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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0화 (10/200)

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0화

김건은 난색을 표했다.

“그건 좀…….”

“왜? 왜? 아무도 안 보잖아! 할 거 다 한 사이끼리 부끄러워하지 마.”

“나 자신한테 부끄러워서 못해.”

딱 부러지게 거절했건만 한서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온갖 협박과 회유를 곁들인 뒤에야 딱 한 번, 원하는 서비스를 받는 데 성공했다.

김건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한서리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케이크가 맛있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게 마음에 들었던 건지, 한서리는 앉은자리에서 케이크 하나를 모두 먹어치웠다.

“아,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 케이크였어.”

김건은 한서리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앞으로도 많이 사 줄게. 길가에서 산 싸구려이긴 하지만.”

“당신 진짜 바보야? 나한테 가격은 별로 의미가 없어. 누구한테, 무엇을 받느냐가 중요하지.”

식기를 치우던 한서리가 물었다.

“난 이걸로 배부른데…… 당신 저녁은 어떻게 해?”

김건은 고개를 저었다.

“난 방금 조금 먹은 걸로 됐어. 알잖아. 내가 원래 소식하는 거.”

“배가 부르면 몸이 느려지고 감각이 둔해진다고? 그때는 수시로 싸웠으니까 그렇다 치는데…… 오늘 정도는 괜찮잖아.”

“이미 익숙해져서 이게 더 편해. 괜찮아.”

그렇게 뒷정리를 마치고 나자 두 사람은 공백 상태에 빠졌다.

여유 시간을 가져 본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것이었다.

김건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우리가 돌아오긴 돌아왔네.”

“그러게, 어제는 잘 몰랐는데 확실히 어색해. 익숙해지려면 좀 걸릴 것 같아.”

김건은 한참이나 기억을 되돌려 그 자신이 이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떠올렸다.

8시를 조금 넘은 시각, 이때는 한창 육체 단련을 끝내고 오라 컨트롤을 연습했었다.

그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감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체조와 똑같다.

체조가 인체로 가능한 온갖 동작을 시행하며 세밀한 근육과 관절의 컨트롤을 익히는 것이라면, 오라 컨트롤은 오라로 변환한 마력을 전신에서 다양각색의 방법으로 운용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다.

오라 컨트롤의 삼원칙. 형태와 경도, 그리고 무게를 생각하며 마력을 움직인다.

그의 기술은 일반적인 상궤를 벗어나 있지만 근본으로 돌아가면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뽑아낸 마력을 오라로 가공하여 조종한다.

가지고 있는 마력 총량의 10분의 1을 움직인다.

100분의 1을 움직인다. 1000분의 1을 움직인다.

그다음은 배수로 조절한다. 2000분의 1, 4000분의 1, 점점 정밀도를 올려 간다.

정교한 오라 컨트롤.

그것은 김건의 최대 무기였다.

그가 가진 모든 기술들은 수많은 연구와 수련으로 얻은, 기계보다 정밀한 제어력에서 발현됐다.

그가 자리에 앉아 오라를 수련하는 동안 한서리는 거실에 놓인 사무용 탁자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병렬 사고는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김건은 계속해서 오라를 제어하면서 의식을 나눠 이야기를 시도했다.

“뭐 하는 거야?”

“자료 조사. 나라고 과거의 모든 일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야. 대충의 큰 그림은 그려 놨지만 세부적인 형태를 완성하려면 정보가 필요해.”

고개를 주억거리던 김건은 방금 전부터 들었던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안경은 왜 낀 거야? 시력에 문제는 없잖아?”

한서리는 미소를 지으며 콧등에 걸친 안경을 치켜올렸다.

“이거? 어렸을 때 선물받은 아티팩트야. 시력을 보호하고 집중력을 높여 줘. 공부를 하거나 사무를 볼 때는 꽤 좋아. 전투 중에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꽤 애용했어.”

차갑고 매서운 인상에 안경이 얹어지자 안 그래도 아름다운 미모에 이지적인 매력이 더해진 것 같았다.

김건은 지금까지 몰랐던 아내의 모습에 집중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를 더할 수밖에 없었다.

디스플레이 패널 위에 수많은 팝업을 띄워 놓고 조작하던 한서리의 눈에 갑자기 이채가 감돌았다.

“그러고 보니 마침 내일이 주말이네.”

“그러게.”

김건은 내일은 뭘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한서리는 이미 내일의 일정을 정한 듯싶었다.

그녀는 김건을 향해 홀로그램으로 띄워진 디스플레이 화면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 내일 여기 가자.”

화면에 표시된 구조물에는 ‘데이지 랜드’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꽤 유명한 놀이공원이라 김건도 이름은 알고 있었다. 한 번도 가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알았어.”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건의 반응에 한서리는 조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웬일이야? 한참은 졸라야 알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당신, 사람 많은 곳이라면 질색을 하잖아.”

“그냥…… 당신이 왜 그저 그런 나날을 보내고 싶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그런 거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말해. 최대한 어울려 줄게.”

한서리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기특하기도 해라. 근데 여기에 가자고 한 건…….”

“그냥 놀려고만 그런 건 아니겠지.”

그 정도는 김건도 예상했다.

그의 아내는 결코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 같아선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거든. 우리의 적은 마계뿐만이 아니야. 언니는 비밀로 해 준다고 했지만…… 어제 있었던 일도 있고 오늘은 제이미와 마주쳤으니까 금방이라도 본가에서 반응이 있을 거야. 제이미의 집안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고.”

“그건 적이라고까지 할 건 없잖아? 꽤 귀찮기는 하겠지만…….”

“무른 생각하지 마.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든, 전반적인 인류의 전투력을 생각하든, 우리 두 사람은 떨어져선 안 돼. 우리를 방해하는 건 다 적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당신도 알잖아.”

한서리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카데미 어딘가에 숨어 있는 배신자를.”

그 말에 김건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놈이 지금 시점에 이미 들어와 있다고?”

“그래.”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뒤, 마계의 침략으로부터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틴 인류가 갑작스럽게 멸망한 것은 최후의 보루라 믿었던 발할라 아카데미가 하루아침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속칭 ‘라그나로크’라고 불리는 사건.

발할라가 수많은 마인과 몬스터들의 일제 공격에 박살이 난 사건이다.

발할라가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지는 것은 철저히 지리적인 이유였다.

우선은 차원상의 공간이 극도로 안정되어 있어 차원 틈새를 통한 마계에서의 직접적인 접근이 불가능하고, 어찌어찌 지구로 넘어오더라도 발할라의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태평양 어딘가에 있을 거라 이야기하지만 엄밀히 말해 가설일 뿐 실제로 발할라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외부로 통하는 게이트 시설만 파괴하면, 이론적으로 발할라는 외부의 공격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가, 발할라의 위치가 마계로 넘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을 받은 발할라는 격렬히 저항했지만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 결국에는 요새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뒤, 온갖 조사가 이어졌지만 사건의 경위는 오리무중이었다.

그저 발할라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교장과 그를 포함한 고위직들만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결국 원인을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제일 유력한 것이 이것이었다.

발할라의 배신자. 혹은 첩자.

발할라의 고위층을 몰살하고 그 위치를 마계에 알린 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가설일 뿐이잖아. 설령 그게 진짜라 해도 그게 누군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미래에서 온 우리가 알아내야지. 놈만 막으면 일이 훨씬 쉬워질 거야.”

“그놈이 이미 들어와 있을 거라고는 어떻게 알지? 라그나로크가 터지는 건 앞으로 10년 뒤의 일이잖아.”

“올해를 기점으로 마인협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으니까.”

한서리는 몇몇 자료를 김건의 눈앞에 띄워 주었다.

각각 마인 테러 사건 횟수와 마신을 추종하는 마교 신자의 증가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였다. 둘 다 모두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김건은 의문을 표했다.

“그거랑 발할라의 배신자가 무슨 관계가 있는데?”

“마인협회의 추적 및 대응을 담당하는 영웅은 대부분 발할라에 있으니까. 발할라의 내부 정보가 있으면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잖아.”

“놈이 마인협회 소속이라고 보는 거야?”

“마인협회 소속이거나, 최소한 마인협회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고 보는 거지. 마계 전체로 보면 마인협회는 벨제불의 끄나풀일 뿐이지만 지구상에서는 가장 큰 마계의 세력이니까. 놈이 마인이든, 사람으로 위장한 몬스터든 인류의 적인 건 마찬가지야. 그리고 적의 적은 얼마든지 동지가 될 수 있지.”

마계를 지배하는 3대 마신, 벨제불과 티아마트, 그리고 기린이 서로 적이라는 것까지 고려한 추측이라는 것이다.

“…….”

생각에 잠기는 김건.

한서리는 다시금 키보드를 두들기며 말했다.

“현상은 지금 발생하고 있지만, 녀석이 이곳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 데 걸린 시간도 계산해야 해. 실제로 학교에 잠입한 건 몇 년 전일 거라고 봐. 어쩌면 그것보다 더 될 수도 있고.”

그 말은 즉, 발할라의 배신자는 라그나로크를 위해 수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잠복했다는 말이다.

김건은 그 지독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게 사실이라면 잡기가 쉽진 않겠는데, 그 정도 독종이라면 어지간해서는 꼬투리를 남기지 않아.”

“괜찮아. 우리는 이미 놈의 존재를 알고 있잖아. 뭔가가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훨씬 쉽게 증거를 찾을 수 있어.”

“……그러면 내일 놀이공원에 가는 이유는 뭐야? 놈과 관련이 있는 일인가?”

“아직 그 단계는 아니야.”

한서리는 고개를 저었다.

“만날 사람이 있거든. 앞으로 여러모로 우릴 도와줄 사람이야. 인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은 확실하게 배신자가 아니야.”

“왜?”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건. 한서리는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안경을 고쳐썼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라그나로크가 일어나기 한참 전에 죽은 사람이니까.”

* * *

“기상.”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파란색 광점 두 개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높은 마력적성은 머리카락은 물론이요, 눈동자에도 영향을 미친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푸르게 발광하는 사파이어색 동공.

아름답지만, 그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김건은 손을 뻗어 아내의 눈가를 만졌다. 미약한 오라를 끌어내 아내의 각막에 씌워 준다. 푸른 광점이 사라졌다.

“위험하니까 동공의 마력은 항상 감추라고 했잖아.”

한서리는 콧방귀를 뀌었다.

“일어나자마자 잔소리야? 걱정하지 마. 여기선 머리에 구멍 뚫릴 일 없어.”

김건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은 어두웠다. 해는커녕 아직도 달이 하늘 끝에 걸려 있다.

“지금 몇 시야?”

“네 시 좀 넘었나?”

“무슨 일 있어? 이런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냐니, 놀이공원 가기로 했잖아.”

“놀이공원이랑 새벽같이 일어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일찍 가야 빨리 들어가지. 거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패스권이야 구매는 하겠지만 그래도 한참 기다려야 할 걸.”

김건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였다.

“빨리 들어가서 대체 뭘 하려고…….”

“놀아야지!”

한서리는 배시시 웃었다.

“그냥 놀러만 가는 게 아니라고 했지 안 논다고 한 적은 없거든.”

그녀는 벌떡 일어서서 김건을 잡아끌었다.

“자, 자, 빨리 일어나! 나랑 어울려 준다고 했잖아! 벌써 계획한 일정보다 47초 늦었어!”

얼마나 기운이 넘치는지 계획을 초 단위로 세워 놓은 모양이었다. 그 의욕에 질려서 김건은 고개를 내저었다.

“엄청나게 놀고 싶었나 보네.”

“그거야 당연하지.”

고개를 끄덕인 한서리는 김건을 끌어안으며 그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가슴이 어깨에 닿고 샴푸향이 코를 간질였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 제대로 된 데이트는 이번이 처음인걸.”

생도 시절로 돌아간 아내, 아직 앳된 얼굴에 박힌 두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한서리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동작에 섞인 애교와 영악함을 읽은 김건은 자신이 외통수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오늘 한서리에게 거스르는 건 그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빨리 가서 씻어.”

명령이 떨어졌다.

김건은 서둘러 일어나 욕실로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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