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7화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크기의 홀이 눈앞에 닥쳤다.
돔 형태의 천장에는 채광용 구멍이 나란히 뚫려 있고, 그 아래에는 화려한 채색으로 그려진 벽화가 펼쳐져 있었다.
금속을 세공하여 박아 넣은 벽화는 그 안에 그려진 인물들의 머리칼과 수염을 한 가닥 한 가닥 셀 수 있을 만큼 정교했다.
별다른 미적 감각을 지니지 못한 김건조차도 웅장한 기백을 뿜어내는 홀의 모습에 위압감을 느낄 정도였다.
천장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남편을 본 한서리가 부드럽게 웃었다.
“신화 속의 대장장이, 볼룬드의 일대기를 그려 놓은 벽화야. 단순히 심미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실용적이기도 해서 건물을 지키는 보호 결계로서의 기능을 한대. 초일류 대장장이 100명이 5년 동안 달라붙어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 대단하지?”
“……대단하긴 하네. 저걸 떼다가 무기 만드는 데 썼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본 건 처음이야.”
“그때는 워낙 상황이 안 좋았으니까. 이번에도 저게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몰라.”
어렸을 때에는 연구실에만 처박혀 있느라, 나이 먹어서는 전쟁터에 끌려 다니느라 관광 같은 것은 해 본 적이 없는 김건이었다.
한서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높게 손을 올려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앞으론 이런 거 많이 보여 줄게~.”
“후…… 그것참 감사한 일이군?”
그렇게 작게 투닥거리는 사이.
두 사람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한서리 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남자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귀족집의 집사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와 자세에 김건은 살짝 긴장했지만 한서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까딱였다.
남자가 말했다.
“오신다는 연락은 못 받았는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한서리는 뒤편을 가리켰다.
“이 사람에게 줄 무기를 사려고요.”
남자는 김건을 보더니 다시 한번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엘런 스미스입니다. 볼룬드에 방문하시는 고객님들께 대장장이나 장비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김건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마주 인사했다.
“김건입니다. 발할라의 생도입니다.”
“반갑습니다. 김건 님. 그럼 따라오시죠.”
엘런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의 접견실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접견실은 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분위기가 있었다.
기이하게도 문이 달린 벽면을 제외한 삼면은 모두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 금방 다른 직원이 들어오더니 음료의 주문을 받았다.
맞은편에 엘런이 앉으며 말했다.
“대장장이를 지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카테고리를 먼저 보시겠습니까?”
“대장장이를 지명할게요.”
“그럼 바로 리스트를…….”
“아뇨, 리스트는 필요 없어요. 버트 포스터를 불러 주세요.”
“버트 포스터, 말입니까?”
한서리가 부른 이름에 엘런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실력은 있지만 꽤 괴팍한 사람이라 무례를 끼칠지도 모릅니다. 제작하는 물건들 역시 보통의 것들은 아니고요.”
“그 보통이 아닌 게 필요해서 그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엘런이 탁자의 패널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김건은 살짝 물어보았다.
“버트 포스터가 누구야? 그런 대장장이는 들어 본 적 없어.”
“당신이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는 행방불명이 된 사람이거든. 게다가 이름보다는 별명이 유명한 사람이고. 별명을 들으면 알 거야.”
“별명이 뭔데?”
한서리가 대답을 하기 전에 방이 가볍게 진동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엘런이 한쪽 벽면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혔다.
뜨거운 열기가 확 밀어닥쳤다.
어떻게 된 구조인 것인지, 커튼 너머로 커다란 대장간이 나타났다.
“뭐야?”
김건은 조금 당황했다. 방금 전만해도 분명 커튼 너머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엘런이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슬레이프니르는 이동요새다 보니 공간이 좁아서 모든 시설을 한 군데에 몰아넣기가 힘들죠. 때문에 대장장이의 개인 작업실을 곳곳에 흩어 놓고 게이트 기술을 통해 볼룬드 본관과 이어 놓은 겁니다. 고객분들이 편하게 모든 대장장이들과 장비를 찾아보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한마디로 장사를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시설이라는 거다.
세계 최고의 공방이 제공하는 차원이 다른 서비스에 김건은 혀를 내둘렀다.
캉- 캉-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화덕 앞에서 한 커다란 덩치가 등을 돌리고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천장에 발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는 무기 때문에 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덩치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망치질을 계속했다.
엘런이 말했다.
“버트, 지명일세. 그만하고 이리 나오게나.”
하지만 벙어리라도 된 듯, 버트는 무심히 작업만 할 뿐이었다.
엘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가 무어라 하기 전에 한서리가 말했다.
“잠깐 기다리죠. 하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엘런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기다리자 망치질이 멈췄다.
통나무 같은 몸이 빙글 돌더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천장에 걸린 무기들이 부딪치며 짤그랑짤그랑 소리를 냈다.
그리고 드러난 버트의 모습에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인의 목 위에 황소의 머리가 달려 있었다.
몬스터는 아니다. 어깨 위에 얹어져 있는 것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투구였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큰 키와 통나무같이 두꺼운 근육이 더해지자, 전설 속 미노타우르스가 나타났다고 해도 믿을 외견이 완성되었다.
겉보기만 해서는 대장장이가 아니라 몬스터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을 전사 같았다.
김건이 속으로 감탄을 토하는 동안 엘런은 한서리를 소개했다.
“인사하게, 이분은 한씨 가문의 차녀인 한서리 님…….”
“뭘 원하지?”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엘런의 말을 끊었다.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화가 난 엘런이 호통을 치려는 순간이었다.
한서리가 손을 들어 올려 엘런을 제지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를 늘어놓았다.
“강력한 무기가 필요해요. 특히 내구도가 뛰어난 것으로. 고제련의 오라와 부딪혀도 버틸 수 있어야 해요.”
“무기의 종류는?”
“채찍.”
큼직한 황소 머리가 갸웃했다. 무뚝뚝하던 목소리엔 일말의 흥미가 서려 있었다.
“당신이 사용할 물건인가?”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사람이 사용할 거예요.”
옆에 앉은 김건을 가리키며 말한다.
버트는 김건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운이 좋군. 마침 좋은 물건이 있지.”
말을 마친 그는 거꾸로 매달린 무기의 숲을 헤치기 시작했다. 무기가 뒤섞이며 와장창창 소란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장갑을 낀 손으로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긴장감이 있었다.
그는 한참이나 무기 더미를 뒤지고 나서야 검은 금속덩어리를 끄집어내 한서리와 김건의 앞에 내려놓았다.
쾅- 소리가 나며 길게 풀어진 채찍이 탁자 위로 흘러내렸다.
칠흑빛을 지닌 금속재질의 채찍.
그것을 본 엘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봐, 버트. 이건 안 돼.”
그러자 투구 속에서 킬킬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안 될 게 뭐가 있지? 고제련 오라와 부딪혀도 될 물건, 그것도 채찍은 이것밖에 없다. 내가 만든 것들 중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건…….”
한서리가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말만 들어서는 제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물건 같은데요.”
엘런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서리 님이 말한 조건에는 부합할 겁니다. 이건 리빙메탈로 만들어진 물건이니까요.”
김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리빙메탈이라고요?”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건 단순한 무기가 아닙니다. 사용자의 마력을 잡아먹는 마물이죠.”
“그건 알고 있지만…… 이걸 어떻게 제련한 거죠?”
리빙메탈은 마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마력을 흡수할수록 경도가 올라가는 특성을 지닌 금속이었다.
또한 광산이 아니라 콜로서스라 불리는 몬스터의 표피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희귀한 재료이며, 자체적으로 마력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마력 화덕으로 제련을 할 수가 없어 막강한 강도에도 불구하고 잘 사용되지 않는 물건이기도 했다.
버트가 말했다.
“이걸 단조하기 위해 뉴욕 연구소의 원자력 화덕을 사용했지. 리빙메탈에 미스릴을 섞은 다마스크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연성도 뛰어나. 한 줄 한 줄 실처럼 뽑아내어 엮느라 고생은 했지만 성능은 확실해. 내구도만큼은 이것에 비할 무기가 없다고 자부하지.”
“그러면 뭐 하나, 사용자의 마력을 빨아먹는 탓에 제대로 다룰 수가 없는데.”
핀잔을 주던 엘런이 한서리를 돌아보았다.
“서리 님, 죄송합니다만 이 물건은 팔 수 없습니다. 이미 한 번 전적이 있는 무기예요.”
“무슨 전적이요?”
엘런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성능 테스트를 하려고 했던 손님이 이걸 집었다가 마력 탈진으로 기절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A급 마력적성을 가진 분이셨는데도 10초를 채 견디지 못하셨…… 잠깐만요, 위험합니다!”
펄쩍 뛰는 엘런.
그의 앞에는 어느 샌가 채찍을 집어든 김건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리빙메탈로 만들어진 무기를 쥔 김건은 그것을 팽팽히 당겨 보더니 씨익 웃었다.
“이거 진짜 좋은데?”
“마음에 들어?”
“응.”
자리에서 일어선 김건은 채찍을 좌우로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금속이 아니라 가죽으로 만든 느낌이야. 엄청 가벼워. 손잡이도 딱 맞고.”
“……저, 저기, 김건 님. 괜찮으십니까?”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힘든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막 손에 넣은 무기를 확인해 보기 바빴다.
엘런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전에 저 무기를 쥐었던 사람은 10초 만에 파랗게 질려서 무릎을 꿇었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십 년 이상 영웅으로서 살아온 베테랑이었는데도 그랬다.
방금 버트가 그랬던 것처럼 특수한 장갑을 끼고 있지 않으면 만지는 것조차 쉽지 않은 물건일 텐데…….
‘그런데 저 청년은 어떻게 멀쩡하게 저걸 쥘 수 있는 거지?’
옆에 있던 버트가 그 의문에 답했다.
“마력을 제어하는 힘이 뛰어난 거다. 리빙메탈의 흡수력보다 강하게 몸속의 마력을 붙잡고 있는 거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일류 전위라면 당연히 갖추고 있어야 할 능력이지. 하지만…….”
“하지만?”
“저 정도로 자연스럽게 제어할 수 있는 건 초일류라고 불릴 사람뿐이다.”
엘런은 깜짝 놀라서 버트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들릴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생도가 초일류 전위라고? 그럴 리가 없네, 난 저 청년의 이름을 오늘 처음 들었어.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이 되는가 안 되는가는 내 알 바 아니야. 확실한 건 저놈이 초일류급의 마력 제어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금속으로 만들어진 황소 머리의 안쪽에서 예리한 눈빛이 번득였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김건은 무기의 점검을 마치고 있었다.
풀어진 채찍을 되감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는 그의 모습을 본 한서리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어때? 다른 물건도 몇 개 더 볼래?”
“아니, 필요 없을 것 같아. 이 정도 물건은 거의 본 적 없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보네.”
탁자 위에 채찍을 내려놓는 김건에게 버트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물었다.
“너, 마력적성이 어떻게 되지? 테스트를 할 때 오라를 사용하지 않는 걸 보니 마력이 많은 편은 아닌 것 같군. B급 정도인가?”
자리에 앉은 김건은 물끄러미 황소 머리 대장장이를 올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F급입니다.”
“F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