다 줘. 그게 자네의 할 일이야. 그리고 모두를 부탁하네. 당장 차를 세우게.”

이미 후미의 호위대가 거대 늑대에게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민간인 수송대와 맞닥뜨리는 건 시간문제였고, 이번 작전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정차!”

콜트 중령의 악다문 입에서 차량을 세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곧바로 지휘차량이 멈춰 섬과 동시에 뒤따르던 차량 4대도 연달아 멈추어 섰다.

“페일 아저씨, 다녀오세요.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날 거예요.”

지휘차량에서 내리려는 페일의 등 뒤로 제시카가 안겨들었다. 페일은 딸 같은 제시카의 손을 몇 번 쓰다듬으며 바라봤다.

“우리 제시카 양, 시집가는 건 내가 보고 가야지 암! 걱정 말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페일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지만, 사실 생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제시카의 말을 신뢰해 왔지만, 이번만은 제시카의 말을 그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 정도로만 여겼다.

그만큼 지금 쫓는 자들은 흉포했고, 앞서 격돌한 늑대인간보다 강한 존재들임을 느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제시카가 단언하듯 무시무시한 자가 뒤를 쫓는다고 했으니, 더욱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페일과 80여 명의 초능력자들이 차량에서 내리자 잠시 주춤했던 행렬이 빠르게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두 괜찮겠어?”

페일은 자신과 생사를 함께할 이들을 돌아봤다.

“참내, 어지간히도 빨리 물어 봅니다.”

“어차피 앞서간 아내와 딸들이 보고 싶었는데 좋은 일 아니겠소, 하하하.”

“아무것도 못해보고 죽는 것보다야 100배는 낫습니다.”

모두들 차량에서 내리는 시점부터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각오한 일임에 망설이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모두 지옥에서 보자고.”

거대한 덩치의 늑대들이 짓쳐 달려오고 있었다.

페일은 육중한 해머를 어깨에 걸쳐 메고 놈들을 향해 거침없이 짓쳐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야! 이천.’

-주인, 불렀는가?

‘너 인마, 어디로 가고 있어! 그쪽이 아니잖아!’

성현은 캔자스의 경계를 넘자마자, 캐나다와 미국 국경 부근에 있던 스컬 드래곤 무리 중 일부를 캔자스로 불러들였다.

전 세계로 흩어져 좀비 사냥을 시작한 스컬 드래곤 중에는 미주 지역에 입성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아직 중부에까지 진입한 스컬 드래곤은 없었다.

그중 성현과 가장 가까운 무리인 캐나다 접경지역에 있던 스컬 드래곤들을 불러들였다.

헌데, 무리를 이끄는 이천 번째 생성된 스컬 드래곤 ‘이천’이 무리를 이끌고 엄한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분명 주인이 지정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난 그리 멍청하지 않다.

‘어라? 아차차, 거기 아니고 다시 지정해 줄게.’

큰소리로 다그쳤지만, 실수는 성현이 했다.

미니맵 상에 지정한 위치는 캔자스가 아닌 콜로라도 북쪽에 가까웠다.

미니맵 상에는 지역표기가 있는 것도 아닌 탓에 대략적인 지형을 보고 지정을 해줘야 해서 자주 있는 실수였다.

‘너 지금 내가 멍청하다고 비꼰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너 까불다 사룡이처럼 고생 좀 해봐야 룡성 좋은 스컬이 되겠냐? 조심하자.’

-······.

간혹 좀 특이한 녀석들이 나오고는 하는데, ‘이천’이라 이름 붙은 스컬 드래곤도 그런 녀석일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동은… 아니 그냥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찾을 수 있지?’

-그거라면 어렵지 않다, 주인. 난 말 잘 듣는 이천이다.

성현은 미주 지역의 사람들을 구하게 되면, 이들을 보호해줄 보모역할로 스컬 드래곤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후의 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작정이었다.

“차량 행렬이다!”

스컬 드래곤과 심상으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드디어 지상에서 일단의 차량 행렬이 성현의 눈에 들어왔다.

불과 20여㎞ 떨어진 낮은 구릉지를 지나고 있었다.

약속한 이들이 맞는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되는 일이었다.

성현은 지상으로 가파르게 대각선을 그리며 활공하기 시작했고, 단숨에 차량의 선두행렬 상공 100m 지점에 가서 멈추어 섰다.

끼이이익!

지상의 수송차량들이 성현을 발견했는지 급히 멈추어 서자, 차량들이 뒤엉키며 일대 혼란이 발생했다.

그리고 뒤쪽의 차량에서 확성기를 통해 누군가 말을 했고, 성현은 그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 정말 빛의 전사는 쫌!”

확성기에서 연신 빛의 전사님, 빛의 전사님 하고 있어 낯이 뜨뜻해 졌다.

성현이 순식간에 뒤쪽 행렬로 날아가자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빛의 날개를 단 천사’,‘우리를 구원해줄 신의 전사’ 등등. 사람들은 이미 성현의 존재를 일부 알고 있는지 함성을 지르며 성현을 반겼다.

“정말! 빛의 날개를 단······.”

“쓰읍!”

성현이 뒤쪽에서 확성기를 가지고 자신을 찾던 이들의 앞으로 가자,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가진 소녀가 말을 걸어왔다.

다만 그 말을 중간에 자를 수밖에 없었고, 성현이 원하는 바를 모르지 않는지 급히 호칭을 수정했다.

“아! 사령관님.”

“네가 제시카니?”

“네. 제가 제시카에요. 드디어 뵙게 되었네요.”

“그래, 운이 좋았다. 나도 이리 만나 반갑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성현은 어쩌면 만남이 쉽지만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도와주세요!”

그런데,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큰 눈망울의 제시카가 성현에게 간절히 말했다.

성현은 제시카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 급히 정색했다.

“남겨진 일행이 있고, 더군다나 90만이 넘는 이들이 지금 위험하다?”

“네. 시간이 없어요.”

“알겠다. 급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하도록 하자. 아참, 조금 있으면 너와 일행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공에서 뭔가 나타나는 게 있을 텐데 겁내지 말고. 생긴 건 그래도 애들이 착해. 그럼 이따 보자.”

성현은 제시카가 말한 이들을 찾기 위해 이들이 지나온 도로를 타고 급히 북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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