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아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 14화
“……!!”
노바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극심한 격통이 번개처럼 얼굴의 반쪽을 때렸다.
영웅이라면 항상 몸에 문신을 새겨 각인시키고 다니는 응급마법이 발동. 진통, 지혈, 신경안정 등 효과를 지닌 마법이 줄줄이 작동했다.
노바의 각인은 그녀 개인의 개조를 통해 즉효성을 강화시켜 두었기에 1초 만에 모든 마법이 효력을 발휘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이성을 찾고 태세를 갖추었지만 이미 늦었다.
“죽어라.”
죽음을 직감한 노바가 숨을 들이켜고, 남자의 검집에서 칼이 뽑혀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뭔가를 직감한 남자가 머리를 숙였다.
검은 무언가가 남자의 머리가 있던 공간을 가로질렀다. 길게 날아온 그것은 곧장 노바에게 날아가 그녀를 감싸 안더니 강한 힘으로 잡아당겼다.
공중으로 떠오른 노바를 누군가가 낚아챘다.
뱀처럼 물결치는 채찍을 휘감으며 하얀 냉기와 함께 내려앉는다.
“다 큰 어른들이 잘들 하는 짓이다.”
김건은 그렇게 말하며 얌전히 품속의 노바를 내려 주었다.
“아…….”
죽음의 공포를 마주한 탓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는 그녀를 부드럽게 앉혀 준다.
갑자기 나타난 방해꾼에 뒤편에 있던 루키킬러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넌 뭐야?”
김건은 무감정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굳이 정체를 말하고 싶진 않네. 어차피 곧 알 필요 없어질 테니까.”
“그러네, 죽은 놈이 누구든 무슨 상관이겠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루키킬러의 형체가 증발했다.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김건의 등 뒤에 출현. 뾰족한 단검이 김건의 심장을 노렸다.
그리고, 철퇴 같은 손등이 루키킬러의 콧등에 처박혔다.
“컥!?”
숨을 토하는 루키킬러.
뒤를 보지도 않고 암살자를 요격한 김건이 허리를 틀며 다음 공격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그가 돌아본 곳에 남아 있는 것은 검은 연기와 점점이 떨어지는 핏방울뿐이었다.
사라졌던 루키킬러가 장님 검사의 등 뒤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에 지금까지 보였던 여유는 없었다.
코를 움켜쥔 손아귀 아래로 주르륵 핏줄기가 흘렀다.
“이, 이 새끼…… 어린놈의 새끼가아아!!”
여자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흘러나왔다.
루키킬러가 검은 눈을 희번득거리며 죽일 듯이 김건을 쏘아보았다.
반면 장님 검사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가 노바의 기습을 막아 냈듯이, 아무리 빠른 공격이라도 의중을 읽히면 의미가 없다.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의중을 읽고 대응할 수 있는가.
그것은 싸움꾼으로서의 실력을 나타내는 척도다.
장님 검사가 앞으로 나섰다.
“제법 상대할 만한 놈이 나타났군. 물러나라. 저놈은 전사야. 너 따위 잔재주꾼이 상대할 자가 아니다.”
“이런 개 같은…….”
루키킬러는 이를 벅벅 갈았지만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장님 검사는 허리에 걸쳐 둔 검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콧등을 찡긋거렸다.
“풋내가 나는군. 나이도 어린놈이 수련을 잘 쌓았어. 호흡과 심장 박동을 숨길 줄도 알고. 제법이야.”
남자가 내보이는 여유에 김건은 비웃음을 띠었다.
“그쪽이야말로 제법인데, 눈깔 병신 치고는 상당해 보여.”
“호오…….”
능숙한 도발에 미소를 짓는 마인.
그새 몸을 추스린 노바가 김건의 옷깃을 잡았다.
“도, 도망쳐! 저 마인…… 보통이 아니야! 이미 초월자급에 가까워, 생도가 상대할 만한 놈이 아니야!”
김건은 슬쩍 고개를 돌려 노바를 바라보았다.
한쪽 눈에서 검은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도망은 못 칩니다. 이쪽은 부상자도 있는 데다 저쪽이 더 빨라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장님 검사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거리를 좁혀 오며 입을 열었다.
“시도는 대견하다만 도발은 안 먹힌다. 젖비린내 나는 꼬마 말에 흥분할 나이는 아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발도세를 취했다.
살짝 허리를 틀며, 언제든 김건의 목을 떨궈 낼 수 있도록.
그에 대한 김건의 대응은 단순했다.
장님 검사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 등을 돌리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노바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뭐 하는 거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한 행동에 노바가 펄쩍 뛰고 장님 검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김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노바의 상처를 만졌다.
“마기에 당한 상처는 바로 도려내야 해요. 가만히 있다간 독기가 뇌에까지 미칠 겁니다. 다른 건 다 돼도 뇌 손상은 회복시키기 힘들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전투용 벨트에 달라붙어 작게 압축되어 있던 단검을 꺼내 검게 변색된 상처부위를 잘라 냈다.
“끄아아악-!”
갑작스러운 김건의 행동에 노바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뒤틀었다.
“만지면 안 돼요.”
얼굴을 짚으려는 손을 김건이 막았다. 그는 발작하는 노바를 억누르며 미약하게 짜내 만든 바늘 형태의 오라를 노바의 혈도에 꽂아 통증을 완화시켜 주었다.
적이 아무렇지도 않게 부상자를 치료하고 있는데 그걸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루키킬러가 날뛰었다.
“뭘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저 새끼가 등을 보이고 있잖아! 빨리 죽여 버려!”
“기다려라, 원래 맛있는 음식은 충분히 애를 태운 다음에 먹는 거다.”
“무슨 병신 같은…….”
어이없어 하는 루키킬러.
하지만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장님 검사는 김건이 노바의 치료를 마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대로 있어요.”
조치를 끝낸 김건이 일어난다. 그가 몸을 돌리자 장님 검사는 빙긋 웃었다.
“일은 끝났나?”
“그래.”
“어린놈이 꽤 대담해서 감탄했다. 일부러 등을 보여 공격을 유도할 생각이었지?”
김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딱히 말해 줄 생각은 없어. 하지만 네놈이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
“그걸 어떻게 알지?”
“너처럼 겉멋이 든 놈들은 생각하는 게 뻔하거든.”
“…….”
장님 검사의 입술이 일순 일그러졌다.
짜악-!
김건이 채찍을 내리쳤다. 낭창거리는 금속이 공기를 찢으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덤벼.”
“그러지.”
장님 검사가 땅을 박참과 동시에 김건의 어깨가 움직였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한서리의 버프가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극도로 강화된 삼각근과 상완근, 이두근이 증폭하며 늘어져 있던 채찍이 초고속으로 가속하여 가로로 공간을 찢었다.
장님 검사가 엄지를 튕기고, 별빛처럼 쏟아져 나온 칼날이 가로로 찢어진 공간을 다시금 세로로 갈랐다.
두 무기가 십자로 교차. 고도로 경화시켜 예리하게 다듬은 오라의 칼날과 고등 기술로 제련한 리빙메탈의 충돌에 새하얀 불꽃이 튀며 부서진 오라가 허공에 휘날렸다.
채찍을 튕겨 낸 장님 검사가 올려쳤던 검날을 회수하며 내리치자, 반달 형태의 검기가 맹렬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채찍을 당겨 검기를 막아 낸 김건이 곧바로 거리를 유지하려는 사이.
장님 검사는 무시무시한 돌진력으로 채찍의 유효 사정거리를 뚫고 김건을 검격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거리를 좁힌 장님 검사가 연속으로 검을 쏟아냈다.
양손으로 채찍을 당겨 잡은 김건이 풍차처럼 팔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막았다.
파바밧!
검과 채찍, 주먹과 발이 번개처럼 오갔다.
한순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폭음과 함께 뒤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김건의 손바닥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장님 검사의 소매가 퍽 하고 터져 나갔다.
장님 검사의 검신에 옅게 묻은 핏방울이 흘렀고, 김건의 팔뚝을 감싼 옷이 찢어지며 핏줄기가 튀었다.
“권각술에 꽤 능숙하군. 채찍을 다루는 것도 제법이고. 싸움 기술만큼은 상당히 놀라워.”
그는 그렇게 말하며 터진 소매 사이를 보였다. 찢어진 천조각의 안쪽으로 검게 칠한 오라의 장벽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렇게 드러난 팔은 상처 하나 없이 멀끔했다.
“하지만 오라를 다루는 건 미숙하기 짝이 없군. 강체술로 신체 능력을 유지하는 게 고작인가. 그래서는 오라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상대의 실력을 간파한 남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다시금 기수식을 취했다.
“네놈의 실력은 잘 알았다. 다음번엔 확실하게 목을 떨어트려 주마.”
그의 온몸에서 검은 오라가 들끓었다.
강체술로 만들어진 오라의 근육이 몸을 비집고 나와 요동치고 손잡이를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힘이 응축됐다.
그야말로 만반의 태세.
그에 반해, 김건은 아무런 자세도 갖추지 않고 방금 전에 노바를 치료했던 단검으로 팔뚝을 치료하고 있었다.
“아프잖아. 빌어먹을.”
마기의 독성으로 변색된 살점을 잘라 내곤 지혈 효과가 있는 마법 패드까지 꺼내 붙인다.
그 유유자적한 행태에 장님 검사가 분노했다.
“뭐 하는 거냐! 신성한 결투 중에!”
김건의 눈이 흘끗 장님을 향했다.
하지만 그 시선은 곧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넌 이미 죽었어.”
“그게 무슨 개소…….”
말을 잇던 장님 검사의 입이 멈췄다.
어느 샌가, 그의 입술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를 직감한 그의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숙여졌다.
퍽, 하는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에 닿은 것도 아닌데 멀쩡하던 가슴께가 깊숙이 파였다.
심장을 포함한 흉곽의 일부가 완전히 파괴되어 안쪽으로 가라앉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당한 건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는 마치 눈이 있는 사람처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김건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입가가 벌어지며 왈칵 핏물이 터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시체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졌다.