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1화
“이거! 이거 꼭 타야 돼!”
“다음은 저기야, 커플들이 필수로 거치는 코스라는데. 빨리 와!”
“저거 맛있겠다! 먹어 보자!”
자료 조사를 한다더니 마계의 동향이 아니라 데이트 코스를 조사한 모양이었다.
분명 처음 와 보는 것이 분명할 텐데 한서리는 놀이공원의 인기 있는 놀이기구나 사진 포인트, 그리고 각종 맛집에 대해서 줄줄이 꿰고 있었다.
오후 4시, 아침부터 시작해서 해 질 무렵이 될 때까지 두 사람은 놀이기구를 타고, 사진을 찍었으며, 온갖 디저트를 먹었다.
어떤 의미로 완전 군장 행군 수십 킬로미터를 한 것보다도 더 피곤했다.
김건은 침음했다.
전투 때는 금방 숨이 차 허덕이는 아내의 체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싸울 때 쓰는 체력과 놀 때 쓰는 체력은 별도로 있는 것 같았다.
간식이 들어가는 배도 별도인 모양이다.
김건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아이스크림을 할짝거리고 있는 한서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온종일 놀았는데도 무언가가 불만인지 심드렁해 보였다.
“놀이기구는 별로 재미가 없네. 그냥 흔들거리기만 하고.”
김건은 핀잔을 주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놀이기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든 거잖아.”
몬스터와 전투를 하다 보면 별의별 기동을 다 취하게 된다.
전위인 김건은 말할 것도 없고 후위인 한서리도 하늘에서 낙하하거나 공중에 매달려 수직으로 회전하는 것 정도로는 전혀 스릴을 느낄 수 없었다.
한서리는 삐죽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놀이기구잖아. 뭐가 좀 다를 줄 알았지.”
두 사람은 놀이공원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커플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난간을 따라 나란히 설치된 망원경으로 아래의 모습을 구경하며 시시덕거렸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한서리는 남아 있는 콘을 아삭아삭 깨물어 해치우더니 난간에 턱을 괴었다.
“맛집이라는 데도 영 별로야. 어제 먹은 케이크가 훨씬 맛있었어.”
“까다로운 아가씨구만…….”
김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한서리는 그를 돌아보아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니까 나를 좀 즐겁게 해 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거든.”
실실 웃는 얼굴로 또다시 곤란한 요구를 해 온다. 김건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냥 나를 괴롭히는 걸 제일 재미있어하는 거 같은데?”
한서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눈치가 참 빠르네~.”
“이 사람이 정말…….”
과거로 돌아오더니 엄청나게 짓궂어졌다.
김건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대로 당해 주기만 하다간 남편이 아니라 애완동물이나 심심풀이용 장난감이 되게 생겼다.
괘씸하다고 생각한 김건이 뭐라도 한 방 먹이기 위해 머리를 굴릴 때였다.
한서리의 미소가 짙어졌다.
“에잇.”
일언반구도 없이 난간 밖으로 뛰어내린다. 파란 머리칼이 깃발처럼 휘날리며 순식간에 지상을 향해 추락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김건은 펄쩍 뛰었다.
“한서리!”
높게 솟아 있는 전망대.
난간 아래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절벽이었다. 어지간히 수련을 거친 전위가 아니라면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김건은 서둘러 한서리를 따라 난간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난간 아래의 턱을 발로 박차며 가속. 먼저 뛰어내린 한서리를 순식간에 따라잡아 한 손으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장난이 지나치잖아!”
화난 목소리로 호통을 쳐 보지만 한서리는 그저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마냥 “꺄-! 무서워!”하고 과장스러운 소리를 낼 뿐이었다.
김건은 혀를 차면서 남은 한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돌돌 말려 있던 채찍이 좌르륵 흘러나왔다.
검은 섬광이 한쪽으로 쏘아졌다.
전망대 아래에 위치해 있던 한 구조물의 끄트머리를 채찍으로 잡았다. 검은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던 두 사람의 몸이 그 끝을 따라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지상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양쪽으로 몸을 피했다. 김건은 적은 오라를 쥐어짜낸 강체술로 육체에 힘을 더했다.
아내를 끌어안은 채 하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니 엉덩이가 바닥을 스치듯이 훑고 지나갔다.
채찍으로 낚아챈 구조물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두 사람.
김건이 오라를 조작해 채찍 끝의 힘을 풀자, 인력에서 해방된 둘의 몸이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우와아!”
지면은 각종 건물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땅히 착지할 곳이 없다고 판단한 김건이 연달아 채찍을 날렸다.
채찍을 이용한 와이어 운동. 사방에 널린 구조물을 이용한 입체 기동은 김건의 특기 중 하나였다.
그는 정글 속 원숭이 저리 가라 할 움직임으로 놀이공원의 공중을 누비며 날아다녔다.
수직 낙하에서 이어지는 곡예 같은 움직임이 이어지며 중력이 역전하는 듯한 기분에 한서리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재미있지!”
아주 신났구만, 신났어.
약이 오른 김건이 가속을 더했다.
고속, 그리고 다각 이동.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롤러코스터의 꼬리를 채찍으로 붙잡았다.
레일을 타고 미끄러져 나가는 놀이기구의 뒤를 쫓아 날아가다가 하늘로 비스듬하게 활강…… 하는 듯하면서 아래로 채찍을 뻗어 급강하.
아내의 숨막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란히 서 있는 철골을 지지대 삼아 수평으로 이동하다 길게 도약해 측면의 호숫가로 뛰어내렸다.
포말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여객선의 끝을 붙잡고 하강해 수면에 닿을 듯이 원운동을 했다.
일부러 상체를 숙여 아래쪽에서 튀기는 물보라를 아내의 얼굴에 닿게 했다.
우우웃- 하는 신음 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품속의 아내를 공중으로 내던졌다.
“우왓.”
공중을 유영하는 한서리.
하지만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몸을 웅크리며 자세를 잡았다.
아래쪽에서 솟구쳐 오른 그림자가 그녀를 낚아채고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두 사람이 내려앉은 곳은 놀이공원을 가로지르는 하천가의 산책로였다.
인간 놀이기구 역할을 한 김건은 부드러운 동작으로 한서리를 품에서 놓아 주었다. 한서리는 떨리는 다리로 뒤뚱뒤뚱 균형을 잡더니 비틀거리며 옆의 벤치에 앉았다.
“와우, 어, 이번 건 좀 먹혔는데? 싸울 때 움직이는 것보다 더 격렬하던걸? 토할 것 같아.”
그러면서 구역질 하는 시늉을 한다. 김건은 콧방귀를 뀌었다.
“사람을 놀이기구 취급한 대가야. 반성해.”
“그래, 반성할게. 그러니까 밤에도 이렇게 부탁해.”
“맙소사.”
무시무시한 발언에 이마를 감싸는 김건. 한서리는 벤치에 앉아 고양이처럼 팔다리를 쭈욱 늘였다. 그러고는 헤헤 웃는 얼굴로 한쪽 눈을 깜빡였다.
“어쨌든 재미있었어. 놀이기구씨.”
결국에 놀아난 것은 이쪽이었다. 김건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벅벅 뒤통수를 긁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해가 져 가는데, 그 만나야 된다는 사람은 어디 있는 거야? 여기에 있긴 해?”
단순히 놀려고만 한 게 아니라고 했던 어제의 발언이 의심스러워져서 물어본다.
그 말을 들은 한서리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마침 잘 말했어. 저기 보인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산책로의 한쪽을 가리켰다.
산책로의 한편에 깔려 있는 가로수 사이, 으슥한 그늘 안쪽에서 한 여자가 괴상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들썩, 다리와 팔을 덜그럭거리며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다.
언뜻 보면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구석진 위치.
하지만 그곳에는 보이기만 한다면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 있었다.
김건이 눈살을 좁혔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글쎄, 춤이라도 추는 거 아닐까?”
심드렁하게 대답한 한서리가 앞으로 나섰다.
“저게 춤이라고?”
김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내의 뒤를 따랐다.
“라라라라~ 라라~”
한서리의 추측이 맞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지막이 콧노래가 들렸다. 괴악한 춤 솜씨와 달리 노래는 그럴싸했다.
‘도대체 저기서 왜 저러고 있는지 몰라서 그렇지.’
김건은 입맛을 다셨다.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동작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뿔테 안경과 앳된 얼굴이 보였다.
여자 역시 자신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한서리와 김건을 발견했다.
“악!”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뛰어오르는 여자.
자신이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건 아는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도망치려 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한서리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만에 뵙네요.”
차분한 목소리에 여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한서리를 돌아보더니 안도한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서리구나…… 미안, 순간적으로 못 알아봤어.”
선배라는 말을 들어 봐서는 아카데미의 상급생으로 보이지만, 누군지는 모르겠다.
김건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카데미 동기생인 김건이라고 합니다.”
평범한 인사였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는 화들짝 놀라더니 어물어물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 응, 안녕. 나는 24기생인 노바 라디스티야.”
노바 라디스티라, 아내가 점찍을 정도면 보통의 인물이 아닌 건 분명한데 기억에는 없는 이름이었다.
후줄근한 머리는 대충 올려 묶은 데다 얼굴을 가리는 안경, 옷차림도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리칼은 보랏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천만분의 일로 나온다고 하는 S급 이상 마력 적성자를 벌써 몇 명째 만나는 건가.
김건은 유심히 노바를 쳐다보았다.
노바 역시 김건을 의식했는지 자꾸 그를 흘끗거렸다.
“김건…… 김건…… 아!”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며 김건의 이름을 되뇌던 노바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아, 네가 그 애구나? 진동을 이용한 오라 사용법을 연구한다는!”
김건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아시죠?”
주눅 들어 있던 얼굴에 활기가 감돈다. 노바는 들뜬 어조로 말을 쏟아 냈다.
“교수님한테 들었지. 센델 교수님이 내 전임 교수시거든. 정말 좋은 실험체…… 아니, 연구 소재가 들어왔다고 교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나도 네 이론에 흥미가 많아! 앞으로 잘 부탁해!”
갑자기 어디서 그렇게 친밀감이 솟아 나왔는지, 김건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확확 흔들었다.
김건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
그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도끼눈을 한 한서리가 얼음 결정 같은 눈동자로 그와 노바를 쏘아보고 있었다.
“방금 만난 사람들끼리,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서슬 퍼런 미소에, 노바가 히익 소리를 내며 물러섰다.
“어, 어…….”
그녀는 잔뜩 겁먹은 눈으로 한서리와 김건을 돌아보더니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 물었다.
“호, 혹시 두, 두 사람 무슨 사이야…….”
“사랑하는 사이입니다만.”
한서리는 그렇게 말하며 김건의 팔을 잡아당겨 자연스레 팔짱을 꼈다.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뻔뻔함에 김건은 얼굴을 감쌌고 노바는 얼굴을 붉혔다.
노바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한서리는 어지간히 기분이 상했는지 냉랭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눈빛에 질린 노바가 물에 젖은 병아리처럼 벌벌 떨자, 보다 못한 김건이 나섰다.
“그런데, 방금 여기서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방금 전?”
방금 전, 자신이 보였던 추태를 떠올렸는지 노바의 얼굴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김건은 이 분위기에 괜한 걸 물었나 싶어 속으로 혀를 찼지만 다행스럽게도 반응이 있었다.
“아, 아르바이트 준비야. 이따 저녁에 있을 공연에 참가하거든.”
“무슨 공연인데요?”
“일루미네이션이라고…… 빛을 뿌리는 마술 같은 거야. 빛을 이용한 마법이 내 특기거든.”
흠, 하고 김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지금 아카데미 클래스가…… 어떻게 되시죠?”
24기생이면 김건과 한서리보다 2년 빠른 기수다.
하지만 아카데미 내의 클래스는 단지 연차만 가지고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노바는 쉽게 대답을 해 주었다.
“C클래스야.”
C클래스, 아카데미에서 제일 일반적인 클래스다.
김건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임시 영웅 면허도 나올 텐데 돈이 필요한 거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낫지 않나요?”
“그게…… 우리 파티원들은 모두 주말에는 쉬자는 분위기거든. 나도 돈이 급한 것만 아니면 아르바이트까지는 잘 안 해.”
노바는 한숨을 쉬었다.
“그 돈이 항상 급해서 문제지.”
돈이 항상 왜 급하지?
김건은 의문을 가졌다. 발할라 아카데미의 C클래스는 그리 만만한 직위가 아니었다. 어렵게 입학해서 몇 년간 승급 한 번 하지 못하고 퇴학하는 사람도 많다.
외부에서 보면 발할라의 C클래스급 생도는 이미 현역 영웅.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들이는 인물들이다.
어지간히 돈 씀씀이가 헤픈 것이 아니라면 돈이 부족할 일은 없다. 사회생활이 부족한 김건에게 별다른 안목은 없지만 노바는 그리 손이 커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도 돈이 없다면…….’
그는 찬찬히 노바를 살펴보았다.
짙은 다크서클, 꾀죄죄한 몰골.
소매에 커피 방울이 묻어 있고 손톱이 길다. 그녀에게선 뭔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센델 교수님의 이야기를 꺼냈었지.’
센델 교수, 그의 곁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김건은 문득 강한 기시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연구비로…….”
노바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녀는 김건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말을 쏟아 냈다.
“맞아! 얼마 전에 실험하다가 폭발이 일어나서 연구실이 박살 나 버렸어! 그것 때문에 빚이 생겨서 말이야! 그게 얼마인지 알아? 무려 5억이야! 너무한 거 아니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좋을 일을 연구하다가 그런 건데! 너도 상당한 연구 벌레라고 들었는데, 너는 이해하지? 그렇지?”
흥분해서 말을 잇는 노바.
입을 열 때마다 점점 얼굴이 다가왔다. 짙은 향수 내음이 코를 간질이고 보드라운 몸이 팔뚝에 닿았다.
당황한 김건이 허리를 젖히며 몸을 뺐지만 노바는 개의치 않고 김건의 팔을 붙잡은 채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코를 훌쩍였다.
“아빠도 이제는 못 물어 준다고 하고, 난 정말 망했…….”
속사포같이 터져 나오던 말이 갑자기 멎는다.
그녀의 옆에, 푸른 머리의 악귀가 있었다.
“…….”
공기가 얼어붙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한서리의 마력에 반응한 대기가 급속도로 수축하며 서리가 날렸다.
공중으로 떠올라 흩날리는 푸른색 머리카락의 모습을 보면 정말로 귀신이 따로 없었다.
노바가 숨을 삼켰다.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파랗게 질려서는 히끅 히끅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사람 하나 잡게 생겼다.
김건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새파랗게 눈을 불태우고 있는 아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어머나.”
갑작스레 남편의 품에 안기게 된 한서리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차가운 공기가 가라앉으며 따뜻한 온기가 돌아왔다.
김건은 여전히 두려운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바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공연 준비 잘하세요.”
그러고는, 한서리를 안은 채 훌쩍 몸을 날려 산책로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