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3화
먼 거리에서의 폭발을 눈치챈 노바 라디스티는 바로 환영을 이루고 있는 마력을 회수했다.
피로와 스트레스로 멍하니 흐려져 있던 젊은이의 눈에 예리한 빛이 감돌았다.
‘뭐지? 마인의 테러인가? 아니면 게이트가 열렸나?’
실전으로 단련된 상황 판단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뭐야? 방금 뭐였어요?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는데…….”
공연을 감독하던 놀이공원 직원이 놀라 물었다.
노바는 구석에 놓아 두었던 전투용 벨트와 장비를 걸치며 외쳤다.
“몰라요! 하지만 뭔가 위험한 일이 일어난 건 확실해요!”
“뭔가라니, 그런 애매한…….”
직원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시야 한편에서 거대한 대관람차가 비스듬하게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굉음과 함께 붕괴가 멈추긴 했지만 그토록 거대한 쇳덩어리가 균형을 잃고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자 노바가 소리쳤다.
“그러고 있지 말고 도망쳐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피난의 유도와 영웅의 호출을 부탁해요!”
“아, 알았어요!”
직원이 헐레벌떡 뛰쳐나가고, 노바는 회수한 마력을 정돈하며 폭발의 근원지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C클래스의 발할라 아카데미 원생은 아직 프로는 아니지만 언제든 실전에 뛰어들 수 있는 대기 병력이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파티원들에게 도움 요청 신호를 보내며 귓볼을 만져 위아래로 흔들리는 안경을 고정시켰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턱 밑에서 새하얀빛이 번뜩였다.
노바의 가슴팍에서 부풀어 오른 검은 그림자가 그녀의 턱을 꿰뚫으려 하는 칼날을 막았다.
- 위험, 위험.
노바의 목숨을 구한 것은 장난감처럼 생긴 원숭이 형태의 골렘이었다.
골렘의 눈이 빛나며 건조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쯧 하고 혀를 차며 측면으로 기동하는 습격자.
원숭이의 눈이 회전했다. 머리에 얹어져 있는 모자가 진동. 골렘의 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한쪽 손에 든 심벌즈로 노바의 옆구리를 방어. 날카롭게 찔러 들어가는 습격자의 공격을 막아 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노바가 골렘의 등에 달라붙었다.
“얏찌! A폭탄!”
그녀의 외침에 호응한 원숭이의 입이 열리며 동그란 공이 굴러 나왔다. 뒤로 후퇴하는 습격자.
공이 폭발하며 빛과 굉음이 사방으로 몰아쳤다.
눈앞에 태양이 뜬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광량이 주변을 새하얗게 밝혔다.
백색의 커튼이 걷히고 다시금 하늘에 어둠이 깔렸을 때, 충분히 거리를 확보한 노바는 원숭이의 등에서 내려왔다.
“후욱-!”
- 위험, 위험.
그녀의 골렘인 얏찌가 아니었다면 방금 전, 노바는 죽었다.
죽음의 강에 발을 담갔다가 돌아온 몸이 차갑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녀는 거칠게 숨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검은 여자가 있었다.
검은 단발, 검은 재킷에 늘씬한 다리를 감싼 검은 가죽 바지.
얼굴을 제외한 부위를 온통 새카만 색으로 칠한 여자였다.
“오~ 제법인데. 내 공격을 막다니, 보통 골렘이 아니야. 키우려고 고생 좀 했겠어.”
방울같이 맑은 목소리. 노바를 죽이려 했던 습격자는 방글방글 웃었다. 그러나 애교 있게 깜빡이는 눈 속에 시커먼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강한 마력은 그것을 지닌 사람의 신체에 영향을 준다.
강한 마기(魔氣) 역시 마찬가지.
여자의 눈에는 흰 부분이 없었다. 점액질처럼 끈적하게 꿈틀거리는 검은자위 안쪽에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붉은 눈동자가 박혀 있다.
노바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마인…….”
벨제불에게 영혼을 판 인간.
겉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마기에 몸이 물들어 이계의 존재가 되어 버린 괴물들.
놈들을 통솔하는 마인협회의 암약에 고통받는 사람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그저 순박하게만 보이던 노바의 얼굴에 일순 독기가 감돌았다.
노바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벨트의 홀스터에서 총이 뽑혀져 나왔다. 쇠와 플라스틱을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듯한 조잡한 총.
방아쇠를 당기자 쏘아져 나온 것은 하얀색 섬광이었다.
초고열의 레이저가 마인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 속도는 섬전.
하지만 총을 뽑고 조준하는 동작에 반응한 마인은 고속으로 광선을 피했다.
“후─.”
하얀 미소와 함께 발을 박찬 마인은 검은 연기를 남기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큭!?”
빨라!
움직임을 시야에서 놓쳤다. 동체 시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서둘러 얏찌의 옆으로 몸을 붙이는 노바였지만.
“느려.”
순간이동에 가까운 속도로 눈앞에 나타난 마인의 모습에 노바는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얏찌가 뒤늦게 심벌즈를 휘둘렀지만, 마인은 너무나도 가볍게 공격을 피해 내며 단검을 찔렀다.
그리고, 뾰족한 금속이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응?”
생육을 뚫는 감각이 없다.
빛으로 만들어진 환상.
타닷!
“어딜!”
가볍게 움직이는 발소리에 마인의 귀가 쫑긋했다. 곧바로 손을 휘둘러 투명한 무언가를 베어 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무것도 아니었다.
곧이어 사방에서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인은 그 소리가 옆에 서 있는 원숭이 형태의 골렘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위험, 위험.
뚜껑이 열린 원숭이의 모자로부터 진동이 울리고 있다. 원숭이가 심벌즈를 쳤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부채살처럼 빛이 번졌다.
쓰러지는 도미노를 역재생하듯 사람의 그림자가 순차적으로 일어난다.
다음 순간, 마인은 수백 명으로 갈라진 노바 라디스티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보라색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빛의 마녀라 불리는 영웅 지망생이 입을 열었다.
[당신, 루키킬러라는 마인이지?]
수백 명의 노바가 동시에 말을 하자 기묘한 진동이 일어나며 귓가를 왕왕 울렸다.
방향 감각이 흐트러진다.
마인은 흘끗 옆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이 역시 원숭이 골렘이 가진 능력이리라.
빛을 사용한 환상으로 시야를 현혹하고, 골렘의 기능으로 귀를 혼란시킨다.
시각과 청각을 없는 것보다도 못한 상태로 만든다. 어지간한 마인은 이 조합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
‘역시, 지금 죽여야 해.’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은색의 여자, 아니, 루키킬러는 히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건데?”
노바들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들은 적의에 가득찬 시선으로 루키킬러를 노려보았다.
[당신 손에 지금까지 많은 선배와 후배들이 죽었다고 들었어.]
“감사받을 일이지, 벨제불 님의 강림에 방해될 쓰레기들을 치워 준 거니까.”
[마신의 강림에 왜 내가 감사해야 하지?]
루키킬러는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지. 어차피 이 세상 모두는 죽을 거고, 벨제불 님은 죽은 자들을 관장하는 마신이니까. 너 역시 결국에는 벨제불 님의 권속이 될 거라는 거지. 그러니 얼른 죽어. 더 이상 죄를 쌓지 말고.”
[죽은 자가 아니라 시체를 관장하는 신이겠지.]
한숨을 쉬며 얼굴을 감싸는 노바들.
반대쪽 손을 들어 올린다. 레이저를 쏘아내는 총구 수백 개가 마인을 향했다.
[그토록 죽는 게 좋다면 당신이나 먼저 죽어.]
“이거 어쩌나~ 마인의 몸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루키킬러는 끝까지 여유를 부렸다.
노바는 이빨을 깨물었다.
[그래? 그러면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소각해 줄게.]
방아쇠가 당겨졌다.
수백의 노바가 일제히 빛의 광선을 쏘아낸다.
하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허상이지만, 그들이 쏘아 낸 레이저는 진짜였다.
빗발처럼 쏟아지는 백색 빛줄기가 사방에서 루키킬러의 몸을 꿰뚫었다.
라디언트 챔버.
빛의 마력을 사방에 뿌려 결계를 구축하고, 구축한 결계의 마력을 일제히 소모하는 것으로 지정한 중심부를 향해 수백 발의 레이저 줄기를 꽂아 넣는 고난이도의 마법.
환상 마법과 조합해 사용되는 이 기술은 노바가 가진 필살의 주문 중 하나였다.
콰아아아아앙!
고열의 빛이 집중된 공간의 대기가 복사열로 인해 급격히 팽창하다 폭발을 일으켰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모습을 드러낸 노바가 뒤로 물러섰다.
소매로 코를 틀어막은 그녀는 작게 콜록거리며 잿더미가 되었을 루키킬러의 시체를 찾았다.
하지만 먼지가 걷힌 뒤, 그녀가 발견한 것은 검게 탄 지면뿐이었다.
“……윽!?”
신음을 토하는 노바.
메마른 박수 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자 전투의 여파로 비스듬히 휘어진 가로등이 있었다.
반쯤 부서져 애처롭게 점멸하는 전등 위로 새카만 인영이 보였다.
“대단해. 과연 셉텐크리온의 일원이야. 벌써부터 이 정도의 전투력이면, 명예에 전당에 올라가는 것도 꿈은 아니겠어.”
루키킬러가 그곳에 있었다.
노바의 예상과 달리 사지가 멀쩡한 채 전등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아주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닌지, 갈기갈기 찢어진 옷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루키킬러는 고열로 쪼그라든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당기며 엄살을 부렸다.
“하마터면 벨제불 님 품으로 돌아갈 뻔했어. 피할 수도 없는 광선을 그렇게 쏘아 대다니, 나랑 상성이 너무 안 좋잖아.”
노바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 번 발동된 라디언트 챔버에 빈틈은 없다.
‘방아쇠를 당기는 틈에 결계를 빠져나왔나…….’
말은 쉽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순간이동에 가까운 움직임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최초의 접근에서도 말도 안 되는 속도의 이동을 보였었다.
공격력도 방어력도 별거 없다. 하지만 루키킬러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노바는 빛의 마녀라는 이명을 지닌 자. 아무리 몸이 빨라도 광속에 비할 수는 없다.
루키킬러의 말마따나 상성으로는 이쪽이 유리했다.
다음번에는 확실히 명중시킨다.
그 같은 다짐을 하며 노바가 태세를 정비할 때였다.
루키킬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나로는 안 되겠어. 그러니 다른 사람을 불러야지.”
검은 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부서져 있던 전등이 픽 꺼지며 순간적으로 사위가 어두워졌다.
다음 순간 불이 들어왔을 때, 가로등 아래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였다.
꼬질꼬질하게 때가 낀 스니커즈. 다 찢어진 청바지에 검은 후드티를 걸쳤다.
허리에 찬 것은 길게 뻗은 일본도.
언뜻 보기에는 검사 흉내를 내는 노숙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깊게 눌러쓴 후드 때문에 마인의 특징인 검은 자위의 눈, 흑주안은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가 마인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끈덕한 질감을 가진 검은색 아지랑이가 은은하게 남자의 신체를 덮고 있었다.
벨제불에 의해 변이된 마력.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마기의 증거였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마른 입술이 달싹였다.
“꺼져라, 광대. 저 여자는 내가 상대하겠다.”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명령을 내린다. 루키킬러는 “예이~ 알겠습니다요~”, 하며 뒤편으로 물러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협공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딱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노바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남자를 관찰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를 죽이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후에 벨제불 님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 인간이라고 하니, 여기서 죽어 줘야겠다.”
중얼거리던 남자가 허리춤에 튀어나와있는 칼 손잡이에 손을 얹고는 살짝 무릎을 굽히며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노바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전위가 아니었기에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갈고닦아 온 전투 감각이 위험을 감지했다.
남자가 흩뿌리는 예기에 숨통이 막혔다. 예리한 면도날을 목젖 아래에 둔 것 같은 긴장감에 심장이 요동쳤다.
가만히 있다간 당한다!
위협을 느낀 노바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의 옆을 지키던 얏찌가 심벌즈를 쳤다. 그와 함께 다시 한번 노바의 특기인 환상 마법이 펼쳐졌다.
수백 개로 갈라진 노바가 사방으로 퍼져 도망가며 총구를 들어 남자를 조준했다.
레이저를 발사.
방금 전처럼 수백 줄기의 레이저가 공간을 꿰뚫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이 가짜.
라디언트 챔버처럼 큰 기술을 사용할 시간은 없다.
우선은 견제다. 아직 상대의 능력을 모르니 선제공격으로 반응을 보고 거기에 맞춰서 대응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무른 생각이었다.
남자의 몸에서 끓어오른 검은색 오라가 레이저를 막아 냈다. 앞으로 발을 내딛자 한달음에 거리가 좁혀졌다.
그는 수백 명의 노바들 사이에 섞인 진짜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 들어왔다.
“……뭐!?”
당황해할 틈도 없이 남자의 허리춤에서 칼날이 쏘아져 나왔다.
노바 대신 충실한 골렘인 얏찌가 움직였다. 심벌즈를 들어 칼을 막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을 손으로 가려 보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궁극에 달하면 이론상으로 분자마저 잘라 낼 수 있다고 하는 오라의 칼날을 덮어쓴 일본도가 두부처럼 심벌즈를 가르고 얏찌의 팔을 날려 버렸다.
시원하게 좌우로 종횡하는 칼날.
- 위험. 위──
든든하게 노바의 앞을 지키던 골렘이 순식간에 해체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직…… 안 끝났어!”
얏찌의 희생으로 시간을 번 노바가 후퇴하며 다시금 환영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분신이 아니라 아예 상대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는 환상을 펼쳐 냈다. 그녀 앞의 공간이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무지개색으로 뒤덮였다.
천연색으로 물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빨간 땅이 엿가락처럼 늘어나 위를 향하고, 노란 하늘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며 사방의 사물이 게게 녹아 나선형으로 흘렀다.
대부분의 인간이 이 기술에 당하면 시각의 과부하로 어지럼증을 느끼며 원근감과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심하면 구토나 기절에까지 이른다.
상대를 죽일 순 없지만 시간을 벌기엔 최적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움직임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소용없어.”
그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칼끝에서 피어오른 오라가 길게 늘어지더니 반달 형태의 칼날이 되었다.
싸악!
5미터는 넘게 떨어져 있는 노바의 몸통을 갈랐다.
노바는 가까스로 방어 마법을 발휘해 막았지만, 멀찍이서 날린 칼날의 충격까지 없애진 못했다.
“크악!”
차에 치인 듯이 뒤로 날아가 벤치에 몸을 들이받는다. 운동과 거리가 먼 연약한 몸에 닥친 충격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으웨엑!”
노바는 위액을 게워 내며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왜 환영 마법이 통하지 않지?
그 이유는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알려 주었다.
깊게 눌러썼던 후드가 바람결에 휘날리며 뒤로 젖혀졌다.
그렇게 드러난 남자의 얼굴을 직면한 노바의 등골에 전율이 달렸다.
남자는 눈이 없었다.
그의 미간 아래에 있는 것은 그저 시커먼 구멍뿐이었다.
“심안(心眼)을 깨우친 내게 그따위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장님이자 검사인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어 노바에게 다가왔다.
노바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다잡으며 다음 수를 생각했다.
방어형 골렘인 얏찌를 순살하는 고제련의 오라, 그리고 원거리에서 방어 마법을 깨부수는 검기의 방출.
눈앞의 마인은 최소 델타급 몬스터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노바의 환영을 무시하는 장님으로서의 특이성, 그리고 마기라는 힘이 가진 다양한 특수 능력까지 고려하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델타만 되어도 S급 이하의 영웅은 단독 전투가 불가능한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 설령 S급 영웅이라 해도 파티 플레이를 통한 협공으로 상대하는 것이 요구되는 괴물.
정상적인 전투를 벌여서 노바가 싸워 이길 확률은 한없이 낮았다.
하지만…….
노바에게는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 두었던 기술이 있었다.
그녀가 영웅이 된 것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과는 너무나 다른 마계라는 세상, 그리고 마력이라 불리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장 빠르고 밀접하게 접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생물이며 광물이며 가릴 것 없이, 마계에서 나타나는 물건들은 무엇 하나 신비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녀는 철저히 연구자였고 그녀가 가진 영웅으로서의 실력은 그러한 연구를 하다가 나온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청각을 흐트러트리는 음파 마법을 탑재한 골렘인 얏찌를 만든 것도 그녀, 고열의 광선을 발사하는 총을 만든 것도 그녀다.
노바는 연구의 일환으로 자신의 몸에도 손을 댔다.
그녀의 왼쪽 눈 아래, 두개골 사이의 빈공간에는 아주 작게 가공된 마정석이 이식되어 있었다.
마력 사용자의 보조 배터리의 형태로 신체 일부분에 마정석을 이식하는 것은 이미 실용화된 기술이지만, 그 활용성을 직접 체험하고 검토하기 위해 작은 실험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지금까지 성공적인 실적을 거두고 있었다.
노바의 시선이 남자의 미간으로 향했다.
조준 완료.
그녀는 다음 순간, 살짝, 평소와 다른 각도로 어금니를 깨물었다.
노바의 눈에서 새빨간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아무런 주문도, 마력을 모으려 하는 행위도 없다.
그저 지정된 트리거를 발동시키는 것만으로, 몸속에 이식해 둔 마정석의 마력을 소모하여 구사하는 공격.
마력의 양이 적어 공격력은 낮다.
하지만 아무런 보호도 받지 않는 인간의 머리를 꿰뚫기에는 충분했다.
조준은 눈으로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고, 광속으로 공간을 가르는 일격은 대응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인간이 이 공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
“아?”
갑자기 앞이 안 보였다.
쏘아진 빛줄기가 하늘로 솟구쳐 날아갔다.
노바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가까스로 회복된 시야의 한편이 어둡다. 흐려진 반쪽 시선의 너머로 칼을 도로 꽂아 넣는 남자가 보였다.
“호흡이 거칠어. 뭘 하려는지 다 보인다. 이만 포기해.”
조각난 왼쪽 눈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