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69화 (169/176)

# 169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2)

제주로 긴급 귀환한 성현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임을 감안해 최대한 조용히 미국에 원조할 식량만 챙겨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캔자스는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제주는 이제 새벽 4시를 갓 지나고 있었다.

청사로 향한 성현은 마침 당직사령으로 있던 조만호 중령을 만날 수 있었다.

대대장 이상은 당직사령에서 열외 되었지만, 조만호는 자진해서 당직사령을 맡아 성현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전일 미국으로 떠났던 성현이 위성통신이 원활하지 못해 소식이 끊어진 상태에 있었고, 방금 전에도 통신병을 닦달하고 오던 차였다.

성현의 복귀 소식을 전달받은 조만호는 한달음에 달려와 성현을 반겼다.

그리고 짧게나마 상황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남은 이야기는 다녀와서 하도록 하자.”

성현은 시간관계상 조만호 중령에게 대략적인 상황만을 알려주고, 일을 서둘렀다.

“그럼 지금 바로 떠나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그쪽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각부 장관들을 바로 호출해서…….”

“아아,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어. 당장은 제9부두에 있는 경비조 애들한테나 놀라지 않도록 말해놔. 대충 아침 9시 전후로 왕복이 가능 할 거다. 그때 전체 회의 할 수 있도록 소집이나 해둬.”

“넵. 조치해 두겠습니다. 저 근데, 연구소에 먼저 들려보셔야 할 듯합니다만.”

“왜? 무슨 일 있어?”

“다름이 아니라 과학기술부 정우현 장관님과 손 비서관께서 아직 연구소에 남아 계십니다. 사령관님께서 복귀하시면 시간에 구애치 말고 최대한 빨리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마.”

성현은 아무래도 친구 정한의 각성 능력 때문일 것이라 짐작하고, 청사를 나서 곧장 연구소로 향했다.

*      *      *

‘별들의 전쟁’ 게임에 사용되는 주요 자원인 ‘데미칼 광석’과 ‘베린 가스’를 찾기 위해 정한과 정우현 박사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만 높아지고 있었다.

‘데미칼 광석’은 스스로 발광하는 보랏빛의 광물로서 탄소강의 수백 배에 달하는 강도를 가진 것으로 게임 상에 묘사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베린 가스’는 일종의 연료로 천연가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고인화성 가스였다.

현대에 이르러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이 두 자원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바였지만, 두 사람은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랄 수 있는 일을 이대로 놓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해가 지고 저녁이 다다르도록 작은 단서조차 발견하지 못한 그때, 정한에게 어떤 변화의 조짐이 발생했다.

성현이 정한을 각성시키고 정확히 12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게 정말 그 일꾼이라고?”

성현이 연구소에 도착해 친구 정한과 정우현 박사를 만난 직후, 이 둘은 다짜고짜 성현을 연구소의 한 대형 창고로 안내했다.

그리고 성현은 한 거대한 로봇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나도 깜짝 놀랐다. 특성을 각성하고 정확히 12시간이 지났을 때였는데, 글쎄 워커 1기를 생산 완료했다는 메시지가 뜨는 거 아니겠냐.”

정한이 말한 워커는 ‘별들의 전쟁’의 3대 종족 중 ‘미래인간종족’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일꾼인 ‘Omnipotence Workman’의 준말이었다.

공격능력은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게임 상에서 자원채굴을 비롯해 각종 생산시설을 만들고 거기다 대형에 속하는 병기에는 반드시 탑승시켜야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유닛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연구소 안에서 생산된 일꾼을 받으려고 하니까 공간이 비좁다는 메시지가 또 뜨는 거 아니겠냐. 그래서 어쩌다 보니 이곳 창고에 이 녀석을 보관하게 됐다.”

성현은 정한의 말을 들으면서 눈앞에 있는 거대한 기계로봇, 워커를 살펴봤다.

체고가 4미터에 육박하는 두터운 외장갑을 두르고 있는 워커는 창고의 콘크리트 바닥이 부서질 정도로 육중한 중량을 가지고 있었다.

성현이 가볍게 두드려 보니 그 강도 또한 일반적인 강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그리고 이런 워커를 12시간에 한 기씩, 총 5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그래? 그럼 이제 생산설비를 만들 수 있게 된 거야?”

“하아-. 그건, 너도 알다시피 게임에서 자원이 필요했듯 현실에서도 동일한 자원들이 필요하다.”

“그럼 이 녀석으로 자원을 먼저 캐야 한다는 건데… 무슨 문제가 있구나.”

“그래, 일단 너도 직접 보는 게 좋지 싶다. 잠시 기다려 봐. 워커!”

정한은 성현에게 잠시 지켜보라는 말을 하고, 눈앞에 있는 거대 로봇 워커에게 지시를 내렸다.

“데미칼 광석 채굴을 시작해라.”

기이이잉!

정한의 명령과 동시에 인간과 유사한 형상으로 만들어진 워커의 메인 엔진이 기동을 시작하면서 특유의 소음이 발생했다.

[채굴에 필요한 자원을 스캔합니다.]

저음의 묵직한 목소리가 워커에게서 울려 퍼졌다. 부자연스러움이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음색은 마치 사람이 워커 안에 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번쩍이는 빛과 함께 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파장이 워커에게서 발생했다.

[자원 탐색 중…….]

워커는 명령 수행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성현은 정한의 말대로 잠시 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3분 여가 흘렀다.

[거리 44억 5,963만 1,496㎞, 채굴 가능한 자원 발견. 자력 이동 불가. 자원 채굴이 불가능합니다.]

“뭐? 44억 킬로미터? 이게 무슨 말이야?”

성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한을 바라보자 정한은 정우현 박사를 쳐다봤다.

“사령관님, 이 부분은 제가 설명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네, 박사님. 말씀하십시오.”

“사령관님. 여러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지구에는 ‘데미칼 광석’과 ‘베린 가스’가 없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성현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티끌만한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확률이 제로에 가깝게 수렴된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정한이 실패한다 해도 성현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랐다.

각성부여와 더불어 능력을 공유 받는 성현은 기존의 게이머의 능력과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가지게 되어 있었고, 어쩌면 대체자원으로서 골드로 모든 게 해결될 수도 있었다.

성현은 잠시 떠오른 상념을 지우고 계속해서 정우현 박사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우리 지구에는 없지만, 데미칼 광석과 베린 가스는 실존한다고 보입니다. 워커의 스캔 결과는 믿을 수 없게도 저희가 속한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인 해왕성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구와의 거리는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워커가 말한 44억 5,963만㎞ 거리에는 스캔할 당시 정확히 해왕성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44억 킬로미터라는 천문학적인 거리에 위치한 행성, 현재의 지구 과학으로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그보다 우주선 발사 시도라도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하나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느꼈는지 성현은 눈앞이 캄캄했다.

“현재 지구의 과학기술보다 월등한 기술로 만들어진 워커를 기반으로 연구를 한다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저희에게는 그 시간이 부족합니다.”

정우현 박사는 어두운 신색으로 힘겹게 말했다.

“……사실상 채굴은 불가능합니다만.”

그리고 무슨 말을 더하려 했지만,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 어떤 방법이 있는 겁니까?”

“터무니없고, 미친 소리로 들리실지 모르지만, 사령관님이라면 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힘겹게 꺼낸 정우현 박사의 말에 성현은 의문으로 가득 찼다.

자신도 모르는 어떤 능력을 정우현 박사가 알고 저러는 건 아닐 텐데,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방법이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우주공간에서 만들어진 추력은 계속해서 가속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실 겁니다. 사령관님은 현재 인류가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추진기관보다도 빠르고 월등한 속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조건만 충족된다면 사령관님이 직접 해왕성에 가실수도 있을 걸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너무도 위험하고 가능성이 희박해서…….”

“박사님, 뭐든 좋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어차피 성현은 하루에 2번 죽음을 피할 방법이 있었다. 어떤 위험한 방법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자신과 인류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길이 된다면

“구체적인 방법은 지금부터 찾아야 하겠지만, 수학적으로는 분명 가능합니다. 그것은…….”

*     *     *

성현은 연구소를 나와서, 제주항 제9부두로 향했다.

이제는 미국에서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이들에게 나눠줄 양식을 가져가야 했다.

창고의 넘버를 확인한 성현은 높이 7m에 달하는 대형 슬라이더 도어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50㎏짜리 포대에 가득 찬 밀가루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잔뜩 들어차 있었다.

“한 칸에 대략 500톤이니까, 일단 밀가루부터 챙기고 다른 것도 챙기면 되겠다.”

성현의 창고는 같은 동일한 물건에 한해서 9,999개를 중복해 수납이 가능했고, 밀가루 50㎏짜리 포대의 경우에는 한 칸에 499,950㎏, 모두 500톤(t)에 가까운 양을 넣을 수가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밀가루 외에도 다른 곡물과 게이머의 능력으로 사육되고 동일한 모양으로 도축된 육류도 별도로 챙긴 후 창고에서 나설 즈음, 제주에도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좀 지체됐네. 서두르자.”

땅을 박차고 상공으로 도약한 순간, 성현의 등 뒤로 거대한 빛의 날개가 폭발적으로 튀어 나왔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비행인지라, 찰나의 순간 음속을 돌파해 강력한 소닉붐을 발산하며 성현의 신형은 어느덧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다.

1시간에 가까운 비행 끝에 성현은 다시금 미 중부 캔자스에 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로 인해 바로 식량을 전달하고 돌아가는 게 어려운 상태였다.

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장소는 황무지에 가까웠고, 어디에도 식량을 안정적으로 저장해 보관할 장소가 있지 않았다.

“괜찮으시다면, 위치토시 중앙에 위치한 프라이스 우더드 공원과 인접한 돔 구장으로 보내 주시면 저희가 분류해서 따로 옮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성현이 상당한 식량을 가지고 올 것이라 전달받은 콜트 중령은 그것이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인지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그 말을 신뢰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제시카, 페일 등과 의논해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깝고 번화한 위치토시를 거점화해서, 미 전역에 대한 탈환의 전초기지로 삼기로 했다.

캔자스가 미 중앙에 위치한 덕분에 동부든 서부든 지리적으로도 상당한 이점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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