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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5화 (5/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5화

평소에는 냉혹무비하면서 이럴 때는 멍청이가 되어 버리는 게 아내의 문제점이다.

“큼, 크흠!”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는 김건.

한서리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다가 이내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귀는 사이야.”

한서연은 의문 가득한 얼굴로 김건과 한서리를 번갈아 보다가 조신치 못한 두 사람의 차림새를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은 방에 있어서 설마설마했는데, 혹시 둘이 잤어?”

한서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참 빨리도 물어보네.”

“미쳤구나! 한서리 너 제정신이야?! 이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떻게 하려고! 이미 약혼까지 한 애가!”

‘약혼’이라는 단어에 김건의 귀가 쫑긋거렸다.

한서리는 불쾌해 죽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한서연은 펄펄 뛰었다.

“어떻게 안 해? 네 약혼은 네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 거 아니야! 아버지한테, 그리고 어머니한테 이걸 뭐라고 설명할 건데? 아니지, 벌써 이야기가 흘러 들어갔을지도 몰라. 아카데미 SNS에 어제 연무장에서 있었던 일이 다 퍼졌으니까. 이걸 다 어떻게 책임질래?”

“그걸 왜 내가 책임져야 하지?”

한서리의 목소리에 냉기가 담겼다.

“자기들끼리 의논하고, 자기들끼리 결정한 일을 나보고 책임지라고? 웃기지 마.”

한서연은 머리에 망치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너, 정말 달라졌구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그녀는 흘끗 김건을 쳐다보았다.

“이 남자가 뭐라고 이야기라도 한 거야?”

널브러진 개똥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눈빛.

김건은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한서연의 시선이 다시금 한서리에게 돌아갔다.

“네 인생은 네 거라고. 네가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되는 거라고.”

“당연한 말 아니야?”

“그래, 당연한 말이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지.”

장난기 하나 없는 엄숙한 선고.

한서리는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서연은 타이르듯 말했다.

“넌 달라. 한씨 가문의 차녀인 데다, SS급 마력적성…… 엄청난 재능까지 타고났지. 이건 그 대가야. 넌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돼.”

“그게 하나뿐인 동생에게 할 말이야? 네 인생을 포기해라?”

한서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같이 언제 마신이 등장해서 세계가 멸망할지 모르는 시기에, 너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멋대로 살게 두는 건 죄악이야.”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도 이야기하네.”

“나도 내 인생을 바칠 거야. 우리 집안과, 인류를 위해서.”

한서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말이지?”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서연의 머리칼로 향했다.

한서연은 이를 악물면서 반사적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있는 파란색 브리지를 가렸다. 그녀는 옆머리를 귀로 넘기며 말했다.

“어쨌든 이 일은 간과할 수 없어. 당분간 조용히 있어. 내가 직접 부모님께 말씀드릴 테니까. 그리고 당신.”

서슬 퍼런 눈빛이 김건을 쓸었다.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지금 어떤 사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빠르게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을 거예요. 서리는, 당신 같은 사람이랑 어울릴 사람이 아니야.”

“……풉!”

계속해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서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한서연의 눈썹이 팍 찌푸려졌다.

“왜 웃어?”

“아니, 그냥 너무 웃겨서.”

“뭐가?”

“네가, 이상형으로 그리던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게 웃기지 않으면 뭐가 웃기겠어?”

“이상형은 무슨! 나는 이런 남자는 취향이…….”

“그게 아니라, 영웅으로서의 이상형을 말하는 거야.”

한서연은 기가 막혔다.

어젯밤에 SNS에 올라온 글들을 확인하고 김건의 이력에 대해서는 벌써 알아봤다.

교수의 추천으로 입학한 낙하산.

재능이 없는 평범한 영웅 지망생.

마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경계했던 거지, 그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녀에게 김건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마력적성 F급이 무슨…… 장난치지 마.”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력은 적지. 하지만 이이는…….”

“이이?”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그걸 잘,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야.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지. 적은 마력으로도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영웅. 그게 네 지향점 아니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 남자의 이력은 봤어. 감마급 몬스터 사냥. 오우거를 혼자 잡았고, 그걸 목격한 교수의 추천으로 입학했지. 마력적성 F급치고는 대단한 성과라는 건 인정해. 하지만 기껏해야 A급 영웅이 될까 말까 한 수준. 그 정도일 뿐이야. 아주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구나?”

“콩깍지가 아니라 네가 보는 눈이 없는 거야.”

다시금 두 사람의 눈빛이 맞부딪혔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한서리가 먼저 말했다.

“이 기회에 말해 두는데, 나는 더 이상 집안을 위해 살아갈 생각이 없어.”

“뭐?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쩔 건데?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을 줄 알아?”

한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해가 안 되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그냥, 뭐가 진짜 중요한 건지 깨달았을 뿐이야.”

“……그 중요하다는 게 이 놈팡이를 가리키는 건 아니겠지.”

팔짱을 끼면서 턱짓으로 김건을 가리키는 한서연. 그런 그녀에게 한서리는 차갑게 경고했다.

“놈팡이라니, 말조심해.”

“빌어먹을,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그때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시계가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한서리는 알람을 끄며 한서연을 흘겨보았다.

“슬슬 준비하고 나가야 할 것 같은데, 할 말 다 했으면 이만 좀 가 줄래?”

한서연은 이를 아득 갈며 동생을 노려보다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던전에 나가. 당분간은 못 와. 그리고 이건…… 이건…… 당장은 도저히 말씀 못 드리겠어. 일단은 비밀로 해 줄 테니까, 그동안 가만히 있어.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자.”

“흥.”

한서리는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한서연은 애써 그 태도를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당신, 내 동생한테 허튼짓이라도 해 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렇게 한서연이 방을 나가려 할 때였다.

한서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깐.”

“왜?”

“방 수리비는 주고 가야지.”

부서진 바닥을 가리키며 말한다. 한서연은 미간을 일그러트리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침대 옆의 탁자에 주머니에서 꺼낸 돌멩이를 쾅 하고 내려놓았다.

몬스터에게서 추출한 상등급의 마정석이었다.

“잔돈은 필요 없어.”

한서연은 그렇게 으르렁거리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김건을 죽일 듯이 쏘아본 뒤, 거친 발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한서리는 김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당신을 건드리는 사람은 내가 다 없애 버릴 테니까.”

“아니, 그 말이 더 무서운데.”

김건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비교적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나저나, 이 일이 당신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

“난리가 나겠지. 날 잡아다 골방에 가두는 건 당연하고, 당신은…… 어쩌면 내게 손댄 죄로 몰래 묻어 버리려 할지도 몰라.”

“…….”

김건은 기가 막혀서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과거로 돌아오자마자 마신은커녕 처갓집을 먼저 상대하게 생겼다.

한서리는 그 반응에 히죽 웃었다.

“농담이야. 요즘 세상에 누가 그렇게까지 해?”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어 보인다.

하지만 김건은 아내의 그 얼굴을 마냥 귀엽게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첫 번째 대답이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한서리와 김건, 두 사람은 일단 수업에 나가기로 했다.

아카데미는 단순한 교육 기관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무력 집단이기도 했다.

교육 과정을 이수한 뒤에도 대부분의 생도들이 조교나 연구원, 혹은 교수가 되어 아카데미의 구성원으로 남기 때문이다.

세계영웅협회의 랭커 100명 중 대다수가 아카데미 출신이고, 그중에서도 40명이 여전히 아카데미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상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웅을 때려치울 것이 아니라면, 과거로 돌아왔다고 해서 아카데미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열심히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게 좋지.’

아카데미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수록 더욱 많은 선택지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식사를 한 두 사람은 채비를 갖추고 기숙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어제 일이 소문이 나긴 했는지 주변을 지나가는 생도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한서리는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타인의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김건은 상당히 거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고난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기숙사 문을 빠져나오자마자 한서리가 발을 멈췄다.

의아해진 김건이 물었다.

“왜 그래? 방에 뭐 두고 온 거라도 있어?”

“아니, 아파서 못 걷겠어.”

“아파? 어디가?”

한서리는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김건은 자연스레 그 시선을 따라가다가 가볍게 경련하고 있는 아내의 다리를 발견했다.

그는 곧 한서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깨닫고 당혹한 얼굴이 되었다.

“아프다고 해서 결국에는 한 번밖에 안 했잖아.”

“처음이라 그래. 나도 모르게 긴장했었나 봐.”

한서리는 샐쭉 웃었다.

“어쨌든 당신 때문이잖아. 책임져.”

“표정을 보면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은데?”

“그럼 여기서 그냥 드러누울까?”

당당하게 뻗대는 아내의 행패에 김건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다가 결국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업혀, 데려다줄게.”

한서리는 살래살래 손을 저었다.

“아뇨아뇨, 아저씨. 거기가 아프다고요. 다리를 벌릴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안으면 되잖아?”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팔을 들어 시범을 보인다. 김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 여기서?”

“응, 지금 여기서.”

똘망똘망하게 반짝이는 아내의 눈을 본 김건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아내는 높은 직위를 가진 지휘관이었고, 위엄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썼다.

얼음장 같은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장난기가 나오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이 없을 때였다.

‘어려져서인가, 아니면 상황이 바뀌어서인가.’

이유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하나.

그것은 김건 자신이 아내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투덜거리며 아내를 번쩍 들어 올리자, 아담한 몸이 품에 쏙 들어온다.

속칭 ‘공주님 안기’라고 불리는 자세였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이 더욱 강렬해진다.

“어머머, 웬일이야.”

“이런 ㅆ…….”

남사스러움에 얼굴을 붉히거나 분노로 얼굴을 붉히는 생도들이 보였다.

한서리는 킥킥 웃으면서 남편의 목을 팔로 끌어안았다.

김건이 물었다.

“당신 상급반이지? 강의실이 어디야?”

“행정동 옆쪽. 큐브형 연무장이 있는 데.”

“천천히 걸으면 삼십 분쯤 걸리겠네.”

두 사람은 그렇게 얼싸안은 채 처음으로 같이하는 통학길을 걸었다.

사방에서 눈총이 쏟아졌지만 한서리는 신경 쓰지 않았고 김건은 금세 익숙해졌다.

햇볕이 쨍쨍했다.

야자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고 고개를 돌리면 하얗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보였다.

옆에 깔린 도로로 통학용 버스가 지나간다.

누군가는 하늘을 날아갔고, 누군가는 네 발 달린 골렘을 타고 달려갔다. 길가는 금방 한산해졌다.

아침결의 시원한 바람을 쐬며 한서리가 속삭였다.

“일단은 C클래스로 승급을 하자. 그러면 정기 수업도 없고 임시 영웅 면허도 나오니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

“흠, 그러면 빨라도 반년은 걸리겠네.”

“반년? 그러면 너무 늦지. 한 달 안에 끝내야지.”

아내의 대담한 발언에 김건은 의문을 표했다.

“어떻게? 아카데미 규정을 바꾸기라도 할 거야?”

실력 지상주의인 발할라 아카데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규칙은 있다.

막 입학한 생도인 김건과 한서리의 클래스는 D.

D클래스가 C클래스로 승급하기 위해선 시험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승급 시험을 치르기 위해 어느 정도는 학점을 이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입학한 생도에게 더 큰 권한을 주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력 집단인 만큼 아카데미의 내부 규정은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서리는 마냥 웃었다.

“정말로 방에 틀어박혀서 수련만 했나 보네. 아카데미 행사 같은 건 하나도 참여 안 했지?”

김건은 툴툴거렸다.

“행사 같은 데 나갈 여유가 어디 있었겠어. 당장 퇴학이나 안 당하면 다행인데.”

“그럼 걱정하지 말고 이 누님만 따라와.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요, 마님.”

한서리는 훌륭한 후위였다.

그녀는 후방에서 전투의 판도를 읽고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가이기도 했다.

김건은 한서리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어떻게 할 건지 더 묻지 않았다.

“이따 저녁에 시간 비워 둬. 갈 데가 있으니까.”

“어딜 가려고?”

“그건 비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도착지가 다가왔다.

반듯하게 지어진 행정동과 네모난 상자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큐브형 연무장이 보였다.

“저기야?”

“응. 조금만 더 가면 돼.”

왠지 모르게 아쉬운 얼굴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던 김건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미처 못한 말이 있는데.”

“뭔데?”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

“알지. 아카데미가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기술 연구실에 처박혀 있다가 구출된 사람이니까.”

피식 웃는 한서리.

김건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열심히 기술을 갈고닦았던 건 결코 사람들을 지키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야. 아버지를, 그리고 나를 무시한 놈들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다는 아집 때문이지.”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위해 싸웠잖아?”

“그건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고.”

“…….”

“그날, 말했지? 내가 어쩌다가 당신을 지켜보게 됐는지.”

서서히 내려온 시선이 품속으로 향했다.

한서리는 남편의 어깨자락을 꽉 쥐며 발개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그러니까 참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는 당신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때처럼 싫은 표정 하지 마.”

그렇게 말하며 김건은 조심스럽게 한서리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어느새 두 사람은 커다란 강의실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한서리는 빤히 김건을 바라보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아냐, 역시 나는 세상을 구할래.”

그녀는 김건을 꼭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서 당신과 오래 지내고 싶으니까.”

김건의 볼에 키스를 한 한서리는 훌쩍 물러섰다.

망설임 없는 경쾌한 움직임.

그래도 조금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보였다.

김건은 안심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최상위반에 속한 한서리와 달리, 그는 퇴학을 코앞에 둔 패배자가 득실거리는 최하위반에 속해 있었다.

그리고 최하위반의 강의실은 섬 구석에 처박혀 있다. 중심지인 이곳과는 꽤 거리가 있으니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김건이 서둘러 다리에 오라를 모으며 뛰쳐나가려는 참이었다.

한서리가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그럼, 조금 뒤에 봐.”

“조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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