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판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74화 (174/176)

# 174

멸망한 세계의 게이머(1)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성현은 긴 설명은 생략하고, 짧게나마 자신의 여정을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지구를 떠나 해왕성이라는, 인류가 추측과 상상으로만 알고 있던 행성을 다녀온 성현의 말에 모두 귀를 기울였다.

“허허, 저희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일들입니다.”

두 달이 넘는 우주비행을 끝으로 해왕성에 도달해 극한의 환경에서 절대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어낸 성현이었다.

성현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정우현 장관을 비롯한 모두는 탄성을 감추지 못했다.

“사령관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지금 건조 중인 수송선단은 언제쯤 완성되는 겁니까?”

성현은 정우현 과학기술부 장관의 물음에 시야 한쪽에 비활성화 상태로 놓아둔 창을 활성화 시켰다.

그리고 해왕성에서 건조 중인 수송선과 전함의 건조창을 확인했다.

모두 30개에 달하는 스타포트에서 우주선 건조가 한창이었다.

각 스타포트는 2개 도크가 존재했고, 동시 건조가 가능했다. 도합 60척에 이르는 수송선과 전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별들의 전쟁’은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설정에 걸맞게 그 스케일 또한 거대했다.

유닛 하나하나를 컨트롤하는 기존의 전략 SF 게임들과는 달리 거대한 전장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 전투가 핵심이었다.

동시에 다수의 전장에서 전쟁을 치루는 건 일상사이고, 상대 거점 행성을 공격해 적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일의 반복이라 할 수 있었다.

빼앗은 행성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아군 권역으로 바뀌게 되고, 추가 자원 확보가 가능해진다.

단, 행성의 자원이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는 가정이 성립되어야만 했다.

또 하나 여타의 게임과 다른 점은 인구수에 제한이 있지 않아 자원과 제반 시설만 있다면 무제한에 가까운 전력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으로 게임의 엔딩은 상대 유저의 모든 행성을 파괴하면 되었는데, 보통의 경우 전력의 차이가 크게 나는 시점에 대부분의 유저들이 패배를 시인하고 일찌감치 승패가 결정됐다.

성현은 활성화된 스타포트 하나를 오픈하고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수송선을 터치했다.

수송선의 스펙과 함께 막대형태의 공정률을 나타내는 퍼센티지가 실시간으로 오르고 있었다.

[1급 수송선 ‘어센던트’ 완성도 38.4%, 남은 시간 30시간 57분 14초]

게임 초반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는 1급 수송선은 아군 행성 간 자원교역을 비롯해 전장으로 메카닉 해병대를 실어 나르는 역할을 담당했다.

‘어센던트’ 수송선은 전장이 4.8㎞, 전폭은 1.5㎞, 전고가 1.2㎞에 달했고, 지구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임이 분명했다.

대략 한 척당 무리하지 않는 수준으로 약 1백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다만, ‘어센던트’ 1급 수송선의 크기도 ‘별들의 전쟁’ 최종병기에 해당하는 것들에 비하면 소형에 불구하다는 점이었다.

이보다 더 큰 거함들이 게임 중후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전장을 지배했다.

길이가 수십 ㎞에 달하는 초거대 전함을 비롯해 ‘스페이스 콜로니’ 즉, 우주 식민지라 불리는 건축물은 그 직경이 수백 ㎞를 웃돌고 있었다.

게임 내 모든 생산력을 증가시켜주는 시설인 ‘스페이스 콜로니’는 게임의 중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중요 시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성현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많은 시간과 어마어마한 자원을 잡아먹는 최종 테크트리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었다.

“건조에 남은 시간은, 31시간이 조금 못됩니다. 완성 즉시 지구로 향할 예정입니다.”

성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의 안색이 일변했다.

지구를 안전하게 떠날 수단이 생겼다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해왕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건조된 우주선이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지구가 온전할지는 누구도 장담키 힘든 노릇이었다.

“장관님, 수송선단이 도착할 때까지 괜찮겠습니까?”

최동원이 정우현 과학기술부 장관을 돌아보며 굳은 신색으로 물었다.

“……지금의 진행속도라면, 예측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당장 큰 위기가 도래한대도, 닥치지 않는 이상은 저희가 알 길이 없습니다.”

정우현 장관은 잠시 생각 끝에 숨기기보다는 사실을 알리는 쪽을 택했다.

상당히 절망적이기까지 한 답변에 장내는 일순 얼어붙었고,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수송선단의 도착 시간이 관건입니다. 만약 사령관님과 비슷한 속도로 비행한다 해도 이는…….”

“이런, 이걸 먼저 알려줬어야 했는데.”

정우현 장관의 탄식 섞인 말에 성현은 놓친 게 있었다는 듯 급히 부연 설명을 했다.

“네?”

“수송선단은 광속비행이 가능합니다.”

“과, 광속 비행이란 말입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정우현 장관이 눈을 화등잔 만하게 치켜뜨고 되물었다.

“일단은 그렇습니다.”

“광속이라니, 그렇다면…….”

광속에 대한 개념은 최동원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해 말을 길게 늘였다.

이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정우현 장관이 다시금 말했다.

“해왕성과 지구의 거리를 감안한다 해도 광속 비행이라면, 4시간이면 족합니다. 됐습니다.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정우현 장관이 들뜬 목소리로 모두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광속은 명확히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진공상태에서는 속도가 초속 30만㎞에 이른다.

진공 외의 매질에서는 속력의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크지는 않았고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물질, 에너지 등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속력이라 할 수 있었다.

단, 질량이 0인 경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성현이 말하는 우주선의 질량이 0일 터는 없었다.

현재 지구 과학 수준으로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상상도 하지 못할 기술력이었다.

“35시간이라.”

생산과 이동에 걸리는 35시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임이 분명하지만 기다림은 언제나 더디게 만드는 마법을 가졌다.

모두의 애를 태우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이미 지구는 임계점에 다다라 있었다.

*     *     *

태평양 가장 깊은 심처.

마리아나 해구는 심해 바닥에 에베레스트 산을 옮겨 놓는다 해도, 산 정상에서 물 표면까지 무려 2.5㎞가 남을 만큼 깊었다.

마리아나 해구의 길이는 2,550㎞로 한반도 길이의 두 배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 폭 또한 69㎞에 달했다.

이 깊고 깊은 심연과도 같은 곳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구구구궁! 콰쾅!

해수굴뚝(뜨거운 바닷물과 광물질이 솟구치는 곳)이 붕괴되면서 시뻘건 마그마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지반 붕괴가 가속되면서 심해의 바닥이 크게 흔들렸고, 곧이어 폭이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 끝을 모르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지구가 두 토막 나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가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꽈과과광!

1,300도가 넘는 마그마가 거대한 균열을 통해 밖으로 쏟아졌고, 삽시간에 해구 전체를 가득 채웠다.

차가운 심해의 바닷물과 들끓던 마그마가 만나 식혀졌고, 다시 그 위로 뜨거운 마그마가 덧씌워 졌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대폭발을 발했다.

삐잉 삐잉!

V-2 대피소에 설치된 지진계가 요동치더니 인지영역을 벗어난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었다.

“이, 이것은!”

계측기에서 토해내듯 쏟아져 나오는 자료를 손에 든 연구원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고 덜덜 떨어댔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겨지듯 자료들을 손에 쥐고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급합니다! 비키세요!”

성현과 제주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한창 회의 중인 장소에 다다르자, 연구원은 입구에서 경계근무 중인 군인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모두 비켜서!”

선임 대원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는 달려오던 연구원을 제지하려던 군인들을 물렸다.

그 대원은 운 좋게 연구원과 안면이 있었고, 그가 상당히 중요한 자리에 있는 이임을 잘 알고 있었다.

연구원은 비켜서는 군인들을 통과해 회의장의 문을 부서질 듯 열어 제치고 안으로 뛰어 들었다.

“무슨 일인가?”

“이, 이걸 보십시오!”

갑작스런 불청객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본 정우현 과학기술부 장관이 그를 불렀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연구원이 건네주는 1m에 달하는 구겨진 종이를 펼쳤다.

“신이시여…….”

정우현 장관이 손에 든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일순 비틀거렸다.

“장관님!”

성현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느끼고, 급히 정우현 장관의 곁으로 가서 그를 부축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성현 덕분에 간신히 쓰러지는 것을 모면한 정우현 박사가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제주에서 2천 킬로미터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에서 큰일이 터졌습니다.”

“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말입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보세요!”

“완전히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최소 해발 5백 미터 이상의 해일이 시속 8백㎞에 달하는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모두는 경악했다.

높이 5백 미터라면, 63빌딩의 2배에 달하는 높이였다.

더군다나 시속 8백㎞라는 속도의 해일이 가진 물리적인 힘은 산을 허물고 지상의 건물들을 초토화하고도 남을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도 위험합니까?”

성현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정우현 박사였다.

태평양과 제주 사이에는 일본이라는 방파제가 있기는 했지만, 지금 진원으로 추정되는 곳은 일본의 본토를 빗겨간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고, 직접적인 해일 피해를 제주가 피할 길은 없었다.

“해일의 직접적인 영향도 문제겠지만, 이후 높아진 해수면으로 인해 대피소의 출입구가 수몰되리라 여겨집니다.”

V-2 대피소의 출입구가 있는 곳은 해발 200m 부근으로, 해일이 지나고 나면 수장될 위치에 있었다.

*     *     *

중국의 생존자들을 규합한 장진은 지난시 남쪽 태산에 위치한 피난 섹터 5곳에 이들을 나눠 피신토록 했다.

하지만, 지속되는 강진으로 인해 지하시설들이 붕괴되고 있었고, 언제 매몰될지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대인께서 제주에 돌아오셨다는 게 사실입니까?”

“방금 수호룡을 통해 알려 오셨네. 곧 당도 하실 것이야.”

“네? 지금 이리로 오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 이리 한가하게 있을 시간이 없어. 자네는 서둘러 다른 대피소에도 연통을 넣고, 모두 떠날 채비를 10분 안에 끝내놓으라고 전해주게!”

“어떻게 10분 안에 준비를…….”

“어허! 대인께서 그리 하라고 명하신 대는 다 이유가 있음이야! 당장 연통을 넣게!”

“아, 알겠습니다.”

이때 이미 성현은 황해를 건너 태산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일본을 거쳐 중국에 이르기까지, 제주를 떠나 모두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일본에 30여 개의 기동요새를 생성해 주고, 이를 토대로 모두가 피난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성현은 그 즉시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은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가야만했다. 모두 해일이 도착하기 전에 마쳐야만 하는 극악의 미션이라 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상기온 현상으로 영하 사오십 도를 오르내리던 추위가 단번에 영상을 회복했다는 사실이었다.

‘잘 전달했어?’

-주인의 말에 따르겠다는 답을 받았다. 또 전할 말은 있는가?

‘아니 됐다.’

성현은 제주로 덮쳐오는 해일 소식에 어쩌면 지구가 이대로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종말은 성현의 생각보다 더 가까이,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최후까지 사용하지 않았으면 했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심했고, 결정한 순간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무리수가 될지 가장 적절한 판단이 될지는 당장에 알 수 없었지만, 성현에게 지금의 상황은 뒤가 없다 할 수 있었다.

‘차원의 파편’을 이용한 차원 포탈을 열어 자신을 제외한 제주의 모두를 저 너머의 세상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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