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대격돌 (3)
불길하면서도 사특한 기운이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휘몰아쳤다.
그 기운은 점차 형태를 갖춰 붉은 안개가 되어 지상의 사람들을 덮치고 있었다.
모두에게 원초적인 공포가 밀려왔다.
두려움에 휩싸여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그저 목 놓아 신을 부르짖으며 울먹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리고 잠시 후, 처절한 비명이 지상에 울려 퍼졌다. 차라리 일찌감치 정신을 잃은 이들은 운이 좋은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극심한 고통에 사람들은 자해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눈뜨고는 보기 힘든 아비규환에 이르고 있었다.
스스로의 살을 후벼 파 피부가 벗겨져 선혈이 낭자하는가 하면, 한 움큼의 머리를 쥐어뜯어 생살이 함께 찢어졌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은 처참했고, 악다문 이는 부러져 잇몸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더욱 짙어져가는 붉은 안개에 사람들의 형체가 가려지자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비명은 잦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더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피처럼 붉은 안개가 하늘로 솟구치고 난 자리에는 방금 전까지 처절하게 몸부림치던 이들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 그대로 멈춰있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백색의 거무죽죽한 피부, 마르다 못해 뼈에 거죽만이 남아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퍼석. 푸스스.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육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콰쾅! 쾅!
하늘에서 인외의 존재들이 벌이는 전투가 시작되고 있었다.
빛이 번뜩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상의 땅거죽이 뒤집혔고, 지표면이 충격에 의해 터져나갔다.
가히 신들의 격전이라 할 만한 광경이었다.
꽈과광!
뇌전을 방불케 하는 전격의 파노라마가 수백 미터에 이르는 공간을 점하고 펼쳐졌다.
하늘은 온통 푸른 불꽃과 같은 뇌전의 잔흔들로 번뜩였다.
“배리어!”
안토니오를 중심으로 벌집모양의 강력한 방어막이 펼쳐졌다.
안토니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수 만년을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종족을 타락시키고 파멸로 이끌어 왔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대량의 수확을 통해 기존보다 수배는 강력한 권능과 힘을 얻었다.
어지간한 유희였다면, 지금의 힘으로도 마왕의 칭호를 얻고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만한 힘이라 할 수 있었다.
헌데 저급하다 생각하는 인간, 그것도 단 한 명에게 힘의 우위조차 점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 놀라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 * *
성현은 참담한 지상의 광경을 목도하고 주체하기 힘든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곳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으아아아!”
성현은 인간도 아닌 이계의 존재들을 상대로 터질 듯한 분노를 고스란히 쏟아 내고 있었다.
지상에서 백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처절한 고통을 호소하다 죽어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이르렀다면!’
왜! 매번 이런 광경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은 왜 항상 한 발 늦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분하고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북받치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원인을 제공한 놈들을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이계의 존재들에 대한 호기심이 컸지만, 말을 섞어볼 일말의 생각도 가질 수 없었다.
가진 바 능력을 모두 동원해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을 시작했다.
단숨에 놈들을 벌하고 죽은 이들의 넋이라도 위로하려는 생각뿐이었다.
푸슈슈슝! 츠파팡!
왼손의 레일건에서 물리력을 광(光)속성으로 변환한 공격이 전방을 향해 발사되었고, 오른손에 든 검에서는 수십 미터 길이의 뇌전으로 이루어진 번개 다발들이 공간을 가르며 날아갔다.
일본에서 처치한 인외의 존재들로 인해 그들이 물리력에 면역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처음부터 틈을 주지 않았다.
==============================
[속성 변환]
-물리 공격력을 3대 속성 중 하나로 변환.
-사용가능 속성: 광(光), 뇌(雷), 암(暗)
-격투계열, 육체 및 모든 무기 적용가능(활성/ 비활성)
==============================
‘광’과 ‘뇌’ 두 가지 속성으로 변환된 성현의 공격이 안토니오를 향해 날아갔다.
수십 줄기의 빛살들이 안토니오의 방어막을 두드려댔고, 빗발치는 성현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파창!
그중 하나의 빛이 안토니오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 안토니오의 신형을 그대로 관통했다.
==============================
[내성 4차 한계돌파]
[신성한 방어]
-내구성 500% 증가
-일정 확률로 공격대상 방어력 무시 5%
-격투계열, 육체적용 및 모든 무기 상시적용
==============================
내성 스텟의 급격한 증가는 4번에 걸쳐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진화한 스킬은 일정확률로 대상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게이머의 능력이 안토니오의 권능보다 상위의 능력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크윽. 마, 말도 안 되는…….”
안토니오의 왼쪽 어깨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관통상이 생겨나 있었다.
권능에 의해 만들어진 방어막이 깨진 것이 아니라 멀쩡한 상태로 종이 뚫리듯 뚫려버렸고, 본체가 타격당하고 말았다.
부릅뜬 눈의 안토니오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지만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전투에 이골이 난 마계의 군주답게 순식간에 성현의 공격권을 벗어났다. 충격은 있었지만, 치명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놈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
“고작 인간 놈에게…….”
산토스의 말에 안토니오는 이를 갈아댔다. 하등한 인간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밀렸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치욕적이었다.
앞서 아리스나 데니얼이 일신의 힘을 회복하기 전의 취약한 상태에서 당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힘을 합치자.”
산토스의 외침에 안토니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더는 한낱 인간으로 치부하면서 상대할 존재가 아님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회복!”
안토니오는 권능으로 이루어진 언령(言霊)의 힘을 발휘해 상처를 치유했다. 뻥 뚫린 어깨의 상처는 찰나의 순간 아물더니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회복되고 있었다.
쿠구구궁!
산토스가 성현에 대한 공세를 시작했다.
공기가 일그러지고 사방에서 어두운 기운이 넘실대며 나타났다.
실체가 없던 검은 기운들이 삽시간에 성현이 있던 공간을 에워쌌고, 거대한 구체로 변해버렸다.
성현은 비행하던 상태 그대로 검은 구체에 가둬지고 말았다.
“가라!”
산토스가 가공할 속도로 날아오는 성현을 붙잡아 두는 사이, 안토니오가 한손을 뻗어내며 권능을 발현했다.
직경 10미터에 달하는 검은 구체에 안토니오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흑색 검들이 떨어져 내렸다.
슈화화확!
창졸지간에 하늘 높은 곳에서 생성된 길이 5미터에 달하는 암흑의 검들이 빛살과 같이 성현이 가둬진 구체를 강타했다.
안토니오는 암흑의 검들이 구체를 찢고 들어가 인간의 영혼까지 찢어발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필멸!”
그와 동시에 산토스의 입에서도 또 한 번의 권능을 발현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꽈과과광!
암흑의 검들이 떨어져 내린 구체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림과 동시에 하늘은 온통 흑암의 불꽃들로 가득했다.
흑암의 불꽃들은 공격 대상의 영혼을 모두 불태우기 전에는 사그라지지 않는, 마계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권능의 불꽃.
산토스는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인 강자라 해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푸화확!
넘실대는 흑암의 불꽃을 뚫고 가공할 속도로 뭔가가 뛰쳐나왔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안토니오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카카칵! 스겅!
“크아아악!”
안토니오의 입에서 괴성이 뿜어져 나왔다.
무언가 덮쳐 온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방어막을 형성했지만, 이를 찢어발기고 안토니오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잘려진 단면에서는 피가 아닌 검은 기운들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아깝네.”
성현은 놈의 몸통까지 모두 잘라버릴 생각이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비틀어 놈이 피해버렸다.
아쉽게도 한쪽 팔만을 잘라 낼 수 있었다.
[상태이상 및 정신공격에 저항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 창을 보며, 전신에 붙어 있는 검은 불꽃들을 성현은 연신 털어냈다.
‘뭔가 한 방이 부족해.’
직접적인 공격스킬 하나가 성현은 정말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스킬들은 공격력 또는 방어력을 증가시켜주는 패시브 스킬들로, 절대적인 한 방이랄 수 있는 필살기 같은 스킬이 성현에게는 없었다.
액티브 스킬 자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위력과 효율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럼 평타로 어떻게든 극복할 수밖에. 그리고 이것들이 혹시라도 도망갈 수도 있으니까.’
성현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 공방을 주고받으며, 느낀 생각들을 정리하고 급히 캐릭터 창을 열었다.
놈들과 본격적으로 붙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 이거 뭐야?”
=========================
[박성현]
레벨: 73 (EXP 62.38%)
직업: 무기 전문가 [2차 전직]
계급: 국왕
근력 12 (+20,+443) → 475 ▲
민첩 9 (+20,+443) → 472 ▲
내성 9 (+20,+443) → 472 ▲
마력 5 (+20,+443) → 468 ▲
체력 14 (+20,+443) → 477 ▲
권위 732 (+20,+443) → 1,195 ▲
보너스 스텟: 144
=========================
상상도 하지 못한 폭업이었다.
레벨 업 메시지를 보기는 했지만, 61렙에서 무려 12레벨이나 올랐음은 정말 몰랐다.
세 놈 중 한 놈을 처리할 당시에는 극도의 흥분상태에 있었다. 지상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속된말로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중국 때와는 차원이 다른데?’
아리스라는 마계 군주를 처리했을 당시와는 달라도 급이 다른 경험치였다.
콰콰쾅!
“크윽.”
사고의 영역이 육체의 진화에 발맞추어 엄청난 가속이 가능한 성현이었다. 사실상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지만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 틈을 비집고 가해온 놈들의 공격에 직격된 성현은 아찔한 충격을 받아야만했다.
이번 공격은 앞서 공격보다 강력했고, 제대로 된 피해를 입고 있었다.
HP 수치가 단번에 92%에서 75%까지 급격하게 떨어져 내려갔다.
쿠쿠쿵!
그리고 일순간 지상으로 내리꽂힌 성현은 마치 운석과 같이 지표면을 강타했다.
그 결과 지름 40미터에 이르는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두둥!
“이건?”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두 마계의 군주는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눈앞에 나타난 마계의 언어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창.
[영지 ‘니들 이제 X 댄거야’ 영지에 영주민 신청이 가능합니다. 신청 하시겠습니까? (수락, 거부)]
“이럴 수가! 일종의 영역선포인가?”
“어찌 한낱 인간이 권역을 생성할 수 있는 거지?”
산토스와 안토니오가 광활한 영역에 거대한 결계가 생성되어졌음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