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70화 (170/176)

# 170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3)

미 중부에 대량의 식량을 전달한 성현은 오전 8시가 조금 지나서야 제주에 돌아올 수 있었다.

9시 회의까지는 30여분 정도 남은 터라 성현은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빠~!”

때마침 해미가 성현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은 잘 다녀오셨어요?”

“그래, 다행히 마무리는 그런대로 잘 됐다. 줄리는 어린이집 갔어?”

“네, 데려다 주고 오는 길이에요. 근데 아침 회의 전에 저 좀 보자고 하셨다던데 무슨 일이에요?”

“흐음, 일단 좀 앉아서 이야기 하자.”

성현은 오늘 회의에서 모든 걸 이야기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전에 한 명에게만큼은 먼저 들려줘야 한다 생각했고, 조만호 중령에게 지시를 해뒀었다.

그래서 지금 해미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해미야, 오빠 믿지?”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당연하죠. 그걸 말이라고…….”

성현의 말에 해미는 살짝 고개를 내리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순간 해미의 볼이 상기되는 건 성현이 하고자 하는 말의 방향을 잘못 해석한 탓이었다.

“그래, 고맙다. 우선 놀라지 말고 들어줬으면 해.”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에 해미가 앉은 자세를 바로 하며 성현의 말에 집중했다.

“최근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사실 이 지진은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알리는 전조에 불과해…….”

“네에? 그럼 큰 지진이나 화산이라도 폭발하나요?”

해미가 유추한 것들은 일반적인 상식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바였다.

딴에는 해미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한 말이지만, 성현에게서 들을 말은 그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상상을 불허하는 일이었다.

“지구가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해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성현의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겨 혹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봤지만, 성현의 굳은 표정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그럼에도 의외로 침착한 해미는 크게 요란법석을 떨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성현에게 되물었다.

“지… 지구가 없어져요?”

“아무래도 극초신성의 여파가 어떤 식으로든 지구에도 큰 영향을 줬을 거라 생각된다.”

예상보다 해미가 침착한 탓에 성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빠… 그럼 우린 어떡해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만, 방법이 없지만은 않다. 내게 방법이 있어. 내가 반드시 모두를 지켜 낼 거다.”

해미는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성현은 해미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성현의 온기를 느끼며 해미는 차츰 안정되어 갔다.

둘 사이의 거리는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해미는 성현을 바라보며 서서히 평상심을 되찾았고, 예의 해맑은 미소를 띠었다.

“오빠가 어떻게든 해주실 거잖아요. 전 오빠를 믿어요.”

어쩌면 부담이 되는 말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성현에게는 힘이 되는 말이었다.

*     *     *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현의 폭탄 발언이 있었다.

모두가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적막이 흘렀다.

이어 정우현 박사의 부연 설명에 모두 아연실색해 하며, 이것이 현실임을 깨달았다. 종말, 멸망 등등 장내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온갖 부정적인 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두의 시선이 성현에게 고정되었다.

사령관이라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준 성현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서린 눈들이었다.

“현재까지는 두 가지 방법을 찾아낸 상태입니다.”

성현의 말에 모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사령관에게 방법이 있었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수단을 통해서인지 따위에 대해선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지만, 이들에게 성현은 이미 그런 존재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있다고 하면 있는 거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게 되는 수준의, 맹목에 가까운 신뢰였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둘 모두 진행할 생각입니다. 반드시 제주의 모든 사람들을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가능한 많이,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합니다. 최종목표는 인류전체를 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회의는 계속 진행되었다.

정오를 넘긴 시각까지 진행되던 회의는 이내 끝이 났고, 그때부터는 각 부서별 장관 주재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발생할 주민들의 혼란을 방지하고, 차츰 강도를 더해갈 천재지변에 대비해야했다.

*     *     *

지구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주는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은 이들이 태반에 가까웠지만, 수차례 강진과 더불어 늦가을에 접어들었음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이상기온현상이 지속되자 더는 거짓으로 치부하지 못했다.

제주에 없던 강력범죄가 이때부터 차츰 발생하기 시작하더니, 살인사건까지 발생해 모두를 긴장시켰다.

‘내일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과 같은 일을 실천하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장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본능에 가깝게 행동했고, 앞서 극초신성 사태보다 심각한 사회불안이 제주에 나타났다.

성현은 이 같은 일들이 도를 넘었다 생각해, 강력한 치안유지 활동을 군에 지시하기에 이르렀고, 자신도 나서 수시로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이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혼란은 점차 수그러 들어갔다.

그리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왜애애애앵!

제주 전역에서 긴급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여보! 서둘러. 그건 그냥 버리고 가.”

“하지만…….”

“들고 가봐야 짐만 돼. 어서 나와!”

어느 집이나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었다. 미리 싸둔 짐을 등에 메고, 아이를 품에 안은 사람들이 거리를 달렸다.

몸이 불편한 노약자들은 대기 중인 대형 버스에 올라탔고, 제주 전역에는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결! 제4차 훈련은 3시간 49분 만에 완료 되었습니다.”

성현의 지시로 시작된 훈련은 주 1회에 무작위로 시행되었고, 오늘로 4번째 훈련이 있었다.

이미 종말이 예견된 지구.

언제 어느 때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다.

성현은 그 때가 오면 준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차원포탈을 열 수밖에 없다 여겼고, 그 상황에 맞게 예비훈련을 하도록 했다.

“불참 인원은?”

“비상근무자 외 최종 1,655명이 훈련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271명은 제외 대상자입니다.”

“제외 대상자 외에는 모두 확인하고, 무슨 문제로 참여하지 않았는지 면밀히 파악해. 훈련이지만, 훈련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도록 계속해서 주민들에게 주지시키는 게 중요하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제외 대상자는 지구가 멸망할지언정 떠날 생각이 없는 이들을 지칭했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남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그 인원은 271명에 달했다.

이들은 연인 또는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삶의 의지를 꺾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노인들 중 일부분이 열외자 명단에 올랐다.

수시로 사람을 보내어 설득을 하고는 있지만, 그 뜻을 접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훈련 상황이 해제되자, 성현은 연구소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주 기다리던 기체가 완성되어 테스트를 성공리에 마치고, 드디어 오늘 발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우주비행을 위한 훈련이 성현에게도 필요했지만, 일반인의 범주로는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터라 훈련은 무의미했다.

성현은 우주선에 탑재될 시스템 통제 방법과 운행에 필요한 제반 교육을 3주간 강도 높게 배우며 이를 준비했다.

“엔진 체크 시작하겠습니다!”

-메인 엔진 이상무! 서브 엔진 1호, 2호, 3호 모두 정상이다.

“내부 시스템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두 안정적이다.

“알겠습니다. 발사 카운트다운 시작해 주십시오!”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장에 높이가 24미터에 이르는, 형태가 다소 특이한 발사체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분리형태의 추진체가 없는 일체형의 발사체였다.

이 발사체의 머리 부분에 있는 조종실에 지금 성현이 탑승해 있었는데, 조금 뜻밖의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조종실은 여타의 우주선들처럼 각종 기기들로 가득했지만, 그와는 달리 조종석이라 할 수 있는 의자가 없었다.

대신 성현의 상반신을 본뜬 특이한 캡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발사체는 성현의 비행능력과 속도를 견디기 위해 설계되어, 전체가 마정석을 이용한 견고한 신소재로 이루어져있었다.

거기다 성현의 힘을 발사체 전체로 골고루 분산해 추력을 낼 수 있도록 내구성을 높였다.

플라즈마 엔진으로 만들어진 메인엔진과 서브엔진은 성현을 보조할 뿐 주동력원이라 할 수 없었다.

“알겠다. 카운트다운 시작하겠다. 5, 4, 3, 2, 1.”

일체의 소음도 진동도 없는 가운데 이루어진 발사였다.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성현은 서서히 발사체를 띄우기 시작했다.

투쾅, 투쾅

발사체와 연결된 두 개의 파이프가 떨어져 나가며, 중량이 124톤(t)에 이르는 육중한 발사체가 서서히 상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도 상승 중 300, 500, 1000… 현재 기체 상태 양호! 이상 없음. 3분 11초 후 대기권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모두 좋은 소식 가져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사령관님, 정기 통신 때 뵙겠습니다. 운전 조심하십시오.”

-하하. 그래, 알겠다.

*     *     *

막 대기권을 벗어난 성현은 전면에 설치된 디바이스를 터치했다.

스페이스 맵이 펼쳐지고 현재 진행방향과 속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도착할 때 해왕성이 지나는 궤도가 표시되고 있었다.

“다행히 잘 작동하네.”

자신의 비행능력을 메인추력으로 삼고 있지만, 디테일한 조종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보조 엔진으로 삼은 3개의 플라즈마 엔진들이 초당 4만8천 번에 이르는 슈퍼컴퓨터의 계산에 따라 미세한 방향전환을 실시간으로 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째 되는 날까지 성현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최대 속도로 가속시키고 있었다.

[944 km/s]

이미 속도는 초당 944 킬로미터, 초당 1천 킬로미터까지도 얼마 있지 않으면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가속되어 있었다.

이 속도라면 100일은 더 걸려야 해왕성에 도착할 테지만 추력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었다.

“조금 쉬어야겠다.”

지구를 출발해 지금까지 단 1초도 쉬지 않은 성현은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인 피로가 밀려왔다.

성현은 자동비행 모드를 선택하고 메인 엔진을 가동했다. 쉬는 동안 메인엔진이 추력을 계속해서 더 높이는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답답한 캡슐에서 벗어나 성현은 발사체 중앙에 있는 침실 겸 휴식공간으로 향했다.

삐빅삐빅.

성현은 간단한 요기를 하고 잠시 쉬고 있다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정기통신을 알리는 알람소리였다.

-여기는 나로우주센터. 사령관님, 들리십니까?

“잘 들린다.”

성현이 대답하고 약 30여 초 이상이 흘러서야 다시금 통신이 재개되었다.

-통신 딜레이 발생에 따른 지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답이 늦은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재 위치와 선체의 이상 유무를 알려주십시오.

“현재 지구에서 약 1억 8,870만 킬로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다. 아직까지 아무런 이상 없이 운행 중이다.”

성현은 스페이스 맵에 표시된 숫자를 읽으며 답했다. 이는 지구와 화성 사이의 거의 중간에 이르는 위치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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