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멸망으로 치닫는 지구(3)
“마, 마미. 나 추워.”
줄리는 두터운 모포를 덮고 해미의 품에 안겨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추위를 호소했다.
현재 바깥기온은 영하 30도에 다다랐고, 체감온도는 영하 45도에 육박하고 있었다. 이는 극초신성 사태 이전의 남극의 평균기온보다 낮은 온도였다.
해미와 줄리는 이런 날씨 속에서 밖으로 나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만은 이들과 함께 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매우 느리고 힘겨운 발걸음이지만 모두 걸음을 늦추지는 않았다.
“해미 씨, 이거.”
“감사해요.”
어느새 곁에 다가온 최동원이 여러 개의 핫팩을 건네주었고, 해미는 줄리가 덮고 있는 모포 안으로 핫팩을 끼워 넣어 주었다.
따스한 온기를 느껴서인지 줄리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줄리야, 조금만 참아. 곧 도착할거야.”
줄리는 해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예의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동원은 해미에게 핫팩을 전달하고 후미를 돌아봤다. 아직 크게 뒤처지는 이들은 없었지만 점차 대열이 늘어지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뒤쳐지는 사람들이 없게 대원들을 좀 더 보내주도록 해.”
“넵! 알겠습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V-2 대피소였다.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는 기온으로 인해 동사자들이 속출하자, 내정위원회와 군위원회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그나마 기력이 남아있을 때 보다 안전한 장소로의 이동을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제주에는 극초신성 사태에 대비해 두 곳의 피난 섹터가 있었고, 제주 북동 방향에 있던 주민들과 군부대는 모두 V-2 대피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주 서남쪽에 남아있는 이들은 이동간의 거리를 생각해 V-1 대피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V-1 대피소에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다행이군. 조금만 늦었어도 눈 폭풍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길 뻔 했어.”
잠잠하던 하늘에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순식간에 10㎝가 넘는 높이까지 눈이 쌓였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높이를 더해갔다.
이런 여건이라면 걷는 것은 고사하고 한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고생 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최후의 1인까지 모두 대피소에 들이고 나서야 최동원과 이하 부대원들이 대피소에 발을 디뎠고, 이들을 기다리던 이들이 최동원을 맞이했다.
이제 한고비 넘었다 싶은 표정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두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이 자식은 왜 이리 늦는 거야! 사람들 애간장 다 녹이고 나서 짠하고 나타날 거냐!”
친구 정한이 모두를 대변해 한 말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은 너무도 길고 힘겨웠다. 성현의 초월적인 능력이라면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해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자신들이 결코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야속하리만치 힘든 시간이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 * *
스팟!
텅빈 관사에 순간 번쩍이는 빛이 터져 나왔다.
“내가 시간을 잘못 알고 왔나?”
성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중얼댔다.
‘파파’하며 달려올 줄리를 기대했건만, 현실은 적막이 감도는 어둠만이 성현을 반기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 주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깨어진 유리창이며 쩍쩍 금이 간 벽면은 밖이 휑하니 보일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거기다 거실과 이어진 베란다의 태반이 붕괴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밤이 아니라 낮이 맞아.”
다시 한 번 시간을 체크한 성현은 지금이 한낮인 오후 1시임을 재확인 했다.
마지막 소식을 지구와 주고받을 당시엔 백두산이 분화해 한반도에도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임을 전해 들었다.
재난이 있을 것임이 예견되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깨어진 창과 벽면을 통해 내부에까지 눈과 화산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성현이 지구를 떠나고 정확히 163일째 되는 날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좋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숨 쉬는 것도 힘들겠어. 아니, 그 보다 이 추위가 더 심각해.”
성현은 급히 밖으로 나와 상공으로 몸을 띄웠다.
일반인이라면 피부가 찢어질 정도로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성현의 얼굴을 할퀴듯 스쳐 지나갔다.
성현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모두 괜찮겠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해왕성에 비하면 훈풍으로 느껴질 정도였지만, 성현이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동장군이 될 정도의 강추위였다.
‘사룡!’
성현은 심상에 사룡을 떠올리며 급히 불렀다.
제주에 대기하고 있던 스컬 드래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사룡이었다.
-주인! 언제 온 것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자. 다들 어디에 있지? 모두 무사하고?’
-모두 추위를 피해 두 곳의 지하로 들어갔다. 난 지하가 싫다.
‘지하? 모두 대피소로 들어갔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한데 지진이라도 나면 자칫 매몰될 수도 있을 텐데.’
성현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생각과 동시에 가까운 V-2 대피소로 향했다.
* * *
“11구역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4, 7, 8구역도 추가 보수를 하고는 있지만, 위험하긴 매한가지입니다.”
제주의 모든 주민들이 지하에 있는 두 개의 대피소로 피신한 지 40여 일이 지나고 있었다.
지상에 닥친 끔찍한 추위를 피해 도착한 대피소는 당장에는 안전한 듯싶었지만, 그와는 다른 위기로 인해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상태였다.
수차례 강진으로 말미암아 일부 취약한 공간이 붕괴했고, 수시로 매몰사고가 잇따르고 있었다.
성현이 없는 제주는 최동원이 권한을 위임받아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에게 보고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작업 현장도 수시로 떨어져 내리는 낙석과 2차 붕괴로 인해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대규모 붕괴사고가 있었던 11구역 현장에서 돌아온 건설교통부 장관의 말이었다.
“휴우, 어쩔 수 없군요. 복구 작업은 현 시간부로 모두 종료토록 하겠습니다. 주민들은 가장 안전한 2구역과 3구역으로 이동시키고 추가 대책을 강구하도록 합시다.”
2구역과 3구역은 모든 주민들을 받아들이기엔 협소하겠지만, 당장엔 대안이 없었다.
최동원의 지시에 따라 건설교통부 장관과 다수의 인원들이 빠져 나갔고, 그 자리에는 최동원과 정한만이 남아있었다.
“그럼 내가 2구역과 3구역에 추가 보강공사를 해놓도록 할게.”
정한은 대피소 내에 워커 5기를 모두 데리고 들어왔고, 아주 유용하게 이를 활용하고 있었다.
데미칼 광석과 같은 자원이 없어 ‘별들의 전쟁’상의 시설이나 유닛들을 만들 수는 없었지만, 워커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중장비를 동원해도 될까 말까한 공사를 단독으로 할 수 있는가 하면, 각종 기기의 수리에 이르기까지 하지 못하는 일들이 없었다.
정한은 고작 5기에 불과한 워커들로도 지하 대피소를 유지하는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할 수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사실 이 자리에 있는 최동원과 정한을 비롯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어차피 모두가 임시방편일 뿐임을 말이다.
영구적인 해결책은 지금 지구가 처한 상황에서는 있을 턱이 없었다.
있다면 오직 지구를 떠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대대장님!”
“또 무슨 일이야?”
최동원은 자신을 부르는 부관의 목소리에 또 무슨 사고가 생긴 것이라 지레짐작해 걱정부터 앞섰다.
“오, 오셨습니다.”
“……뭐?”
“지금 대피소 출입구에 사령관님께서 진입하셨다는 전갈입니다!”
“뭐!”
“이제 살았다!”
최동원은 말문을 잇지 못했고, 정한은 크게 소리쳤다.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발길을 재촉했다.
* * *
성현은 대피소 입구에 진입하는 순간 큰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곧 어떤 위험이 임박하리라는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쿠쿠쿠쿵! 쿠르릉!
상당히 강한 진동이 일기 시작하더니 세상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상당히 강한 지진임이 분명했다.
헌데, 출입구를 지키고 있던 대원들은 긴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크게 요란법석을 떨지는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들이 상당한 경험을 통해 현재에 이른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츰 지진의 강도가 잦아들고 있을 때였다.
“사령관님!”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 지축을 박차고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동원이! 정한아!”
가장 선두에서는 최동원이, 바로 그 옆에는 친구 정한이 있었다.
그리고.
“오빠!”
“해미야!”
성현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지하 대피소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 소식을 접한 해미는 한달음에 성현을 찾아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고 있었고, 해미는 모두를 제치고 가장 앞으로 달려 나왔다.
해미는 거칠 게 없었다. 날듯이 뛰어 나가 성현의 품에 안겨들었다.
“미안. 많이 늦었지.”
해미는 5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떨어져 있던 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아무런 말없이 성현의 품에 안겨 떨어질 줄을 몰랐다.
성현은 그런 해미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며 그녀가 안정되길 기다렸다.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해미가 고개를 들어 성현을 빤히 쳐다봤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어요?”
성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건재함을 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사령관님, 가신 일은……?”
성현과 해미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최동원은 모두를 대신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떠날 채비를 서둘러라.”
성현이 최동원의 말에 답하는 순간,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고, 종말로 치닫고 있는 지구에서 벗어날 방법을 가지고 왔음이었다.
* * *
사실 해왕성에서의 일은 성현의 뜻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성현이 필요로 하는 대형 유닛, 즉 ‘스페이스 쉽’의 건조는 어렵고도 지난한 일이었다.
자원 채굴을 서두르고는 있지만, 채굴하는 자원은 워커를 생산하는 데 계속해서 투입되고 있었고, 일정 수준의 워커를 보유하기 전에는 다른 일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자원만 캐다 지구의 멸망을 볼 것만 같았다.
그때 문뜩 성현은 자신이 너무 편향된 사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자원채굴에 보다 혁신적인 방법이 있는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병신 같은.”
‘신 자원 확장등록’에 고작 200만 골드와 400만 골드를 투자해 ‘데미칼 광석’과 ‘베린 가스’를 등록하게 되었고, 등록과 동시에 자원탐사를 진행해 실시간으로 자원을 찾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수백 수천에 이르는 ‘1급 시설’을 토대로 이전까지는 시간당 50EA~70EA에 불과한 자원을 채굴하던 것이 이후부터는 수만 배에 이르는 자원을 채굴하게 되었다.
무제한에 가까운 자원을 채굴하게 되면서 성현은 ‘별들의 전쟁’의 발전 시설들을 서둘러 건설했고, 기반 시설의 완공과 더불어 커맨더 센터의 인공지능에 모든 일을 맡기고 지구로 귀환했다.
이제 지구에 돌아왔고, 모두와 함께 지구를 벗어나는 일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