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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6화 (6/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6화

그 말의 의미를 김건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하급반으로 내려온 한서리다. 별다른 소개는 필요 없겠지.”

교수가 말하자 강의실에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뭐야,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와?”

“상급반에서 일부러 내려온다고? 왜?”

“못 들었어? 쟤, 우리 반의 누구랑 사귄대.”

“사귄다고? 누구랑?”

“몰라. 뭐라고 이름은 들었는데 기억도 안 나네.”

“사귀는 거랑 반을 옮기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로맨티스트 납셨네.”

호기심, 의문, 적의가 뒤섞인 수많은 눈초리를 한서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냈다.

매끄러운 턱끝을 들어 올린 채 자리에 앉은 이들을 깔아 본다.

태어나서 패배를 모르고 자란 자 특유의 오만함.

거기에 현실의 것이 아닌 것 같은 푸르른 머리칼과 얼음 같은 미모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합쳐지자 무거운 위압감을 자아냈다.

“…….”

웅성거림이 잦아든다.

한서리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이 반의 일원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켰다.

킹메이커가 아니라 왕처럼 좌중을 살펴보던 그녀가 강의실 한편에 앉아 있는 김건을 발견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순식간에 강의실 내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고, 김건은 지끈거려 오는 이마를 짚었다.

교수가 말했다.

“따로 할 말 있는 거 아니면 아무 자리에나 가서 앉아라.”

“네.”

생도 수에 비해 강의실은 넓었다.

층별로 나눠진 계단식 강의실에 모두가 각자의 일행끼리 모여 띄엄띄엄 앉아 있었다.

한서리는 김건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표정은 얼음장인데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아내의 얼굴을 본 김건은 불안감을 느끼며 의사소통을 시도했다.

‘여기엔 왜 온 거야?’

수신호를 보낸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전장에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수신호와 약간의 제스처만으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서리는 눈을 찡긋하곤 수신호로 대답했다.

‘같은 팀이 되어야 하니까. 당신이 올라오는 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한서리가 코앞에까지 오자 김건은 어깨를 굳혔다.

사랑하는 아내라고 해도 남들 앞에서 계속 달라붙어 오는 것은 그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미 통학길에서의 일로 이미 꽤 부담이 간 터다.

안 그래도 주변 꼬마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데 아내가 옆에 앉는다?

벌써부터 속이 더부룩해졌다.

“훗.”

한서리는 피식 웃더니 김건을 스쳐 지나가 뒷자리에 앉았다. 김건은 아내가 내비친 배려심에 감사해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 * *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저 내용을 듣고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교양 학습. 옛날에 이수했던 과목이다.

김건은 책상에 설치된 터치화면의 자료를 주르륵 훑어보았다.

‘오랜만에 들으니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승급 시험에는 필기도 있다.

멍청하게 필기에 떨어져서 망신을 당할 생각은 없었다. 김건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가며 수업의 내용에 집중했다.

그때, 누군가가 등을 찔렀다.

“…….”

뒤를 돌아보는 김건.

뒷자리에는 한서리밖에 없다. 그는 왜 그러냐는 듯이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한서리는 그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김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교수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콕콕-

또다시 등에 느껴지는 감각. 그 손길이 누구의 것인지는 뻔했다.

‘이 여자가…… 이러려고 뒷자리에 앉았나?’

김건은 가볍게 이를 갈았지만 초등학생 장난질에 넘어갈 그가 아니다.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더 신호가 왔지만 김건은 깡그리 무시하며 전방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신호가 끊겼다. 이제 슬슬 질렸나 싶어서 마음을 놓으려는 순간, 다른 감각이 등줄기를 엄습했다.

간질간질-

보드랍고 몽실거리는 것이 등허리에서 꼬물거린다.

그것의 정체를 눈치챈 김건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강의실은 책상의 아랫부분이 뚫려 있어 뒷사람이 다리를 뻗으면 앞사람에게 닿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내의 맨발이 그의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쿡쿡 억누른 웃음소리와 함께 등의 촉감이 옆으로 미끄러져 갔다.

스타킹에 감싸인 발가락이 살랑살랑 옆구리를 간질이기 시작한다. 그 유혹적인 발짓에 김건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얼른 등 뒤로 수신호를 날렸다.

‘미쳤어? 장난치지 마.’

그러자 책상의 터치 화면으로 메시지가 날아왔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

또다시 날아오는 메세지.

<나 장난치고 싶거든.>

<당신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거 보고 싶어.>

하느님 맙소사.

김건은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일어서서 호되게 꾸짖고 싶지만 수업 시간에 소란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은 참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김건에게는 강력한 인내심이 있었다.

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아내의 희롱을 견뎠다.

그때였다.

옆으로 무언가가 굴러 떨어졌다. 필기용 터치펜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서리가 책상 옆 통로로 걸어 나왔다.

김건은 불안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고, 한서리는 히죽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펜을 향하던 손. 그것이 뱀같이 휘더니 김건의 허벅다리 안쪽을 파고 들어왔다.

김건이 펄쩍 뛰었다.

“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뭐야?”

“왜 저래?”

갑작스러운 소란에 강의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수십 명의 시선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힌다. 교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무슨 문제라도 있나?”

김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돌아오기 전, 그의 나이는 서른 중반.

늙은 건 아니지만 결코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다.

이 나이 먹고 학교에 와서 이런 꼴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는 엄청난 굴욕을 느끼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는 물론이요 강의실의 모두가 ‘뭐지? 저 멍청이는?’ 이라는 시선으로 김건을 쳐다보았다.

교수의 눈이 한서리에게로 향했다. 한서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뻔뻔한 공주님은 뭐라고 변명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는 금세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앉아라. 수업 방해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네.”

한서리는 도도하게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대답을 했는데도 대우가 이렇게나 다르다니.

김건은 이를 갈면서 의자에 엉덩이를 깔았다. 곧장 뒤편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한 번만 더 이러면 가만 안 있어.>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려오며 메시지가 날아왔다.

<ㅋㅋㅋㅋㅋ 삐졌어?>

무시.

김건은 화면을 조작해 한서리의 아이디에 차단을 먹였다.

그러자 잠시 후, 따뜻한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

앞자리로 상체를 내민 한서리가 바로 옆에서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 수업 끝나고 나면 좋은 걸 선물할 테니까.”

그러면서 숨결을 훅 불어넣는다.

그리고 김건은, 아내의 이마에 딱밤을 먹였다.

* * *

발할라의 게이트 시설은 전 세계로 이어져 있다.

김건과 한서리, 두 사람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게이트를 이용해 슬레이프니르로 이동했다.

슬레이프니르.

완전히 마계화된 아프리카의 절대 방위선을 지키는 이동형 요새도시다.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고철덩어리 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컨테이너를 쌓아둔 듯한 판자촌. 사방에 깔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공기는 탁하고 하늘은 뿌얬다. 온갖 무기로 몸을 치장한 군인과 용병들이 길가를 거닌다.

한쪽에서는 도르래로 몬스터의 시체를 끌어올리고 있었고 대낮부터 벌어진 야외에서의 술판에서는 욕설이, 도로변의 노상에서는 손님을 부르짖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저분하고 난잡하다.

하지만 기이한 활력이 느껴지는 거리였다.

김건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원래 이런 곳이었지. 감회가 새로운데.”

그는 이곳을 마지막 방주로 삼아 싸워 왔던 과거이자 미래를 떠올렸다.

삭막한 도시.

처절하기만 했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이곳은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옆에 선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좋은 걸 준다더니, 여긴 왜?”

“당연하잖아? 당신이 쓸 무기를 사러 온 거야.”

“역시나로군.”

선물을 한다길래 뭔가 싶었는데 그럴 줄 알았다.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의 힘으로 동작하는 장비의 재료는 대부분 마계에서 나온다. 때문에 마계화된 지역을 돌아다니는 슬레이프니르는 장비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기 쉬웠다.

이곳은 요새도시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대장장이들이 모이는 공방도시이기도 했다.

고개만 돌려도 뚫린 벽면 안쪽에서 푸르게 불타는 마력 화덕과 달궈진 금속을 두들기고 있는 장인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아카데미의 지급품은 나쁜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급수의 적과 싸우기에는 모자람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럼 아는 가게가 있어? 지금 연도면 어디냐…… 피츠버그 공방이나 엘드리치의 작업실이 좋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한서리는 피식 웃었다.

“내가 장비를 고를 때 제일 중요시하는 게 뭔지 알아?”

“뭔데?”

“바로 성능이야. 가격이 아니라.”

“…….”

그러고 보니 김건이 입에 담은 가게는 둘 다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민인 김건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속내가 뻔히 보인다는 듯 한서리는 빙글빙글 웃었다.

“따라와. 아는 공방이 있으니까.”

“예, 아가씨.”

김건은 툴툴거리며 척척 발을 옮기는 부잣집 아가씨의 뒤를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야트막한 언덕이 나타났다.

관광객마냥 주변을 둘러보며 발을 옮기던 김건은 언덕을 오르는 와중 주변을 거니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득하게 차 있던 건물 대신 넓게 깔린 담장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자그마한 요새도시에서 이만한 크기의 지대를 소유하고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잠깐만, 설마 지금 가려고 하는 데가…….”

“설마가 아니라 맞아.”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언덕의 종점에 도달했다.

눈앞에 거대한 건축물이 나타났다.

뾰족하게 솟은 고풍스러운 고딕 형식의 건물.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커다란 대문 위에 다음과 같은 문자가 공용어로 적혀 있었다.

[볼룬드]

두 사람이 다니는 발할라가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로 불리듯, 세상에는 각각의 영역에서 최고라 불리는 장소들이 있다.

그리고 볼룬드는, 그중에서 세계 최고의 공방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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