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멸망으로 치닫는 지구(1)
“작아.”
티끌처럼 보일 정도로 작은 지구.
성현은 우주선의 창문을 통해 자신이 떠나온 지구 방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모두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야 된다.”
우주선은 화성궤도를 지나 순조로운 우주 비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성현의 속은 점차 타들어 가고 있었다.
지구가 아직은 잘 버텨 주고 있고, 남은 시간이 충분할 것으로 짐작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휴우~.”
성현이 지구에 있다 한들 불가항력인 천재지변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테지만, 그렇다 해도 곁을 지키고 있는 것과 떨어져 있는 것은 천지 차이라 할 수 있었다.
통신이라도 원활했다면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구와의 통신 또한 점차 힘들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교신을 주고받는 주기는 지구시간으로 해서 8시간 간격으로 아직 일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통신 딜레이가 1시간을 넘어서고 있어 서로 주고받는 문답은 어려운 지경이었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 이를 알린다 해도 이미 1시간도 전의 일인 바,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현재의 통신은 필요한 정보만을 취합해 주고받는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고, 성현도 기체의 결함이라든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질문은 가급적 자제하고 있었다.
“이것도 만능은 아니네.”
스컬 드래곤들과 심상을 통한 대화도 시도해 봤지만, 화성 부근을 지난 시점부터는 이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모두 힘껏 애써주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모든 부분에 있어 상세한 보고는 받는 게 불가능했지만 대략적인 보고는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성현이 떠나온 지구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제주는 지구에 닥칠 절망적인 사태에 대비해 성현의 지시에 따라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었고, 미국의 제시카와 그녀의 동료들은 유니온을 상대로 연일 승전보를 전해오고 있었다.
큰 피해 없이 현재는 중부지역을 완전히 탈환함은 물론, 그 여세를 몰아 동부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물론 성현이 지원해준 스컬 드래곤의 힘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었다.
중국은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동부 해안으로 집결시키고 있었고, 일본은 도쿄를 중심으로 생존자들을 모아 그곳에 잔류토록 했다.
또한 지구 전역에 흩어져 좀비와 구울들을 사냥중인 스컬 드래곤들은 제주의 군위원회와 연계해 생존자들을 찾고 있었고, 유럽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겠지.”
성현은 창고에서 꺼낸 차원의 파편을 손에 들었다.
마계의 군주 산토스와 ‘맹약의 신서’라는 절대 법칙에 의해 서로 주고받는 거래를 했고, 결국 차원 포탈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회용에 지나지 않았다.
“비열한 새끼.”
마정석으로 말미암아 차원의 파편을 충전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한 번 사용된 차원의 파편은 새겨진 좌표가 남아있지 않았다.
한 번 열게 되면 두 번 다시 같은 좌표로 열 수 있는 방법이 성현에게는 없었다.
사전에 이런 사실을 몰랐던 성현은 계약이 완료되고서야 이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비릿하게 웃는 낯짝으로 산토스가 미처 놓친 것이 있다는 듯 알려 주었다. 성현을 당장엔 힘으로는 대적키 힘드니 정신승리라도 이루려는 놈의 수작이었다.
당장 놈을 요절내고 싶은 심정의 성현이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놈에 대한 살심을 키울수록 극심한 무력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맹약의 신서’라는 절대적인 계약에 묶인 성현은 계약의 당사자들 간에 어떠한 위해 행위도 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당시에는 두 손 놓고 놈을 보내줘야만 했다.
어떤 협잡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으로 갈 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또 어떤 수작질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차원 포탈을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다른 방법을 찾고 그것이 여의치 않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이 위기만 벗어나면 반드시 다시 보게 될 거다.”
성현이 가진 차원의 파편은 모두 두 개였고, 그 중 하나에 마계로 통하는 포탈을 열 수 있는 좌표가 새겨져 있었다.
어떤 식으로 필요로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약을 통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를 마련해 두었다.
“언젠가는.”
놈의 말대로 지구와는 달리 본래의 차원에서 산토스가 전지전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면, 제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다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계급이 국왕을 넘어 황제에 이르고, 거기다 또 다른 게이머의 능력을 추가로 얻게 된다면 한 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우선이었다.
* * *
쿠구구구궁!
북위 41˚01´, 동경 128˚05´.
북한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성의 경계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최소 진도 8 이상은 될 법한 초강력 지진이었다.
지반이 붕괴되면서 폭이 수십 미터, 깊이는 추정조차 쉽지 않은 크랙들이 지상을 할퀴듯 나타났다.
그리고…….
콰콰쾅! 콰쾅!
한민족의 영산이라 불리는 백두산이 대폭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사화산이 아닌 휴화산이었던 백두산은 분화주기가 큰 것은 1천년, 작은 주기는 1백년, 세부주기는 12년~13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세 주기가 합일되는 시점에 대폭발이 일어난다는 학설이 유력시되고 있었다.
학계에서는 백두산이 분화할 확률을 2019년 68%, 2032년 99%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연구결과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폭발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마그마가 조면암질과 유문암질로 진화되어 용암분출이 없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백두산은 시뻘건 불기둥을 수 킬로미터 이상 상공으로 뿜어냈다.
백두산 천지에 있던 20억 톤(t)에 달하는 물이 터져 나오던 마그마를 냉각수축 시켰고, 이때 막대한 양의 부석을 형성하면서 더욱 강력한 폭발을 발했다.
마그마에 들어있던 화산가스가 고도로 압축된 상태에서 분출되어, 분연주가 성층권 높이까지 순식간에 치솟아 올라갔다.
그리고 제트기류를 따라 동쪽으로, 그리고 일부 화산재들은 대기권 내에서 계절풍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 * *
성현이 해왕성을 향해 우주로 떠난 직후, 제주는 긴급 사태를 선포하고 대부분의 사회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다.
사회활동이 중단되었다고는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은 가능했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성현이 떠나고 30여 일이 지난 때였다.
“터졌습니다!”
한 연구원이 가쁨 숨을 몰아쉬며 정우현 과학기술부 장관을 찾았고, 두서없이 말했다.
“백두산이 드디어 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쿠쿠쿵.
정우현 장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집중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진동이 보고와 동시에 전신을 강타했다.
제주에서 백두산까지는 대략 1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지만, 그 강력한 폭발은 제주에서조차 생생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미 예측하고 있었지만, 최대한 늦어지길 빌었던 일이었다.
“규모는!”
“최소 8 이상으로 파악됩니다.”
“당장 긴급회의를 소집해 주게.”
화산폭발의 직접적인 피해가 제주에 미치지는 못할 테지만, 계절풍을 타고 남하할 화산재가 문제라 할 수 있었다.
화산재는 지면에 1㎜ 이상만 쌓여도 교통을 마비시키는 것은 물론, 자동차 헤드라이트도 떨어지는 화산재를 관통하지 못해 시야확보조차 힘들게 만든다.
또한 공기 중의 화산재가 여과기를 통해 엔진으로 들어가면 작동을 멈출 수도 있었고, 그야말로 거의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사용이 불가능해 진다.
송전선에 누전을 일으켜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게 할 수도 있었고, 인체에 들어가게 되면 규폐증 등 직접적인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인명피해도 발생할 터였다.
긴급히 소집된 회의장에 내정위원회를 비롯한 군위원회 소속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채 30여 분이 되지 않아 대부분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이미 모두 소식을 들으셨다시피, 금일 14시 17분경에 백두산이 분화했습니다.”
순간 정우현 과학기술부 장관의 발언으로 장내가 어수선해졌지만, 모두 사안의 중차대함을 잘 알고 있었고, 별도의 제지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내 웅성거림은 잦아들었다.
“우선 직접적인 피해는 없겠지만, 화산재로 인한 2차적인 피해가 클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금 시간으로부터 15시간 안에 계절풍을 타고 화산재가 제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준비상황은 어떻습니까?”
“네, 준비는 하고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지만, 모든 준비가 완벽하지는 못했다.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는 없다.
“우선…….”
회의는 지속되었고, 몇 가지 사안을 가지고 설왕설래했지만, 어렵지 않게 의견합일을 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5시간이 흐르기 전에 제주의 하늘은 잿빛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 * *
제주에는 3㎜에 달하는 화산재가 전역을 뒤덮었다.
뿌연 시야로 인해 가시거리는 20여 미터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외부 활동이 강제적인 여건으로 중단된 상태였고, 소수의 인력만이 구호물품들을 각 가구에 전달하기위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입니까?”
성현이 지구를 떠난 지 58일째 되는 날의 정기 교신을 마지막으로 24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교신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해왕성에서 70만㎞까지 접근한 이후 해왕성 대기권으로 진입한다는 소식을 끝으로 아직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해왕성에는 1,000기압에 육박하는 대기와 메테인 바다가 펼쳐진 망망대해가 존재했다.
또 초속 수백 미터 이상의 태풍과 번개가 끊임없이 쳐대고 있는 무지막지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평균기온은 -200도에 달해 극악의 조건을 가진 행성이었다.
“사령관님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백두산 폭발과 더불어 차츰 강도를 더해가는 지진들로 인해 제주도는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있었다.
어쩌면 제주의 상황은 그나마 좋을지도 몰랐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사상자가 20여 만 명에 달하고 있었고, 중국도 큰 피해를 입기는 매한가지였다.
쿠르르릉!
“진도 6! 진원지는 제주 동북쪽 84㎞, 해일 피해가 우려됩니다.”
성현의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는 와중에도 크고 작은 지진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미 해안에 있던 모든 주민들과 군부대가 철수한 상태에 있었고, 그나마도 내지로 모두 피신한 상태에 있었다.
“부디 늦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