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멸망으로 치닫는 지구(2)
해왕성은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면서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이 되었다.
지구에서 육안으로는 관측할 수 없는 해왕성은 1일의 기준이 지구시간으로 16시간, 태양주위를 약 23.5㎞/s의 속도로 약 163.7년에 한 바퀴씩 돌고 있었다.
“대단히 아름다워.”
짙푸른 색으로 뒤덮여 있는 해왕성을 바라보던 성현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튀어 나왔다.
해왕성은 메탄과 암모니아의 얼음이 이온화되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두꺼운 대기층이 태양빛을 반사하며 육안으로는 그저 아름다운 행성으로 보이고 있었다.
“보이는 게 다는 아냐.”
다만, 해왕성 내부는 햇빛을 전혀 관측할 수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대낮이라 해도 완전한 암흑만이 존재했다.
더군다나 상륙할 육지 따위는 그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 곳이었고, 이는 인간에게 상당히 공포스러운 환경이랄 수 있었다.
“저게 그건가?”
35만㎞ 떨어진 우주에서 바라본 해왕성의 적도 부근에는 거대한 대흑반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왕성 특유의 기상현상에 의해 생겨난 커다란 대흑반은 일종의 소용돌이로, 풍속이 2400㎞/h에 달해 지구의 초강력 태풍의 10배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쉽지는 않겠군.”
우주선을 해왕성으로 진입시켜야하는 성현은 사뭇 긴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평균기온 영하 200도를 넘나드는 미지의 행성.
수소와 헬륨으로 가득 찬 대기와 질척이는 메탄으로 이뤄진 얼음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
“아직 이틀은 더 기다려야 하는데…….”
친구 정한에게 각성 부여를 한 지 97일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정한이 각성한 ‘별들의 전쟁’의 게이머의 능력을 공유 받지 않는 상태라면 해왕성에 진입한다 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제기랄…….”
전해들은 현재 지구의 상황은 녹록치 못했다.
특히 화산 폭발로 인한 다량의 화산가스(아황산가스)가 성층권으로 분출되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태양빛을 가로막아 기온이 급강하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평상시 2월의 한반도 평균기온이 0도 내외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제주의 평균기온이 영하 20도~25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직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시일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했다.
성현은 조바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지구가 폭발하지 않더라도 인류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 * *
[동기화 완료]
드디어 성현이 기다리던 시간이 도래했다.
“됐다!”
성현은 메시지 알림이 나타나는 즉시 변화된 인터페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데미칼 광석 : 0]
[베린 가스 : 0]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은 시야의 상단에 자원량을 표시하는 두 가지였다.
그리고 좀 더 세분화된 스킬창을 열고, ‘별들의 전쟁’과 관련해 추가된 능력들을 살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제발…….”
성현은 어렵지 않게 새로이 추가된 능력들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지금까지 유용하게 쓰여 왔던 골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더군다나 생산시설이나 만들 수 있는 유닛들은 오직 ‘데미칼 광석’과 ‘베린 가스’를 필요로 했고, 그것도 성현이 필요로 하는 상위 시설들과 유닛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초시설들이며, 제반시설들이 반드시 선행해서 만들어져야만 하는 락(lock)이 걸려있었다.
“한시가 급한 마당에.”
지금까지 치트에 가깝도록 유용하게 사용되어온 골드가 ‘별들의 전쟁’에서 그 쓰임이 없다는 건 너무도 큰 리스크였다.
또한 정한과 마찬가지로 ‘워크 맨’ 일꾼은 12시간에 한 기만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최소한 12시간은 더 기다려야 겨우 한 기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임 상에서 12시간은 사실상 1시간이 초단위에 가깝도록 빠르게 흘러가지만, 현실적용은 그대로 되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언제 다 만들 수 있으려나…….”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광속 비행하며, 외계 종족과의 전투를 가정한 게임이니 만큼 그 스케일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게임 상에서는 수십만 단위의 워크맨을 활용해 자원을 채굴하고, 전투 선단을 활용해 우주에서 가공할 화력을 가진 전투함들로 전쟁을 하는 스토리를 가진 ‘별들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미미했다.
“우선은 커맨드 센터다. 대량의 워크맨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이 먼저야.”
성현은 게임에서 가장 선행해서 만들 시설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치트를 사용할 수 없다면 가장 정석적인 플레이를 토대로 현실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 * *
연일 계속되는 한파에 제주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기온은 끝을 모르고 떨어져 내렸다.
더욱이 화산재를 머금은 눈들로 인해 지척에 있는 곳조차 이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둘러 오늘 안에 20번 보급창까지 물건을 전달해야 한다.”
수백이 넘는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터운 방한복에 산소마스크를 쓴 대원들은 영하 20도가 넘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연신 땀을 흘리며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컨테이너를 옮겨 주십시오.”
하나의 컨테이너를 모두 채우자 인근에 있던 상급자로 보이는 이가 상공을 향해 수신호와 함께 말했다.
-지금 내려가겠다.
이상기온과 더불어 대기의 질이 극도로 나빠졌지만, 다행이 스컬 드래곤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이미 지상의 교통수단은 모두 마비가 된 상태인 터라, 수송수단은 전적으로 스컬 드래곤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7번 구역으로 이동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다, 인간.
각종 생필품과 식자재들이 실린 대형 컨테이너는 제주 각지에 만들어진 보급창으로 이동되어 갔고, 그곳에서 또다시 군에 의해 주민들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제주도청의 대회의실.
최동원을 비롯한 각 위원회 소속 인사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영하 29도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일일 평균 0.4도씩 하강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청의 실내 회의장임에도 정우현 과학기술부 장관의 입에서는 허연 입김이 뿜어지고 있었다.
이곳조차 제대로 된 난방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으니, 현재 제주의 상황이 얼마나 좋지 못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순 지진들로 인한 피해는 미미한 실정이지만, 이 상태로 기온이 하강한다면 난방이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가구가 위험합니다. 주민들이 동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두가 침음을 발하며 말문을 닫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처지도 일반 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탓에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는 상태였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습니까?”
“20일을 한계로 보고 있습니다.”
고작 20일, 시간으로는 480시간을 생존가능 시한으로 보고 있었다.
개개인별 격차는 존재하겠지만, 큰 틀에서 차이는 없을 터였다.
“어떻게든 이겨내야 합니다. 틀림없이 사령관께서 방법을 찾아 돌아오실 겁니다.”
“이미 지구를 떠난 지 120여 일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는 건…….”
최동원이 희망을 잃지 않고 모두에게 힘낼 것을 당부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을 절망적으로 보고 있었다.
“아니, 그렇기에 우린 더욱 악착같이 버텨내야만 합니다. 만약 가능성이 없다면 어떻게든 사령관께서는 돌아오셨을 겁니다.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다는 건 틀림없이 무언가 방법을 찾았다는 말과 진배없습니다. 믿고 버텨야 합니다!”
최동원이 모두를 돌아보며 다그치듯 말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희망조차 잃어버린다면, 20여 일을 생존하는 것조차 힘에 붙일 터였다.
최동원은 믿고 있었다.
성현이라면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모두가 기다리는 지구로 돌아올 것임을.
그리고 모두를 구원해 주리라는 것을.
* * *
거대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얼음의 대지에 수많은 인공구조물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축구장 크기의 수십 배에 달하는 돔을 비롯해 높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건축물들이 자라나듯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중 거대한 돔을 연상케 하는 커맨드 센터의 지휘실.
벽면 전체는 스크린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홀로그램 지도가 펼쳐져 실시간으로 모든 진행 상황을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스타포트가 완성 되었습니다.
커맨드 센터의 인공지능이 예약된 시설의 완공을 알려왔다.
스타포트는 ‘별들의 전쟁’에서 미래인간종족의 주력 생산시설 중에 하나로, 전함의 건조와 각종 지원함 등을 만들어 내는 상위 시설의 백미라 할 수 있었다.
“좋아! 커맨더, 1급 수송선과 2급 순양함을 5:1의 비중으로 건조를 시작한다. 5대의 수송선과 1대의 순양함으로 선단을 구성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고된 여정이었다.
무료한 60일이 넘는 우주비행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초기 해왕성에 진입할 당시, 성현이 탄 우주선은 행성의 무지막지한 대기압에 휘말려 성현조차 조종이 쉽지가 않았다.
갖은 고생 끝에 가까스로 착륙을 하게 되었지만, 기체의 내구성은 이미 한계에 까지 다다라 있었다.
절대온도에 가까운 영하 200도를 넘나드는 기온과 북풍한설은 우스울 정도의 시속 2,500㎞에 달하는 매서운 폭풍이 몰아쳤다.
선체에 극심한 피해가 가중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내부 기기에 까지 오작동을 일으켰다.
끝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기기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었다.
가장 먼저 냉난방 설비에 문제가 생겼지만 다행이 절대온도에 가까운 영하 200도를 넘나드는 기온 속에서도 성현의 초월적인 육체는 견뎌내 주었다.
다만, 문제는 지구와 다른 해왕성의 대기였다.
공기정화 설비가 가동을 멈추는 순간, 제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산소한줌 없는 행성에서의 생존은 절대 불가능했다.
“모두 네 덕분이다.”
성현은 곁에 있는 워크맨의 허벅지를 탕탕 쳤다.
성현은 키가 1미터 80을 넘지만 워크맨의 허리에도 닿지 않는 높이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긴급귀환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워크맨이 등에 지고 있던 가로세로 1.5 미터에 달하는 박스를 내려놓았고, 그것이 순식간에 수십 배의 크기로 확장했다.
워크맨들이 지고 있는 박스는 이들이 쓸 연장과 각종 장비들이 들어있는 공간 확장형 백팩으로, 그 안에 워크맨들의 정비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까지 있는 다용도 막사 역할도 하고 있었다.
-마스터, 요청하신 스페이스 쉽 건조를 위해서는 워크맨을 충원해야 합니다.
“지금 시간당 채굴 현황은 어때?”
-데미칼 광석은 322ea, 베린 가스 480ea 입니다. 현 수준으로는 수송선의 경우 31시간에 한 척의 건조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흐음, 더군다나 지금의 재고로는 겨우 두 척 정도 동시 건조가 가능하겠군.”
[데미칼 광석 : 20,002]
[베린 가스 : 32,109]
현재의 자원 상황으로는 성현이 원하는 만큼의 폭발적인 생산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때 문뜩.
“가만!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성현은 순간 떠오른 생각에 크게 희열이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