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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2화 (2/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2화

마계의 괴물들에게 부모님을 잃고 아카데미에 들어와 진창 같은 인생을 살았던 김건.

SS급 마력적성을 가지고 명문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걸어온 한서리.

원래라면 연이 없을 두 사람이었지만,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세상은 그 간격을 급격하게 줄여 주었다.

부부로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계와의 전쟁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수십, 수백 번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쌓은 관계의 밀도는 남들의 평생에 맞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미래에서나 벌어질 일일 텐데.’

아카데미 시절, 김건은 한서리의 존재는 알되 그녀라는 사람을 알지는 못했고. 한서리가 김건의 존재를 인식이라도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이나 지난 뒤였다.

기존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여야 했다.

그게 분명히 정상이었을 텐데,

지금, 두 사람은 서로를 아는 눈으로 아카데미의 연무장에 마주 서 있었다.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건은 멀뚱히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한서리 역시 말없이 김건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눈싸움을 벌이는 동안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특히 여생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뭐야, 뭐야? 둘이 사귀나?”

“하지 말라는 게 뭐야?”

“뭐긴 뭐겠어. 하는 말 들어 보니까 갈 데까지 간 거 같은데?”

“말도 안 돼. 개학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대박사건. SNS에 올려야지.”

갑자기 튀어나온 연애담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 가십거리를 얻고 신나 하는 사람, 완벽에 가까운 여자가 보여 준 빈틈에 비웃음을 떠올리는 사람 등.

여생도들의 반응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남자들은 달랐다.

킹메이커가 저딴 놈이랑?

말도 안 돼!

그들은 한결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건을 쳐다보았다.

한서리는 시끄러워지는 주변 분위기를 눈치채곤 칫 하고 혀를 찼다.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닦아 낸 그녀는 어느새 돌아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나이단을 발견했다.

“대련 중이었어?”

이런 쓰레기랑?

뒷말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김건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려 했지만 아직 속박 마법의 잔재가 남아 있어 움직임이 뻣뻣했다. 한서리는 눈썹을 찡그리더니 김건의 어깨를 짚었다.

“빨리 끝내.”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폭발적인 마력의 방류가 김건의 몸을 속박하던 잔여물을 날려 버렸다.

동시에 김건의 목 뒤쪽에서 커다란 고드름이 자라나며 얇게 퍼져 나온 하얀 서리가 갑옷처럼 전신을 감쌌다.

만년설식 빙주강화.

게이트가 열린 이후로 대대로 영웅을 배출해 온 한씨 가문이 개발한 독자적인 마법.

대상자의 몸을 보호해 주는 것은 물론 감각과 신체 능력을 올려 주는 최상위급 기술.

하지만 만년설식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버프 대상자의 몸과 마력의 상태, 그리고 성질을 파악해 주문을 짜 맞춰야 한다.

높은 관찰력과 계산 능력, 순간대응능력을 요구하는 고난이도의 기술이지만.

한서리가 펼친 만년설식은 완벽에 가까웠다.

어렸을 때부터 빼어난 자질을 선보인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집안에서 쌓아 온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시켰으며, 타고난 SS급 마력적성까지 더해졌기에 그녀의 버프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일반인이라도 그녀의 버프를 받으면 영웅에 가까운 힘을 얻었고, 영웅이 그녀의 버프를 받으면 두 배, 세 배를 넘는 전투력 상승을 보였다.

그 때문에 붙은 칭호가 킹메이커.

왕이 될 자가 있다면, 그자는 한서리의 버프를 받은 사람일 것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칭호다.

김건은 그 강력함을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온몸에 기운이 넘쳤다.

어깨를 털어 내자 천근처럼 몸을 짓누르던 마법의 기운이 단숨에 날아갔다. 슈퍼맨이 된 듯한 전능감이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것이 최대치의 출력이 아니라는 것을 김건은 알고 있었다.

“이, 이런 제길……!”

나이단은 이래도 되냐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킹메이커를 적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웃기지 마! 대련은 끝이야! 킹메이커의 버프를 받은 놈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이단을 위아래로 훑어본 한서리는 차가운 비웃음을 띠었다.

“마력적성 A급이 F급과 대련하는 건 괜찮지만 다른 건 안 된다? 정말 대단한 기준이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게 그렇게 좋아?”

“…….”

나이단은 입술을 씹으면서 한서리를 노려보았다.

한서리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나이단 역시 고향에서는 천재 중의 천재라고 불리던 몸이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랬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본 적이 드문 인종들, 겉으로 표를 안 낼 뿐이지 여기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자기가 세계에서 제일 잘난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한서리는 부들부들 떠는 나이단에게 말했다.

“겁먹을 필요 없어. 그렇게 강한 버프를 걸지는 않았거든. 순간적인 출력은 비슷할지 몰라도 결국에는…….”

말을 잇던 한서리는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박수를 쳤다.

“아, 비슷하면 안 되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아니면 싸우지 못하니까.”

그녀는 그러면서 다시금 김건에게 손을 댔다. 김건의 등목에 솟아 있던 얼음 일부가 그녀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력을 더 낮췄어. 신체 능력은 마력적성 D급의 강체술과 비슷할 거야.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자신이 없으면…… 어디 말해 봐.”

냉담한 얼굴 위로 요염한 미소가 떠올랐다.

“개망신만큼은 당하지 않게 대련을 물러 달라고 말이야.”

“이…… 이…….”

빠득- 이를 갈던 나이단은 한서리를 노려보다가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김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거창하게 대검을 짊어지더니, 제자리로 돌아가 자세를 다잡았다.

“덤벼. 진짜로 죽여 주마.”

말버릇처럼 읊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정말 살기가 담긴 말이었다.

눈빛이 이글이글거리는 게 이곳이 대련장인 것도 잊은 듯했다.

김건은 풋내기를 상대로 이 정도까지 도발을 할 필요가 있나 싶어 한서리를 바라보았지만 한서리의 얼굴은 엄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오히려 살짝 눈짓을 했다.

‘내게 창피를 주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잘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한서리와 김건을 살펴보면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못난 모습을 보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눈에 선하다.

김건은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나섰다.

물불 못 가리는 꼬마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적당히 때려눕혀서 체면치레 정도만 해야겠다.

채찍을 주워드는 김건을 바라보던 나이단이 이죽거렸다.

“교수뿐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괜찮은 뒷배를 가지고 있잖아?”

“어렸을 때부터 인복은 있었거든.”

“어떻게 한 거야? 식사에 몰래 약이라도 탄 거냐?”

“…….”

나이단은 웃었다. 아카데미 생도답지 않은 비열한 미소였다.

“한 번 자빠트리면 넘어온다니, 그 잘난 킹메이커도 별거…….”

“역시 너한테는 교육이 필요하겠다.”

다음 순간, 김건은 나이단의 코앞에 있었다.

“뭐……!”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놀란 나이단이 반사적으로 오라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김건은 나이단의 가슴에 손바닥을 올려 두고 있었다.

“며칠 쉬면서 반성해.”

톡.

가벼운 터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손짓이었지만 그것이 불러 온 결과는 막대했다.

묘한 진동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평생 동안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기괴한 충격이 나이단의 전신을 휩쓸었다.

몸 안쪽에서, 소리 없는 폭발이 터졌다.

“……!!”

파바밧!

충격을 흡수하는 대련실의 마력이 모조리 날아갔다. 허용 한계를 넘어선 위력에 벽면의 술식에 쩍쩍 금이 갔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나이단의 안쪽에서 날뛰던 진동이 다리를 타고 지면으로 흐르더니 폭파.

커다란 덩치가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철퍽!

나이단은 허수아비처럼 공간을 부유하다 쓰레기처럼 떨어져 얼굴을 박았다.

지면에 처박힌 얼굴에선 새빨간 피가 웅덩이처럼 퍼져 나왔다.

“!!”

살짝 손을 올린 것만으로 A급 마력적성자의 오라를 뚫고 사람을 수직으로 날려 버리다니?

말없는 전율이 대련실에 퍼져 나갔다.

김건은 쓰러진 나이단을 뒤로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면 이렇게 되는 거야.”

* * *

한서리는 김건의 손을 잡고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마자 인적이 없는 골목으로 김건을 끌고 들어간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마구잡이로 김건의 얼굴을 만지기 시작했다.

눈꺼풀을 뒤집어 보거나 귀를 잡아당기며 입안의 상태를 확인한다.

“살아 있는 거 맞지? 어디 아픈데도 없고?”

“으, 어.”

입을 쭉 찢은 채로 물어보니 바보 같은 소리밖에 안 나온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그 반응을 확인하자마자 한서리의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철 같던 표정을 무너트리며 김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보고 싶었어…… 정말로…….”

조막만 한 주먹이 가슴을 두들긴다. 끊어질 듯한 애원이 흘러나왔다.

“하지 말라고, 혼자 죽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해……!!”

한서리는 목 놓아 울었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까지 과거로 되돌아오다니.

김건은 지금의 현실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작은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한서리는 강한 여자였다.

일생을 엘리트로 알아 온 그녀는 숨 쉬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적에게 기회를 주며, 윗사람들에게는 의심을, 아랫사람에게는 불안을 줄 테니.

그녀는 평생 동안 그 말을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흔들리지 않는 강철의 여제, 감정이 없는 얼음의 여왕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김건을 제외하고.

하지만 그런 그로서도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려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게 그의 아내였다. 이렇게 길 잃은 아이처럼 울부짖는 사람이 아니다.

‘다 내 잘못이지.’

김건은 혀를 차며 아내의 볼에 묻은 물기를 닦아 주었다.

한참을 울던 한서리는 어느 정도 감정을 토해 내고 나서야 남편이 당혹해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빨개진 눈을 훔치며 말했다.

“미안해. 많이 당황스러울 텐데, 이렇게 보니까 너무 기뻐서…….”

“그건 괜찮은데, 당신은 지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아는 거야?”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다 설명해 줄 테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김건을 꽉 껴안았다. 다시는 놓지 않을 것처럼 팔로 허리를 감싸더니, 고개를 들어 김건을 올려다보았다.

촉촉한 눈으로 입술을 작게 빠끔거린다.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 토끼 같은 눈망울에 장난기가 맴돌았다.

“그럼, 재회의 키스.”

“…….”

마신의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던 남자의 등줄기가 순간적으로 굳었다. 한서리는 기다리지 않았다.

발돋움을 해 가볍게 남편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으며,

“가자.”

김건의 손을 잡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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