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4화
김건의 전신 근육에서 폭발적인 힘이 분출됐다. 팔과 허리를 튕겨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몸을 돌려 허공에 뜬 한서리를 안고 후퇴.
그러자, 방금까지 그가 받치고 있던 지면이 장난감처럼 부서지며 누군가가 튀어 올라오더니, 신형조차 파악되지 않을 속도로 김건에게 짓쳐들어왔다.
“……!”
입을 열 시간조차 없다.
하지만 함께 수많은 사선을 넘어온 둘에겐 의사를 나누기 위한 어떠한 행위도 필요 없었다.
김건이 던지듯이 한서리를 내려놓는다. 한서리가 뿜어낸 마력이 김건의 목에 닿았다.
김건은 온몸에서 냉기를 뿜으며 정체불명의 습격자와 맞섰다.
파바밧!
습격자로부터 번개 같은 삼연타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김건은 얼굴을 노리는 잽을 피하고 스트레이트는 패링. 뒤이어 날아오는 훅을 바람과 같이 흘려보냈다.
그 행동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0.5초.
쉭-
머리가 아니라 몸이 분석 결과를 도출했다.
상대는 최소 마력적성 A급 이상의 전위.
기술은 일류.
하지만 동작이 직선적이다.
김건은 바로 다음에 날아오는 공격을 읽고 습격자의 얼굴에 카운터를 꽂아 넣었다.
“큭!”
반사적으로 펼친 오라에 주먹이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김건은 이미 다음 기술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를 떨쳐 내기 위해 휘두른 팔을 붙잡고 꺾으며 바로 다리를 건다.
죽이기 위한 공격을 해 온 것은 아니니 일단 제압한다.
상대를 넘어뜨린 그가 팔을 완전히 꺾고 등을 눌러 완전히 행동을 통제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전투에 순간적으로 치솟았던 혈압이 내려오며 시야가 트였다.
습격자의 얼굴이 보였다.
불타는 듯한 새빨간 머리칼, 옛날이야기의 용사가 뛰쳐나온 듯한 듬직한 인상을 지닌 사내였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상대가 적이 아니라는 걸 안 김건의 손아귀가 느슨해진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오더니 역으로 김건을 제압하려 들었다. 팔을 조이는 힘이 엄청나다. 어설픈 반항은 서로를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김건은 순순히 당해 주었다.
“잡았다!”
김건을 깔아뭉갠 남자가 호쾌하게 소리쳤다.
‘자식, 좋아하긴…… 괜히 당해 줬나?’
김건이 그렇게 평안한 생각을 하는 사이, 한서리 쪽에서는 여전히 불꽃 튀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콰앙!
어디서 나타났는지 커다란 얼음 거인 둘이 씨름을 하고 있었다.
거인이 내디딘 발걸음에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건물이 떨려 왔다. 무기질로 이루어진 근육들이 마찰할 때마다 파열음이 터지며 사방으로 파편을 튀겼다.
무시무시한 힘의 대결을 배경으로, 한서리의 입술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녀의 앞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키가 크고 당찬 기개를 지녔다. 찰랑거리는 장발에 얼음 같은 표정은 한서리를 쏙 빼다 닮았다.
하지만 신비로운 푸른색 머리칼을 가진 한서리와 달리 그녀의 머리는 검었는데, 옆머리에 파란 브리지가 한 줄 내려와 있었다.
파란 브리지의 여자가 말했다.
“물러서, 한서리. 넌 지금 정상이 아니야.”
그녀는 흘끗 김건이 있는 쪽으로 눈짓을 했다.
“테리! 제압했어?”
김건을 붙잡은 붉은 머리의 사내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딱 붙잡고 있지. 그런데 이 자식 보통이 아닌데? 신입생의 실력이 아니야! 잘못하면 내가 당할 뻔했다고.”
“그럴 줄 알았어. 감찰관들의 눈을 속이고 여기까지 들어온 놈이니까 당연히 보통은 아니겠지. 기습하기를 잘했어. 모나! 혹시 모르니까 제압 마법, 그리고 마기도 확인해!”
“아, 알았어!”
낑낑거리며 공간 마법으로 찢어진 구멍에서 올라온 여자가 불호령을 들은 것처럼 헐레벌떡 김건에게로 달려갔다.
“잠깐, 이거 오해…….”
“주문을 쓸지도 몰라! 입을 틀어막아!”
솥뚜껑 같은 테리의 손이 재빠르게 김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것을 본 한서리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마력이 요동치며 푸른색 머리칼이 휘날리기 시작한다. 아무런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발밑에 한기가 차올랐다.
“묻잖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3초 이내로 대답해. 그렇지 않으면 공격한다.”
한서리의 아이스 골렘이 무시무시한 울음을 토해 내며 목 뒤에 솟은 얼음이 줄기줄기 자라났다.
“진정해, 서리야. 지금 너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야!”
“나? 상관없어. 그러니까 그 사람한테서 손 떼. 당장.”
“암시가 걸려도 제대로 걸렸군. 정신 차려! 넌 지금 저 마인에게 속고 있는 거야! 모나! 확인은 아직이야? 서리한테도 조치가 필요할 것 같은데…….”
“아직, 아직이야!”
김건의 얼굴에 검사 장비를 들이대던 모나가 부정의 의미가 담긴 손짓을 한다.
한서리의 얼굴이 더욱더 차갑게 굳어 갔다.
“난 아주 정상이야. 마인 따위에게 정신을 지배당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마. 그 사람한테서 손 떼!”
여자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 마. 내 동생은 지금처럼 그렇게 쉽게 흥분 안 해. 남자 때문에 그럴 일은 더더욱 없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딱딱한 얼음장 같던 한서리의 얼굴에 균열이 번졌다.
얇은 입술에 돌연 미소가 떠올랐다.
“아, 그래…… 이번에도 아주 꽂혀 버리셨군. 넌 항상 그랬어. 뭔가에 꽂히면 다른 건 돌아보지도 않지. 자기 마음대로 남을 재단하고, 자기 자신 역시 그 틀에 맞춰버리지. 불나방도 너보다는 융통성이 있을걸.”
시선에 경멸이 담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네게 기대를 하지 않는 거야. 한서연.”
그 말에 한서연이라 불린 여자의 눈빛에도 독기가 담겼다.
“말조심해, 한서리. 이것도 다 너를 위해 하는 일이야.”
한서리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네 같잖은 정의감을 위해서겠지.”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내디딘 발밑에 얼음꽃이 부채꼴로 피어났다.
“더 이상은 말도 아까워. 알아서 꺼지지 않겠다면…… 좋아. 이 자리에서 깔끔하게 치워 줄게.”
“치워?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서로 닮은 두 여자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그 충돌을 실현하듯, 뒤얽혀 있던 골렘들의 움직임 역시 더욱 거세졌다.
우우우우!
오오오오!
양손을 맞잡은 두 거인이 머리를 들이받았다. 어깨를 뒤틀며 용을 쓰자 그토록 난리를 피워도 형체를 유지하던 바닥이 꺼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지지대를 타고 간 충격이 창가에 닿으며 창문에도 쩍쩍 금이 갔다.
김건을 제압하고 있던 테리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야, 야! 그만해! 더 이상하면 경보 울린다! 난 퇴학당하고 싶지 않다고!”
“닥쳐.”
“조용히 해.”
테리는 어떻게든 싸움을 막아 보려 했지만 말로는 두 여자의 분노를 멈춰 세울 수 없었다.
이대로 치고받으면 기숙사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전쟁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건물이니 무너지진 않을 거다.
하지만 몇 개 층이 날아가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테리는 그 책임까지 떠맡을 생각이 없었다.
‘직접 나서서 말려야 하나?’
하지만 그랬다간 지금 구속하고 있는 마인 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애초에 그는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 아니었다.
테리가 골치를 썩이고 있을 때였다.
모나가 조작하던 검사 장비가 마지막 결괏값을 출력하며 초록색 빛을 뿜어냈다.
모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마법으로 작동하는 검사 장비를 재확인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 이 사람, 마인이 아닌데?”
“뭐?”
“아니라고?”
“…….”
싸움을 멈춰 세운 건 그 멍청한 말 한마디였다.
* * *
“……마인의 기척이 느껴졌다고 하지 않았어?”
모나는 길게 늘어지는 머리칼을 빙빙 꼬면서 어물어물 대답했다.
“분명히 느껴졌는데…… 진짜라고…….”
어쩔 줄을 몰라서 몸을 배배 꼰다.
테리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지!”
솥뚜껑 같은 손바닥은 여자의 등과 크기가 비슷했다. 그 손으로 툭툭 치자 “악! 악!”모나의 상체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마인이 아닌 걸 알았으면 된 거 아니야? 그럼 가자. 배고프다.”
“아니, 너희들은 못 가.”
한서리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살쾡이처럼 으르렁거렸다.
“너희들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을 완전히 잡쳤어. 그냥은 못 넘어가. 무릎 꿇고 사과를 하든, 대가리를 처박든 뭐라도 해.”
넙죽!
테리는 얼른 무릎을 꿇었다.
키가 2미터는 될 법한 덩치가 주저앉자 바닥이 무너질 듯이 흔들렸다. 그는 석고대죄를 하듯 머리를 박았다.
“미안하다! 우리 친구가 오해를 했어. 아침부터 소란을 피워서 정말 미안해.”
모나도 옆에서 꾸물꾸물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대역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어요…….”
“…….”
그렇게까지 솔직히 사과를 하자 한서리도 할 말이 없어졌다.
친구들의 추태에 얼굴을 감싼 한서연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만들 하고, 그전에 한서리.”
“왜?”
다른 사람들은 사과했으니 그렇다 쳐도, 이 일의 주범인 한서연은 아직껏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한서리는 신경질적으로 눈을 치켜떴다. 그런 동생에게 한서연은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 내밀었다.
“이걸로라도 좀 가려. 눈 둘 곳이 없다.”
“뭐?”
한서리는 그제야 자신의 차림새를 깨달았다.
막 자고 일어난 뒤에 습격을 받은지라, 그녀는 위에 넉넉한 셔츠만 한 장 걸친 채였다. 가까스로 중요한 부위는 가렸지만 하얀 허벅지와 종아리가 다 보인다.
“큭!”
한서리는 이를 짓씹으며 재킷을 낚아채 허리에 둘러매곤 발간 얼굴로 테리와 김건을 흘겨봤다.
테리가 투덜거렸다.
“보기 좋은데. 왜?”
“…….”
보기 좋은 건 맞다.
하지만 그 말을 다른 놈의 입에서 듣고 싶지는 않았다.
김건은 테리를 쓰레기처럼 쳐다보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서연과 모나도 똑같은 눈을 했다.
“엉? 내가 뭐 이상한 말 했나?”
쏟아지는 눈총에 당황한 바보가 허둥거렸다.
한서연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모나, 저 멍청이 좀 데리고 나가 줄래? 간단하게 아침이라도 먹고 있어.”
“던전 입장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걱정 마. 금방 따라갈게.”
테리와 모나가 떠나자 난장판이 된 방에는 세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한서연은 옆에 널브러져 있는 소파에 앉았다.
“앉아. 이야기 좀 하자.”
한서리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서연을 노려보다가 울화를 토해 내는 것처럼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녀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김건은 눈치를 보다가 슬쩍 넘어져 있는 의자를 세워서 앉았다.
“그래서, 둘이 무슨 사이인거야?”
“무슨 사이긴, 영혼으로 이어진 사이지.”
한서연은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 한서리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